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31 16:20:23, 조회 : 1,442, 추천 : 17
*. 2005년 정발산 새 해 맞이/ 포토 에세이
세모가 지나고 벌써 2005년 새해가 왔습니다. 새해의 소원을 빌기 위해 '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정상"에 모였습니다. '一山'에 사는 사람들이 영하 10도의 추운 아침에 82m "정발산(鼎鉢山)"에 오른 것이지요. 해는 북한산 능선 따라 보현봉 쪽에서 아침 7시 47분에 뜬답니다. '해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청록파 시인 박두진 님의 '해'란 시처럼 2005년의 해가 뜨고 있습니다.
조선 고려 개국 공신으로 영의정까지 지낸 분에 창녕 성씨 독곡 성석린(成石璘)이란 시인이 '金剛山(금강산)'이란 제목으로 일출을 다음과 같은 한시로 노래하였습니다. 그 오언절구(五言絶句) 한시를 그분의 19세 후손인 ilman이 시조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一萬二千峯(일만이천봉) 高低自不同(고저자부동) 君看日輪上(군간일윤상) 何處最先紅(하처최선홍) -獨谷 성석린
金剛山 一萬二千峯 다르도다. 높낮음이. 그대여 보시라, 둥근 해 떠오름을, 저 峯 중 어느 봉우리가 가장 먼저 붉는가를.
ilman도 벌써 작년이 되어 버린 송년 산행으로 감악산 675m 정상에서 빌어본 소원을 다시 막 떠오르는 2005년 해 앞에서 읊어 봅니다. 산으로 향하는 고운 하루 살다 보낸 작년 같이 금년도 살아가게 하소서마음에정상을 찍는 나날이 되게 하소서.
도락산 산행기 (충북단양읍 대강면 소재/2003년 12월 2일(화)/한뫼 산악회 2003년 마지막 산행/ 상선암휴게소-상안암절-삼선상봉-제봉-형봉-삼거리-신선봉-신선봉3거리-도락산-신선3거리-체은벙-범바위-큰바위-큰선바위-작은선바위-상선암휴게소) ㅇ1. 왜 도락산(道樂山)인가 도락산(道樂山)은 충북 단양읍 대강면에 있는 산이다. 단양(丹陽)은 '연단 조양(練丹調陽)'에서 두 자(字)를 취한 지명이란다. '연단(練丹')이란 옛날 중국 도사(道士)들이 만들어 먹던 환약이요, '조양(調陽)'이란 그 빛이 고르게 비친 다는 뜻이니, 신선이 살기 빛 좋은 고장이 '단양(丹陽)'이란 뜻이렷다. 단양은 충북 북동쪽에 있는 경북 문경과 접하여 있는 84%가 산지 지대라서 어느 고장 못지 않게 산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도락산은 소백산과 월악산 사이에 있는 국립월악산에 속해 있는 산 중에 하나다. 예로부터 단양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나다고 일컬어지는 곳이 '단양8경'인데 이 도락산에 4경이 몰려 있다. 사인암(舍人巖), 하선암(下仙巖), 중선암(中仙巖), 상선암(上仙巖)이 그것이다. 택리지(이중환 저)에 단양에 대하여 이런 글이 있다. '10여 리에 이르도록 평야조차 없으나 강과 시내, 바위와 골짜기의 승지(勝地)가 있어 세상 사람들이 이담삼석(二潭三石)이라 일컫는다.' 여기서 말하는 이담(二潭)은 도담(島潭)과 구담(龜潭)이요, 삼석(三石)은 상선암(上仙巖)과 중선암(中仙巖), 하선암(下仙巖)이다. 도락산(道樂山)이란 산 이름은 명종 때 대학자 송시열이 명명한 것이다. 도의 깨달음은 나름대로 즐거움(樂)을 따를 때 깊은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란 뜻에서 따를(從) '도(道)', 즐거울 '락(樂)' 도락산(道樂山)이라 한 것이다. 성품이 활달한 우암 송시열 선생도 산을 좋아하셨는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고시조가 전하여 온다.
靑山도 절로 절로 綠水도 절로 절로 山 절로 水 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우암 송시열 우암 선생의 시조를 읊조리며 상금교를 넘으니 상선암휴게소 입구에 안내판과 함께 '가산(佳山) 마을' 주민이 세운 '마을자랑비'가 있다.
단양 8경의 으뜸이요, 삼선구곡의 중심인 중선암과 더불어 상선암과 도락산이 있어 마을 곳곳이 천하의 절경이니 곧 佳山이다. 四郡江山 三仙水石 나그네도 한탄하네 삼선구곡(三仙九曲)은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이 있는 단양천을 말함이요, 사군(四郡)은 단양, 영훈, 제천, 청풍을 말함이나 '한탄하네'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거기서 상선암 휴게소를 향하여 조금 오르다보니 좌측에 '道樂山'이라고 음각으로 깊게 파놓은 이끼 낀 커다란 바위가 누워있다. 그 가산리 마을 넘어 도락산의 영봉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11시경이었다.
2. 상선암 절 상선암 절은 자그마한 암자 같은 절이다. 그 대웅전 앞을 조금 비껴서 커다란 미륵불이 오른손 바닥을 들어 밖으로(시무외인), 왼손 바닥을 내려 밖으로(여원인)하여 발원하고 있다. '시무외인(施無畏印)'이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 주려는 것이고. '여원인(與願印)'이란 일체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려는 것을 상징하는 수인(手印)이다. 예수님께서 양팔을 벌린 것과 같은 의미라 생각하면 된다. 그 옆의 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려다 보니 동자승이 잠지로 누는 오줌 줄기가 약수이다. 어찌보면 부처가 농을 걸어오는 것 같아 웃음을 머금게 하지만, 그래도 받아 마시기가 민망하다. 그래 그런가 물맛이 일품이다. 절 뒤로 난 본격적인 등산길로 접어 들었다. 오늘의 산행 코스는 제봉으로 해서 도락산 정상을 보고, 채운봉으로 돌아서 이곳으로 내려오는 거다. 3. 왜 오르기만 하는 산일까 도락산 등산길은 처음부터 정상까지 오름길의 계속이었다. 통나무 길을 오르면 쇠줄을 잡고야만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나고, 바위를 기엄기엄 오르다보면 다시 또 철사다리 층계길이 나타난다. 전국의 적지 않은 산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도 많은 쇠줄, 쇠층계, 나무층계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유난히 포근한 겨울이라지만 그래도 12월의 초겨울인데도 많은 땀을 흘리게 하였으나, 단조롭지 않은 등산길이나 곳곳에서 마주치는 해발까지 표시해준 친절한 이정표는 즐거운 산행길이 되게 도와 주었다. 전망(展望)이 시작되는 바위 능선길이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일산(一山)을 떠나올 때 길을 막던 안개는 11시가 훨씬 넘어서도 가시지 않아 건너다 보이는 산이나 되돌아보는 산길이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이 뿌옇다. 그러나 바위산 사이나 하얀 바위 절벽을 비집고 자란 소나무의 청청(靑靑)이 이 산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여기가 상선상봉인가 하는 곳에 수려한 바위가 멋진 자세로 이 카메라맨의 눈을 유혹하고 있다. 조물주가 여러 개의 커다란 아기자기한 바위를 모아 만든 꽃과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땀을 2km나 걸쳐 빼고 난 뒤에 만난 봉이 거기서 조금 더 간 곳에 있는 해발830m의 제봉이다. 이젠 도락산까지 1.7km만 땀을 흘리면 되겠구나. 여기서부터는 이 산의 참모습을 즐기면서 가겠구나. 길은 제법 굵직한 바위 능선 길의 연속이었다. 층층이 쌓인 바위, 우뚝 선 바위, 성벽처럼 이어 둘려싸인 바위들-. 다시 통나무 오름 길이 계속되더니 드디어 삼거리(730m)다. 온 길을 되돌아 0.8km를 가는 것이 제봉 코스이고, 0.7km만 직진하면 도락산 정상이요, 오른쪽으로 3km를 내려가면 채운봉을 지나서 상선암에 이르게 된다.
4. 정상에 서는 기쁨 신선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의 커다란 바위가 급한 절벽 위의 한 3~4백 명은 쉴 수 있는 너럭바위 위에 울긋불긋한 모습은 대구에서, 수원에서, 일산에서 이 아기자기한 도락산을 탐하여 몰려온 산꾼들이다. 널찍한 바위 신선봉에서는 정상에 다녀온 우리 일행들이 점심식사를 하다가 함께 식사하자고, 한 잔하고 가라고 정으로 꼬시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고요, 좋게 말하면 의지입니다. 다녀와서 하지요" 여기에 잘못 주저앉았다가는 '정상 등산 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밥 먹고, 술 마시고, 어쩌고저쩌고 하다 보면 시간에 쫓겨 그대로 하산하기가 쉽상이다. 70 가까운 나이에 어떻게 다시 올 수 있는 산이겠는가. 나무 사이로 도락산의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겨울 산의 묘미 중의 하나는 낙엽 진 가지 사이로 수줍은 듯이 숨어 있는 봉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다. 버스 타고 가다가 차창으로 보는 하늘을 접한 능선 위의 나무들 사이의 머리 빠진 노인의 머리처럼 허전함을 보는 것처럼. 지금까지 3시간 동안 도락산 한가운데를 헤매면서도 도락산 정상을 탐하는 것은 왜일까. 5분 내외의 시간을 머물다 말 정상을 왜 기를 쓰고 가려는가. 다시 더 오를 수 없는 곳을 향한 집념이 고귀한 욕심이라 생각해서인가. 드디어 나는 964m의 도락산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마음속에 가득한 아름다움에다가 하나를 더 보태게 되었다. 나의 산행기에 하나의 산을 더하는 추억 거리를 만든 것이다.
여러 산 버리고서 하나 산(山) 되는 거다
많은 봉 지나고서 그 한 봉(峰)에 서는 거고,
정상(頂上)에 나를 더하여 조망(眺望) 하루 되는 거다. -登山이란 5. 신선봉 전설 지금부터는 다시 삼거리로 해서 채운봉 코스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여기까지 힘들고 어려운 올라오기만 한 코스였으니까- 하고 생각하니 더위와 함께 조용한 즐거움이 나를 엄습해온다. 지금부터 이 이정표 따라 하산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도락산과 신선봉의 안부에 '궁터골 통제 안내판'이 있다. 산불 방지를 위해 3월~5월, 11월~12월까지 입산 통제라는 것이다. 거기에 위반시 과태료 50만원이라는 협박의 글도 있다. 이럴 때 몰래 내려갈까보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사람이다. 안 들키고 내려간다면 50만원을 버는게 아닌가 하면서. 이 궁터골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쫓겨 평복으로 변복을 하고 집신 삼아 먹고 사는 가난한 집에서 며칠 유하게 될 때의 이야기였다. 공양왕이 쫓겨서 초가집에 피신할 때 쌀을 못 빌려 온 아내에게 촌부(村夫)가 '궁(宮)에서 부탁도 거절하되?' 그래 '궁터골' 되었답니다.
신선봉에 돌아와서 아까 서두르다가 지나친 못(沼)을 찾아보았다. 한라산과 백두산의 백록담과 천지처럼, 높은 산 봉우리, 그것도 바위에서 여름은 물론 갈수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서 올챙이나 개구리가 살고 있다는 못이다. 그 못은 이끼가 끼고 썩은 물 같이 더러웠다. 이 못에는 예로부터 이런 전설이 전하여 온다.
숫처녀가 이 곳 물을 퍼내려 하였더니 소나기가 금방 내려 이 못을 채웠다데. 도락산 신선봉 바위 작은 못 이곳에 이 전설에 숫처녀의 등장은 어떤 이유일까. 왜 숫처녀는 이 물을 퍼 내려고 하였을까. 병환 중의 부모에게 약이 된다는 꿈속의 신선의 게시에 의함인가. 그 물은 부정 타지 않은 정결한 처녀가 퍼 내응 물이라야 한다 해서 그러하였는가. 궁금한 생각은 더해 가기만 한다. 신선대는 반석이라서 막힘 없이 사방이 탁 트여있어 조망이 뛰어나다. 지도를 보고 나침반을 이용하여 하나하나 찾아볼 시간이 없어 그냥 황정산(959m) · 수리봉(1,019m) · 작성산(1,077m) · 문수봉(1,162m) · 용두산(994m) 등의 연봉이겠거니 하였더니, 저 멀리 산으로 둘러싸인 양지 바른 곳에 산사가 있다. 저것이 광덕암인가 보다. 여기서부터 내리막 길에는 황홀한 눈요기가 많다. 오른쪽 바위산이 신선봉이고 그 뒤가 삼거리 못미처 지나온 형봉, 제봉이다.
6. 위험했던 하산길 삼거리에서 가볍게 생각하고 채운봉을 향하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올라올 때보다 더한 급경사의 오름 길이요, 내림 길에서 쓰려고 준비해온 스틱은 쇠줄을 부여잡기 위해서 배낭에 다시 넣어야 할 정도로 길은 가파르고 험한 것이 무섭기까지 하였지만 위험의 동반자는 절경인가. 뒤돌아보는 세계는 절경 중에 절경이다. 이곳이 신선봉에서 검봉까지의 도락산의 백미(白眉)라는 암릉 능선의 비경으로 철사다리 층계가 놓여지기 전에는 전문적인 바위 타는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구간이었다. 지나온 봉우리도 우리가 다녀온 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험난한 산인데, 갈 길은 온 길 보다 더욱 가팔랐다. 이런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지 채운봉(彩雲峰)의 바위는 거북이나 물개의 부드러운 모습을 한 채로 절벽에 앉아서 건너편 산의 연봉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 속리산 경업대 모양으로 우뚝우뚝 멀리 서있는 입석대들를 바라보며 내려가다 보니 눈을 잡는 바위 무리가 있다. 옛날 장군이 쓰던 단검 모양의 검바위였다. 검바위를 지나 위험한 쇠줄에 매달려 내려가는데, 건너편에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한 전망대가 있다. 천신만고 끝에 그곳에 이르러 보니 수직의 바위 끝에 위험하게도 바위 하나가 걸려 있는데 그래서 흔들바위라고도 하는 범바위였다. 주변에은 쇠기둥과 쇠줄로 안전시설을 해놓은 50여명 이상이 쉬며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천연 전망대였다. 절벽 위 바위 위에 고사목 한구루 하얗고 뾰죽한 가지 끝을 천지사방을 향한 체 그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늙으면 추하여 진다는 나이가 되고 보니, 죽어서도 저렇게 아름다워지는 나무가 부럽기 그지 없다. 지금까지 이 산에서 내가 보아 온 바위는, 꽃들이 모여 살 듯이 바위들로 빙 둘러 싼 성채 같거나, 아니면 쇠 층계가 아니면 도저히 오르내릴 수 없는 깎아지르는 듯한 경사의 바위 속에 바위였는데 바위다운 바위가 거의 없는 지점인 상선암 가까운 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큰 선바위와 그 아래에 작은 선바위였다. 오늘 돌산 오르내림 길에 너무 고생하였다고, 안녕히 가시라고 거대한 바위가 일부러 서서 인사하는 듯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쇠다리를 넘어가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가산리(佳山里) 동네라고 배웅하는 것 같다.. 2023. 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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