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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德山) 도립공원(2-2)/ 덕숭산(德崇寺)

ilman 2015. 10. 21. 11:28

덕산(德山) 도립공원(2-2)/ 덕숭산(德崇山, 495m)

 

*. 덕숭산 이야기

 수덕사(修德寺) 관음바위 근처에 "정상>/정혜사"의 이정표를 보니  이제부터 산행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학벌이나 문벌을 중요시 하듯이 산에서도 명산(名山)의 조건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문헌을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명산(名山)이란 어떤 산을 두고 이름일까.  산세가 수려하여 선인의 발자취며, 역사 유적이 흥건하거나, 아니면 이름난  절간이 들앉아 골짜기 천석(泉石)이 아울러 빼어나거나 함으로써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겠지만 산은 무엇보다 크고 높아야 한다.                                                                      -'한국의 명산기' (김장수) 

 

 충남의 하고 많은 산 중에 덕숭산은 계룡산국립공원에 이어 수덕사(修德寺)와 함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무엇보다도 위에서 말한 이름난 절간인 수덕사(修德寺)를 품에 품고 있어, 산격(山格)에서 제일 먼저 따지는 높이가 겨우 495.2m이면서도 도립공원(道立公園)으로 지정 된 것입니다.

그래서 덕숭산을 위의 위성 지도에서와 같이 수덕산(修德山, 695.2m)이라고도 합니다.

지정 당시에도 미흡한 점이 있던가 주변 가야산을 포함하여 덕산도립공원(德山道立公園)이 된 것입니다.
덕산(德山)이란 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행정구역이 덕산면(德山面)이어서 생긴 이름입니다.  가야산과 덕숭산은  각기 다른 산이 아니라 도로로 끊기기 전 옛날에는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의 낙맥으로 하나의 산이라고들 합니다. 

 수덕사(修德寺)에서부터 정혜사(定慧寺)까지는 자연석 층계가 1, 080개라니 이는 불교의 백팔번뇌(百八煩腦)를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거기서 얼마 안 올라간 위치에 사면석불(四面石佛)이 있습니다.  다음은 거기에 쓰인 사면 석불 봉안(奉安)의 내용입니다.

 

 이 사면석불은 1983년 충남 예산군 봉산면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 유일의 사면불(四面石佛)을 그대로 재현하여 사방에 약사불, 아미타불, 서가 모니불, 미륵존불을 박태화 거사의 정성으로 2008년에 봉안한 것입니다.  

 
덕수총림 수덕사 이외에도 수덕사에서  덕숭산 정상까지 계단 따라 오르다 보면 수많은 불교 유적이 있습니다.  

 사면석불(四面石佛), 소림 초당, 관음 석불과 향운각, 만공탑 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덕숭산을 등반하는 것은 불교 신자 선남선녀(善男善女)가 성지순례를 하는 듯이 불교 유적을 찾아가는 길과 같네요.

 

 

 

 

 

 

 

 

 

 

 

 

 

층계를 오르다 보니 계곡 건너 숲 사이에 초가집이 있습니다. 바로 '소림 초당'입니다.

벽초 스님이 만 공 선사와 함께 이곳을 지나다가 만공 선사가 "저곳에 수행처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1924년에 자연목을 그대로 기둥으로 하여 이영을 얹어 초당을 지어 드렸다는 곳인데 섭섭하게도 굳게 닫힌 문에
'등산객 및 일반 외부인의 출입을 일체 불허합니다. -소림 초당 스님 白' 이란 푯말이 발길을 돌리게 합니다.

 

*. 관세음보살 압상(觀世音菩薩立像)

 

돌계단은 다시 좌측에 관세음보살입상 석불로 우릴 인도합니다. 1924년 만 공 선사의 발원으로 자연암벽을 깎아 조성 봉안한 8m의 거대한 보살상입니다.

머리의 보관 위로 이중의 보개(寶蓋)를 얹은 입상으로  손에는 병을 받들고 서 있는 우람한 모습의 불상입니다.. 그 옆에 약수가 있고 약수터 옆에 '향운각'이란 암자가 있는데 이역시 '외인 출입 금지'란 푯말과 함께 굳게 닫혀 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근다는 것은 나와 너를 가르는 거절의 표시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불신이요 이는 중생을 미워한다는 이야기와도 같은 행위입니다.

 거기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만공탑'이 있습니다.
1947년 제자들이 만 공 선사를 추모하고 기리기 위하여 정혜사 밑에 세운 근대적인 만 공 선사의 부도(浮屠)입니다. 여기서 사진을 찍을 사람들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만공탑'이란 앞 면만 보지 말고 탑의 사방을 둘러 보시란 말씀입니다.  다른 탑과 달리 이 만공탑의 좌우 측면에는 '世界一花'(세계일화), '百艸是佛母'(백 초시 불모; 모든 초목도 부처님의 어머니)를 비롯한 만공의 친필 등을 음각으로 새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수덕사 곳곳에서 보이는 '世界一花'란 말은 당(唐) 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쓴 육조 혜능선사 비명의 '世界一花 祖宗六葉'(세계일화조종육엽)'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세계는 하나의 꽃이며 조사의 종풍은 여섯 꽃잎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만 공 선사가 생존 시 무궁화 꽃을 먹물에 적셔 ‘世界一花’를 휘호로  남겼다 해서 부도에 새겨 놓은 글귀 같습니다.  
덕숭산 정상을 오르는 길에 만공 선사와 얽힌 이야기가 많은데 만 공 선사(滿空禪師)란 어떤 분일까요?


*. 경허(鏡虛), 만공 선사(滿空禪師) 이야기

 수덕사에는 수많은 고승들이 주석(駐錫)하다 가셨지만 그중에 근대 스님 세 분만 들라면 경허(鏡虛) 선사, 만공(滿空)선사오 하엽(荷葉) 스님일 것입니다.

 선사(禪師)란 선종에서 참선으로 진리를 통달한 스님을 말합니다.  선종(禪宗)이란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중국 숭산 소림사에서 면벽 9년(面壁九年) 참선하여 도를 깨우쳤다는 달마대사(達磨大師)를 시조로 하는 불교 종파로,  불경에 얽매이지 않고 참선으로 자기를 구명하며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석존의 깨달음을 중생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종지로 삼았습니다.

  한국의 근대 선맥(禪脈)은 경허(鏡虛)와 만 공 선사(滿空禪師)부터였습니다.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6~ 1912) 선사는  한 손에 칼을 쥐고 목 밑에는 송곳을 꽂은 널빤지를 놓아 졸음을 쫓으면서 정진하다가 '홀현히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삼천대천 세계(三千大千世界; 한 세계를 천 배한 것이 세 번 거듭된 세계가 내 집임을 깨닫고 일정한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선(禪)의 일상화를 추구하는 선풍을 일으킨 스님이었습니다. 

  경허선사는 문하에 네 제자를 거느렸는데 그중에도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이 수제자였습니다.  

 만공월면(滿空月面 1871~1946) 선사는 법명은 월면(月面), 법호는 만공(滿空)으로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였습니다. 통도사 백운암에서 어느 날 새벽 종소리를 듣고 득도를 한 후 경허선사의 법통을 이어 수덕사를 오늘날 한국불교의 선지 종찰로 만든 분입니다. 한 마디로 경허선사로 시작된 근대 선종을 완성한 스님이 만공 선사라는 말씀입니다.

 수덕사와 정혜사 견성암을 중창하고 안동 김 씨의 소유였던 충남 서산 간월암 터를 찾아 1914년 현재의 간월암(看月庵)을 복원한 분도 만공 선사입니다.
만공 선사는  한국 선불교 진흥을 위해 노력하다가 1946년 덕숭사의 전월사(轉月寺)에서 입적하였습니다. 

 

*. 정상 가는 길 

 정혜사에서 직진하는 바람에 정상 가는 길을 잘못 들어서서 수도승이 스승을 찾아가듯 덕숭산 정상하는 길이 고행 길 같았습니다.

그렇게 오솔길을 가다 보니 힘은 들었지만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몇 개의 큰 바위를 만났더니 우리 아들과 손자가 좋아라 올라가서 카메라를 찾습니다. 

산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곳이 정상입니다.
덕숭산 정상은 제법 널찍하지만 잡목이 시야를 막아 전망은 자랑할 바가 못 됩니다.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 줄기가 만들어내는 덕숭산은 북으로는 이 산과 함께 도립공원인 가야산(677.6m), 로는 홍성의 오서산(791m) , 동남간으로 용봉산(381m)이 병풍처럼 덕숭산을 빙 둘러싸 그 중심부에 덕숭산을 우뚝 서게 하였습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름에 아내와 함께 셋이서  가방에 텐트를 짊어지고  중산리에서 화엄사까지 지리산 종주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손자는 초등학교 6학년에 난생처음으로 오늘 495.2m의 덕숭산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자기도 대견하였는지 연신 엄마에게 전화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나는 손자에게 나의 무용담을 이 기회에 말해 주고 싶습니다.

 

진모야, 성진모(成陳模)야.

할아버지는 70 세서 79세 사이에

백두산 종주

한라산 종주

겨울산 설악산 종주

겨울산 덕유산 종주 등과
태산 4,000 계단 답파

필리핀 단독 배낭여행-,

이 모두를 단독으로 해냈단다. 백두산 종주만 빼고-.

목숨을 걸고 생사가 오락가락할 때도

가난이란 고개를 넘던 것보다는 쉽더구나.

그 후론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세상 모든 일에 두려움이 없어졌단다.

자신이 생겼거든.
진모야, 우리 손자 성진모(成陳模)야,
이런 점은 할아버지를 닮아 다오.

 

 

 

 저 평야를 넘어 황해가 보입니다. 그 근처에 안면도가 있는 모양입니다. 정상의 잡목들이 가리고 있어 이를 피해 본 전망입니다.
다시 한번 수덕사라고도 하는 수덕(修德)을 생각해 봅니다.  

도를 닦는 것이 수도(修道) 요, 행실과  학문을 닦는 것이 수행(修行)이고, 덕을 닦는 것이 수덕(修德)이라면, 그 덕은 밝고 크고 옳고 빛나고 착하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따스하여 사람으로서의 길을 행하는 마음이나 행동이라니, 선을 깨우친 고승의 경지가 수덕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래서 수덕사라, 수덕산이라 하였고, 그 덕을 숭상한다 하여 덕숭산이라 이름한 것을 이제야 분명히 알겠습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를 꺼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정에는  390m 봉 고지를 지나 북동 쪽 둔리로 내려갈 계획인데, 대한민국 산 정상이면 어디에나 있는 이정표가 도립공원이라는 덕숭산에는 없으니 이게 웬일이지요?  몇 번을 둘러보다가 사람들에게 물어도 없다는 대답뿐입니다. 예산에는 등산인이 없는가요. 예산군청 관광과는 무엇을 하는고 있는가요? 등산객이 찾는 것은 이 한가한 둔리 마을에 도움도 될 터인데요.

아마도 정혜사를 못 보고 가는 것은 덕숭산 도립공원의 1/3을 못 보고 가는 격이라 정혜사가 우리를 부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 정혜사(定慧寺) 이야기 

정혜사(定慧寺)로 하산하는 길은 넓고 층계가 있고 계단이 없는 경사길에는 흰 밧줄이 있는 편안한 길입니다.

채소밭에서 울력하는 스님에게 물어보니  정혜사를 들어가 구경할 수도 있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서 절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정혜사도 수덕사와 같은 시대인 백제 때 지명 대사(智明大師)가 지었다는 절입니다.  거기서 수많은 고승 대덕들이 수도 정진했던 곳으로 현대 불교계를 움직인 선사들의 정진처라고 합니다.

절에는 인기척이 없어 정혜사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죄를 지은 것 같은데 능인선원(能仁禪院) 앞에 바윗돌 하나가 우뚝이 정적을 돕고 있습니다.

 

능인선원(能仁禪院) 앞뜰에

바위  하나

나 하나.

바위 일은 바위만 알고

나의 일은 나만 아니

묻지들 마오

왜 거기 있게 된 연유를.
                     -능인선원 바위

 한국의 5대 총림으로는 가야총림 인사(海印寺), 조계총림 송광사(松廣寺), 영축총림 통도사(通道寺), 덕숭총림 수덕사(修德寺),  고불총림 백양사(白羊寺)  있습니다.

총림(叢林)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經典),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정혜사 돌 앞에 있는 당우가 능인선원(能仁禪院)으로 여기는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도량입니다.
능인(能仁)이란 말은 '능하고 어진'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뜻하는 말입니다. 

정혜사 마당에는 바위 위에 남매탑이 있지만 계룡산 같은 전설은 선원인 정혜사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전설은 없답니다.

오른쪽의 당우가 능인선원이고 우측 당우 위에 있는 건물이 관음전입니다.

 이 정혜사의 자랑은 이 절의 위치로 인한 확 트린 전망입니다. 그 전망 속에는 수덕사도, 평야도, 산도,  바다를 다 품고 있습니다.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들과 손자가 즐겁게 가는 뒷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는 즐겁고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수덕사에 와서 덕숭사 등산까지 마치었으니 부처님께 소원 하나 빌고 싶습니다.

"부처님, 저는 자식 자랑하다가 병신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그 병신 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보지를 못하였습니다. 

제발 제 손자 진모를 자랑하다가 병신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게 해 주소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ilman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