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암사(霧岩寺)에서 여기서부터 무암사까지 2.8km 길을 무암계곡을 따라 아스팔트 찻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주차장이 나타나고 비로소 안내판이 무암계곡의 아름다움과 무암사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옛날의 산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풍스럽게 나무로 망루를 만들고 나무로만 엮어 만든 문으로 들어서니 고려 시대의 옛 마을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입구에서 소개하던 SBS부속촬영장으로 연속극 ‘왕건’의 촬영장소였던 모양입니다. 어느 산악회에서 시산제(始山祭)를 지내고 있는 느티나무 앞을 지나서 운치 있는 통나무 다리를 지나갑니다. 우리 일행은 무암사(霧岩寺)를 가지 않고 곧바로 우측 능선을 타는 모양이지만 저는 무암사 길을 갑니다. 일행을 따라갔다가는 절을 들를 수가 없거든요. 한국의 사찰이란 그 고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유형문화재요 대개의 경우 거기에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 등산도 그렇지만 답사 여행에서는 빼놓아서는 안 되는 곳이 그 고장의 사찰이지요. 무암사 가는 길 우측으로 계곡 넘어서 '안개바위 가는 길', ‘장군바위 가는 길’과 ‘남근석 가는 길’로 동산 주능선을 가는 길의 안내판을 지나 직행하니 커다란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뒤에 있는 산이 '작성산(鵲城山, 835m)'입니다. 입구에는 왜 무암사(霧巖寺)라 하였을까를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안내문이 있어 이를 이렇게 고쳐 보았습니다.
"무암사(霧巖寺)는 신라 문무왕 때에 큰 스님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창건 당시에는 무림사(霧林寺)라 하였다. 그 후에 무암사(霧巖寺)라 개칭하게 된 것은 무암사 마당에서 전방을 바라보면 약 1,000m 서남방 지점에 높이 5m 둘래 3m 정도의 바위 두 개가 있어 맑을 때에는 희미하던 바위가 안개만 끼면 뚜렷이 하나로 겹쳐 보여 안개바위ㆍ무암ㆍ촛대바위ㆍ 노장암(老長岩:팔짱낀 노승바위)ㆍ칼바위라 불렀다. 그래서 절 이름을 안개' 霧'(무), 바위 '巖'(암) 무암사(霧巖寺)라 하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절을 창건할 당시 임자 없는 황소 한 마리가 나타나서 터를 잡고, 재목을 운반하고 흙을 이기기도 하며 도왔다. 의상대사는 부처님의 자비로 보내 주신 소로 끔찍이 위했으나 7~8년 후 절 공사가 끝날 무렵 죽자 정성을 다해서 화장해 누었더니 신기하게도 사리가 나와서 무암사 동방 200지점에 탑을 조성하여 '소부도'(사리탑)과 수월당(水月堂, 사리탑)과 나란히 봉안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골짜기를 '소부도골'이라고도 한다."
이 절에 유명한 것은 통나무로 조각한 극락전의 주존인 불인 '목조여래좌상(木造如來座像, 충북 유형문화재제214호)'입니다. 너무 세월이 오래 되어 떨어져 나간 두 손을 따로 만들어 붙였고, 머리의 나발은 흙으로 만들어 붙였다지만 금빛으로 칠을 한 모습은 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뒤에 석가모니불, 왼쪽이 석가 입멸 후 미륵불의 출세까지 중생을 제도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 이고 오른쪽이 관세음 보살상입니다.
*.위험 천만의 남근석(男根石)길 절에서 다시 20m쯤 내려와서 오늘의 목적지인 남근석을 향하고 있습니다. 묵밭을 지나는데 그 밭 가운데의 바위 위에 이상하게도 어룰리지 않는 비석이 세워 있어 가보았더니 추모비였습니다. 전주 모악산우회에서 동산(東山)을 오르다가 조난한 여인을 추모하는 비가 남근석 암릉길의 험준함을 주의시키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수직의 암릉 오르는 길은 시에서 설치한 로프가 능선이 시작되는 남근석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손으로 하는 등산입니다. 눈이 쌓인 바윗길 인적이 없는 초행길을 혼자서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오른다는 것은 힘든 것 이상으로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적지 않은 산력(山歷)을 가진 ilman에게도 이렇게 오랜 시간의 밧줄을 타보기는 처음입니다. 자꾸 아까 본 조난으로 숨진 추모비가 생각납니다. 뒤돌아 멀리 무암사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젊음은 추억을 만들며 살고, 노인은 그 추억을 되돌아보며 산다는데 나는 노강자(老强者)인가 추억을 만들며 살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로구나'. 문득 옛날 KBS 라디오의 '언제나 청춘'에 출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창 아마추어햄에 열중했던 시절입니다. 드디어 남근석(男根石)입니다. 능선이 시작되는 절벽바위 끝 지점에 내 키 두 배 만한 크기로 우뚝 서서 하늘을 향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성을 내고 있는 틀림없는 남근석입니다. 월악산, 수락산, 삼성산에서 본 남근석은 비슷하였는데 이곳의 남근석은 어떻게 저렇게 똑같지요? 그 앞에 고환 두 쪽 역시 비슷한 크기로 비슷한 위치에 절묘하게 놓여있습니다. 어느 조각가가 일부러 만들었다 해도 저렇게 멋지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을까요. 새깔마저 닮았습니다. 그러나 천하지 않고 늠름하고 당당한 것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한자어인 '남근'(男根)은 예사말로 쓰면서 순국어인 '자지'는 천한 말로 쓰이고 있는 것은 사대사상, 모화사상(慕華思想)으로 말미암아 구분된 것입니다. 불알-고환, 똥구멍-항문, 나이-연세, 이름-성함 등이 다 그런 말들입니다. 말이 나온 길에 잠시 체면을 벗고 하는 일만의 망발을 잠깐 동안 이해하여 주시기를-. 남근석 주위에 '보기만 하세요' 하고 써 놓았지만 이는 완곡한 표현입니다. 오히려 만지면 더 커진다는 웃음기어린 생각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 능선에서 만난 한 사람은 몇 년 전 이 남근석을 만져보고 아들을 났다나요. 송추에 있는 여성봉에 갔다가 이런 시 한 수를 얻어온 일이 있습니다.
은밀한 속삭임 하고 많은 사연들 여의봉 재주로써 영원을 창조하는 것 그리움 하나 되어서 여보 당신 되던 것. -거시기
지난달에도 여성봉을 올랐더니 요즈음 일만의 눈은 호강을 하고 다닙니다. 다음은 우스운 이야기 한 토막. 옛날에 조물주가 동물을 만들 때였습니다. 불평 없이 공정하게 하기 위해서 몸과 생식기를 따로 따로 만들었답니다. 그리곤 그 동물들을 한 줄에 세워 놓고 '땅-' 하고 신호하면 뛰어가서 자기 것을 차지하게 하였습니다. 그때 제일 먼저 달려간 놈이 말(馬)이랍니다. 그래서 말의 거시기가 제일 크다나요. 이야기 하나 더 할까요? long long ago ! 조물주가 동물들에게 색스의 횟수를 정해줄 때였습니다. "닭은 매일, 소는 일년에 1번, 돼지는 일년에 2번, 호랑이는 3년에 한 번-" 호랑이는 화가 났습니다. '어흥-'하고 잡아먹을 듯이 조물주에게 달려가자, 조물주가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가는데 사람이 따라 갑니다. '사람은요, 사람은요?' 정신없이 도망하던 조물주가 엉겁결에 말했답니다. '사람은, 사람은 마음대로 해라.' "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때나 항상 마음대로 색스를 즐기게 되었다나요. ㅎ ㅎ ㅎ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바위의 나라 동산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듯이, 산에서는 바위들도 모여 사나 봅니다. 소나무는 바위들의 친구인지 바위들과 어울려 한바탕 그 멋과 운치를 더하여 주고 있습니다. 동산(東山)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이젠 하산길입니다. 정상을 간다해도 1시간 이상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거나, 세목재로 돌아도 아까 다녀온 무암사길을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할 때에는 저도 이솝 우화의 포도 따먹지 못하는 여우가 됩니다. '가 봐야 잡목들이 시야를 막는 전망이 없는 곳이 동산(東山) 정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저 아래 남쪽으로 펼쳐지는 암릉에 우뚝 솟은 칼바위, 장군바위, 낙타바위, 의자바위를 보기 위해서는 여기서부터 하산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초행길에서 길을 모를 때 리본은 나침반보다도 더욱 소중한 자료입니다. 리본이 없을 때의 발자국은 이정표와도 같은 역할인데 엉뚱한 리본을 따라 온 모양입니다. 한참이나 내려왔는데 그 멋진 장군바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 간신히 길을 찾아 조금 내려가니 반갑게 인사하는 우리 일행이 있습니다. 우리 산악회의 리더가 모르고 그랬는지 일부러인지 장군바위 코스가 아닌 평탄한 능선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남근바위 능선에서 조금 내려온 670봉 갈림길에서 북서쪽 길로 들어가야 장군바위 코스인데 말입니다. 동산(東山) 산행의 멋은 하산길에 보이는 청풍호 전경을 바라보며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주댐 때문에 충주호(忠州湖)라고 하던 이름을 지금은 충청도의 표상인 청풍명월(淸風明月)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름이 청풍호(淸風湖)로 바뀌었더군요. 1985년에 준공된 충주댐은 호수의 총길이는 97.2㎞(제천 42㎞, 충주 28.7㎞, 단양 20.5㎞)에 이릅니다. 동산(東山)이 내륙의 바다 청풍호(淸風湖)를 바라보고 있어 옛 조상들이 추구하던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더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