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선녀탕 산행기/ 내설악 (2005. 6.7 남교리-응봉폭포-12선녀탕-두문폭포-남교리/ 일산 한뫼산악회 따라)
*. 신이 빚은 역작 십이선녀탕(十二仙女蕩) 남한의 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은 어느 산인가. 한국의 등뼈(中樞)라는 백두대간에서 제일 높은 산은 어디인가. 설악산이다. 설악산 중에서 으뜸이 되는 계곡은 어디인가. 12선녀탕이다. 12선녀탕은 대청봉, 대승폭포, 내림천, 백담사 등과 함께 '인제8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25년 전 겨울이던가. 12선녀탕이 보고 싶어 친구와 함께 원통, 인제로 해서 한계령을 넘어서 하늘벽을 지나 장수대에서 하룻밤을 잤다. 순한 장순이란 암캐가 사는 여관이었다. 다음날 아침 개성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금강산의 '구룡폭포(九龍瀑布)'와 더불어 한국의 3대폭포의 하나라는, 옛날 신라 경순왕의 피서지였다는 높이 88m '대승폭포(大勝瀑布)'를 지나 1,210.2m 대승령(大勝嶺)을 넘어 남교리까지 장장 11.7km나 되는 12선녀탕으로 하산하면서 보는 8시간 코스였다. 오늘 우리 신도시 일산한뫼산악회 관광버스는 백담사(百潭寺) 입구 좀 못 미쳐 북천(北川)의 선녀교(仙女橋)를 건너 12선녀탕휴게소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역코스로 남교리를 들머리로 해서 12선녀탕을 올라가면서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 산악회는 산꾼들만의 모임이 아니어서 일부는 계곡에서 탁족(濯足)하며 노닐고, 그동안 그 일부만 두문폭포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 12선녀탕의 유래 이 계곡물은 1,430m의 안산과 1,260m의 대승령 (大勝嶺)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인 인제군 북면 남교리로 8km를 흐르는 깊은 계곡을 이루어 흐른다. 옛날에는 '지리곡(支離谷)', '탕수골', '탕수동계곡'이라고 하다가 1950년대 들어와서 '12선녀탕'이란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옛부터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곳에 있는 12탕(蕩) 12폭(瀑)의 경치가 하도 좋아서 달 밝은 밤이면 하늘에서 12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던 곳이라 하여 12선녀탕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경치 좋은 곳에 가면 나뭇꾼과 선녀의 로맨스를 아무 여과 없이 생각하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장가를 들기 위해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감추는 일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범법 행위다. 절도죄요 성폭행 죄로 중죄(重罪)에 해당되는 비겁한 행위다. 그 옷을 선녀가 시집와서 아이 셋을 둘 때까지 감추어 두었다는 것은 더욱 잔인한 일이다. 사슴이 가르쳐 준대로 했다면 사슴은 교사범(敎唆犯)에 해당된다. 그래서 옷을 찾은 선녀는 이 무뢰한을 떠나 하늘나라로 돌아간 것이고, 나무꾼의 비극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삽상한 계류 소리를 들으며 우리 일행은 매표소를 지나 좁은 산길을 따라 한 줄로 가다 보니 길이 넓어지는데 바로 아래 계곡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초록색이 감도는 맑고 투명한 소(沼)가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하더니 옛날에 없던 튼튼한 첫 번째 철제다리가 놓여 있다. 그런 다리는 두문폭포까지 7개가 놓여있었다. 그 첫 번째 다리를 건너 5분쯤 되는 지점에 이런 다리가 놓이게 된 슬픈 이야기가 카도릭의대 산악회 이름으로 검은 오석 유령비(慰靈碑)에 이렇게 적혀있다.
“고이 잠드시라! 젊은 산악의 용사들이여! 1968연 10월 25일 일곱 산우들의 영혼이 이곳에 잠들다. 지나는 산우들이여! 그들을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명복을 빌자.”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여대생 2명을 포함한 의대생 7명이 갑자기 내린 비에 불어난 사나운 계류를 무리하게 건너다가 이곳에서 물에 휩쓸려 죽거나, 저 체온에 탈진되어 죽은 것이다. 살아있으면 지금은 60세 전후의 의사였을 아까운 인재들이었다.
저체온증(低體溫症, Hypothermia)이란 열의 손실로 체온이 저하되는 현상으로 등산에서는 죽음의 복병처럼 무서운 것이다. 불충분한 복장에 비나 녹고 있는 눈을 맞았거나, 힘든 등반으로 너무 많이 흘린 땀 등에 흠뻑 젖은 옷은 지친 탈진 상태의 몸으로는 스스로 조절의 기능을 잃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느긋하게 기다려 주기만 한다면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이라도 생각보다는 빨리 줄어든다는 사실을 그때 젊은이들은 왜 몰랐을까? 상류 쪽은 계곡이 가팔라서 급류에 위험하고, 하류 쪽은 물이 모이는 곳이라 강폭이 넓어서 역시 위험하다는 것을 그분들은 몰랐던 것이다. 위령비가 서 있는 곳이 사망지점으로 등산입구 근처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 대학생들이 무모하게 물을 건너려 했던 것은 비를 흠뻑 맞은 친구들이 저체온으로 위험하여 무리수를 둔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만약에 가방 한 구석에 비옷만 준비되어 있었더라면, 그리고 무리하지 않고 기다렸다면 죽음에까지 이르렀겠는가. 유비(有備)면 무환(無患)이라서, 나는 단독 등산을 떠날 때 배낭에 반드시 챙겨 가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것들에 중요한 순서는 없다. 조난 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생명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물건 하나하나이니까. -판초, 내의, 비상식(검은콩가루), 해드 랜턴, 나침반, 지도, 호루라기 등등-.
*. 응봉폭포 가는 길 12선녀탕 가는 길은 계곡을 끼고 완만히 오르는 길이다. 이 계곡은 백담사 가는 길 같이 길과 계곡이 떨어져 있는 길이 아니고 남교리 매표소에서 12선녀탕이 끝나는 두문폭포까지 계곡소리를 들으면서 가는 길이다. 계곡 따라 가다가 다리를 만나면 다리 한가운데에서 수정 같이 맑은 물의 흐름을 한참이나 보다가 간다. 이 계류는 바위를 파고 흐르다가 경사를 만나면 자그마한 폭포를 이루고, 그 폭포 아래에 맑은 물을 가득담은 녹색의 담(潭)을 이루고, 그 소(沼)가 넘쳐서 다시 또 소리 내며 흘러가는 계류가 된다. 그런데 지금 오르는 길은 옛날에 오르던 길이 아니다. 의대생 사건 후 옛날에 없던 쇠다리나 층계를 만들 때에 자연 보호 차원에서 가급적 계곡을 피해서 가도록 길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산길이 깊어지자 곳곳에 길을 막고 있는 쓰러져 누워 있는 고목(古木)들이 길을 막는다. 낙뢰와 홍수에 천명을 다하지 못한 나무들이었다. 무서운 시간 속에 이 조용하기만 한 아름다움이 창조되었나 보다. 앞서 간 일행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계곡에 있다. 1,208m의 응봉산 아래의 응봉폭포였다. 해발 580m로 남교리 매표소에서 2.2km 지점이다. 15m의 하얀 물줄기가 바위를 미끄름 타고 그 아래 소(沼)로 떨어지고 있다. 여름 가뭄으로 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폭포의 모습은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오른쪽으로 오르는 쇠층계를 따라 옆으로 보는 것이 더 멋있다. 우리나라는 높은 산이 적고 계곡이 깊지 않아 폭포가 발달하지 못한 지형이라서 외국에서 보던 폭포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그 아기자기한 모습만은 일품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폭포는 베네수엘라의 970m라는데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높은 폭포는 790m의 미국의 '요세미티폭포'였다. 5번째 쇠다리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너럭바위의 웅덩이에는 수백 마리의 올챙이가 인적 소리에 놀라 숨는다. 큼직한 머리에 가는 꼬리를 가진 검은 몸빛이었다. 거기 앉아 준비해 간 오이를 먹고 있는데 다람쥐가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이 먹을 것을 좀 달라는 표정이다. 두 입을 떼어 주니 양쪽 볼 주머니 가득하게 물고 줄행랑을 친다. 오이맛이 생각보다 없어서 참외를 꺼내 먹었더니 그 맛이 일품이다. 그렇구나, '참 아름답다' 에서처럼 '참 맛있는 외'가 참외로구나.
*. 신의 역작(力作) 복숭아 탕(湯) 남교리에서 7번째 다리가 있는 4.1km 지점에 '12선녀탕 입구'란 이정표가 있다. 여기가 해발 800m로 12선녀탕의 비경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곳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오르다가 보니 '복숭아탕'이란 이정표가 있어서 오른쪽에 가로막은 울타리를 넘어서 조심조심 그 아래 계곡 바위를 내려다 보니 바위가 타원형으로 푹 팬 곳에 짙푸른 물이 담긴 소(沼)가 있다. 그런 소(沼) 중에 둥근 것을 탕(湯)이라 하는 것 같다.열심히 사진을 찍다보니 그 위에 더 멋진 탕이 있다.폭포와 탕이 어울렸는데 바위 속 벽에 또 다른 굴이 있는 '복숭아탕'이었다.길 건너편에 있던 옛길에서 보면 복숭아 모양이던데 여기서는 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대야산에서 보던 하트모양의 '용추폭포'와 유사한데 그것이 여기엔 8개나 있다 한다. 이 탕(湯)들은 폭포의 낙하점에 흐르는 물과,그 물의 소용돌이와 함께 떠돌던 모래나 돌이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 놓은 용소(龍沼)였다. 노산 이은상 시인도 '노산산행기'에서 말했다. “12선녀탕은 신이 고심해서 빚어놓은 역작(力作)이다” 이 말은 12선녀탕 중에 복숭아탕을 두고 말한 것 같다. 이러한 탕(湯)들을 향하여 떨어져 내리는 폭포 물에 햇살이 비치면 일곱 가지 색깔의 무지개가 생기고 '그러면 선녀들이 영롱한 무지개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설악8경'의 하나 '칠색유홍(七色有虹)'이 여기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젊어서는 그냥 지나치던 곳을 기록하고 해석하려는 시인(詩人)의 눈으로 보니 너무 황홀해서 각도를 달리해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더니 탕이 몇 개가 있는지 오히려 헷갈린다. 첫 번째 만나는 탕이 독같이 생겼다 해서 '독탕[甕湯:옹탕]', 두 번째가 '북탕', 세 번째가 '무지개탕(虹湯: 홍탕)'이고' 복숭아탕'이 7번째 '12선녀탕'이라는데 어느 것이 무엇인지 순서를 모르겠다. 게다가 이정표는 원래부터 없던 것인가. 아니면, 루사와 같은 태풍을 만나 만나 떠내려 보냈는지 이정표는 ‘12선녀탕 입구’와 ‘마지막탕, 해발 920m의’ 둘밖에 없다. 입구니 마지막탕이라고 쓴 것이 대승령쪽에서부터인지, 남교리쪽에서인지 그것도 불분명하였다.
*. 12선녀탕에 왜 8탕(湯)만 있는 것일까 설악 8기(八奇) 중에 '유다탕폭(有多湯瀑)'이라는 말이 있다. 설악산에는 바위가 많아서 탕(湯)과 폭포(瀑布)가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 12탕(蕩) 12폭(瀑)이어서 12선녀탕이라 하였을 터인데 현지에서도 소개 글에서도 그랬지만 가 가본 탕(湯)들은 8탕(湯) 8폭(瀑)뿐이었다. 왜 그럴까. 고심하여 인터넷과 서점을 오가다가 다음과 같은 전설을 찾고는 무릎을 쳤다. '내가 월척(越尺)을 했구나' 하고-. '태초에 옥황상제가 인간을 내려다보니 설악산이 그중 아름다워서 선녀들에게 명령을 하였다.
하늘같이 깨끗한 물 담아놓을 탕(湯)을 만들라 옥황상제 명을 받은 12선녀(仙女)가 12년만에 열두 탕(湯) 만들다 죽은 네 선녀 4탕에 묻어 '8탕(湯) 8폭(瀑)'이라네.'
*. 두문폭포(杜門瀑布)에서 설악산 12선녀탕에서 이름 있는 것은 '응봉폭포'와 '복숭아탕'을 중심으로 한 8탕(湯)과 '두문폭포(杜門瀑布)' 3뿐인데 그 이정표도 없어서, 남교리로 되돌아가야 할 사람들이 나머지 4탕을 찾아 혹시나 해서 대승령까지 갔다 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두문폭포'에서 발길을 돌려 하산길인데, 일행들이 그림 같이 모여 한편의 탁족도(濯足圖)를 연출하고 있다. 갑자기 옛날에 읊던 중국 초(楚) 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의 일절이 입 가에 맴돈다. 탁족(濯足)이란 이 글에서 시작한 말이다.
滄浪之水淸兮 (창랑지수청혜) 창랑 물이 맑거든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창랑지수탁혜) 창랑물이 흐리거든 可以濯吾足 (가이탁오족) 내 발을 씻네
여기 설악선녀탕 물은 맑지만 지금은 있어야 할 갓(笠)이 없으니 나도 마음과 발이나 씻고 갈까 보다.
![](http://www.donginji.or.kr/Users/S/I/J/SIJIN/upload/DSCN0120선녀탕1.JPG) ![](http://www.donginji.or.kr/Users/S/I/J/SIJIN/upload/DSCN0123선녀탕2.JPG) ![](http://www.donginji.or.kr/Users/S/I/J/SIJIN/upload/DSCN0134선녀탕4.JPG) ![](http://www.donginji.or.kr/Users/S/I/J/SIJIN/upload/DSCN0136선녀탕5.JPG) ![](http://www.donginji.or.kr/Users/S/I/J/SIJIN/upload/DSCN0142선녀탕6.JPG) 탕중에 백미 복숭아탕 ![](http://www.donginji.or.kr/Users/S/I/J/SIJIN/upload/DSCN0175석양.JPG)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으니 보시라. 기록하면서 사는 것이 짧은 인생을 여러 번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니, 아름다운 설악에서 오늘 하루를 살면서 가져온 우리 한국산하의 12선녀탕의 모습 이모저모를-. 그런데 어쩌나! 세월이 시기하여 그 이미지를 앗아갔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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