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스크랩

ilman 2012. 12. 7. 10:28

나는 신문을 별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신문이 쌓여 버릴 만큼 될 즈음에는  면도칼을 들고 정독도 하고 스크랩 거리를 자르기도 하면서 서너 시간을 지낸다. 종량제 날 아침에는 늘 그렇게 보낸다.
간헐적이지만 이런 습관이 1960년 대부터였다.
'잘 읽지도 않으면서 무에 그리 열심이냐'고 잔소리 대학, 잔소리 학과를 수석 졸업한 아내의 걸러지지 않은 잔소리가 시작된다. 잔소리는 늙지도 않는가.
정치 기사를 별로 읽지 않지만 요즈음의 화두(話頭)인 노대통령에 대한 걱정 기사를 읽다보면 답답한 이 마음의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것 같아 시원하기까지 하다.
"죽은 박정희와의 싸움/ 박정희 리더십을 그리워하게 해놓고, 그 딸을 겨냥 공격하다니/ 박근혜에게 정권 초기에는 장관으로 영입하려 해 놓고/ 역사바로잡기 아닌 정략 냄새 등등"
정년의 애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직장에 가면 동료들이 오고 가면서 서로 나누는 이 얘기 저 얘기 속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다가 아내와 단 둘이고 보니 세상 소식이 캄캄이다. 아내의 외출에서 듣고 온 이야기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아, 오늘 축구 시합이 있구나. 이런 식이다.
이런 경우의 오늘 같은 스크랩은 나를 젊은 사람 이상의 정보통으로 만들어 주게 한다.



보통의 아침은 네 시 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거나,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일산 호수공원을 돌거나 아니면 일산 호를  반 바퀴쯤 돌아 정발산을 오른다.
갈 때 아내는 냉수를, 나는 작은 보온병에 봉지 커피 셋을 타 가지고 간다.
정상에는 고양시가 형성하여 주고 건우회(健友會)가 운영하는 헬스클럽이 있다. 그 시설이 30여 가지가 넘는다. 연회비가 남자는 2만원, 여자 1만원이다.
거기서는 남들이 열심히 하니까 나도 열심히 따라서 하게 되어 좋다. 공부하는 친구와 어울리면 공부하게 되는 이치다.
하산할 때는 정상이 59m밖에 안되는 산이라서 약수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정상에 올라서 다른 길로 내려가는 것으로 아침 산책을 대신하곤 한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다가 손(孫)군과 함께 생맥주로 때우기로 하였다.  손 군은 이웃 아파트에서 정육 간을 하고 있는, 나보다 30년이나 아래인 고등학교 후배다. 명절 전후해서 고기를 사러 가면 선배라고 고기의 좋은 부분으로 후하게 썰어주는 그의 마음을 늘 고마워 해왔기 때문이다. 그도 생맥주 주인도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내일 등산갈 옷을 챙기다가 보니 1,000원 짜리 맞은 주택복권이 5장이나 있는데 날짜가 지난 것도 있고 오늘이 마감인 것도 보인다. 혹시나 해서 갔다가 허탕치고 대신 로토복권 2장을 사왔다. 당첨될 확률은 3대가 벼락을 계속 맞아죽을 확률이라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확률이 있지 않은가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파트 앞에 참치 회집의 간판을 세우고 있기에 기웃거려 보았더니, 사장이 나와 반색을 하면서 한 잔 그냥 마시고 가란다. 가끔 다니던 참치회집 주방장이 이곳에 개업을 한 것이다.
주머니에 있는 돈 5,000원을 주고 1만원어치는 외상이요- 하고 왔다. 이 집 때문에 내 호주머니가 몇 번은 동이 날 것 같다.
원래 오늘 아침에는 덕유산 종주 길을 떠나려 하였으나 또 다른 태풍 소식에 내일은 일산의 한뫼 등산회 따라 주금산(鑄錦山)이나 다녀올까 한다.
주금산(鑄錦山)이란 운악산과 천마산의 중간 지점인 포천군과 가평군 경계에 있는 제일 높다는 813.6m의 산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꼭두새벽은 태풍의 영향인지  비가 오고 있다.
아들이 등산하는 애비에게 고가를 주고 사온 고어택스를 그냥 걸어두고 있었더니 오늘 비로소 자랑할 수 있게 해주는 비였다. 창밖에서는 아들 자랑하는 병신이란 소리를 한번만이라도 듣고 싶은 날이 밝아오고 있다.

**주금산에 갔더니
태풍이 지나가는 날 비를 맞으며 일명 비단산이라는 주금산(鑄錦山)에 갔더니
태풍은 너무나 시원하게도 등산 내내 땀을 거두어 갔지만
구름 속을 뚫고 애써 정상이라고 찾아 올라 환호작약하고 온 곳은 표지석도 국기봉도 없는 것이 정상이 아닌 것 같고
그 좋다는 전망은 운무 속에 잠기어 있었고,
그렇게 아름답다는 비금계곡은 코빼기도 못보고, 바가지 상술에 술만 퍼막다가 왔구나.
다시 또 갈 수 없는 주금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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