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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산행기

ilman 2007. 2. 11. 10:53

 

수락산 산행기/ 포토 에세이
일만성철용  (Homepage) 2004-12-20 12:50:30, 조회 : 1,037, 추천 : 12

수락산(水落山) 산행기
(2004. 12.17/6호선수락역-덕셩여대생활관-깔닥고개-수락산정상-고개3거리-용굴암-석가사-지하철4호선 당고개역/내 어머니의 유랑의 아들과) 

*.김천택 시조 읊조리며
  크리스마스가 가까와 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우리 외손녀들을 만날 겸해서 오늘은 수락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산하는 길에 들러 선물 살 돈을 조금이나마 직접 건네주려고요.

江山 좋은 景을 힘센 이 다툴 양이면
내 힘과 내 分數로 어이하여 얻겠는가.
진실로 禁할이 없을세. 나도 두고 노니노라

그렇습니다. 수락산(水落山)과 같이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자기들끼리만 보겠다고 대통령, 국회위원 같은 힘센 이들이 국회에서 저렇게 싸우듯이 서로 다툰다면 우리 같은 힘없는 서민들은 오늘의 이런 산행은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산은 우리들의 세상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당리당략, 권력에만 야심이 만만한 사람들이니까요.
ilman은 전철 6호선 수락산역에서 내려서 조선조 영조 때 가객 김천택(金天澤)의 시조를 여유작작 읊조리며 수락산을 향하고 있습니다.

*염불사의 심우도(尋牛圖) 

 수락산은 도시자연공원이라서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여기는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이라서 그냥 지나치게 되는 염불사(念佛寺) 입구입니다.
아스팔트 찻길이 끝나는 지점이기도 하구요. 그 사찰 주차장 위에 대웅전, 산신각과 요사체뿐인 작달막한 절이지만 이 곳 마애약사여래불(磨崖藥師如來佛)과 심우도(尋牛圖)는 한번 둘러볼만 합니다. 
대웅전 법당 벽화 '심우도(尋牛圖)'는 인간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불화(佛畵)입니다.
동자승이 도를 찾기 위해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도(소)를 깨우치고 최고의 이상향에 이르게 됨을 하나의 '원(圓)'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Iilman은 그 본성보다, 아름다움을 찾아 수락산에 왔습니다. 인간 본성을 찾는 것이 아름다움을 찾는 길이고, 수락의 영봉들 하나하나가 동자승이 찾아 헤매던 소가 도(道)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락산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절에 '흥국사(興國寺)'가 있습니다. 고학하던 외로웠던 ilman의 대학시절, 두 어린 학생과 2 주일을 유하던 '덕절'이라 불리던 곳이지요. 그때 함께 했던 제자 '김성철'은 불행하게도 미국 땅에서 교통사고로 벌써 하늘나라로 간 지가 오래 되었다 합니다. 살아 있다면 50대 초반이었을 텐데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일이 '차 조심'입니다. '인명재차(人命在車)'란 그래서 생긴 말이라 생각합니다.
수락산에서 그 외 유명한 절로는 산의 남쪽 기슭에 '학림'사와 '동굴암', 주봉 동쪽 아래에 '내원암', 서쪽 기슭에 '석림사' 등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동굴암이 보고 싶습니다. 대원군 섭정을 피해 민비가 20일 동안 피신했다는 동굴이 보고 싶으니까요.
젊어서 성북구 장위동에 살 무렵에는 학림사로 물 뜨러 자주 다녔습니다. 그때 바위 위에 새겨있던 불경 구절이 지금도 내 마음 속에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마음아, 마음아,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에는
온갖 것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 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구나."


*왜 수락산이라 이름하였을까요 
  염불암 입구에 있는 '수락산자연공원안내도'에는 수락산 지명 유래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위산이기 때문에 물이 스며들지 않고 곧바로 흘러 내려 수락산이 되었다는 설과, 호랑이에게 물려간 아들 수락(水落)을 찾던 부정(父情)이 산 이름으로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그 외에 수락산에 있는 금류동, 은류동, 옥류동 등의 폭포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서 수락산이라고도 하였답니다.
산봉우리 형상을 자세히 보면 물방울 모습이라서라는 말도 그렇지만, 중국의 당송팔대가 소식의 적벽부의 한 구절인 '水落石出'(수락석출)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전설도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이 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과 모래로 이루어져서 정상에서 돌이 굴러 떨어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산을 수락산(首落山)이라 하였는데 '首'(수)란 나라님을 뜻하는 말이라서 무엄하다 하여 물 '水'(수)자로 바꾸어 수락산(水落山)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산 지명의 유래담이 이렇게 많은 것은 수락산은 한 마디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명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마지막 매점 
   벽운동계곡 따라서 수락교, 장락교, 벽운교를 지나니 마지막 매점입니다. 등산로에 매점이 있다는 것은 우리 같은 술꾼에게는 행복이 됩니다. 1,000원과 바꾼 입에 쪽쪽 붙는 시원한 동동막걸리에 김치 안주는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니까요.

  *등산은 왜 하는 거지

처음에는 따라나선 하나의 산이더니
이제는 찾아오는 내 아내 유랑의 남편
하나의
계곡과 산은
후회없는 하루랍니다.

건강 3욕(健康三浴)으로 해수욕, 일광욕, 공기욕이 있습니다.
그 중 삼림욕은 공기욕의 하나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해충의 접근을 막기 위해 내뿜는 방향성 물질인 피톤치드(Phytoncde)는 인체(人體) 건강에는 더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켜 주며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주는 데 좋답니다. 수락산은 삼림공원으로 조성하여 놓아서 그림과 함께 써놓은 수목에 대한 표지와 설명은 지나치던 상식으로 인하여 자꾸 등산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숲은 공기정화 작용도 하고, 천연 저수 능력이 있어 더할 수 없이 큰 저수지의 역할도 하고, 아낌없이 인간에게 베풀어 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장승을 지나갑니다. 지역간의 경계와, 이정표의 구실, 마을의 수호신 등이 장승의 하는 역할입니다.
여기서의 장승은 수락산의 수호신입니다.
북한산과 함께 북쪽에서 서울을 지켜 주던 수호산이던 곳이 수락산이었거든요.
자세히 보세요. 수락산의 모든 봉우리가 우리 수도 서울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모습들을.
'큰샘물'입니다. 바위 사이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하는 샘물입니다.

비어도 차는 대합실, 마르지 않는 우물
만남의 광장이다가
다시 떠나야하는 휴게소
낮에는
우리들의 세상
밤에는 동물들의 나라
                         - 샘

 
  깔딱 고개를 올라갑니다. 약한 숨이 끊어질 듯 말 듯한 소리가 날 정도로 넘어가기 힘든 고개가 깔딱 고개입니다. 이러한 고개는 항상 정상이나 높은 능선 가까운 곳에 있지요.
얼마 전에 정형외과에 가서 의사에게 X-ray 관절촬영을 부탁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더 가야할 산은 많은데 관절은 운동으로 튼튼해지는지 여부를 묻기 위해서였지요.
그때 의사가 말하더군요. 관절은 퇴화하는 것이니까 아껴 쓰시라구요. 그래서 아껴 아껴 관절을 쓰느라고 더욱 천천히 올라갑니다. 
묻고 싶던 것을 묻지 않아도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것이 반가운 이정표(里程標)입니다.
이제 0.9km만 가면 수락산 정상이랍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더 어려운 바위 길은 아기자기한 길이 되어 지금까지보다 행복을 더하여 줄 것입니다. 수락산 정상은 돌이 많고 시야를 막는 나무가 적어서 어느 산보다 전망이 뛰어나고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수석 같은 돌의 잔치가 시작될 것이니까요.
수락산 봉우리 넘어 서쪽에 중랑천 건너 마주하고 있는 희미한 산이 도봉산(道峯山)의 최고봉이라는 자운봉(紫雲峰, 739.540m) 그리고 신선봉(神仙峯)과 만장봉(萬丈峯)이구요. 
지나온 곳을 뒤돌아보는 것은 올라갈 곳을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큰 감흥을 줍니다. 방금 밟고온  현재를 뒤돌아보게 하는 하나하나 추억의 기쁨이니까요. 
  다시 또 내 어머니의 유랑의 아들이 되어 올라갑니다. 여기가 수락산에 홈통바위가 있다더니 그와 비슷한 길 같습니다. 오늘 수락산 산행 중 제일 힘들었던 코스였지요. 
소나무 사이 먼저 오른 사람들이 바위 끝에 서 있는 모습이 신선 같은 모습입니다. 
  험한 쇠줄에 매달려 힘들게 올라온 곳의 벼랑 끝에서 사람 같은 크기의 바위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에서 굴러운 바위가 아니라 깎은 듯, 솟아난 듯한 큰 바위의 일부입니다.사람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한 이 바위는 이름이 분명 있을 듯한데 그 이름을 몰라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금년에 작고하신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도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할 텐데. 그러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될 터인데 그 이름을 몰라 불러주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허나 산 이름이란 자연처럼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호사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명명된 이름이니 불러주지 않는다고 설마 나의 '꽃'이 아니 되겠습니까? 
  여기가 독수리바위 전망대 같습니다. 거기 두 구루 소나무는 우리와 함께 살아온 나무 중에 나무입니다.
소나무의 한자 '松('송) 자는 나무 '木'(목) 변에 공작 '公'(공)으로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오작(五爵) 중에서도 제일 높은 벼슬이 '공작(公爵)'입니다. 따라서 소나무는 나무 중에 으뜸 되는 나무라는 뜻이지요. 그 소나무가 도봉산과 산하를 굽어 보고 있습니다.
나도 그중의 한 전망대에서 서서 공자가

등동산이소노국(登東山而小魯國): 동산에 올랐더니 노나라가 적게 보이고)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 태산에 올랐더니 천하가 적게 보이더라)

하던 호영지기(浩然之氣)를 맛볼 것입니다. 
수런수런 소리가 들리더니 낙엽 진 겨울 산 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막걸리를 파는 여인도 있어서 정상인가 했더니 '철모바위'였습니다. 여기서 더 북쪽에 3개의 바위가 하나로 뭉친 것 같이 생긴 바위 위에 태극기 휘날리고 있는 봉이 정상인 모양입니다. 


*.수락산의 바위들
 모든 동물 세계에서도 그렇듯이 사람의 얼굴도 자식들은 부모를 닮습니다.
이렇게 서로 닮는다는 것을 저는 자식을 , 형제를 서로 쉽게 찾을 수 있게한 신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바위를 보고도 사람들은 물건을 자기가 아는 것과 닮은 것으로 유추해 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수락산에는 그런 물형의 모습을 닮은 바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보세요, 다음 그림이 무엇을 닮았는가.

미상
독수리바위
형제바위
정상원
철모바위
하강바위
코끼리바위
버섯바위
형제바위
종바위
남근바위
여근바위
치마바위
여체바위
여근바위 원
탱크바위
정상 근처에서 창동에 사신다는 산꾼을 만나 바위 촬영에 많은 도움을 얻었는데, 그래도 하루 산행으로는 수락의 일부를 사진으로 기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도 대원군과 민비에 얽힌 역사의 현장을 보고 가고 싶어서 용굴암을 찾았습니다.
 
그 설명은 안내판에 그 굴의 모습은 사진으로 이렇게 대신하며, 아무도 없는 산속을 나의 아내의 유랑의 남편과 함께 어둠을 밟고 석가사가 있는 덕릉고개로 해서 당고개역을 향합니다. 초승달이 지켜보는 캄캄한 밤에 하산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지금 저 아래 중계동에서는 보고 싶은 두 외손녀가 그 엄마와 함께 이 외할아비를 기다리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