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산행 Photo 에세이 (2009. 4. 7~10/영실- 윗세오름-어류목/ (성판악-백록담-관음사) :생략/ 어류목-어승생악오름 나 홀로 산행) *.한라산 여행 가난은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
눈물도 불행들도 그 속에 사는 고개 그 고개 넘어 섰더니 가난도 재산이더라 서울에서 한라산행을 위해서 항공편을 예약하고 나는 남 몰래 눈물을 닦았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 생각이 나서였다. 친구들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개성(開城)을, 고등학교 때에는 경주(慶州)를, 고학하던 대학교 시절에도 제주도(濟州島)를 갔지만 나는 서럽게도 한 번도 그 속에 끼지를 못하였다. 그 때마다 나는 이런 결심을 하고 있었다. '다음 내가 어른이 되면 가난만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아야겠다.' 제주도에 와서 보니 '다시 또 언제 오랴!' 하는 생각에서인가 욕심이 난다. 한라산의 곳곳은 물론 이번 기회에 한국 국토의 최남단의 섬 마라도, 가파도에도 가보자. 그래서 마라도(馬羅島)를 다녀 가파도(加波島)에서 자고, 모슬포(摹瑟浦)에서 중문으로 와서 지금 1시간 간격의 영실(靈室)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부리는 대로 주저 없이 내 몸이 따라 줄 수 있는 홀로 여행이 좋은 것이다. 모슬포에서 산방산(山房山)을 지나니 길 양쪽에 종려나무 가로수가 남국의 흥취를 더해주더니, 중문에 오니 봄의 전령사인 가로수의 벚꽃이 지고 있었다. 지금 여의도 윤중로에는 벚꽃 잔치가 한창이라는데-. *. 한라산 이야기 한라산(漢拏山)은 남한에서는 가장 높은 1,950m의 산으로, 은하수 '한(漢)', 붙잡을 '라(拏)'이니 은하수를 붙잡을 수 있는 남한(南韓)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란 말이다. 한라산 이란 이름 이외에도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州山), 두무악(頭無岳), 부악(釜岳), 선산(仙山), 여장군(女將軍), 원산(圓山), 탐라산(耽羅山), 혈암봉(穴岩峰), 등 별명도 많은 산이다. *. 한라산 등산길
먹고 살기가 힘든 시절에 등산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신혼여행으로라도 여유 있는 신랑 신부가 아니면 언감생심(焉敢生心) 제주도에 오기 힘들었던 시절에, 우리네 같은 서민들에게는 한라산 산행은 꿈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와 함께 1,100도로가 만들어지면서 한라산 등산으로 어리목코스와 영실코스가 생겨났다. 그 이전에 한라산 코스로는 학사코스, 돈내코코스, 남성대코스 등이 있었지만 1,100 도로가 만들어진 후 한라산 주 등산로는 어리목이나 영실을 통해서 백록담에 오르는 것이었다. 영실코스가 인기가 높은 것은 한라산 정상까지 간다 해도 영실서부터 6.3km의 최단 코스인데다가, 그 도중에 만나게 되는 영주10경(瀛州十景)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하는 영실기암(靈室奇巖)과 산상의 초원 선작지왓과 같은 한라산의 비경(秘境)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등산로에 전국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연보호를 위해서 1994년부터 시행된 자연휴식년제로 윗세오름까지로 등산이 제한되어야 했다. 이 때문에 영실코스로야 오를 수 있는 1,950m의 한라산 정상은 현재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우리들이 성판악(城板岳)으로 올라 정상이라고 알고 가는 정상은 한라산 정상이 아니라 1,933m의 동봉(東峯)일 뿐이다. 동봉의 나무로 된 해발 표지를 자세히 보라. 거기에 있는 통나무로 된 정상 표시에는 해발 몇 m라는 것이 생략되어 있다. 1,950m의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라산 산행 코스로 현재에는 다섯이 있다. 나는 이번 여행에 이 다섯을 모두 주파하리란 꿈을 가지고 왔는데 이루어 질는지-. -성판악 등산로 3.17km/ 4:30분, 관음사 등산로 8.7km/ 5시간, 어리목 등산로 43.7km/2시간, 영실 등산로 3.7km/1:30분, 어승생 등산로 1.3km/30분 한라산 등반길에서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은 날씨의 변화인데 오늘은 더할 나위없이 청명한 날씨에다가 춘분(春分)이 지난 낮장밤단의 초봄이다. 영실과 어리목에서는 등산 제한 시간이 2시부터다. 그랫 늦게나마 등산을 할 수가 있었다. 버스는 고맙게도 영실매표소까지 들어와서 나를 내려 주는데 여기서부터 영실휴게소까지는 2.5km 1시간 거리가 남아 있었다. 다행히 승용차로 들어가는 등산객이 있어 1,800원의 주차료를 대신 지불하여 주고 편승하기로 하였다.
영실휴게소에 도착하니 '영실(靈室) 해발 1,280km'란 표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기고 서 있다. 이 영실코스로는 1,700m의 윗세오름밖에 오를 수 없으니 420m만 오르면 되니 오늘 하루 산행은 여유작작할 것 같다. 영실휴게소에서 식수와 점심용 김밥을 준비하여 등산을 시작하려다 보니 그 좌측에 '영실 존좌(靈室尊座)'란 오백나한(五百羅漢) 절이 보여서 들려 보았다. 현수막을 보니 '한라산 영실 존자암(적멸보궁, 제주도문화제 43호: 존자암세존사리탑문화재 17호)'으로 2,500년 전 탐라국 발타라 존자가 창건하였다는 절이었다. 계곡을 좌측에 끼고 깨끗이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오르는데 길은 험하지 않고 완만한 오름길이다. 입간판을 보니 이 길은 '한라산 영실 자연학습 탑방로'이기도 하였다. -겹겹이 치솟은 바위가 주변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는, 영주10경의 하나인 영실기암입니다. 영실(靈室)은 산신령(靈)이 사는 방(室)이란 뜻도 있지만 바위 하나하나가 장군의 모습을 닮아서 형상으로는 '오백 장군', 불교적으로는 '오백 나한'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또한,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병풍바위'라고도 합니다, 그 모습들이 제 각각인 바위 하나하나에 대해 부르는 많은 이름도 있지요. 이곳에는 봄에는 물소리,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 겨울에는 바위와 나뭇가지가 얼어붙은 설경 등 사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한라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그 아름다운 경치 중에서 제일 처음 만난 것이 '아름다운 소나무 길'인데 여기가 바로 '영실 소나무 숲'으로 삼림청이 주관한 제2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숲이었다. 얼마를 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우측에 멋진 기암(奇巖)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저게 영실기암인가 하였더니 거기를 지나 얼마 안 가서 시야가 탁 트인 전망이 나타나고 그 전방에 가슴을 뛰게 하는 영실기암(靈室奇巖)이 그 아름다운 얼굴을 오를수록 더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열어 주고 있다. 아아, 지금까지 전 세계에 적지 않은 명승지를 찾아다닌 내 눈과 가슴을 이렇게 놀라게 하는 저 영실기암이여! 그 아름다움을 영실 존자암에서는 전설로, 여기서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오백장군 전설: 아주 먼 옛날 이곳에는 5백 명의 아들을 거느린 한 어미가 있었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흉년까지 겹쳤습니다. 어느 날 아들들이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간 사이 어미는 사냥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면 먹이려고 커가란 가마솥에 죽을 쑤고 있었지요. 그런데 솥이 너무 커서 죽을 젓다가 그만 실족하여 펄펄 끓는 죽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줄도 모르고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들은 제 어미를 삶은 죽을 맛있게 먹었지요. 막내아들은 엄마와 함께 먹겠다고 하다가 이 죽을 뜨려고 솥을 젓으니 웬 뼈다귀를 발견하였는데 사람의 뼈다귀가 분명했습니다. 그제야 사실을 알고 '어머니 고기죽을 먹은 형님들과는 같이 있을 수 없다고 차귀도로 달려가 한없이 울다가 바위가 되어버렸습니다. 형들도 솥 주위에 둘러서서 울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봄이면 이 부근에 진달래가 곱게 피는데 이 꽃들은 499 나한들이 흘리는 눈물자국에서 피어나는 것이라 합니다. -영실 기암(靈室奇巖):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영실기암은 예부터 영주10경(瀛州十景) 중 으뜸이라 여겨져 왔습니다. 병풍바위를 비롯하여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이곳의 바위는 '오백장군'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봄이면 절벽 사이로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한 여름 비가 오고 난 후 짙은 녹음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가히 선경(仙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산홍엽(萬山紅葉)을 이루는 가을의 단풍, 기암괴석과 나무들이 설화로 치장하는 겨울 경치 또한 영실기암의 절경들입니다. 비폭포 바위를 지나고 있다. 영실 기암 중에 한 여를 폭우가 내리고 나면 기암절벽 사이로 폭포가 흘러 장관을 이룬다는 폭포로 한라산의 원시림과 기암괴석과 어울려 한 폭의 장관을 이룬다는 폭포다. 병풍바위가 앞을 막는다. 수직의 바위들이 절리를 이루며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다하여 병풍바위라고 부르는 기암이다. 신들의 거처라고 불리는 영실 병풍바위는 한여름에 구름이 몰려와 몸을 씻고 간다는 곳이다. 오를수록 영실 기암이 더 가까이 다가선다. 우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서면 의사가 문진을 한다. 그때 어디가 어떻게 아픈가를 물어 올 때 어떻게 이를 구체적으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마찬 가지로 우리의 한라산 영실기암 앞에 그 아름다움을 나의 졸필9拙筆)로 어찌 다할 수 있으랴. 하여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니 놀란 카메라의 눈으로 장황한 소개를 대신하려 한다. 소나무 숲을 지나니 산죽길이 나타나고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고 있다는 구상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백록담을 중심으로 하여 해발 약 1,400m 이상의 고지 8백만 평의 넓은 땅에서 자라고 있으니 나는 지금 살아 백년 죽어서 백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군락지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깊은 숲속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해우(解憂)에 급한 사람들의 소리인가. 아니면 깊은 산속에서 주책없는 젊음의 향연인가.'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선작지왓 초원지대에 이르니 아까 들은 소리와 함께 팔딱팔딱 뛰노는 노루 두 마리가 있다. 나도 놈들의 목소리를 따라 흉내 내며 오르는데도 그 노루 소리는 계속된다. 휘파람새도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이 노루는 사슴과 비슷한 동물이지만 사슴들과는 달리 5~7마리가 모여 가족 단위로 생활하면서 9~10월에 짝짓기를 하며 5~6월에 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뿔은 수컷에만 있는데 12월에 떨어진다고-. *. 불로초 이야기 '시로미를 아시나요?' 하는 입간판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여기가 바로 시로미의 군락지대인 모양이다. 시로미는 일본의 북해도,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도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한반도에서는 한라산과 백두산에서만 자라는 불로초로 알려져 있는 식물이다. "서귀포 유래를 아시나요? " 옆에 등산객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옛날 진시황이 신하 서불에게 동남동녀 500명을 주어 동해 가운데 삼신산에 있다는 불로초를 캐어 오게 하였답니다. 그 서불이 불로초를 찾으러 제주도에 왔다가 돌아간 곳이 지금의 서귀포라서 서불 '서(西)', 돌아갈 '귀(歸)', 서귀포(西歸浦)라 이름하였다는 전설이 있지요. 정방폭포 벽에 徐市過此(서불과차: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이 쓰여 있고 거기에 서불전시관이 있거든요. 서불이 어디로 갔냐구요. 일본으로 향하였대요. 그 진시황은 겨우 49살을 살다가 죽었구요." 사발을 엎어 놓은 것과 같은 모습의 한라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라산의 다른 이름이 봉우리가 없다 해서 두무악(頭無岳), 정상이 둥굴다고 해서 원산(圓山)이라 한 것이다. 그 일대는 한없이 넓은 초원지대인데 지금은 이른 봄이라서인지 난쟁이산죽이 온산을 뒤덮고 있다. 이곳이 바로 선작지왓이라는 초원지대였다. - 선작지왓에서 '선'은 '서 있다', '작지'는 '돌'을 가리키는 말이고, '왓'은 제주 사투리로서 '밭'을 이릅니다. 봄에는 돌 틈 사이로 피어나는 산철쭉과 털진달래가 붉게 꽃의 바다를 이루고, 여름에는 하얀 뭉게구름과 함께 녹색의 물결을 이루어 산상의 정원이라고 합니다. 여기의 작은 나무들이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설경을 만들어 산악인들을 부르는 이 초원은 한라산이 자랑하고 있는 식물들의 보고(寶庫)랍니다. 이 초원길에는 언제 산을 올라왔냐 하듯이 아스팔트 같은 나무로 만든 평탄한 길이더니 노루샘에서는 시원한 물맛을 자랑한다. 드디어 한라산 정상의 봉을 배경으로 하여 윗세오름대피소가 피곤한 나를 맞는다. 그러나 나는 윗새오름대피소에서 가장 맛있다는 컵라면도, 준비해간 간식도 먹지 못하고 하산을 서둘러야 하였다. 어리목에서 막차 5시 55분 버스 시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택시를 부를 수도 있지만 더불 요금을 달라고 할 것 같아서였다. 내리막길은 널판으로 만든 구불구불 내려가는 아스팔트보다 더 편한 환상적인 길이었다. 그 윗세오름에서 1.5km에 만세동산이 있다. *. 하산 길 3ㆍ1운동 당시였다. 서울 휘문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김장환, 김시범 등 14명이 제주도 고향인 조천리로 내려왔다. 그들은 3월 21일 오후 3시 미밋동산에서 주민 500∼600명과 함께 독립선언문(獨立宣言文)을 낭독하고 대한독립 만세 구호를 외치자 독립운동은 도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를 기념하여 한라산의 한 오름을 '萬歲동산'이라 명명한 것이 높이 1,604m의 만세동산 오름길이다. 거기서 0.8km 더 간 곳에 '사제비동산'이 있다. 사제비동산은 서쪽으로 향한 말굽형 형상을 한 1,423.8km의 출입금지의 오름이다. 그런데 '사제비'란 무슨 뜻일까? 사제비를 죽은 제비[死燕]라고 편하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를 한자로 鳥接[새접]이라 하고 새접은 새매의 제주 방언이고 그 새매가 서식하던 곳이 사제비란 말에 더 실감이 난다. 그때 그 새매가 먹던 물인가. 사제비오름 기슭에 시원한 샘물이 있어 지치고 목마른 등산객들에게 목을 축이게 한다. 거기서 해발 970m인 어리목까지 2.4km를 죽을 힘을 다해 내려왔다. 가거도에서 70 총각 노인에게 술 사주고 얻은 3.5kg의 현무암 멧돌을 넣은 1.3kg의 가방을 지고 산을 넘어왔는데 어리목 매표소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는 10여분 더 걸어가야 한다는 말에 갑자기 맥이 폭 빠진다. 점심까지 굶고 달려온 것이 내 능력 밖이었구나. 한탄하고 있는데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1만원만 내고 가고 싶은 대로 나를 대려다 준다는 기사 아저씨가 있다. 제주 60바 3064를 운전하시는 강성호분이셨다. 너무 고마워서 쓰고 있던 돋보기 안경을 선물이라고 벗어 주려 하니 한사코 만류한다. 여행이 더 남으셨는데 이걸 받으면 실례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의 숙소는 용두암해수 찜질방이 되었다. *. 어승생악(御乘生岳) 등반 제주를 떠나 돌아오던 날은 '영실~어리목'에 이어 성판악~관음사를 끝낸 다음 날이었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 7시 20분이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는 곳이 있다. 어승생악 등반이면 한라산의 모든 코스를 마치는 것이 아닌가. 무거운 짐은 제주공항 수하물 취급소에 2,000원을 주고 맡기고 제주 버스터미널로 향하였다. 제주시에서 도내 모든 여행은 제주시 버스터미널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어제는 이리목서 시내까지 1만원 택시비에 그렇게 감격하였는데 터미널서 어리목까지 버스 요금은 1,500원이었다. 그런데 맡기고 온 휴대용 가방에 배터리를 놓고 왔으니 이를 어쩐다? 다행이 충전기는 가지고 왔다고 하니 어리목 매표소에서 한라산 탐방안내소에 가서 구경을 하며 충전을 하란다. 그러고 보니 어리목에는 국립공원한라산 관리소 본부가 어리목에 있고 바로 그 옆에 3층으로 한라산 전시실을 열고 있었다. 한라산 자료 찾아 거금을 투자하여 온 사람에게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게다가 어승생악은 등산이 버거운 사람들에게 알맞는 '1 .3km/ 30분'의 가벼운 등산코스다. 어승생 정상은 제주시 전체를 두루 굽어 볼 수 있는 전망의 명소의 오름인데다가 한라산 전경을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흥겨운 일인가. 한라산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 오름이란 기생화산(寄生火山)을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기생화산(寄生火山, Scoria cone)이란 한라산 중턱이나 기슭에 새로 분화(噴火)하여 생긴 작은 화산을 뜻하는 말이다. 오름마다 제각기 형태를 달리하는 분화구가 있는데, 한라산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오름 물결은 제주도 아니면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이다. 그 오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생화산이 바로 '어승생악 오름'이었다. 직경 1.968m, 둘레가 5.842m, 높이가 350m이며 정상부에는 산정화구(山頂火丘)가 있는데 예전과 달리 물이 고여 있지 않고 분화구 바닥이 늪지이다. 어승생악을 오르다 보면 2/3까지 화산회토(火山灰土)요, 그 위 1/3 구간은 붉은색이다. 그것은 이 어승생악이 2회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화산이어서이니 이를 유념하고 볼 일이다. 다음은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 1652)에 있는 어승생 소개다 -어승생오름은 제주 남쪽 25리의 거리에 있다. 그 산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100보나 된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났다.'고 하므로 그렇게 불린다(御乘生岳:在州男二十五里, 其有池周百步, 諺傳比岳之下出, 御乘馬故名)." 정조(正祖) 21년(1797) 산 밑에서 용마(龍馬)가 태어나 조정에 바치자 어승마(御乘馬)로서 노정(盧正)이라는 이름을 내려 품계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승생(御乘生)'이란 이름의 어원으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한자의 뜻대로 임금이 타실 말이 났다(御乘馬)라는 뜻으로 보통 말하고 있다. 어승생 정상에 오르니 한라산을 배경으로 '어승생악 정상 해발 1,169m'라는 정상석이 서 있고 , 그 밑으로 해방 직전인 1945년 4월 일본군이 해안선 방어를 위해 파 놓았다는 지하 요새인 토치카가 있다. 2개의 도치카가 30m 간격을 두고 서로 연결되어 지하의 요새와 통하게 되어 있었다. 이곳이 조천, 제주시, 애월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군사요충지였던 모양이다. 명산 한라산의 오름에 올라 일제의 침략의 흔적을 보니, 당시를 살았던 나그네의 마음을 갑자기 우울하게 하여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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