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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심곡 바다 부채길 트레킹

ilman 2017. 7. 8. 09:33


정동 심곡 바다 부채길 트레킹



멋진 유람선이 산과 바닷가 해안에서 동해일출을 바라보고 있는 곳을 탐하다가 우리 모임의 회원들과의 만남 장소인 정동진역 광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보니 낮으막한 산 위에 8각정자가 서 있다.

 이 고장의 이름을 정동진이라고 하기 이전까지 고성읍(高城邑)이라고 했다는 바로 그 고성산(高城山 52.7m)이었다.  
일출의 명소인 8각정이겠거니 하며
층계를 올라가 보고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 고성산 영인정(迎仁亭) 정자는 전망을 위해 세웠을 것일 터인데 동쪽 일부를 제하고는 소나무가 전망을 꽉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르다 본 이곳은 지진과 해일 발생에 대비하여 지정된 임시대피소입니다.”란 입간판이 그래서 서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팔각정을 지은 것이 동해 해돋이의 전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소나무를 옮기던지 아니면  과감히 베어 버려야 할 것 아닌가.


*.바다열차 이야기 

 해마다 바캉스철이 되면 피서객 대부분을 동해로 향하게 하는 것은 검푸른 동해에 넘실거리며 부서지는 새하얀 파도와 일출의 풍광 등과  바닷바람을 쐬며  수영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와 같이  동해안의 아름다운 정동진삼척(56km) 의 동해 해안선 그 경치를 바라보며 달리는 6양의 바다열차가 있다. 전 좌석이 2열로 일제히 바다를 향한 조망(眺望)을 자랑하는 바다열차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선 인터넷을 통하여 예약(www.korailtravel.com )을 해야만 한다.

예약을 하지 않고 매표 시간까지 기다린  우리들이라서  할 수 없이 열차와 택시를 타고  촬영을 위해 추암(錐岩) 촛대바위향하고, 나는 홀로 작년에 66년만에 처음으로 군부대가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다는 부채길 트레킹을 떠난다.


*.
써크선루즈 호텔(Sun Cruise Resort)
 

바다 부채길 트래킹에는 2 가지 코스가 있다. ‘정동진심곡항으로, 정동진이나 삼척 방향으로 갈 여행객은 삼곡항(深谷)에서, 강릉방향으로 여행객은 정동진(正東津)에서 출발할 일이다.

택시를 탔더니 5분도 안 되어 내려 주면서 4,800원을 내란다. 내리고 보니 몇 시간 전인 새벽에 와서 올려다보던 바로 썬 쿠르즈 호텔 주차장이 아닌가. 평생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비싼 택시비를 낸 것 같다. 택시비는 삼곡까지 6~7천원, 산 크루즈 호텔까지는 4천원이라니 욕이 절로 난다. “나쁜 놈!” 나자기뿐인 놈이란 말이다. 나는 정동진에서 서울 가기로 기차표를 예약한 사람이니 심곡항에 내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동안 마음 속에 불친절한 기사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크루즈(Sun Cruise)정동진 천혜의 해안 가 40m 산의 절경에 위치하고 있는 배 모양의 호텔을 말한다.
CNN이 "일생에 꼭 한 번은 가보아야 할 호텔"이라고 하는 썬 크루즈란 어떤 호텔인가.

정동진 천혜의 해안절경에 위치하고 있는 썬 크루즈(Sun Cruise)는 호화 유람선을 테마로 한 휴양지로서, 조선소(造船所)에다 높이 165m, 높이 45m3만톤급 배 모양으로 특별 주문하여 건조한  배로, 2002년에 오픈한 세계 최초 육상 크루즈 리조트다.

이 배에는 전망을 자랑하는 211 개의 호탤형, 콘돔형 객실과 다양한 부대 시설을 갖춘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설을 갖추었다. 가장 저렴한 곳이 8만원 내외인 것 같다. 썬 크루즈 리조트에는 앞으로 세계적인 골프장을 지어 푸룬 바다 푸른 바람 속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란 

 9층 전망대 올라 굽어보니 매표소 현관 넘어 호텔 입구 양쪽으로 6개씩 주욱 서 있는 희랍의 여신 조각상과' 해돋이 광장 관람료(일반 5000, 노소 2000원)를 받던 정문과, 달맞이 광장의 '축복의 손' 넘어에 에메랄드 같은 빛깔의 동해가 활짝 열려 있다.  


거기서 시선을 약간 좌측으로 돌리니 해안에 범선(帆船)과 요트가 보인다. 범선은 썬 푸르즈가 운영하는 횟집인데 2인분에 8만원~13만원 정도 요금을 받는 모양이다. 

 내 한 편생 술을 좋아하여 회를 안주하여 술 마실 때가 그중 행복하였으나 시간도 시간이지만 혼자이니 어쩌랴. 


바다보다
 큰 것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푸른 것이 있다.

바다다.

하를과 바다가 어울린 '범선 횟집'에서

우리야, 함께 축배를 들자.

이 나라

이 겨레

우리들을 위하여.

하늘에선 그리움을

바다에선 우정을

자상에선 천국을 낚아

바다를 회하며

하늘을 회하며

우리 다 함께 거북이 시켜

간(肝)을 회(膾)하는 용왕이 되자.

               -횟집에서

 

맞이 광장에는 해안가로 향하는 나무층가 길게 길게 바다로 내려 가고 있다.

그 층계의 끝은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 별천지로 경치에 취하여 바다 바람을 시원하게 쐬며 카메라로 여행을 기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 바다 부채길천연기념물제437호 이야기



'정동 심곡 바다 부체길'은 2,300먼년 전의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海岸段丘, 천연기념물 제437호)지역으로, 그 명칭을 공모한 결과 강릉 출신 소설가 이순남 소설가가 뽑혀 말한 '정동진과 심곡항까지 위치한 지형의 모양이(위 그림 참조) 바다를 향하여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정동 심곡바다부체길' "로 정하였고, 그 동안 해안경비를 위하여 군 경계근무 정찰로로만 이용되어 오던 것을 2017년 10월 17일 일반에게 개방한 청정지역입니다. 

정동진에서 시작되는 이 바다부체길 들머리는 썬쿠르즈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그 해안 길은 2 ~300m까지만 목제데크로 경사길이 시작 되다가 어린이나 노인그리고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게 심곡항까지는 목제데크와
철제 대크가 계속 이어지는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다음은 심곡항까지 계속되는 아름다운 이미지 들이다.

  투구바위와 육발 호랑이 전설
옛날 고구려 시대 이야기다. 이 고장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이 밤재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밤재 고개에 식인(食人) 육발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밤재를 넘어가는 사람들을 기다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는 스님으로 변하여  바위에 열십자 바둑판을 그려 놓고 행인에게 바둑을 주자고 하였다. 
호랑이는 바둑을 아주 잘 두어 항상 이기어 행인을 잡아 먹으며 살고 있었다. 그무렵 강릉 태수로 감감찬 장군이 부임해 왔다. 장군은 주민들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관리를 불러 일렀다. "밤재에 가면 스님이 있을 것이니 그 스님에게 이걸 갖다 주거라." 하며 편지를 써 주었다. 
"이 편지를 받는 즉시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너의 일족을 멸하리라."  감강찬 장군의 편지를 본 육발 호랑이는 기겁을 하여 오금아 날 살려라 하며 백두산으로 도망 가고 말아 그 이후에는 이 고장에 호환(虎患)이 없어졌다.  그후 사람들은 이 해변가에 있는 용맹스런 바위 모습을 강감찬 장군이라 하며 모시게 되었다.
       
                                                                              -출처: 강원어포지역 전설 민속지 1995년  


부채바위 전설:

지금부터 200여 전, 이 고장에 살던 이씨(李氏) 노인이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 함경도 길주에서 왔다는 어여쁜 여인이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제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채바위 근방에 떠내려 가고 있으니 할아버지 저 좀 구해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날새기를 기다려 새벽일찍 배를 타고 부채바위에 가보니 바위 끝에 나무 궤짝이 떠내려 와 있어서 열어 보니 여자의 화상이 그려져 있었다. 노인은 이를 부채바위에 고이 안치해 두었다. 그 뒤 이 노인은 만사가 형통했다고 한다. 얼마 후 노인의 꿈에 그 여인이 "외롭다. 하는 말을 듣고 그 고장에 성낭당을 짓고 화상을 모셔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출처: 강원 어촌지역 전설 민속지,1955년 발행

정동진역 근처에 잘 지은 성황당이 있으니 이 전설과 유관한 것 같다. 


드디어 '동진 심곡바다부채길'의 종점이자 들머리인 심공항(深谷港)이다. "심곡은 원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심일', '지필' 또는 '심곡'이라 하다가 1916년부터 심골리라 썼다.

'심곡(深谷)'이란 이름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마을 이름은 심곡 외에도 '짚일', '길잎'이라고도 하였는데 '짚일'은 연음(連音)하여 연철(連綴)로 쓰면 '지필'이 되고 이를 한자로 음차(音借)하여 '紙筆'(지필)로 쓰게 되었다. 그러면 그 뜻이 종이(紙)와 붓(筆)이란 뜻이어서 이고장 사람들은 이곳에 묘를 쓰면 글잘 쓰는 선비가 난다고 생각하여 여러 문중에서 이 심곡 고장에 묘를 많이 썼다고 한다.

다음 글은 심곡 마을의 소개 간판에  왼쪽 이미지의 상단 에 검게 나온 부분이니 참고로 쓴다.


 심곡은 깊은 골자기 안에 있는 마을이
라 하여 짚일 길잎이라 하는데 ~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