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대찌개 이야기 -----------------사진무
*. 의정부 지명의 유래
오늘 점심은 ‘의정부 부대찌개’로 먹기로 했다.
기왕이면 의정부에 가서 원조 의정부 부대찌개를 먹고 오자고 의정부행 전철에 올랐다.
의정부역은 청량리서 전철로 14개 역을 33분 동안 가야했다. 도봉산역을 지나 망월사역, 회룡사역 그 다음역이 의정부역이다.
그런데 의정부시는 다른 도시와 달리 왜 정부 기관의 이름인 의정부(議政府)를 도시 명으로 정하였을까?
이를 알만한 얼굴의 의정부시민에게 살짝 물어 보니 횡설수설로 대답이 엉뚱하다.
의정부(議政府)란 조선시대의 행정부의 가장 높은 최고 기관이다. 지금 말로 하면 정부(政府)다.
여행의 오랜 경험으로 내가 터득한 것은 산행에서는 산의 들머리에 산행 정보가 모여 있듯이, 도시여행(都市(旅行)에서는 역(驛)이나 그 주변에 그 도시의 갖가지 정보나 안내소 등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와 보는 의정부역사(議政府驛舍)는 에스카레이터 등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웅장한 건물로 바뀌어 있어 발전하는 의정부시를 통하여 Korea의 모습을 본다.
- 지금으로부터 590년전 태조 이성계가 태종(이방원)의 간구(懇求)로 함흥에서 한양으로 환궁(還宮)하다가 지금의 호원동 전좌(典座)마을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의정부 3정승을 포함한 각 대신(大臣)들은 이곳까지 찾아와서 정무(政務)를 논의하는 한편 태상왕(太上王)의 윤허(允許)를 받았다고 하여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인 의정부의 관청 명인 의정부(議政府)를 이곳의 지명으로 삼게 되었다.
역사(驛舍)를 둘러보니 바로 옆에 반세기(半世期l) 동안 미군부대(캠프홀링워터)였던 지금의 ‘나무은행 임시공원’에 있는 “하나됨을 위하여 탑” 하단부 석물에 새겨 있는 말이다.
이 탑은 의정부읍의 인구 6만 2천여 명으로 의정부시로 승격된 후 50주년을 맞아 인구 43만명으로 605%나 성장한 모습을 기념하여 손 모양을 총 50층으로 하여 형상화한 탑이다.
그 역 바로 앞 큰 길을 건너면 '행복로(幸福路)'거 시작된다.
과거 ‘중앙로(中央路’)였던 길을 5개의 테마로 조성한 600m의 힐링 공간 문화거리가 바로 행복로(幸福路)이다. 빛의 거리, 연못, 분수대, 쉼터, 살아 있는 수변 공간, 중앙 광장, 공연 광장, 소리 광장이 그것이다. 여기서 매주 토요일 4시~6시까지 거리공연이 열리는 모양이다.
그 입구에 행복로를 관통하여 흐르는 물줄기 근처에 고려말 혼란 시대에 홍건적, 왜구, 원나라 등의 침입에 맞서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당시의 추앙받던 영웅 ‘이성계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의정부에는 이 태조와 얽힌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조금 전 전철로 지나온 회룡역(回龍驛)이 그랬다.
-회룡사(回龍寺)는 회룡역에서 도보로 50분 거리에 있는 절이다.
신라 신문왕 원년인 681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절로 당시 이름은 법성사(法性寺)였다.
고려말 우왕 10년인 1384년 무학대사가 이를 8번째로 개축할 무렵이었다. 이 성계 장군이 왕이 되기 전 지금의 회암사 석굴암에서, 무학대사는 바로 그 위 산등성이에서 3년 동안 창업(創業) 성취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이 성계가 드디어 등극하였으나 두 차례 '왕자의 난(王子 亂)이 일어나자 태조는 이런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자식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고 왕위를 버리고 함흥(咸興)에 칩거하며 이른바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고사성어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태종의 수없는 간청으로 노여움을 풀고 이 절로 무학대사를 찾아오니 대사가 회란용가(回鸞龍駕)를 기뻐하며 왕이 돌아온 절이라는 뜻으로 회룡사(回龍寺)라고 사액을 바꾸었다고도 한다.
다음은 이 행복로를 거닐다 본 조각품과 광장의 모습들이다.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를 운치 있게 찾아가려면 지하철 1호선의 회룡역에서 하차하여 의정부 시내 관통 경전철을 타는 것이 좋다. 경전철 (輕電鐵) 이란 버스와 지하철의 중간규모의 수송능력을 가진 교통수단으로 우리가 자주 타볼 수 없는 전철이기 때문이다.
의정부경전철(U-LINE)은 2012년 7월 1일 수도권 최초의 경전철로 '발곡역'에서 '탑석역'까지 15개역의10.6km 구간을 고가 전철을 통하여 19분 54초만에 다니는 전철이 수시로 운행하고 있다.
그 경전철을 타고 가다가 '의정부 부대찌개거리'에서 내렸다.
그러나 나는 행복로를 통하여 가고 있다. 행복로를 끝까지 가면 부용천과 중랑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양주교가 나온다. 그 다리에 가기 전 좌측에 아치형의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입구가 나타난다.
그 거리에 들어서면 만국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한 집 걸러씩 의정부 부대찌개 식당들이 100m정도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10월이 오면 의정부시 주체로 '의정부 부대찌개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한다.
부대찌개거리의 활성화를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부대찌개 값을1,000원 할인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이 날만은 8,000원 하는 음식을 7,000천원에 팔고 있는 것이다.
나는 6. 25사변을 중학교 시절에 인천(仁川)에서 경험한 세대라서 그때 먹은 꿀꿀이 죽을 기억한다.
시장에서 팔던 그 불결하다는 꿀꿀이죽을 돈이 없어서 못 사먹었던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꿀꿀이죽이란 먹다 남은 여러 가지 음식물을 한데 섞어 끓인 것을 비유하는 말’로 나온다.(우리말 큰사전) 1960년대인 나의 대학시절에 사먹던 기억으로는 재래시장 좌판에서 지금의 팥죽처럼 큰 다라에 꿀꿀이죽을 담아 놓고 구기로 떠서 퍼주며 팔던 약간은 비위생적인 음식이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미군부대에서 잡일을 하던 사람들이 미군(美軍)이 먹다 버린 잔밥통을 뒤져서 저자거리에 내오면 좌판상인들이 소시지, 햄, 베컨 등을 골라내어 거기에 김치에 채소를 넣어 펄펄 끓여 재활용하여 먹던 죽이었다. 꿀꿀이죽라서 미군이 피우던 담배꽁초나 휴지가 나왔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꿀꿀이죽을 미군들이 들어오면서 생긴 '사생아 음식', ‘UN탕’, 존슨탕(Johnson탕)이라고도 비하하여 말하곤 하였다. 존슨탕이라는 말은 1999년 방한(訪韓)한 존슨 미 대통령 때문에 생긴 말 같다.
그런 음식이라는 선입관 때문에서인가. 나는 의정부 부대찌개를 지금까지 거의 사먹지 않고 살아왔다.
‘꿀꿀-’ 하면서 아무거나 잘 먹는 돼지를 연상해서였다. 돼지의 아동어가 ‘꿀꿀이’라 하지 않던가.
*. 부대찌개의 유래
다음은 ‘의정부시 관광 안내 책자‘를 중심으로 부대찌개의 유래를 살펴본 이야기다.
-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을 때의 이야기다.
먹을 것이 귀하던 그 시절 그래서 생존을 위해서 먹어야 했던 절대빈곤의 그 시절 미군(美軍)들이 부대에서 즐겨 먹던 음식은 군수품이던 햄, 소시지, 베이컨 등이었다.
미군 당국은 위생관념이 철저해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은 자동 폐기 처분하였다.
이런 저런 과정으로 부대 밖으로 흘러나온 서양 식재료에다가 우리나라의 김치, 고추장과 떡이나 신선한 야채를 넣어 펄펄 끓여서 얼큰하고 시원하게 먹던 것이 의정부 부대찌개의 유래이다.
이렇게 의정부 부대찌개는 동 서양의 맛이 어우러진 최고의 퓨전 음식으로 자리잡아 한반도는 물론 오늘날 내 외국인 관광객에게 사랑 받고 대접 받는 향토음식이 되었다.
이 거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에 이르러 `자연발생적으로 부대찌개 거리`가 형성되고, 2009년에는 경기도로부터 '음식특화거리'로 지정받게 되었다.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 들어서니 깨끗한 음식점 15개의 식당이 즐비한데 그 중 '부대찌개'라 하지 않고 ‘오뎅식당’이라 하는 식당에는 다음과 같은 부대찌개의 또 다른 유래를 게시하고 있다.
-우리 ‘오뎅식당’은 1960년도부터 지금의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 위치한 본점 자리에서,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로 처음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식당 단골이었던 근처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분들이 가져다주던 햄, 소시지, 베이컨 등 각종 고기들을 가지고 볶음밥으로 만들어 이를 판매했더니 단골손님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 손님들이 밥과 어울리는 찌개를 찾길래 그 기존 재료에다가 김치와 장으로 찌개를 만들어 팔던 것이 지금의 부대지개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오뎅식당’이라는 상호명은 미군 부대가 있던 그 당시에는 부대찌개라는 말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어서 포장마차시절 사용하던 '오뎅식당’ 상호를 그대로 변함없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대찌개 창시자 허기숙 할머니
이렇게 의정부부대찌개가 6.25와 미군부대와 꿀꿀이죽과 연관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의정부 부대찌개거리’의 간판들을 유심히 보면 ‘명성부대찌개’, ‘오뎅부대찌개’,‘ 의정부명물부대찌개’ 등 다양한 상호를 쓰고 있었다.
‘사단법인 의정부 부대찌개 명품화 협회’가 이제는 의정부 향토음식이 된 의정부 부대찌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 ‘부대’라는 이름을 빼고 입구의 대형 아치에다 ‘명물 의정부 찌개거리’라는 이름으로 홍보하다가 시민의 여론에 밀려 다시 종전의 이름으로 환원했다는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초행길에 15개나 되는 부대찌개 점 중에 내 마음에 꼭 드는 식당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중 내가 ‘의정부명물부대찌개’ 식당을 찾아 들어가게 된 것은 그곳에는 부대찌개에 대한 자료가 가장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자료를 찾아 들어간 것이다. 개점 30년 되었다는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부대찌개는 고기와 소시지에 묵은김치를 넣고 푹 고아낸 육수를 새빨간 고추장으로 간을 맞추어 얼큰하게 푹푹 끓여먹었는데 도중 라면을 곁들여 먹었다.
생각보다 소시지와 햄이 적어서 고기, 햄, 소시지를 더 시켰더니 추가 요금 5천원을 더 내야 했다. 먹은 후에는 그 국물에 밥을 비벼주었다.
의정부에 와서 의정부 부대찌개를 먹다 보니 지금 내가 먹는 것은 미군 부대가 아닌 세계도 인정하는 자랑스런 Korea의 식재료들로 만든 의정부 향토음식이다.
부대찌개란 `군대의 찌개`란 뜻이지만 그 식재료인 소시지나 햄 그리고 베컨은 일반식재료일 뿐이다.
부대찌개로 유명해 졌다고 바람직하지 않은 유래와 연관된 '부대'라는 명칭을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의정부 시민에게 시(詩) 한 수로 나의 생각을 남기고 가고 싶다.
향토음식 찾아
‘의정부 부대찌개거리’를 찾아 갔더니
찾아왔더니.‘
'부대’란 이름엔
아픈 역사가
'찌개’란 이름엔
Korea의 식문화 전통이 품겨 있었네.
가난의 고개를 넘어서면
가난도 재산이라지만
고단한 역사의 산물은
버려야 하는 이름들.
도마뱀처럼
지금부터라도 부끄러운 꼬리를 짤라 버리고
'의정부 명물찌개’가 되자.
고난에 피어난 아름다운 향토음식이 되자.
춘천의 닭갈비처럼
한국의 청국장처럼.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