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사고 후 한 달 되는 날
아내가 해외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원래는 처재와 둘이서 월남 치앙마이와 라오스 등을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처제가 헬스에 갔다가 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어 취소하는 바람에 혼자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호사다마( 好事多魔)라 했던가. 공교롭게도 아내까지 낙상 사고를 당한지라 둘째 딸이 병든 엄마를 혼자 보낼 수 없다고 자청하여 함께 가게 된 것이다.
여행의 동반자가 사랑하는 딸이라 둘이는 얼마나 행복한 여행을 하고 올까. 무엇보다 이를 도와 줄 수 있는 둘째 사위가 고맙다.
병든 나를 걱정해서인가. 첫째 딸이 병상에 있는 아빠를 돕겠다고 수요일에는 우리집에 와서 노력 봉사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모처럼 나도 딸과 함께 교동도나, 파주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출렁다리를 보러 갈 생각이다. 그래서 노후에는 무엇보다 자식들이 중요한 재산인가 보다.
다음은 문예월간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길래 '병상일기'를 어제 시조로 탈고하여 보낸 것이다.
평생의 내 자랑이 약(藥) 안 먹고 사는 건데
아침엔 혈압약(血壓藥)과 저녁엔 전립선약(前立腺藥)
늙다리
챙기는 약(藥)들
나이 따라 늘어 간다.
내 고장 일산(一山)은 자전거(自轉車) 천국이라.
자전거 끌고서 헬스장에 나서다가
기우뚱
넘어진 것이
내 실수(失手) 전부였다.
허리를 크게 다쳐 119를 불렀더니
득돌같이 달려와 응급실 환자(患者) 되니
119
있는 Korea
우리나라 좋은 나라.
뼈에는 이상 없다 통원치료(通院治療) 하라 해서
쾌재(快哉)하며 굼뱅이 걸음 귀가했건만
누웠다
일어날 때 고통(苦痛)
악마의 고문(拷問) 같았다.
병상(病床)에 누워서도 무엇보다 두려운 건
‘섬 얘기’ 평생 역작(力作) 못 마치고 떠나는 것.
한 달도
속절만 더하니
낭패로다, 나의 꿈아!.
카톡에 남길 말을 이렇게 정리한다.
‘벗들이여! 여기는 섬나라 가거도(可居島)네.
ilman은
병들어 가지 않고
여행 중에 죽고 싶었다네.‘
오늘은 사고 난 지 1달이 되는 날, 그동안과 달리 유난히 몸 컨디션이 좋다.
아내를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주고 용산 전자상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집에서 누워 있다 보니 4~5kg 체중이 빠진 듯한데 주로 근육이 빠진 것 같아 아깝다. 그래서 운동 삼아 걷기를 하려고 나섰는데 어제보다 의외로 걷기가 편하다. 그동안 2km 이상의 걷기를 못하였는데 오늘은 8,722 보나 걷고도 말짱하다. 어서어서 나서 이 봄에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
용산을 가고자 나선 것은 이빨 전자의료기 워터 픽의 줄이 너무 오래 써서 삭아 끊어져 그 수리를 하기 위해서인데 4만 5천원이나 들었지만 새로 사려면 15만 원 이상이라서 아깝지는 않았다.
오는 길에 위암수술을 한 장(張) 박사를 용산역에서 만나 식사 대접을 하고 왔다. 집이 용산역 근처여서 연락을 한 것이다. 2년 동안 뇌경색(腦硬塞)에 위암 수술(胃癌手術), 대상포진(帶狀疱疹) 등 3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음악박사, 철학박사이신 분이다.
건강할 때 우리는 영상 동호인으로 만나 자주 막걸리를 나누던 사이였는데 오늘은 둘이 환자가 되어 처음으로 술 없이 대화하다가 왔다. 술 대신 소주잔에 사이다를 나누어 마시긴 했다. 장박사는 술을 아예 끊을 생각이지만 나는' 아직 글쎄다'이다. 생각해 보라 술을 먹고 운전하면 당할지도 모르는 그 모든 불행을 무릅쓰고 생명을 걸고 직장과 가정을 걸고 마시는 것은 그만큼 술이 매력이 있어서가 아닌가.
장 박사는 젊어서 박사 학위 준비에 모든 것을 바치느라고 노후의 경제적인 준비를 못하신 분으로, 우리 노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분이다. 고기를 잘 드신다는 말 때문인가. 회복기에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다.
'아내는 둘째 딸과 함께 지금 태국 치앙마이에 도착하였겠지-. '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텅 빈집에서 홀로 잠들었다. 내일 아침에는 함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야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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