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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알프스 구병산 산행기/ 포토 에세이

ilman 2007. 2. 11. 10:55
충북알프스 구병산 산행기/ 포토 에세이
일만성철용  (Homepage) 2005-01-18 21:26:28, 조회 : 724, 추천 : 3

충북알프스 구병산 산행기/ 포토 에세이
(2005.1.6(일)/사기마을-정림사지-동붕-정상-856m-753백지마재- 시작점/산하사랑과)

*.보고 싶은 사람들
일만은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그러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며 노년을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은 지구촌이란 말처럼 우리 밖의 아름다움도 찾아다닐 수 있는 세상이어서 국내는 물론 여유가 생길 때마다 적지 않은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산하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중에서도 한국의 산은 너무나 아름답구나.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하는 다른 나라의 아름다움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 중의 그 하나였었습니다.
다녀온 곳을 부지런히 글로 쓰기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더욱 깊이 갖게 되었고 이런 하나하나가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거기에는 어떤 멋진 전설이 숨어있는가를 찾아 정리하는 것을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비용이 적게 드는 산악회를 따라 다닐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국내의 원하는 어느 곳이나 찾아갈 수가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젊어서부터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전문산악회를 멀리 하며 살았는데 오늘은 '산하사랑'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분들은 누구보다도 산을 잘타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다음의 정지용 시인의 시처럼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맘
호수 만하니
눈감을 밖에
-정지용

 등산이라는 취미는 ‘한국산하’라는 사이트에서 우리를 만들어주었고, 온라인상에서 만난 분들을 이렇게 오프라인에서도 만난다는 즐거움을 위해서였지요.
'한국의 산하'를 너무나 사랑하여 폐인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분들이 정한 구병산이니 그 산은 작히 좋으랴 해서 서습없이 따라 나선 거구요.
그래서 오늘 하루를 충북알프스라는 구병산 속에 나를 풍덩- 던지게 된 것이지요.
충북알프스란 충북에서도 가장 수려한 속리산과 구병산을 잊는 43.9km인데 우리가 가는 곳은 그 1구간이 되는 서원리의 고시촌에서 적암마을까지 역으로 가는 11.4km입니다.

*. 구병산(九屛山) 정상 가는 길
 구병산은 속리산 남쪽의 보은군에 있는 속리산국립공원 구역으로 경북 도계에 있는 876.5m의 산입니다. 옛날 문헌에는 ‘구봉산(九峯山)’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 웅장하고 수려한 산이지만 속리산의 명성에 눌려 잊혀져 있어서 인적이 드문 최근에 알려진 산입니다.
 아홉 개(九)의 산봉우리가 동에서 서쪽으로 마치 병풍(屛)을 펼쳐놓은 것 같다 하여 지금은 구병산(九屛山)이라고 부르는 산이지요. 1058m의 천황봉, 876.5m 구병산, 금적산과 함께 보은 3산의 하나지요.
 우리는 지금 사기마을 주차장에서 산길 등산로를 향하고 있습니다.
옛날 임란 시절 의병대장 조헌의 문하생 이명백(李命百)이 이곳에서 의병을 일르켜 나라의 사기(士氣)를 진작시켰다 해서 '사기마을(士氣 --)'이라 하는데, 구봉산이 방풍벽이 되어준 산골 조용한 마을입니다.
  드디어 산길이 시작되는 등산로 입구입니다. 절터까지는 3km랍니다.
토골을 끼고 한동안은 약간의 경사의 오름길이더니 그 경사는 갈수록 높아집니다. 새벽 2시부터 준비하였지만 땀수건을 잊고 와서 장갑으로 땀을 닦다가 등산복을 벗습니다. 날씨는 머리의 땀이 얼어 고드름을 만들 정도입니다.
 절터입니다. 축대 밑에 옹달샘 약수 터가 멋지지만 이름과 달리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곳이라서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나 그 전설이 발길을 잡습니다.

옹달샘 물 한 목음 7일씩 더 연명하고
6개월 마신 스님 정력 넘쳐 하산하였다네
암자도
그러 했는가
빈터만이 남아있네

 이정표가 정수암 사지는 갈림길이라고 묻고 있습니다. 토골 오른쪽으로 853봉을 지나 정상 3.3km를 갈 것인가, 아니면 왼쪽 873m 동봉(신선봉)으로 해서 구병산 정상까지 2.3km 길을 갈 것인가.
 ilman은 좌측 길을 택해 갑니다. 고맙게도 청파님이 길동무를 해 줍니다. 이 코스는 우측길보다 1km 정도 더 빠른 길이고, 그것은 건강하고 젊은 산꾼들의 사이에서 이 사람이 짐이 되는 것을 면해주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위의 굴에서 흑씨(黑氏)가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방목을 하고 있는 염소인 모양입니다.

땀 펄펄, 숨 헉헉헉
고행하는 등산길
한 걸음 또 한 걸음에
심장 뚝딱 뛰노닐어
오늘도
가장 뒤에서
기록 갱신 중입니다.

 커가란 바위를 셋인가 지나니 동봉의 안부가 보이고 그 바로 아래서 막초를 권하는 고마운 우리가 있습니다. 등산 초입에서 먹는 막걸리라 해서 ‘막초’(?)라 하는 것 같습니다.
불로주가 있다면 그 맛이 이렇겠지- 하는데 안부부터는 추우니 벗은 옷을 다시 입기를 권하는 우리들의 말이 너무 따뜻합니다.

*.구병산의 설화(雪花)
 구병산은 반갑다고,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그 동안 고생하였다는 듯이 준비해 두었던 비경의 설화(雪花)의 세계를 정상을 향한 주능선 길에서 하나씩 열어줍니다.
일행들은 ‘상고대가 너무너무 멋있다’고 희희낙락입니다.
상고대란 서리가 나무 가지나 풀에 내려 눈 같이 된 것이요, 설화(雪花)란 나뭇가지에 붙은 눈발을 말합니다. 서리 ‘霜’(상) 의상고대와, 눈 ‘雪’(설)의 설화와는 아주 다른 것을 혼동하는 말입니다.
 동봉(東峯)이라고 하고 신선봉(神仙峯)이라고도 불리는 봉이 눈보라에 희미한 자태를 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등산을 우리가 사는 집을 구하는 것에 비유해 봅니다.
처음에 뻘뻘 땀 흘리며 고행하듯이 가파른 오름길을 오를 때를 사글세를 사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정상 능선 길에 오르게 되는 것을 심한 고생이 끝나는 사글세에서 전세로 옮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능선길을 통하여 드디어 정상에 오르게 되는 것은 그렇게 소망하던 자기 집을 갖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고생하던 세월이 있었기에 누리고 갖게 되는 기쁨이 감격이 되는 것이 거든요. 이후에는 고생과 가난도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더 높은 곳으로 향하거나, 더 좋은 집에 도전해 볼 것인가 하는 그 갈림길은 그 능선 길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더군요. 하산하는 것은 거기서 머무는 것이요, 다시 또 도전하려면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여야 하는 것이지요.
 오른쪽으로 1.3m 가면 세 가지로 물길이 있는 삼가저수지로 향한 하산길이지만 직진하면 구병산 정상 가는 길입니다.
정상으로 향한 길에는 다시 동봉보다 더욱 찬란한 설화가 계속되더니 다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정상을 1km 앞두고 2.5km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위성지국 갈림길을 우리들은 그냥 지나갑니다.

 거기서부터 오름길 밧줄 구간을 지나니 아까보다도 더욱 멋진 설화가 시작됩니다.
눈을 함박눈, 가루눈, 싸락눈, 날린눈, 진눈깨비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지만, 건설(乾雪)과 습설(濕雪)로도 나누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눈은 사진작가들이 겨울 산에 와서 몇 달씩 내려주기를 기다리는 나뭇가지에 착 달라붙는 습설(濕雪)입니다.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습설(濕雪)의 설화(雪花)를 만나 우리 디카맨들이 호강을 만끽하는 축복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지요.
  드디어 구병산 정상입니다. 청파님이 디카의 세계를 즐기고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분은 표지석의 뒤까지도 찍을 정도로 자상한 사람입니다.
지금같이 겨울이 아니라면 우리는 여기서 정상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정상을 정복한 기쁨을 나눌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지금 같은 경우에는 대개 5분이나 10분 내에 하산을 서두르게 됩니다.
우리들은 분명 구병산에서 하루를 보내면서도, 정상만이 구병산인 줄로 착각을 합니다.
그렇게 힘들여 올라온 정상에 와서 이렇게 곧 하산을 서두르는 것을 보면, 우리들의 지향하는 것은 목적지가 그 과정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목표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목표 앞에 계속되는 것이지요.

*. 정상의 만찬회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서 즐거운 점심 식사를 합니다.
성호, 연꽃님 내외가 베푼 산상의 만찬회입니다. 새벽잠 설치고 준비해 오신 콩나물 주먹밥 10여개와 국에서 연꽃님의 정성처럼 김이 모락모락 오릅니다. 거기에 족발에다 생굴까지 더하였습니다. 일주일 전 춘천의 삼악산에 이어 두 번째 일만은 좋은 분 만나서 호강을 합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언제나 준비를 하고, 그런 분들 때문에 얻어먹는 사람은 언제나 이렇게 얻어먹게 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말로만 감사할 수밖에 없지만 즐거운 빚을 진 기분입니다.
우리들은 편하게 서원리의 삼가저수지 쪽으로 내려 갈 수도 있지만 더 험한 753m의 백지마재 등의 9개의 봉을 하나하나 더 정복하여 나갈 것입니다. 똑 같은 고생이라도 사서하는 고생은 즐거움이 되니까요.
고맙게도 충북 알프스 길을 보은군에서 마련한 안내하는 생명 줄 같은 흰 비닐 줄이 계속 우리를 계속 인도하고 있었지만 그 줄은 몇 달을 버티지 못할 물건을 포장하는 나약한 줄인 미봉책 같은 것이어서 우리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구봉산의 9개의 봉우리이름은 지도에도 현지의 봉에도 아무런 표지가 없더군요.
음성군의 재정이 아무리 부족하다 해도 먼 길을 찾아온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구병산 알프스 길의 멋을 위해서, 보은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봉마다 높이라도 표시하여 주는 최소한의 투자를 하여 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겨울의 낮은 짧은데다가 산속의 하루는 더 빨리 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최종 목적지인 '충북알프스 시작점'에서 최종환 회장님 이하 우리 산하사랑 운영진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의 잔치를 향하는 즐거움의 하산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오늘 일만은 하루를 투자하여 사진 하나 얻어갑니다. 노송과 기암에 백설이 어울린 사이 멀리 한국의 산하를 바라 보는 나의 하루를 기록한 소중한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