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조* (時調)☎

부랑자(浮浪者)

ilman 2017. 6. 17. 16:55


부랑자(浮浪者)


20대 후반 홈리스를 만난 것은 몇 전 옛날 내가 살던 서울 성북동 장위동 어느 여름 밤 거리에서였다.
한 손에 찌개거리를 들고, 또 한손에 딱지가 붙은 새 냄비를 든 건장한 청년이 반바지로 서성대는 품이 어디에선가 무얼 끓여먹고 싶어하는 눈치인지라 말을 건네다 보니 우린 이네 한 마음이 되었다.
번개탄과 술과 담배는 내 부담으로 하기로 하고. 우린 어느 주택가 골목의 전보선대 전등 밑에 자리잡고 벽돌과 돌을 모아 전을 벌이고 번개탄을 피웠다. 다리 밑을 찾던 그에게 내가 살던 동네에는 없음을 설득해서다.
'물이 없군, 숟가락이, 젓가락이 없군'. 하더니 구멍 가게에, 식당에 가서 간단히 구해왔다.
거구의 젊은 잔발잔과 같은 얼굴의 거침없는 행동이 두려워서 마을 상인들은 달라는 대로 군말 없이 주고 있었다. 내 보기에는 그것은 구걸이 아니라 약탈이었다. 그렇게 냄비와 찌개도 구했으리라.
아까 슈퍼에 들렀을 때 내가 갖고 있는 돈 5,000원 중 차비 1,000원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은연중 든다.
얼마 전 그 무섭다는 청송 보호소에서 나왔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그의 어제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름을 묻는 말에, 고향을 묻는 말에는 귀찮아하며, 술잔을 건네며 찌개 맛과 분위기를 되묻고 있다. 그에게 자기 아버지뻘 되는 나의 나이와 직업상 익혀 온 나의 젊잔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구멍 가게 주인이 우리를 맴돌기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해서 가보니, 두려운 얼굴을 하고 어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달란다. 나도 은근히 겁이 나서 귀가 길의 멂을 핑계하고 그 자리를 서둘러 떴다.
돌아온 밤 그날 밤 시 한 수를 얻었다.

고아원을 달아난 건 뿌리를 찾아서
이름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건지고자
버리고 꼭꼭 숨어버린 비정(非情)을 찾은 거고

잃어버린 체면 대신 증오에 칼을 갈며
똑 같은 나에게서나 위로를 구하다가
파출소 단골 되어 청송옥(靑松獄)에 갔던 거고

그 어린 나를 버린 나이가 되었을 땐
세상은 교도소라, 부랑아로 배회하며
이름을 찾을 필요 없는 나로 사는 때였고.
                                    -부랑자)浮浪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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