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동구여행(2 )/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ilman 2023. 2. 18. 13:39

동구여행(2 )/ 헝가리 부다페스트
 
*. 요 나폿 기반녹(Jo napot kivanok 안녕하십니까?)

유럽의 중앙 동부 다뉴브 강 중류에 위치한 7개국으로 둘러싸인 내륙국.
섬을 뺀 대한민국 크기 땅에 인구 1.017만이 사는 나라.
겨울은 몹시 춥고, 여름은 몹시 더운 나라.
음악가 리스트(Franz Liszt)의 조국.
1956년 반소(反蘇) 헝가리 의거로
9만 명이 사망과 부상, 20만이 망명한 나라.

국토의 2/3가 200m 이하의 평야가 많은 나라. 1990년부터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민주 새 정부 세운 나라.

국기는 가로로 3등분 된 줄무늬 모양으로 붉은색은 힘, 흰색은 성실, 녹색은 희망을 상징한다.
‘다뉴브의 진주’, ‘동유럽의 파리’라 부를 만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아름답다. 관광명소가 되는 모두가 다뉴브 강을 끼고 밀집되어 있어서 그 경치가 더욱 아름답다.
서울의 5/6 크기의 부다페스트에서는 인구 220만이 살고 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다뉴브 강이 부다와 페스트 지역을 나누며 시내를 관통하고 있다. 다뉴브 강(Danube r.)은 영어식 발음이고 독일어로는 ‘도나우 (Donau. r.) 강’, 헝가리어로는 ‘두나 강(Duna r.)’이라고 부른다. 독일 남부의 산지에서 발원하여 8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드는 강기 때문에 강 이름이 여럿이다.

도나우 강(Donau. r.)의 동쪽을 부다(Buda), 서쪽을 페스트(Pest)라 부르는데, 헝가리어로 ‘부다’는 언덕이란 뜻이고 ‘페스트’는 평야란 뜻이다. 수도를 말할 때는 보통 ‘부다’ 지역만을 의미하고 있다. 13C 이래로 헝가리의 왕들이 거주했던 왕궁과 함께 역사적 유물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1241-1242년의 몽고군 침입 후 벨라 4세가 왕궁을 부다에 지어 오늘날에 수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페스트 지역은 중세부터 상업과 예술의 도시로 발달하여 왔다
1873년까지는 부다와 페스트 그리고 북쪽에 있는 오부다(Obuda) 3개 지역으로 나누어서 독립적으로 발전되어 오다가 '가장 위대한 헝가리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체니 이스트반(Szeczenyi Istvan) 백작의 노력에 의하여 하나의 도시로 통합하게 되었다.

우리가 부다페스트에서 제일 처음 가본 곳은 페스트 지역의 ''영웅광장(Hosok Tere)'이다.
광장 중앙에는 높이 36m의 탑 꼭대기에 날개 달린 천사 가브리엘(Gbrielle)이 헝가리 왕관과 십자가를 각각 두 손에 높

이 들고 서 있고, 아래 탑을 빙 둘러 헝가리의 선조인 마자르족의 7인 족장 기마상이 탑을 둘러싸고 있다. 그 뒤에는 탑을 에워싼 곳 둘이 있는데 헝가리를 빛낸 14명의 영웅들의 입상이 있고 그밑에 양각으로 된 그들의 업적 그림이 있다.

그들의 후손 이슈트반이 로마 교황에게 왕관을 받아 최초로 왕위에 오른 지 헝가리 건국 1,000년 기념 엑스포 때 만든 상징 조형물이었다.
  그 맑던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부다페스트의 샹젤리제 거리(파리 개선문 근처에 있는 거리)라고 불리는 언드라시 거리(Andrasi Ut)를 지난다. 좌우에 있는 건물들이 예술적 가치가 아주 높아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보존하고 있는 거리였다. 우리 대한민국 대사관도 이 거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거리 밑으로는 유럽에서는 첫 번째고, 세계에서는 두 번째라는 100년 전에 만들었다는 지하철이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부다 왕궁을 보러 세체니 란치드(Szeczenyi Lanchid) 다리를 지나고 있다. 다뉴부 강을 건너는 다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로 건축된 지 150년이나 되는 쇠사슬 다리다. 세체니(인명)+ 란치드(사슬)이란 뜻에서 다리 이름이 유래된다.
세채나(Cezanne)는 현수교 건설은 물론 사재를 털어 헝가리 근대화에 힘써서 위에서 말한 '가장 위대한 헝가리의 아버지'라 불리던 사람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다리를 가만히 보면 그 모양이 영국의 개선문 같다. 그것은 영국의 아담클락이란 기사가 지었기 때문이다. 그 기사는 나중에는 헝가리에 귀화하여 이곳 여인과 결혼하여 살았다.

다리를 건설할 당시 다리의 결점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다뉴부 강에 빠져 죽겠다고 호언을 하다가 몸을 던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그것은 다리 입구에 있는 사자 조각의 혀가 없어서라나-. 그래서 이 다리는 '사자 다리'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어부의 요새(Halosxbastya)'에 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여행 내내 날씨가 맑아 축복받은 여행이라 좋아하였는데-.

동유럽의 날씨는 이렇게 맑다가 흐리고 비가 오다가도 맑은 날이 되어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계절 따라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날씨 따라 옷을 입고 다니고 있다.
 오늘도 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목련이 피는 분명한 봄인데 털 오버를 입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비가 오는가 싶게 줄기차게 오는 비가 아니고, 오다 그쳤다를 반복하며 찔끔찔끔 내리는 비라서 아예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이가 드물었다.
'어부의 요새(Halosxbastya)'라고 이상한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헝가리가 국난을 당하였을 때 다뉴브 강의 어부들이 앞장서서 외적을 방어하였다 하여 애국정신의 상징으로 부르는 말로. 성터 중간중간에 고깔 모양의 뾰족한 7개의 탑이 보이는 곳이다.

하늘을 향하여 높이 서있는 슈테판 1세의 기마상을 지나니 삼위일체 광장이다. 교회의 첨탑이 이 이상 더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듯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80m의 '마챠시 탑이 있는 저 교회가 그 유명한 '마챠시 교회'인가 보다. 헝가리 최고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마챠시 1세가 이 고딕 탑을 세우고 결혼식을 올린 후 역대 왕들이 대관식이 거행되었다는 교회다.

그때 리스트(Franz Liszt)가  '헝가리대관식 미사곡'을 작곡하고 직접 이곳에서 지휘를 했다고 한다.

 4C에 이 교회를 지은 벨러 3세와 왕비의 석관(石棺)이 안치되어 있다는데 지붕의 모자이크가 특이하였다.
부다 언덕 위에 있는 왕궁 일대는 13C경부터 건축된 고색창연한 왕궁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국립도서관 건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되어서 1963년에야 와서야 모두 복원된 것이다. 지금은 왕궁 내부를 국립도서관, 국립미술관, 역사박물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왕궁에서 에르제베트 다리 맞은편에 표고 235m의 겔레르트 언덕(Gellert Hegy)의 중턱에 겔레르트 상이 있다.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이슈트반 1세의 왕자의 교육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초빙되어 온 겔레르트 수도사가 헝가리에 그리스도교를 전도하려다가 반대파 폭도에게 산 채로 와인통에 갇혀 이 겔레트 언덕에서 다뉴부강에 던져 순교(殉敎)한 곳이다.
성에서 멀리 동상 하나 우뚝 서 있는 것이 '해방 기념탑'으로 자유 여신상으로 소련군으로부터 해방 기념탑이란다.

여기서는 왕궁이나 교회 구경보다 다뉴브 강과 부다페스트의 조망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일품이었다.

 

*.  동구여행(12)부다페스트의 야경
  '부다페스트에서 야경을 구경하지 않고는 부다페스트의 경치를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부다페스트에서의 선상 크루즈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유명하다는 것이 된다.
원래 우리의 일정에는 낮유람으로 예약이었지만 늦은 8시부터 시작되는 다뉴브강 야경 쿠르즈를 하기 위해서는 20유로(3만 원)를 더 내어야 하였다. 와인은 서비스로 몇 잔 그냥 주는 모양이다.
나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선상 쿠르즈를 적지 않게 하였다.
베트남 하롱베이, 라오스 남궁 댐, 캄보디아 씨엠립 호수, 호주 시드니, 나일 강, 핀랜드서 스웨덴까지, 노르웨이 피오리드 유람, 나일강크루즈 등등. 그러나 밤의 유람은 이번이 처음 같다. 
크루즈는 U턴하여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갈 때는 왕궁 쪽을 보고, 자유의 다리를 넘어 돌아올 때는 국회의사당 쪽을 주로 보는 것이 좋았다.

 선창장(Cassa Legenda)을 출발한 배는 검은 다뉴브강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왈스의 선율 속에 에르제베트 다리를 지나고 있다.
이 다리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왕의 황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로 이중 제국이었을 무렵 에르제베트 황후의 헝가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헝가리 국민의 사랑과 존경받는 여왕이라서 이름을 에르제베트 다리라 하였다.
부다 쪽 입구에는 황후의 좌상의 석상도 있다. 황후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다리도 하얗게 하였다.

 프라하(Praha)의 야경의 백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 둥근 돔이 유난히 아름다운 왕궁과 그 뒤에 마챠시 교회와 어부의 성이다. 아름다움도 이렇게 몰려 함께 사나 보다.

겔리트언덕 중턱에 있는 이 다뉴브강에서 순교한 겔르트상, 그 겔리트 언덕 위에서 무언가를 높이 들고 있는 찬란한 자유의 여신상 부근의 다뉴브 경치는 그중에도 압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국회의사당'은 왕궁의 백열등의 불빛과 달이 형광등 불빛과 조화를 이루었는데 그 빛으로 찬란히 꾸민 '세체니다리(사슬교)'는 이제 우리의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밤의 마음을 밝혀주고 있었다.
체코 프라하의 카렐교 교 위에서 만난 야경이 아담한 여성 같은 모습이라면, 다뉴브 강 위에서 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우람한 남성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 규모가 그렇고 그 찬란함이 더 요란한 것 같다. 아, 이러한 순간의 나는 팔자 중에 상팔자를 타고났구나 하는 행복감에 잠기곤 한다.

 

 

 

 

 

 

 

 

그제는
폴란드(Porland)요,

어제는
프라하(Praha)라.

오늘은
다뉴브(Danube) 야경을 
가슴에 새깁니다.

내일은
                                                                                                        비엔(Wien)에 가서
                                                                                                        비어 한 잔 하렵니다

                                                                                                                           -il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