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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白頭山) 종주(하)/ 서파~북파

ilman 2007. 2. 11. 11:01

 
백두산  종주(하)/ 서파~북파
일만성철용  (Homepage) 2005-07-13 07:04:28, 조회 : 809, 추천 : 8

 
백두산 서파(西坡) 종주
 

  2005-07-13 07:04:28, 조회 : 43, 추천 : 1
두산 서파(西坡) 종주(하)
(2005. 6.29~7.4/백두산 西坡-5호경계비-천지-청석봉-백운봉-녹명봉-용문봉-달문-천지물가-장백폭포-온천지역-소천지/[백두산트레킹[여행사와/전:02)2611-0062)

*.천지(天池)여, 천지(天池)여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아내 남편 ilman 만세!”
2005년 7월 1일 11시, 맑은 하늘 아래 천지(天池)를 굽어보면서 우선 나는 큰절을 올렸다.
천지(天池)를 처음 뵙는다는 인사요, 맑은 하늘 아래서 천지(天池)를 굽어볼 수 있게 하여 주시었다는 것에 감사요, 우리 국토에 대한 사랑의 절이었지만, 그보다 분단의 통한을 엎드려 눈물로 하소연 하고도 싶은 울부짖음이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 시를 쓴다는 것은 행복하다.
시(詩)의 우열을 떠나서 나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서다.

산은
백두산(白頭山)은
열여섯 봉우리로 병풍처럼
하늘 아래 첫 천상의 호수(天上湖水)
천지(天池)를 지켜 서서

풍사(風師)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남으로 백두대간 뻗어 내리고
좌우로 압록강(鴨綠江) 두만강(豆滿江)으로
우리 국토를 이루었거니

어찌하여 백두(白頭) , 장백(長白)
둘이 되어
무슨 일로 남한(南韓) 북한(北韓)
둘이 되어

우리의
백두산을 두고도,
장백산에 올라
이국에서
조국 땅 바라보며
이렇게 통곡(痛哭)으로 우러러야만 하는가.

                -천지에서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두산과 천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백두산, 곧 장백산이다. 산이 모두 삼층(三層)으로 되어 있는데 높이가 2백리요, 가로는 천리에 뻗혀 있다. 그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80 리다.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과 혼동강,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화강과 속평강,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이다.”

이보다 더 구체적인 천지에 대한 기록은 영조40년(1764년) 박종(朴琮)의 ‘백두산 유록(白頭山遊錄)’에서다.

“석봉(石峰)이 늘어선 것이 병풍을 두른 것 같고 높이 솟은 것이 군자(君子)와 같은데, 그 복판에 큰 못이 고여 있다. 움푹 꺼져 들어가기를 천 길이나 되며, 물이 독에 있는 것 같아서 엎드려 보면 무서워서 몸이 떨리고, 검푸르게 깊은 것이 잴 수 없으며 땅 구멍에 통할 것만 같다. 얼음이 수면을 덮었는데 열린 곳은 겨우 4분의 1 이며 빛은 푸른 유리와 같고 석문이 영롱하여 사면의 그림자가 비치여 얼음이 엷어서 거울 같다.”

백두산의 넓이는 8,000㎢로 우리나라 8,052 ㎢의 전라북도와 비슷하고, 천지의 넓이는 여의도보다 약간 더 넓다. 그 높이나 넓이는 중국과 북한 자료가 서로 차이가 난다. 그것은 한국은 인천 앞 바다를,  북한은 원산을, 중국은 천진(天津)을, 일제(日帝)는 동경만 앞바다를 해발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기왕이면 우리 동족인 북한의 자료를 주로 따르기로 한다.
백두산의 높이가 2,750m(한국 2,744m, 중국 2.749.6m)인데 천지(天池) 수면은 2,190m로  백두산 서파 종주 길에서 500m 정도 아래에 있다. 내가 준비한 카메라는 광각을 겸한 것이련만 한 컷으로는 전체가 잡히지 않는 천지 둘레는 14.399km,  평균 수심은  213m이고, 최고 수심은 384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산정(山頂) 호수가 바로 우리 천지다. 저수량은 19억5천500만㎥로, 만약 어느 누가 1초에 1톤씩 퍼낸다면 60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양이다.그런데 이 물은 어디서 온 물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비와 눈이 녹은 물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북쪽 화구벽(火口壁)을 뚫고 저 달문을 통하여 사시사철 장백폭포(長白瀑, 飛龍瀑, 달문)를 이루어 떨어지는 물의 양을 생각하면 비와 눈이 녹은 물만이라고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천지의 물 60% 이상이 지하에서 솟아나는 용출수라고 하는데 16봉과 천지 수면의 고도 차가 4~5백m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깊은 산 정상에 호수를 이루다니 신비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한라산 백록담의 물은 마르는가. 1931~1932년에 천지를 답사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지리학자는 천지의 깊이를 442m 이상으로 보고 천지를 세계 10대 호수 중 하나로 꼽았다. 유명한 곳은 이름 하나로 말할 수 없어서인가.   천지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대동여지도에서 ‘대지(大池)’라 하는 것을 위시해서 천상의 호수, 대택(大澤), 용왕담(龍王潭), 용궁지(龍宮池), 신수분(神水盆), 천상수(天上水), 달문지(達門池) 등이다.

*. 백두산과 천지 전설
천지 빼놓고 백두산을 말할 수 없듯이, 천지를 말하려면 천지를 병풍처럼 빙 둘러 있는 16봉우리를 말해야 한다.  이 천지와 16봉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옛날 옛적 백두산을 백두산이라 하기 전이었습니다. 이 산 한 마을에 흉년이 들었답니다. 심술궂은 흑용((黑龍) 한 마리가 있어 불칼(벼락)을 휘두르며 물곬을 막아 놓은 탓이지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백(白) 장수와 합심하여 물줄기를 찾아놓았더니, 그 위에다가  백두산 돌을 굴려 돌산을 만들어 버렸답니다. 물론 흑룡의 심술이었지요. 하릴없어 마을 사람이 다 떠난 자리에 앉아 백장사가 탄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리따운 공주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간밤에 꿈 속에서 무지개를 보았어요. 그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신선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백장수와 마을 사람들의 지성에 감천하여 왔노라. 백 장수에게 옥장천의 샘물을 석 달 열흘 마시게 하여 힘을 길러 흑룡과 싸워 이기게 하라. 이건 네 나라의 일이니 네가 직접 알려야 하느니라.”’ 지금의 백운봉 정상에 있는 옥장천을 찾아가서 석 달 열흘 동안 샘물을 마셔 기를 키운 백 장수는 가장 높은 산마루에 올라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 삽이 얼마나 컸던지, 그 기운이 얼마나 세었던지 한 삽을 파내서 던지면 봉우리 하나씩이 생기더랍니다. 백 장수는 이렇게 동서남북을 향하여 16삽을 파 던졌더니 버린 자리에 16봉이 생겨나고 움푹 팬 밑바닥에서 지하수가 강물처럼 솟아나더랍니다. 이때 검은 구름을 타고 달려와서 훼방하는 흑룡을, 흰 구름을 탄 백 장수가 공주와 합심하여 물리치고 나서보니 방금 파놓은 흙구덩이에 물이 지금처럼 가득 차서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백장사와 공주는 흑룡이 다시 또 와서 심술을 부리지 못하게 천지 속에 수정궁을 지어놓고 둘이 함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 전설을 가만히 살펴보니 백장사의 흰 ‘白(백)’과 산머리를 팠다 해서 머리 '頭('두)로 白頭山(백두산)이라 했다고 하는 옛날 사람들의 민간어원설이 그럴 듯하게 여겨지고 천지를 용왕담(龍王潭)이라고 한다는 것에도 이해하게 된다.

*. 전설 따라 어원 따라 가본 16봉들
출처:중앙일보
 천지를 둘러싼 2,500m 이상의 높이라는 16봉은 북한 쪽에 7봉, 중국 쪽에 9봉이 있다. 그 봉들의 이름은 중국과 북한이 다르고, 이름도 일정하지 않았다.  높이 역시 북한과 중국이 말하는 높이가 서로 달랐다.
우리가 서파 5호경계비로부터 북파 쪽으로 가면서 볼 수 있다는 산을 차례로 들어보면 2,664m의 청석봉(일명 옥주봉), 2,691m의 백운봉, 2,603m의 녹명봉(일명 지반봉), 2,510m의 관일봉, 2,595m의 용문봉(일명 차일봉), 2,595m의 철벽봉, 2670m의 천문봉(일명 백암봉), 2,618m의 자하봉, 2,625m의 쌍무지개봉으로 9개가 있다.
북한 쪽으로는 2,711m의 향도봉(일명 삼기봉, 망천후),  2,749.2m의 장군봉(일명 병사봉, 중국 백두봉), 2,549m의 제비봉, 2,533m의 관면봉, 2,566m의 와호봉, 2,543m의 제운봉, 2,691m의 마천우 7봉이 있다.
더 자세히 말해 보면 18봉 중6개는 북한에, 7개는 중국에 3개는 국경에 걸쳐 있다.
이 16봉은 천지 쪽으로는 거의 90도 경사로 도저히 내려 갈 수 없는 경사로 이를 내륜(內輪: 안둘레)이라고 한다. ,그 반대 쪽에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초원보다 더 아름다운 들꽃이 막 피기 시작한 '천국의 화원' 같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곳을 외륜(外輪:바깥 둘레)이라고 한다.

서파(西婆)  트레킹에서 온 분들은 5호경계비에서 둘로 나뉜다.    13km의 9시간 종주에 자신 있는 사람은 청석봉으로 하여 장백폭포가 있는 북파 쪽으로 트레킹을 시작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5호경계비에서 천지를 감상 - 서파 꽃밭 트레킹 - 금강대협곡 관람 - 버스로 송강역 - 기차로 - 이도백하까지 - 버스로 - 북파 장백폭포(총 약 5시간) - 달문 - 승하사 -천지 물가 트레킹 - 종주산행팀과 합류>


출처:Korean Peninsula 박종진 사진
백두산의 그랜드캐년이라는 금강대협곡을 보고 싶었지만 종주 도중에 있는 곳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가야 볼 수 있는 곳이니 어찌 두 마리 토끼를 어찌 좇으랴. 지도에서 보면 북한 쪽에 있던데 어떻게 가는가 궁금하기가 그지없다. 금강대협곡은 있는지 조차 모르다가  1998년 산불이 나서 불을 끄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였다는  협곡이다. 우리들의 서파에서 북파까지의 백두산 외륜 종주는 13km로 9시간 정도 걸리는 모양이다. 천지를 굽어보며 그 넓은 초원을 가고 있을 때 수없는 조그만 하얀 꽃들이 일제히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습이란, 나는 그 광경을 평생 마음속에 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북한과 중국에 걸쳐 있는 마천우(2564m)로 가는 길은 평탄한 오름길로 초원 속을 거니는 환상적인 오름길이었다. '걸어서 천지까지'가 아니라 '걸어서 천지를 끼고 도는 트레킹'을 하면서 들풀을 밟고 가는 이 길은 거대한 골푸장 잔디 위를 거니는 것과도 같고, 푹신한 양탄자 위를 거니는 듯하지만, 들풀에게는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더위를 유난히 타서 고국에서 여기까지 반소매로 올라왔으나 서파능선에 오니 추워서 잘못하다가는 저체온 증에 걸릴 것 같아서 비옷 겸해서 준비해간 고어텍스를 급히 꺼내서 입었다. 

  꽃이 피어있고 그 뒤에는 눈이 쌓여 있고 천지 너머에는 두고 온 산하가 보이고 그런 낭만적인 길로 가는 트레킹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백두산을 남산북야(南山北野)라 하는 말 그대로 남쪽의 북한 땅은 백두대간으로 수많은 산들이 남을 향하여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이루는데, 이 장백산은 북으로 한반도의 7배가 넘는 드넓은 만주 평야로  열려있다. 그 시작이 180여종의 1천만 송이의 야생화가 피기 시작한 고산 초원길로 말 그대로 울긋불긋 거대한 꽃대궐이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중국 땅이지만, 서파 종주 길에 바라보는 것은 그렇게 보고 싶던 짙푸른 천지요, 그 건너에 있는 그리운 우리의 조국의 산하였다. 그 중 구름 속에 쌓인 제일 높은 산봉우리 중 젖꼭지처럼 뾰족한 봉이 백두산의 주봉인  2,749.2m 장군봉(將軍峯)이다.
장군봉은 일명 병사봉(兵使峯)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백두봉(白頭峰)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김일성 장군의 '장군'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1927년에 육당 최남선 선생이 쓴 '백두산근참기'에도 '장군봉'이라고 나온다니 말이다. 장군봉을 오르려면 도로를 통할 수도 있으나 끌차(잉크라인 철도)가 있다 한다. 망원경으로 바라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 정상에 높은 안테나와 철조망과 기둥 같은 것을 흉하게 만들어 놓았다 한다. 북한은 백두산을 '명승지 제1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으면서 이 산을 '조선 혁명의 성산'이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쓴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라는 총길이 216m의 초대형 ‘향도봉 친필비’가 거기 호수 바깥쪽에  모자이크로 쓰여 음각되어 있다 한다. 산이 정치의 광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위해 삼지연군 백두산역에서 향도봉(일명 망천후)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마천우를 지나 청석봉 가는 길도 아슬아슬한 절벽을 끼고 천지를 굽어보며 가는 길이다.
청석봉(淸石峰)이라고 이름한 것은 청색 바위가 몇 층으로 겹쳐 쌓여 있어서라는데 그걸 청옥으로 보았는가. 그래서 이 산을 일명 옥주봉(玉柱峰)이라도 한다. 그 정상에 5봉이 뭉쳐 선 모습이 있어서 이 봉이 하늘이 무너지면 버티고 있을 법 하다해서 '백두의 옥기둥'이란 애칭을 갖고 있다.


*. 장백산의 최고봉 백운봉(白雲峰) 가는 길 
청석봉에서 백운봉 가는 길은 눈 속에 핀  이 지상의 화원을 50여분이나 내려가야 했다. 하산 길이 아닌 오름 길에서 내려가는 길이 어찌나 아깝던지-. 한허계곡은 백두산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늦은 아침이나 점심을 먹는 곳으로 우리는 천지의 물이 땅에 스몄다가 용출되어 흐르는 계곡에서 그 물을 받아 수통을 채워 놓고 도시락을 먹었다. 이 한허계곡 이 물이 흘러내려 송강하를 이룬다. 이 물은 더 할 나위 없이 시원한 물에 1분 이상 손발을 담글 수 없이 차가왔다. 이 물을 마시러 백두산의 동물들이 모여들 것 같다. 우리도 이 물을 먹어도 되는가. 배탈이 나도 천지의 물을 먹고 탈이 나는 것은 영광이 아닌가. 지금까지 내가 먹던 어느 물보다 물맛이 좋았다.
"울음토끼다!" 금년 7순을 기념하러 온 박(朴)형의 외침이 들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바위 사이에 숨어 버린 쥐보다는 약간 크고 토끼보다는 약간 작은 백두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우는 토끼였다. 장백산에서는 제일 높다는 백운봉(白雲峰)까지는 1시간 이상 계속되는 오름길로서 이  산행 중 가장 어려운 코스였다. 정상이 둥근 모양의 뾰족한 산으로, 날이 맑아서 뭇 봉우리가 웅자를 들어내도 이 봉만큼은 흰 구름이 감돈다는  2,691m나 되는  한라산 정상 1,951m보다 740m나 더 높은 산이다.
어제 밤에 1시간 반 정도밖에 자지 않은 피곤한 몸으로 용을 써가며 죽을힘을 다해 오르지만 능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산은
가파르지, 너덜 지대는 많지, 거센 바람은 운무를 몰아오지- 그래서 백운봉 코스를 백두산의 '깔딱고개'란 별명이 붙는다.  이런 경우 우리들은 '깔딱'이란 말을 잘못 쓰는 것 같다. 약한 숨이 끊어질 듯 말 듯한 소리가 '깔딱깔딱'이니 말이다.
그 힘든 오름길에서 사람들이 숨을 '깔딱깔딱' 쉬는 사람을 보았는가. 심장이 터질 듯한 숨소리는 '헉헉-' 하거나 '헐떡헐떡-'해야 맞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깔딱 고개' 대신에 '헐떡 고개'가 더 맞는 표현이라 생각된다.
죽기 전에 백두산 종주를 하시겠다고 벼르며 8순 기념으로 온 할아버지가 있어 늦게 가는 동지가 생겼구나 스스로 위안했는데 5호경계비까지 올라와서 2,000 m 이상의 고산(高山)이라서 숨이 너무 가쁘다고 그냥 내려가셨고, 지팡이를 짚고 따라 다니던 희수(稀壽)의 그 부인은 6만원을 주고 가마를 타고 5호선까지만 오르내린 모양이다.  술과 나이에 당할 자가 있는가. 그러니까 이 종주 코스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은 바로 '나'가 된 것이다.

일만 원만 술  먹자고 일만(一萬) 선생 되었는데
산에 오면 '萬'(만) 자가 늦을 '晩'(만)으로 바뀝니다.
오늘도
가장 후미서
눈총 되어 오르네요.
           -눈총

  기를 쓰고 능선까지 올랐다고 생각하는 곳은 능선이 아니고 다시 더 높은 능선이 계속되었다.
갑자기 운무가 몰려오더니 멀리 앞서가는 일행을 가려버린다.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는 일기라더니 비가 오려나 보다. 이렇게 안개가 끼는 날이 1년에 264일이란다.
백두산 서파 종주 코스에는 이정표는 물론 리본도, 바위에 쓴 화살표 표시 하나 없었다. 세계가 보호하는 환경지구이니 이를 철저히 금하고 있는 모양이다. 표시가 없으니 청석봉 밑을 지나면서도 길 따라 가다니 보니 어딘지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백두산에서는 시속 40m의 강풍이 바위를 날린다더니 거센 바람이 몰려와서 옷깃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쓰러지기도 하였지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뒤를 밀어줄 때는 발만 움직이며 편히 올라오기도 하였다.
일행 중 선두 4명이 가파르고 위험한 너덜 지대를 통하여 백두산 천지를 가장 멋있게 볼 수 있다는 백운봉의 정상을 올랐으나 운무에 가려 어느 길로 하산할지조차 몰라 한 동안 방황하다가 등산객들의 소리를 어림짐작해서 하산하였다 한다.
맨 후미에 가는 나는 올라갈 엄두도 못 내고 하산하는 지름길로 간다. 이젠 고행 같은 오름길이 끝난 것이다. 그래도 그냥 가기가 아까워서 카메라 렌즈를 정상을 향하였으나 백운봉(白雲峰)은 조금 전에 보던 그 멋진 정상의 모습을 이름값을 하려는가, 흰(白) 연무(雲)가 닫아버리고 열어주지 않는다.
길은 너덜겅 아니면 눈길이었다.
하산 길은 아까 같이 힘들지는 않았으나 위험 구간이 많았다. 이럴 때를 위해서 준비한 스틱을 꺼낸다.
어느 누가 말하더라, 지리산 종주는 백두산 종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위험하기로는 설악산 용아장성 버금가는 위험하고 힘든 코스가 서파 종주코스일 것이라고-. 그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게다가 이 산에는 화산 폭발로 인한 너덜겅 지대가 유난히 많고 길어서 길이 끊기곤 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는 운무를 몰아와서 지척을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앞에 가는 사람들만이 이정표가 되는 그런 산행이었다.
비가 후드득 후드득 오기 시작하여 급히 판초를 꺼내 입었다. 어디서인가 천둥 벼락소리가 난다. 우리는 맑은 하늘 아래서 천지를 끼고 청석봉을 올랐고, 운무 속에서 헤매다가 비를 만났고, 거기에다가 천둥벼락 속에서 두려워하며 하산하고 있으니, 백두산의 온갖 날씨를 몽땅 오늘 하루에 경험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일행 중에 백두산을 세 번 온 사람이 있었는데, 한 번은 45명이 길을 잃고 조난당하여 산속에서 한둔하고 다음날 운무가 어느 정도 걷힌 다음에야 길을 찾았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길을 잘못 들어 계곡으로 빠지면 일주일은 걸어야 인가를 만날 수 있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백두산은 전라북도만큼 크다 하지 않다던가.
이런 나를 백두산트레킹 전문가이드 정선윤님과, 이 경훈 사장이 번갈아 가면서 눈물겹게 도와주고 있었다. 후미에서도 아주 동떨어진 나를 기다렸다 다시 가 주고 하는 식으로  밝은 얼굴로 나의 산행에 맞추어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이 두 분은 산행은 물론 나의 생명을 지켜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백두산 트레킹을 예약하면서 몇 번이나 나의 늦은 산행이 함께 한 일행에게 걱정이 되면 어쩌느냐고  전화를 하였을 때 대답하던 여직원의 예쁜 목소리가 새삼 떠오른다.
"염려 마세요. 우리 백두산 트레킹은 천천히 제일 나중에 가는 분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니까요. 그리구요, 돌아와서 힘들다는 분이 한 사람도 없으셨어요.(?)"

*. 운무 속의 백두산 기봉들
어제 백두산 천지를 찍으려고 잠 못 자며 충전한 배터리 3개가 추위 탓인가, 아니면 너무 욕심내어 높은 화소를 써서인가 주머니에 넣어 보온을 했지만 하산길에는 다 쓰고 말아서 만약을 위해 가지고 간 캠코더의 디카 기능으로 찍었더니 운무 속에서인가 카메라 탓인가 화질이 아주 떨어지지만 운무 속의 기암 기석을 놓치지 않고 잡을 수는 있었다.
이 거대한 자연이 수줍어 운무 속에 가린 모습이나마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으니 보시라. 

백운봉에서 1.260km 더 간 곳에 2,603m 녹명봉(鹿鳴峰)이 있다.
매년 7·8월이 되면 사슴의 무리가 여기에 올라 뛰놀며  우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하여 사슴 '鹿('녹), 울 '鳴('명) '녹명봉(鹿鳴峰)'이라 하였다. 녹명봉을 다른 이름으로 지반봉(芝盤峰)이라고도 하는 것은 천지 수면에서 409.1m 되는 산꼭대기인데도 이 일대에는 겨울에도 지하에서 더운 기운이 솟아올라서 지초(芝草:영지)가 많이 자랐다 해서 지반봉(芝盤峰)이라 한다는 것이다.

녹명봉을 지나가다 보면 2,596m의 용문봉(龍門峰 일명 차일봉)이 있다. 두 개의 봉우리가 용문처럼 솟았다 해서 용문봉(龍門峰)라 하는 곳이다. 여기서는 멀리 천지의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달문(達門)이 보이고 1km 가량 흘러내리는 가파른 승하사가 보이는데 내리막길은 너무나 위험한 너덜겅지대였다.

 용문봉 하산 길은 두 갈래다.
직진하면 고원지개를 거쳐 옥벽폭포를 지나서 소천지로 가는 길이요, 다른 길은 너덜지대를 거쳐 달문으로 해서 천지 물을 만져 보러 가는 길이다.
너덜지대로 비가 오는 중이라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는데 승하사 쪽으로 가로로 쭉 뻗어있는 길이 있다. 자세히 보니 길이 아니라 담이었다. 이 너덜은 박혀 있는 돌이 아닌데다가 급경사여서 위 사람이 발을 조금만 잘못 디뎌도 커다란 바위가 그냥 굴러내려 아랫사람을 덮치는 바람에 아래에 장백폭포와 천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막아놓은 담이다.
"앞에 군복을 입은 청년이 돌을 잘못 디뎠는지, 돌이 계속 구르다가 저 아래 담벼락을 치고 넘어 승하사 개울로 떨어지는 것을 보니 오금이 저립디다."
먼저 내려온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여기서 일년 중 한두 사람이 죽어가는 모양이다. 

저 멀리 천지물이 운무 속에 희미하게 보이기 사작한다. 백두산 16봉우리가 용문봉(2595n)과 천할봉(2629m)의 계곡 사이에 오직 한군데 물이 흐르는 곳인 달문(達門)을 거쳐 흐르는 강물이 승사하요, 그 물이 흘러 장백폭포를 이룬다.
빤히 보이는 곳이지만 급경사에다가 땅에 박혀 있지 않은 너덜겅 지대여서 내려오는데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 한 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궂은비는 줄기차게 오고 달문까지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가 몇 m 앞이 보이지 않아서 수평선에서 볼 수 있다는 백사장의 천지를 뒤로 하고 장백폭포까지 그냥 하산하기로 하였다.
너덜겅지대를 내려오면서 너무 놀래서인가. 내려가는 길이 승사하 옆에 도치카식으로 만들어 놓은 900개정도의 콩크리트로 만든 계단이지만, 내려가서 마실 하산주의 즐거운 생각은 지루하지 않게 68m가 뿜어내는 장백폭포의 소리로 향하였다.
고구려인들이 듣던, 그 후손들이 듣고 사는 10리 밖까지 울린다는 그 우렁찬 소리를-.
이 장백폭포(長白瀑布)의 물은 이도백하(二道白河, 얼다오바이강)를 거쳐 송화강(松花江, 쑹화강)으로 흐른다.

*. 천문봉(天文峰) 코스

출처:MENU-SPRING
폭포를 보고 매표소를 내려오다 보니 뽀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이 있다.
천지에는 백암온천과 새로 개발된 백두온천이 있다더니 장백온천지대였다. 길가 상점에서는 한국돈 1,000원에 3개씩 팔고 있는 82도 온천수로 익힌 찐 달걀을 팔고 있다.
늦도록 호텔로비에서 하산주를 흥겹게 마시다가 다음날 아침 서둘러 일어나 보니 우리 일행은 천문봉을 다녀온 모양이다.
우리 같이 서파로 종주하지 않고 집차로 달문을 통해 천지를 구경하고 천지물에 손을 담궈본 사람들이 다음날 새벽 일출도 볼겸 천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이 2,670m 천문봉 코스다.
전에는 백암봉이라 하던 것을 기상관측소가 설치된 뒤로 천문봉이라 하게 되었다.

나는 분명히 중국의 장백산을 가서도 백두산이란 말을 고집하였다. 국력이 약해서 빼앗긴 우리의 옛 땅이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반쪽이나마 우리의 백두산이 없더라면 에레베스트, 태산과 더불어 장백산이 중국의 10대 명산의 하나라 하더라고 구태여 이 산을 찾아 갔겠는가.

"한국산하" 사이트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 나는 많은 산행기를 써왔다. 언젠가 한데 묶어 나의 발자취를 책으로 내고 싶어서다.

그동안 내가 쓴 섬 여행기에 '대마도' 답사기가 필요했었듯이,  그 나의 산행기 책에는  '백두산'이 꼭 팰요했다.  그것이 내가 정상을 욕심하는 이유와 같다.
옛날에 나는 백혈병동 무균병실에서 죽음과 싸우다가 다행히 퇴원하였다. 걷기조차  힘들던 그 당시의  어느 겨울에 태백산을 다녀와서 나의 삶을 찾았다. 지리산을 단독 종주하고 난 후부터는 천천히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리산보다 600m 이상 높은 백두산을 종주하고 하산하면서  이런 말을 하며면서 우리는 껄껄 웃었다.
 "나 어느 산에 갔다 왔냐고, 어디를 종주했느냐고, 누구  물어 줄 사람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