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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曹溪山) 산행기/송광사(1)

ilman 2022. 1. 11. 23:17

조계산 산행 Photo 에세이 

*.조계산(曹溪山)의 어원 
  신라 말 혜린(慧璘) 선사에 의해 길상사(吉祥寺, 송광사의 옛 이름)가 창건될 때 지금의 조계산의 당시 산 이름은 송광산(松廣山)이었다. 그 길상사를 제1차로 중창한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길상사(吉祥寺) 터에 새로 수선사(修禪寺)를 개설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천양(闡揚)하면서 '송광사(松廣寺)'를 '조계산(曹溪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일설에 의하면 大覺國師 義天이라고도 함). 이는 조계종의 중흥도량 산이 되면서 송광산(松廣山)을 조계산(曹溪山)으로 개칭하게 된 것이다. 
조계산은 원래 중국에 있는 산으로 앞서 말한 대각암(大覺庵)의 대각국사 의천(義天) 이전에는 조계(曺溪)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조계산의 어원과 관계된 그 증거라 할 수 있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98~300쪽 의거) 

-이 산은 원래 송광산이라 불려오다가 고려 희종(熙宗)이 '曺溪山'이라 어필친서(御筆親書)를 내리면서 '조계산(曺溪山)'이라 개명한 산이다.(‘名山古刹 따라’ ‘하’Z 박설산 이고운저) 

조계산은 한국 도립공원 중에 하나다. 조계산이 명산이기 때문일까? 
한국의 명산이란 산세가 수려하여 선인의 발자취며 역사 유적이 흥건하거나, 아니더라도 이름 난 절간이 들어앉아 골짜기 천석(泉石)이 아울러 빼어나거나 함으로써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을 말한다.‘(韓國名山記 김장호) 
  조계산은 산악인에게는 그리 인기 있는 산이 아니다. 
설악산 같이 산이 높거나 산세가 수려한 산도 아니요, 덕유산 같이 깊은 계곡이 있는 산도 아니다. 
기암괴석도 거의 없이 평범한 바위가 몇 개 있는 육산(肉山)일 뿐이다. 그런데도 '한국도립공원'의 하나가 된 이유는 순천(順天)이란 큰 도시에 가까워 교통이 편한 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한국3대 삼보(三寶) 사찰의 하나인 송광사(松廣寺)와 천년 고찰인 선암사(仙巖寺)를 기슭에 품은 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가는 길은 3가지 등산코스가 있다. 
선암사- 굴목재산장- 송광사 (6.6km 3시간 소요) 
선암사- 조계산 정상- 송광사(8.0km 4시간 소요) 
선암사- 굴목재- 천자암- 송광사(7.5km 3시간 30분) 
  지금 나의 계획은 선암사로 해서 정상인 장군봉을 거쳐서 연산봉(851m)으로 해서 송광사를 가고 싶은 마음으로 조계산 장군봉(將軍峰, 884.3m)을 향하여 가고 있다. 
그런데 3시간 코스라는 이 길이 왜 이리 힘들까? 

생각해보니 엊저녁 찜질방에서 깊은 잠을 설친 탓인 것 같다. 
나이도 나이지만 어젯밤 초저녁에는 개럭시 탭(스마트폰)을 충전하며 찜질방이라서 혹 잃을까 해서 그 곁을 지키며 잠 못 잔 것과 꼭두새벽에는 내일 가려는 선암사가 고향인 장 현철 사장과 선암사와 조계산의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아침 9시에 시작한 산행이어서 송광사에서 하루 밤 유할 계획인 내가 밝은 대낮에 스님께 하루저녁을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래서 산길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며 여유 작작 산행을 하고 있다. 
게다가 기암괴석은커녕 능선도 전망도 없이 오름길만 계속되는 조계산 길이 노독에 지친 나를 더욱 치치게 하였다. 

  드디어 오름 산길 가운데 하늘이 뻥 뚫리는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군봉(864 m)이었다. 
정상에 올라서서의 가장 큰 기쁨이 정상석을 보며 더 이상은 오를 길이 없다는 성취감이다. 그리고 굽어보는 동서남북의 전망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30년 전 직장 동료와 함께 장군봉을 찾았을 때 보고 기념사진 찍었던 큰 바위가 아니다. 
수북이 쌓인 돌탑이 그 바위일까. 정상석이란 표지는 그리 크지 않은 바위들의 모인 곳에 세워두었을 뿐이다. 주위는 비정하게도 졸참나무 수목들이 사방의 전망을 가로 막고 있다. 
서쪽으로 제일 가까이 연산봉은 보이지만, 한눈에 보인다는 민속마을 낙안읍성과. 선암사 앞에 있다는 상사호도 나무가 가렸다. 정상석의 바위는 기어오를 만한 바위가 아니지만 거기서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산행에서 늘 나침반과 지도를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보면 모든 산이 연봉(連峰)인데 특별한 전문가가 아닌 내게는 그 산이 그 산 같아서 어찌 구체적으로 자세히 알 수 있겠는가. 
 나처럼 지도를 보고 조계산 정상에서 서쪽이 광주의 무등산(1,187m)이요, 승주호 쪽이 화천의 모후산(919m), 북동쪽 방면의 백운산(1,218m), 지리산 천왕봉(1,915m) 등이 보인다고 어리 짐작하여 말할 뿐일 것이다. 
 갑자기 시장기가 감돈다. 
  그러고 보니 큰 일 났다. 순천에서 떠날 때 ‘점심 먹거리는 선암사에서 준비하지-.’ 하고 그냥 왔는데 다른 고장과 달리 상가가 길거리 아닌 개천을 건너야 있는데다가 거기가 승선교 근처라서 그 구경에 깜빡 잊고 그냥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정표에 ‘2.1m 보리밥집’ 이정표라니? 반가운 마음에 계획했던 송광사 뒷산이라는 연산봉(851m)은 생략하고 보리밥집을 향한다. 금강산도 식후경(金剛山食後景)이라 하지 않던가. 그보다 나는 배바위가 더 보고 싶었다. 

*. 배바위 이야기 

 조계산(曹溪山) 장군봉에서 배바위로 가는 하산 길은 계속 돌길이었다. 
그 길을 10분쯤 내려간 곳 좌측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정표도 안내판도 없어 수없는 사람이 그냥 지나치는 배바위였다. 로프가 있어 이를 잡고 올라가면 멋진 전망이 열리는 모양이다. 
이런 배바위는 창녕의 ‘화왕산(火王山, 756.6m)’에도 있다. 그 배바위 이야기를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 쓴 나의 ‘화왕산 산행기’ 부분을 여기에 옮긴다. 
 화왕산 정상 근처에 배바위가 있다. 왜 배바위라 하였을까? 어떤 이는 배를 매어놓은 곳이라고 해서 배바위라 한다. 옛날에는 바다였던 이곳이 지각 융기로 인하여 산이 되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배 모양으로 생긴 바위라서 배 바위라고도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야기다. 
배 바위에는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그걸 말하려면 화왕산의 청룡암으로 오느라고 가보지 못한 관룡사에서 300m 오르면 있는 용선대(龍船臺, 보물 제295호)를 먼저 이야기를 해야겠다. 

-'용선대'(龍船臺)란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盤若龍船'(반야용선)의 준말이다. 반야의 지혜로 사바세계와 극락 사이에 있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 피안의 세계에 이르게 하는 배란 뜻이다. 
이 배의 선장이 부처님이요, 이를 이끄는 것은 용이다. 
한 마디로 이승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구하여 열반의 세계로 이끌 때 타고 가는 배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흔히 대웅전을 반야용선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관음사 용선대 바위 끝에 선장이신 석가여래불이 결가부좌를 하고 석굴암의 여래처럼 동쪽을 향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화왕산 분지를 굽어보는 자리에 켜켜이 쌓인 돌을 배바위라 하는 것도 용선대와 그 뜻을 같이하는 것이리라, 

*. 조계산 보리밥집 
 하산 길은 계속되는 위험한 돌길로 조계산 보리밥 집에 도착하고 보니 3시 30분이나 되었 다. 
등산안내도의 “장군봉-5분-배바위-10분-작은굴맥이재-30분-보리밥집” 45분

보다 2배나 더 걸린 것이다. 
노인이 행동이 느리거나 나처럼 산행 속도가 느린 것은 안전을 위한 신의 섭리다. 
천천히 가면 멀리 간다는 중국의 속담을 내가 몸소 지킨 것이다.
조계산 보리밥 집은 널찍한 마당에 평상을 여러 개 펼쳐 놓은 셀프 서비스 식당이었다. 
보리밥 6,000원/ 동동주6,000천원/ 도토리묵 60,00원 등을 파는 저렴한 대중음식점이었다. 
참기름을 친 보리밥에 빨간 고추장과 파김치를 넣고 쑥쑥 비빈 밥을 깊은 산에서 자란 야채에 싸서 쌈 싸먹는데 쇠솥에 구수한 누룽지 숭늉이 서비스로 제공된다. 여기에 막걸리를 더하여 마시는 산상의 향연이란! 사는 게 이런 보람 때문인가보다 하였다. 이 근처에서 어렵게 자라던 최씨 일가가 30여년 전에 시작했다는 보리밥집이었다. 
여기가 맹산골 3거리로 4륜구동으로 갈 수 있는 비포장도로 30분 거리에 그분들이 사는 마을이 있는 모양이다. 
산행안내도에 의하면 송광사까지는 “보리밥집-30분-송광굴맥이재-(대피소)-25분- 피아골입구-(비룡폭포)-20분- 송광사”로 정상인이 65분 거리니 내 걸음으로 송광사 가기 전에 산이 어두워지겠구나. 

거기서도 서서히 오름길인데 얼마를 가니 대피소가 나온다. 담이 없는 정자 같은 대피소다.
옛날 이 부근은 인적 없는 두메산골리라 1969년 눈이 많이 온 한겨울 광주일고 생들이 조난으로 사망한 일이 있어 세웠다는 .대피소인데 이 고장사람들은 배도사 대피소라고 한다. 배도사란 기인(奇人))이 살던 대피소라는 것이다. 
 평지 길이겠거니 했던 송광사 가는 길이 짜증스런 오름길이 계속되더니 드디어 재가 나타난다. 마당재라고도 부르는 ‘송광 굴목재’였다. 조계산 산행에서 작은 굴목재, 큰 굴목재 등 많은 ‘굴목재’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곳이 고향이며 삶의 터전인 조계산 보리밥집 최 사장보다 더 아는 이가 있을까. 해서 전화로 물어 보기로 했다. 
-1950년대만 해도 송광사(松廣寺)란 이름처럼 길을 막을 정도로 이 부근에는 소나무가 아주 많았지요. 그래서 그 길을 가려면 소나무가 터널을 이루어 소나무굴을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窟’(굴) +‘木(’목) +‘재’(고개)이라 해서 ‘굴목재’라 하였다고 어르신들께 들었어요. (최석두 60세) 

  해발 720m의 송광굴목재는 송광사의 부속암자 천자암을 가는 갈림길이기도 했다. 
천자암은 수령 800여년이라는 송광사의 3대 명물 중에 하나라는 쌍향수(雙香樹)로 이름난 암자다. 
-쌍향수(雙香樹, 천연기념물 제19호)란 천자암 뒤쪽에 있는 나무로 두 그루가 인접하여 엿가락처럼 꼬인 모양새의 나무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와 그의 제자 담당국사(湛堂國師), 왕자)가 중국에서 돌아 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로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스승과 예의 바른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 한다. 한 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똑같이 움직이며, 중생들이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오는 나무다. 

 그 천자암에 들러 그 쌍향수를 보고 싶지만 지금은 5시를 넘어 곧 어두어질 시간이라 35분 거리의 천자암을 보고 송광사를 가는데 2시간이 걸린다 하여 발길을 2.5km/1시간 거리의 송광사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산속의 밤은 빨리 오는가. 벌써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한다. 
  그 송광굴목재부터는 하산길인데 내림길 전부가 돌길이라서 발길을 재촉할 수가 없었다. 
거기서 200m를 더 내려오니 제2대피소가 있고 그 아래가 피아골[避厄洞]입구다. 
이곳 피아골의 중간에는 연중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는데 은신처로서 알맞은 곳으로 6.25 사변 중에 공비들의 유골들과 그들이 사용했던 탄창과 철모, 식기 등이 많이 발견되었다는 곳이다. 피아골은 피액동(避厄洞)의 변한 말로 옛 사람들이 액(재앙)을 피하던 곳이란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준비한 해드랜턴을 찾기에도 밤은 너무 어두웠다. 군에서 배운 야간 정숙보행처럼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을 높이높이 들어 걷다 보니 드디어 드디어 인가가 나타나고 고맙게도 툇마루에 불을 켜 둔 절집이 있다. 
그 불빛 아래서 가방 속의 해드렌턴을 찾고 있는데 인기척에 나를 보더니 불을 탁 꺼버린다. 
무정한 사람, 나쁜 놈, 욕이 절로 나온다. 송광사와 관계있는 사람들일 텐데, 절집 사람이 이래서도 되는가. 들으라고 큰소리로 “전기가 그렇게 아까운가. 지옥도 못 갈 사람들 같으니-” 하였지만 그 사람도 미안하였는지 절간 같이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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