ilman의 세계여행(1)

뉴욕(2)/북미 동부 여행

ilman 2007. 2. 11. 11:08

미 동부 여행/뉴욕 기행(2)
(2005년 9월 27일~10월 6일/  뉴욕-워싱턴-나이아가라-토론토-오타와-몬트리올-보스턴-뉴욕/한:노랑풍선, 미:동부관광/가이드 정, 김규영 )

*. 낯설지 않은 뉴욕 시내

  투어여행의 일정 따라 버스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뉴욕의 중심가를 지나가고 있는데, 처음 와보는 뉴욕이건만 늘 귀로 듣던 건물, 지명이 많아서인지 아주 낯선 곳 같지가 않다. 옛날에 왔던 곳을 다시 와보는 것 같았다.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총 공사비 2천5백만 달러를 들여 1883년에 완성되었다는 세계에서 제일 긴 현수교(懸垂橋)라는 '브루클린 교'. 단편소설 작가 어윈 쇼가 ‘거리 중의 거리’라고 극찬한  뉴욕의 심장이라는 '뉴욕 5번가'. 세계 금융의 메카 '월가(Wall Street)', 예술 문화의 중심지인 '브로드웨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이전에는 뉴욕에서 가장 높았었고,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빌딩이라는 '크라이슬러 빌딩'. 뉴욕에서는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아파트 사람들을 위해서 2대째 록펠러 가문에서 계속 수돗물을 공짜로 공급하여 준다는 도시 중의 도시 '록펠러 센터'는 그 21개 빌딩의 건물 층수를 합하면 557층이나 된다 한다. 흑인들의 애달픈 반항의 거리' 할렌가' 등등. 그뿐인가 미국의 일부를 둘러보았을 뿐인데도 우리나라가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이로구나 하는 것들을 수없이 느끼게 한다. 워싱턴 D.C(워싱턴 특별구)- '서울특별시', 뉴욕의 맨해튼- '서울의 여의도', 뉴욕의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 여의도의 '금성 쌍둥이 빌딩' 등등 그러한 것이었다.*. 비운의 쌍둥이 건물 세계무역센터  

“-세계무역센터 꼭대기로 무언가가 돌진하고 있다. -세계무역센터 막 폭발했다. -한쪽 빌딩 남쪽 면 밖으로 수백 명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03년 9월 11일 오전 9시 전후에 뉴욕에서 미국인이 자랑하던 제일 높은 110층의 쌍둥이 건물인 세계무역센터는 한갓 박스 절단용 칼로 무장한 알 카에다 테러범들에 의해 동시에 붕괴하여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비슷한 시간에 미 국방부 건물도 같은 방법에 의하여 동시다발적 테러로 파괴되고 말았다.
아침이라서 다행히 5천 명의 희생자에 그쳤다고 했다. 충돌 후 1시간 내에 밖으로 뛰어나온 자는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 유족들은 지금도 정신병으로 시달리고 있고, 그 근처에서 살거나 일하던 모든 사람들이 망하여 떠나가 버리는 비운의  고장이 되고 말았다.
 이 테러로 부서진 164만 t의 잔해를 치우는데 8개월 동안이 걸리는 동안 미국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어느 나라에게도 불가침의 아성(牙城)이었던 미 본토의 중심부가 진주만(珍珠灣) 보다 더 큰 피해로 파괴된 것이다.
우리는 이를  ‘9.11테러’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긴급전화 ‘119’나 ‘112’를 포함한 전화가 미국에서는 ‘911’이라니  테러범들은 여기까지 신경을 썼던 모양이다.

지금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피폭 현장)에서는  ‘프리덤 타워(Freedom Tower)’가 착공되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미합중국은 228주년 미 독립기념일인 지난 7월 4일에, 미 독립선언 선포된 해인 1776년을 상징하는 1천776피트(약 533m)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프리덤 타워(Freedom Tower)’ 건립을 선포하였다. 테러에 사라진 WTC(세계무역센터) 보다 더 웅장한 빌딩 재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미국이기 위해서 무너진 미국의 자존심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프리덤 타워'는 계획대로라면 오는 2009년 완공될 것이다.
그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은 곳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 ‘프리덤 타워(Freedom Tower)’ 초석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다.
-2001년 9월 11일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또 영원한 자유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래서 미국에 입국할 때, 큰 건물에 관광차 들어갈 때마다 입국심사 이상의 몸 검색을 하고 있었다. 미국은 테러의 공포 속에 떨고 있었다.

*. 성 요한 성당 (Johns;cathedral)

 뉴욕 맨하탄에서도 가장 경치 좋은 콜롬비아 대학의 동쪽에 '성 요한 성당'이 있다.  
1892년부터 짓기 시작한 이 성당은 전채의 2/3 정도밖에 완성되지 못한 체 2050년에 완성된다는 세계 최대 성당이다.
이 교회 건물은 철제 골조를 사용하여 지은 최초의 건물인데 다리미와 비슷한 모양이라 해서 플랫아이런(plat Iron)으로 부르기도 한다.
건설 당시의 목표로는 로마 베드로 성당에 버금가는 높이 180m에 폭이 45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을 아메리카 대륙에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완공이 이렇게 늦게 된 것은 이 지역이 범죄의 온상인 할렘 가(街)에 있기 때문이었다. 할렘가의 건물들은 한결 같이 아무도 쓰지 못하게 창문까지 벽돌로 폐쇄하여 버려서 유령의 도시 같았다.

*. 성 패트릭 성당(st. Pedric church)
 우리들이 탄 관광버스는 성 패드릴 성당을 지나고 있다.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뉴욕 대사교의 관구 본부가 있는 곳으로 케네디 부부가 손잡고 다니던 교회요, 암살당한 후 장례식을 거행한 성당이기도 하다.
이 성 패트릭 성당을 보고 놀란 순진무구한 한 어린이의 동심이 한 마디로 패트릭 성당의 웅장함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
지난 주 뉴욕에 갔을 때,
성 패트릭 성당을 보았어요.
하나님은 아주 으리으리한 집에서 사시던데요.
- 프랭크로부터
 
일반적 관습상으로는 개신교에서는 교회(敎會), 카도릭에서는 성당(聖堂)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교회'란 예배 의식이나 그 밖의 종교 단체의 모임이나 이를 위해 세운 예배당을 말하는 것으로 카도릭에서도 쓰는 말이지만, '성당'은 주로 카도릭에서 예배당으로 주로 쓰고 있는 말이다.
미국은 물론 대다수의 서구인들이 믿고 의지하는 카도릭과 개신교이지만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요란하지가 않았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적지 않은 나라를 유심히 둘러보았지만 한 번도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처럼 전도를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저들에게는 우리나라처럼 전도를 한다고 남의 아파트 벨을 함부로 누르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는 남의 사생활 침해가 되는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알고 삼가하는 국민이었다..
혹 가다 만나는 교회의 뜰은 묘지로서,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 간 이를 위하여 아름답게 가꾸고 있었고, 우리나라처럼 묘지를 혐오 시설로 생각하지 않아서인가 묘지가 있는 부근 지역이 오히려 집값이 더 비쌌다.
죽음을 영생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어서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 간 이의 무덤을 보살피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저절로 머리 숙여 없던 신앙심이 우러나오곤 했다.
부부 중 먼저 죽은 이는 깊게 묻고, 나머지 한 쪽이 죽으면 그 무덤 위에 묻는 풍습이이 있었다. 이혼하여 혼자 살다 죽은 여인은 전 남편 무덤가에 묻히는 것이 미국인들의 관행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이혼하면 사랑하던 사이가 서로 불공대천지 원수(不共戴天誌怨讐)로 돌변하여서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 자유의 여신상
                                                                                  

나에게 다오,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무리들을.
부둣가에 몰려든 가엾은 피난민들을.
거처도 없이 폭풍에 시달린 이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나는 금빛 문 옆에 서서 그대들을 위해 횃불을 켜리라.
         - 새 거인(the new colossus: :라자러스 지음)

 위 글은 뉴욕항의 입구인 뉴저지 주 리버티 섬에 프랑스가 역대 그들의 앙숙인 영국과 싸워 쟁취한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을 위해서 미 국민에게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내부 출입구 중앙 동판에 쓰인 1883년 14행의 소네트 시다.  
이 시의 내용과 같이 억눌러오던 세계에 빛을 밝히기 위해 족쇄를 던져 버리고 횃불을 높이 쳐든 모습은 미국이 자유와 평등을 갈구하는 혈연과 지연을 초월하는 국가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신상을 ‘망명의 어머니(Mother of Exiles)’, ‘이민의 상징'이라 불렀고, 당시 클리블랜드 미 대통령은‘ 미국의 관문을 지키는 여신’이라 하였다. 이 여신이 머리에 쓴 관의 7개의 뾰족한 첨단은 세계 7개의 바다, 7개의 주에 자유가 널리 퍼져 나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프랑스는 프랑스혁명 이념이기도 한 '자유와 평등'을 이 동상에 담아 그 실현을 신생 국가 미국에 희망하면서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보내왔다.
그 기단 내부에 들어가면 실제 크기의 얼굴과 발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 손만 해도 5m, 집게손가락이 2.44m나 된다.
이 여신상은 그 높이만도 약 46m, 박물관인 2~3층 기단을 포함하여 해면에서 횃불까지는 92m로 15층의 높이다. 횃불을 들고 있는 오른손의 지름이 4m이고 길이가 13m, 총무게는 225t에 달한다. 당시 프랑스의 반 노예해 방 회장이기도 한 조각가 프레데릭 바르토르디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만든 것이다.
 완공되자 다시 해체하여 214개의 상자에 넣어 기차 70칸에 싣고 가서 ‘이제흐 Isère’라는 배에다 싣고 제작자인  ‘바르똘디’와 함께 미국으로 보냈다. 그 내부 구조를 만들 때는 에펠탑을 만든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협조한 모양이다.
 9. 11일 테러로 떨고 있는 미국이라서 지금은 관광객의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옛날이면 몇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횃불까지 나선형의 비좁은 168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10분 정도로 왕관 부분까지는 올라가서 30명 정도가 설 수 있는 공간에서나마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의 경관을 즐길 수가 있던 곳이다.
 처음 이 여신상을 세울 때에 성직자들은 우상 숭배라고, 남부 백인들은 족쇄를 풀러버리는 모습이 흑인 투쟁 심리를 선동하는 것이라고 반대가 대단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미국의 관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뉴욕을 넘어 미국을 상징하고 있어서, 이 일대 동상이 서있는 리버티(Liberty) 섬과  에리스 섬(Ellis Island)은 '국립 자유 여신 상 유적지'로 지적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섬은 맨해튼의 다운타운에 있는 배터리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섬에 내려서 관람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유람으로 섬에 내리지 않고 섬을 돌아오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바토뮤슈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유람하다가 에펠탑 근처에서 본 이보다는 작았던 센 강의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의 이 동상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랑스가 갈망하던 자유와 평등과 공화주의 이상을 영원히 전파하기 위한 나라의 건설과 그걸 축복하는 마음이 오른손으로 높이 쳐든 횃불과 왼손에 굳게 잡은 독립선언서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만으로 파리에 세워 놓으면 몽마르트 언덕보다 높은 이 거대한 여신상을 기증한 것일까?
미국의 남북전쟁 시에 프랑스는 남부군을 지원하다가 북군이 승리하는 바람에 소외된 양국 관계를 우호적인 우방을 삼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산에 올라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바다에서 보는 도시다. 그 도시를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둘 다 자연에서 바라보는 세상이지만 움직이는 섬과 같은 배를 타고 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마천루와 스카이라인의 맨해튼을 바라보며 두 차례 태풍이 씻고 간 흰 구름 둥둥 뜬 뉴욕의 가을 하늘은 관광 엽서보다  너무나 더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