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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산행기

ilman 2015. 11. 6. 09:33

 

팔공산 산행기/ 포토에세이
 
 

 

 글쓴이 : ilman 조회 : 917  
(2006. 3. 16 대구 팔공산/수태골주차장-동봉-부도암-케이블카 주차장/고양늘푸른산악회 따라 38명 ☏)

 
*. 팔공산에 내리는 춘설

선자령, 소백산서
가는 겨울 배웅 하였는데
왜 춘설은 팔공산까지 우리를 따라와서
봄맞이
우리 산행을
눈길로 덮고 있는가.


  봄비 속을 달려 어둠을 가르고 일산서 대구까지 팔공산을 가고 있는데 칠곡휴게소를 지나니 지금 대구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한다. 지금은 3월 중순인데 며칠 전에는 팔공산에 산불이 나서 갈 수는 있는가를 애태우게 하더니 이번에는 눈이라.
큰일 났다. 미리 눈 소식을 들었다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이젠을 준비하고 왔을 텐데-.
파계사 입구에 도착하였더니 경찰이 길을 막고 있다. 파계사
(把溪寺)로 가는 고개가 미끄러워서 지금 제설 작업 중이란다. 하릴 없이 우리는 수태골 주차장에 버스를 대었다.
 팔공산 능선 대종주란 파계사에서 시작하여 서봉과 동봉을 거쳐서  갓바위까지 가는 것이지만 그것은 10시간 이상을 준족으로 달려야하는 코스이고 그것도 낮이 긴 여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 고양  늘푸른산악회의 계획은 파계사를 들머리로 해서 ‘파계재- 파계봉-서봉- 동봉- 염불봉- 염불사- 부도암- 일주문’인데 예상치도 못한 춘설로 설화 만발한 팔공산의 설경을 구경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방향을 수태골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동봉(東峰)이라도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 수태골의 유래
  여자가 아이를 밴 것을 수태(受胎)라 하던데 이 깊은 산 중에 '수태골'이라니 이상하다.
혹시나 팔공산 동쪽 기슭 은해사(銀海寺) 뒷산의 태실봉(466m)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그 태실봉
(胎室峰)에는 조선조 12대왕 인종(仁宗)의 태실(胎室)을 봉안한 곳이라 하던데-.
태실(胎室)이란 왕실(王室)의 태(胎)를 묻은 석실을 말한다. 예로부터 태(胎)는 인간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며, 더구나 다음의 보위(寶位)를 이어받을 왕손의 태(胎)는 국운과 이어진다고 생각하여 귀중하게 모시었다.
그런데 ‘태실(胎室’)과 ‘수태(受胎)’와는 그 뿌리는 같으나 내용은 다른 말이 아닌가.
그 수태골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부인사(符仁寺) 골짜기서 백일기도 드리면
자식을 점지 받는다는 어느 도승 말 따라
불심에 기원하여서 수태하여 수태골(受胎谷)


*. 팔공산의 어원

  팔공산(八公山)이란 지명은 옛 기록들에는 ‘공산(公山)’이라 나온다.( 산경표, 세종실록지리지 등) 그것이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나 신증동국여지승람부터는 팔공산(八空山)이라 하고 있다.

   그 ‘八’(팔)에 대한 설명이 제각각 다르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고려 왕건이 견훤을 맞아 일전을 벌이다가 대패하였는데 그 와중에 신숭겸, 김락 등 8장수가 전사했다 하여 팔공산이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왕건이 몸을 피했다는 절이 은해사(銀海寺)다.
 그게 아니라  ‘八’(팔)은 이 산의 중요한 봉우리 8을 말한다는 것이라고도 한다.
 서쪽에서부터 가산(架山, 901.6m), 파계봉(杷溪峰, 991.2m), 서봉(西峰, 1,041m), 동봉(東峰, 1,155m), 비로봉(毘盧峰, 1,192.9m), 염불봉(念佛峰1,121m), 인봉(印峰, 897.6m), 관봉(冠峰,852m)로 대구 쪽에서 바라보이는 8산 때문에 팔공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득도한 제자 8명의 고승과 함께 살던 곳이라는 설, 동화사, 파계사, 부인사, 은해사 제2석굴암 등 유명한 절의 수가 8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 어원설이 이렇게 갖가지로 많은 것은 이 고장이 한반도 영남의 중앙에 위치한 사통팔달의 교통중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한국 3대 도시에 있는 대구의 진산이기 때문이리라.

*. 동봉(東峰) 가는 길

 수태골 코스는 대구 산악인들이 동봉 가는 길 중에 가장 선호하는 코스다.
주차장서 3.5km의 직코스이고, 계곡을 끼고 오르는 코스로 길은 바윗길이라 이름도 바윗골이라서 혼자 가도 지루한 줄 모르겠다. 그 오름길은 완만하고 멋진 징검다리도 있다. 노송과 울창한 숲과 기암기석이 어울린 길인데다가 때늦은 서설까지 내려서 그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그것도 가지가 휘어지도록 내리고 있는 눈이었다.
주차장서 1km 지점에 푯말이 하나 서 있다. 그런데 이건 무엇일까, 수릉봉산계(綏陵封山界) 표석이라니-.
'수릉(綏陵) '이란 조선조 현종의 아버지인 익종의 능을 말하고,. '봉산계(封山界) '란 말은 이러한 능의 유지와 제사에 쓰이는 경비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 구역의 산림을 보호림으로 정하여 일반인의 벌목과 입산을 금지하는 푯말이다.
 깊은 산중에서 휘날리는 눈을 맞으며 고어텍스 위에 판초까지 중무장을 하고 보니 사진 찍는 손이 자유롭지 못한데 높은 나무 위에 쌓인 눈이 주먹 같은 덩어리로 떨어져 내려서 놀라기도 하였다. 작년에 유람선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물줄기를 맞아 고장 난 카메라를 수리한 기억이 나서다.
오  른쪽으로 멋진 쇠기둥이 있는 기암절벽을 지나는데 절벽 끝에 빨간 조화가 피어있는 꽃병이 있고, 그 바위 중간에 추모의 비가 박혀 있다. '얄롱캉봉(8,505m) 동계 세계초등 훈련'을 이 아래 바위에서 하다가 간 '고 진교섭 군'을 기리는 산악회 동인들이 세운 비였다. 28살의 짧은 나이를 살다가 그는 갔다.
"산의 뜻이 여기에------.
그대! 우리와 함께 하리."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毘盧峰 上上頭에 올라본 이 그 뉘신고. 東山 泰山이 어나야 높던던고 魯國 좁은 줄도 우리는 모르거든 넓거나 넓은 天下 어찌하야 적단 말고."라고 공자가 태산(泰山, 1,450m)에 오른 것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 공자는 74세를 살다가 갔고 송강은 58세를 살다가 가신 분들이다.
그런데 나는 보름 전에 고희를 넘기고도 팔공산을 찾아왔으니 정군은 얼마나 아까운 나이에 갔는가.
나는 앞으로 봄을 몇 번이나 맞을 것이며, 산에는 몇 번이나 오를 수 있을까? 50고개 60고개와 달리 70 고개를 넘어섰더니 만감이 교차한다.
  '늙은이의 몸은 60대에는 해마다 달라지고, 70대에는 달마다 달라지고, 80대에는 날마다 달라진다."니 그렇다면 90대에는 시간마다 달라지겠네!

*. 팔공산 정상 동봉(東峯)

수태주차장에서 2.4km 지점에 서봉 1.0km/ 동봉 1.1km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날씨가 좋다면 당연히 서봉으로 해서 동봉을 향할 것이지만 동봉을 향한다. 앞선 맨 뒤의 일행들과 30분 이상 처진 모양이지만 대신 나의 몸에 맞는 느긋한 속도여서 힘이 들지가 않았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앞선 일행이 내려오고 있다. 정상에 올라가야 눈과 바람밖에 아무것도 없으니 그냥 내려가시란다. 
빙판길에다가 산록에서 사서 착용하고 온 아이젠도 무용지물이라면서-. 일행의 일부는 정상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릴 때가 12시가 가까운 시간이라서 나는 버스에서 미리 간단한 식사를 한 후의 등산이라서 시장끼보다는 정상이 더 급하였다.  그러고도 한 참을 오르니 눈에 덮인 층계가 뿌연 눈보라 속에서 동화 속의 그림 같이 두 번이나 나타나더니 드디어 동봉 정상이 앞서 간 분들의 말대로 눈의 나라요, 바람의 세계였다. 급히 귀걸이를 하고 옷을 여미었다.
정상은 비로봉이지만 그곳은 방송중계소와 군기지가 있어 보안상 일반인의 출입금지지역이어서 정상의 이정표에도 없었다.  파계사(把溪寺)로부터 올라왔으니 6.2km로 1.7km를 질러온 것이다.
서쪽의 파계재로부터 이 동봉(東峯)까지는 남으로 대구광역시와 북으로 군위군의 경계선이요, 동봉에서 동쪽으로 관봉까지의 능선은 남으로 대구와 북동쪽으로 영천시와 경산시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나는 오늘도 종일 나 혼자 산에서 산과 바위와 눈과 바람과 계곡 소리를 들으면서 카메라와 함께 지냈다.  다음 생이 또 있다면 오늘의 나같이 살고 싶다. 지금의 나 같이 글 거리를 찾아 헤매며 이 나라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으며 살고 싶다.
이렇게 산에 취해 살다가 하산 길에 들어서니 갑자기 궁금해지는 소식이 있다.
오늘 12시 미국 애너하임 엔절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한일전에서 한국 야국 국가대표팀은 새로운 기적을 수립한 것인가.
한국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로 일본 1개를 따돌렸고, 축구에서는 일본은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해서, 야구만큼은 30년 동안은 한국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만들겠다고 호언하던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은 것인가. 그랬을 것이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 대표팀에게도 7:2로 압승한 한국대표팀이 아니던가.
어서 어서 내려가자. 염불 사는 동봉에서 1km밖에 안되는 곳이고 주차장까지는 계속 아스팔트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