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낚시를 가는 거지
왜 우리 낚시꾼들은 밥도 못 얻어먹고 아내의 도끼눈을 뒤통수에 맞으면서, 동이 트기도 아주 먼 이른 꼭두새벽부터 어둠을 밟으며 집을 나서는 걸까?
낚시 갈 그 돈이면,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새끼들과 외식도 할 수 있고, 원하는 곳을 향한 드라이브의 즐거움이 되어줄 수도 있는데, 왜 이것저것 다 버리고 왜 낚시를 가는 거지?
잡히지도 않는 고기를 뭐하러 잡으러 가느냐고 짜증 내는 아내에게, 어느 날 모처럼 개선장군처럼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와도 시큰둥한 표정을 보게 되거나, 아니면 몸소 비늘을 긁고 잡아 끓여 논 매운탕에 섭섭하게도 숟가락 한 번 넣어주지도 않던데, 왜 모든 것 뿌리치고 낚시를 가는 거지?
미늘 없는 곧은 낚시 드리우고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며, 강태공(姜太公)처럼 천하를 낚겠다는 것도 아니면서….
*. 낚시는 재미로 하는 것이다.
낚는 재미는 물론 먹는 재미로 하는 것이다.
중종 때 농암 이현보(李賢輔)는 고기 잡아먹는 재미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올벼 고개 숙이고 열무우 살졌는데
낚시 고기 물고 게는 어이 내리는고
아마도 농가(農家)에 맑은 맛이 이 좋은가 하노라.
-이현보
낚시같이 재미있는 것이 다시 또 있을까.
떠나기 전 즐거운 마음으로 채비를 점검한다, 미끼를 사러 간다 서두르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낚시터에 이르러 부지런히 떡밥을 개고, 뽀얀 물안개를 향해 힘껏 낚시를 던진다.
한 10여분 정도 기다리면 답장이라도 하듯 그림 같은 찌가 하늘 향해 쑤욱- 솟아오르는 것을 보게 될 때, 비로소 빠지게 되는 무아지경(無我之境). 커피 한 잔 마음 놓고 마실 시간이 있었던가.
준비해 간 신문도 그냥 들고 오기 일수였다.
손맛 또한 낚시의 재미를 극치에 이르게 한다.
붕어라는 놈은 덩치에 비해 힘이 억세어서 일단 낚시에 걸렸다 하면 죽을힘을 다해 좌우로 용트림 치며 도망가려고 당긴다. 이런 스릴 때문에 낚시는 붕어로 시작해서 붕어낚시로 끝난다는 말이 생긴 것 같다.
끌려 나온 놈의 우아한 모습이란, 매끈하고 잘생기고 순하게 보이고….
요즈음은 부럽게도 고기를 놓아주는 경지에 이른 꾼들이 많아졌다. 바둑에서 말하는 입신(立身)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분들이다.
"어디서 잡았습니까. 먹어도 됩니까. 석유 냄새는 안나요?"
이런 공없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동안 구걸하듯 부탁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왜 나는 공들여 애써 잡은 고기를 주려고 하였던가. 붕어보다 사람 편이어서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나는 잡은 고기를 자랑하고 다닌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놓아주는 편에 나도 서게 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재미와 맛을 구하러 꾼들은 계절과 주말과 황금 같은 여가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낚시가 잡아먹는 재미에서 낚는 재미로 바뀌어지면서부터 낚시는 건전한 취미의 세계로 그 세계를 넓혀 간 것 같다.
*. 낚시는 떠나는 멋으로 하는 것이다.
집을 떠나 향하는 곳이 산이면 등산이 되고, 낯선 나라가 되면 해외여행이 되고, 물이면 낚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떠남은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쩔 수 없이 만나서 운명처럼 함께 하였던 일상의 모든 것들로 하여 있었던 스트레스를 훨훨 떠나서, 나를 재충전하여 다시 돌아오기 위하여 우리는 낚시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 낚시에는 자연을 낚는 멋이 있다.
취적비취어(取適非取魚)란 말이 있다. 유유자적(悠悠自適)을 취하되 고기를 취하지 말라는 뜻이다.
공자도 조이불망(釣而不網)이라 하여 낚시를 하되 그물질을 하지 말 것을 권하였다.
먹을 정도로만 잡되 그 이상을 취하지 말고 즐거움을 취하라는 뜻이리라.
어부란 말도 두 가지로 쓰여왔다. 생업으로 고기를 잡는 어부(漁夫,fisher)와 취미로 낚시하는 어부(漁父,angler)이다. 그래서 '어부사시사'에서의 어부는 고산 윤선도 자신이어서 한자로 漁父四時詞(어부사시사)로 쓰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 떴는 밖에 못 보던 뫼 뵈난고
낚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것이 이 흥이라
석양이 눈부시니 천산이 금수(錦繡)로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우리가 바삐 살던 젊은 시절의 어느 여름 한 때, 우연히 강이나 호수 가에 앉아 파라솔 밑에서 낚시하는 어옹(漁翁)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멋진 모습을 보게 될 때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실례가 안 된다면 물속에 드리운 그 어망을 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 멋에 취해 그들도 언젠가는 꾼들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 낚시란 기다림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지아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 같은 것이다.
제 시간이면 틀림없이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있겠는가.
기다림이 있어 어느 날 남편의 이른 귀가가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것처럼, 낚시도 기다림의 값을 치르고야 다가오는 어신(魚信)이기에 그렇게 우리가 낚시의 세계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디에나 낚시를 드리우기만 하면 즉시 고기가 나온다면 지금 같은 400만이나 되는 꾼들이 과연 있을까.
어부(漁夫)들만이 있을 것이다.
낚시의 기다림은 수초 거에 거미 줄을 쳐놓은 거미의 기다림이요, 물가의 해오라기, 왜가리의 기다림과 같은 것이다.
*. 낚시는 만남이다
낚시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 같은 꿈을 지닌 꾼들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서 물과 새들과 그리고 찾아간 고기를 만나 그 풍경 속의 하나가 된다.
이른 새벽 수초 가에 앉아있으면, 여태껏 잊고 살던 자연의 모습과 소리가 비로소 가슴을 열고 다가온다.
이런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저절로 시흥에 겨워 나도 옛 시인묵객을 흉내 내곤 했다.
아카시아꽃 피었다고 뻐꾸기 우는 아침
허기진 물새가 밤새 간 부리로
모처럼
잡은 월척을
토해내고 있네.
-이산포에서
*. 낚시는 명상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찌를 바라보면서 생각은 아내에게, 자식에게, 부모에게 향하다가 나를 맴돈다.
그러기에 낚시를 '명상의 예술'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영국 윌튼이 지은 그 유명한 수필집 '조어대전(釣魚大典)'의 부제(副題)가 '명상하는 사람의 리크레이션'이라 한 것이나, 옛 선인들이 조선일여(釣禪一如)라 하여 낚시는 참선하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맥락을 같이 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먹지도 않는 고기를 왜 잡으러 가는냐 하는 것.
어느 호랑이가 있어 배고플 때 사람을 잡아먹고, 심심할 때는 재미로도 사람을 잡는다면 얼마나 두렵고 잔인한 세상이 될까.
고기가 잡혀 나올 때의 아픔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만큼이나 아프다고 하던데-.
놓아주면 되지 하지만, 요즈음 잡히는 것은 대개 잔챙이다.
낚시바늘의 미늘에 걸려 빼내는 과정에서 주둥이가 심하게 망가지거나, 어떤 때는 낚싯바늘이 눈가를 꿰고 나와 애꾸를 만들어 놓아 주는 것은 아무리 방생(放生)해준다 해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로 고기 잡아 돌아갈 땐 방생(放生)해도
낚시로 눈 찌르고 입언저리 망갰으니
용궁이
정작 있다면
나는 가기 틀렸구나.
그러면서 낚시는 왜 하는 거지? 내가 물었으니 대답도 내가 하자.
어린이가 잠자리나 매미를 먹으려고 잡는가.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에 사냥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사냥은 잡는 것이다.
그 잡는 것 중에 하나가 낚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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