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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국립공원/ 가는 겨울 배웅하기

ilman 2013. 5. 8. 08:25

* 북한산 국립공원/ 가는 겨울 배웅하기

  서울에 사는 산꾼들은 행복하다. 한 시간 내외로 오를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북한산 때문이다.
서울의 산을 크게 나누어 보면, 안으로 네 개의 산(內四山)이 있다. 서울의 진산(鎭山)에 해당하는 산이다.
동 낙산(洛山), 서 인왕산(仁王山), 남 남산(南山), 북 북악산(北岳山)이 그것이다. 이들 산을 중심으로 하여 12.7km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이 수도 서울을 빙 둘러싸고 있다.
 성 밖으로도 산이 또 넷(外四山)이 있다.
동 용마산(龍馬山), 서 덕양산(德陽山), 남 관악산(冠岳山), 북 북한산(北漢山)이다.
산에 대하여 내노라고 말하며 다니는 사람들도 서울의 가장 서쪽 산 덕양산(德陽山)을 모르는 이가 대부분이다.

덕양산은 행주산성이 있는 산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高陽市(고양시)'란 어원은 일산에 있는 고봉산(高峰山)의 '高'(고)와, 덕양산(德陽山)의 '陽'(양)에서 따온 말이다.

  서울에 있는 이러한 명산 중에도, 그중의 명산이 북한산(北漢山)이다.
북한산(北漢山)은 산으로 보면 외로운 산이다. 뺑뺑 둘러 도시가 산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 시민으로 보면 엄청나게 고마운 산이다. 비정한 콘크리트 회색 도시에 '녹색의 허파'의 역할을 해주는 산이 북한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한산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1,000 만 인이 넘게 살고 있는 도심 속의 천혜의 자연공원이 되어 주고 있다.
버스는 물론 전철과도 연계되는 교통의 편리로 연평균 500만 명이 훨씬 넘는 탐방객으로 인하여 기네스북에까지 올라있다. 단위 면적당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찾는 국립공원이 북한산이기 때문이다.
그 면적만도 78.5㎢로 평수로 치면 2천4백만평이나 된다. 물론 도봉산을 포함한 것이다.
서울에는 산이 71개가 있다는데 그 총 넓이가 138.5㎢로 서울(6.724㎢)의 22%가 산인 셈이다. 그 산 중에서도 북한 산이 가장 크고 높은 산(83.65m)으로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이다.

*북한산 겨울을 배웅하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겨울을 배웅하러, 나는 우리 아내의 남편과 함께 북한산을 가고 있다.

 날씨는 나의 마음처럼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포근하다.
북한산 입구에 서면 산의 아름다움이 이보다 더 한 곳이 다시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명승지를 찾아 세계 5 대주를 두루 다녀본 나의 눈으로도 그렇다는 말이다.

북한산을 오르는 들머리가 83개나 된다는데 그 중 구파발 쪽 대서문(大西門)에서 보는 모습이 그렇다.
좌측으로 원효봉, 뒤로 염초봉, 백운대, 인수봉으로 첩첩이 위로 이어지는 산의 모습이 그렇고, 우측으로 시원하게 하늘로 뽑아 올린 급경사의 삼각형의 의상봉 뒤로 늘어선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을 보고 있노라면, 저곳을 어떻게 몇 번씩이나 내가 오르내렸지-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산성 매표소(山城賣票所)를 지나 멋없는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계곡 길로 접어 들었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작년 겨울이라 눈 녹아 흐르는 물은 유난히 맑고, 청아하고 우렁찬 소리가 귀를 행복하게 한다.
이 계곡 길로 가서 서운한 점이 있다면 그 멋진 대서문(大西門)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덕암사에서 스님이 차 한 잔 마시라는 것을 곱게 거절하였다. 차 한 잔 마시고 어떻게 창피하게 몇 천 원만 낼 수가 있겠는가 해서다. 거기서 조금 오른 곳에 원효봉과 백운대 갈림길이 있다.
집을 떠나올 때 온종일 산에서 살겠다고 다짐하고 떠나왔으니까 백운대 쪽으로 가다가 위문 못 미쳐서 대남문(大南門) 쪽으로 향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개연 폭포 조금 지나서니 겨울과 봄의 문턱에서 두텁게 입고 온 옷이 땀에 젖기 시작하는데 약수터가 있어 한 구기 마신 물이 정신까지 맑게 씻어낸다.
북한산에 있는 폭포에는 개연폭포 외에 동령 폭포, 구천폭포, 송추 폭포가 더 있다.

왼쪽으로 대동사(大東寺)가 보인다. 아까 원효봉 코스로 갔으면 원효봉 정상에서 성 따라 북문과 상운사(詳雲寺)를 지나 저 대동사로 내려왔을 것이다.
사방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흰 눈이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에 유채꽃이 만발하였다는 꽃소식이 예년보다 열흘이나 빨리 북상한다는 뉴스를 보면 봄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더니 약수암(藥水庵)을 지나자 음달에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움막 같은 곳에서 차를 팔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판잣집은 여전하지만 정식으로 약수암이라고 현판까지 걸어 놓았고 문 앞에 '약수암의 유래'를 써 붙이고 시주를 구하고 있다. 이곳은 노적봉으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노적봉(716m)은 산 모양이 마치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다 하여 생긴 말이다. 이제 백운대까지는 0.4km밖에 안 남았다.
  차츰 눈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위문 조금 못 미쳐 대동문을 향한 갈림길에 이르니 아이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눈길이요 빙판길이 시작된다.   뒤돌아 보는 백운대는 맑고 푸른 하늘에 우뚝 서 있는 것이 너무나 깨끗하게 잘도 생겼다.

정상을 향하여 울긋불긋한 등산객들이 줄을 이어 오르고 있는 모습이 선경을 보는 듯하다. 망원경을 가지고 올걸 그랬다.
지금부터는 오른쪽으로 북한산성 성을 끼고 눈길을 통해 대남문까지의 환상적인 길이 시작된다. 우수(雨水) 경칩(驚蟄)도 지나고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은 겨울이 아직 북한 산성길에는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곳의 높이가 해발 750m는 되는가 보다.


성(城) 따라 성문(城門) 길 따라
까마귀 울음 따라
북한산에
가는 겨울 배웅하러 왔지요,
하얗게
아름다웠던
구름의 아들 흰 눈 밟으며-.
                             -겨울 배웅

북한산장(北漢山莊)이다. 옛날에는 상점이 있던 곳이 무인 대피소로 바뀌었지만 널따란 광장 한편에 정겨운 샘은 옛 모습 그대로다. 그것이 좀 더 깔끔하게 다듬어졌을 뿐이다.
술꾼이 주막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산꾼이 어찌 샘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저렇게 붉고 푸른 구기가 꽃처럼 유혹하고 있는데-. 거기서 더 가니 이 깊은 산중에 우뚝 선 누각이 앞을 막는다. 1층은 돌기둥뿐인데 2층은 처마가 시원하게 하늘로 향하고 있다. 사방이 탁 튀어서 사방을 굽어 볼 수 있게 지은 누각이다.

시단봉(607m) 아래의 동장대(東將臺)였다. 옛날에 장수들이 여기서 왕이 계신 행궁을 비롯하여 성의 안팎의 안전 상황을 두루 살피던 곳이다.
장대(將臺)란 군대에서 지휘하던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하는 대(臺)라 생각하니, 갑옷 입고 투구 쓴 옛날의 장수들이 호령하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구나.
북한산성에는 동장대 이외에도 북장대, 남장대가 더 있지만 동장대가 제일 크다.
1915년 8월에 집중 호우가 내려서 무너져 뒹굴던 것을. 1995년부터 2년 동안 복원했다는 누각이다.
옛날 북한산성에는 성문 14개, 12개의 사찰, 99개의 우물과 유사시 임금이 묵던 별궁이라는 행궁(行宮)이 있었다.
성을 따라 성문 지나서 가다 보면, 오르고 내리고 하며 꾸불꾸불 계속되는 성이 중국 북경에서 보던 만리장성 같다.
  북한산성(北漢山城)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토성(土城)을 조선조 숙종 때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성으로 외침 시에 방어 역할을 하던 사적 제162호 산성이다.
이보다 먼저 인조 때 쌓은 남쪽에 남한산성(南漢山城)이 있어 이곳 이름을 북한산성(北漢山城)이라 하게 된 것이다. '漢'(한)은 한강(漢江)의 준 말이니 북한 산성은 한강 북쪽에 있는 산성이란 말이다.

 서울을 왜 한양(漢陽)이라 부르게 된 것일까?

한양이란 '한강 북쪽'이란 말이다. 한문에서 이르기를 물의 북쪽을 '水之北曰陽이라 하여 '陽'(양)이라 하는데서 유래된다.
 위문에서 구기동 매표소로 내려가는 대남문까지 성문을 세며 가고 있다.
새로 쌓은 산성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성문이 거의 옛날처럼 복원되어 있었다. 1990년부터 복원하였다니 그러니까 여기 북한산성을 걷던 것이 13년 전이었구나.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으로 성은 능선 따라 오르내리고 있다.
  대동문(大東門)을 지나 보국문 가는 길에 칼바위 능선이 있다. 화계사나 빨래골로 하산하는 길이다.
칼바위란 이름처럼 날카로운 능선 위로 울긋불긋한 등산객이 눈길을 오르고 있는 데, 앞서 올라간 사람 하나 의기양양하게 우리를 내려다 보고 서 있다.
저렇게 직접 오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성첩 사이로 멀리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멋이다. '아, 살아 있는 기쁨이여! 산행이여! 그 속에 나도 있음이여!'
  정신없이 가다 보니 지팡이를 놓고 왔다. 불이 낳게 달려갔더니 성첩 위에 고이 놓여 있지 않은가. 사진을 찍다가 무심 중 놓고 온 것이다.
몇십 년째 지니고 다니던 나와 함께 등산을 같이하며 낡아가는 지팡이였다.
가파른 경사길에서는 나의 의지가 되고, 오늘 같은 눈길이나 빙판길에서는 아이젠이다가, 뱀 같은 동물을 만나면 무기가 된다. 그뿐인가 오름길에서는 로프가 되다가, 잠깐 쉴 때에는 의자가 되어주는 다용도의 이 지팡이를 잃을 뻔 했구나. 
큰일 날 뻔하였다.
 드디어 성으로 연결된 앞뒤의 시작과 끝에 대성문(大成門) 문과 대남문(大南門)이 보인다.
형제봉(462m)이나 국민대학 쪽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대성문이고, 보현봉 가는 길과 구기동의 갈림길이 대남문이다.
  미끄러운 성 옆길을 피해 질러가는 대남문으로 향하는 눈길로 가다 보니 아주 큼직한 눈사람이 있다.

눈에는 낙엽 두 개를 푹- 박아 놓았고, 하체에는 정직하게도 야구 방망이 같은 고추와 공 둘을 매달고 있는 눈사람이 있어, 우스개 말로 '나로 하여금 안면(顔面)의 근육을 흔들게 한다.', '안면의 근육을 피곤케 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풍류를 좋아하는 멋있는 민족인 것이다.
 이제 저 대남문을 오르면 아이젠을 벗어야 한다. 이제부터 겨울을 완전히 벗고 봄을 향하여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나날이 짙어오는 봄길에서 가는 겨울이 아쉬워 배웅하러 온 것이다.
 더 욕심을 낸다면 대남문에서 10분만 올라가서 청수동 암문으로 빠져서 1시간 20분을 가면 승가봉을 갈 수가 있다. 거기서 50분 정도면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보고 진관사로 해서 구파발로 내려 가련만, 오늘은 여기까지만도 6시간의 산행이라서 그만 두기로 하고, 우로 문수봉과 좌로 보현봉을 카메라에 담으며 구기동 길로 하산한다.
  이 승가사 일대는 나와 같은 산꾼이고, 술꾼이신 우리 장인 어른(朴 在)의 활동 무대였다.
연세 들어할 일 없으면 산이 제일이라고, 북한 산록 구기동으로 이사오셔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오르내리시던 곳이다.
그러나 세월은 하나하나 이렇게 꼭 앗아가야만 하는지-. 그 좋아하시던 술과 담배를 끊게 하더니, 이제는 걷지도 못하는 85세의 말기 폐암 환자가 되신 것도 본인은 모르시고 하루하루 죽어가고 계시다. 그 좋아하던 산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신다. 

아침에 집을 나서 노인 우대권으로 전철을 타고 와서, 매표소도 그냥 통과하는 나이에 서고 보니, 대남문 층계 따라 한 칸 한 칸 내려가는 길이 우리 장인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내고 보면 이런 등산이, 이런 산행기가 멋있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나, 더 늙어 병들어 우리 장인처럼 눕게 되면, 내 글을 읽어 주겠다던 마음씨 고운 우리 문학 동인의 아름다운 얼굴들이 오늘 갑자기 그리워지는구나.
                                       

                                       -(85세를 한 달 앞둔 오늘 17년 전에 쓴 이 글을 ilman이 읽고 있구나! 2020년 12월 1일 )
                                                        2003년 3월 15일(토)

                                                           산성매표소-대서문 -위문-대남문-구파발 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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