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土末)'마을 이야기
우리 창녕성씨(昌寧成氏) 종중의 선조 순례 따라 전남 해남(海南)에 갔다가 '땅끝마을'에 들렸는데, 여기서 서울까지는 1천 리라. 귀갓길이 촉박하여 땅끝마을의 선착장 주변만 보는 게 서운하여 일행과 떨어져 혼자 남아 그 주변과 보길도(甫吉島)를 둘러보기로 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이런 말이 있다.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가 1,000리요,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000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 리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거기 있는 선착장의 비석이 이상하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이라 해놓고 그 밑에 우측 화살표가 있지 않은가. 이를 보면 한국 국토 최남단을 가려면 '땅끝' 비의 우측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인터넷에 물어 보았더니 한국의 국토 최남단은 여기서 우측으로 해안길 따라 가 있는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사자봉 기슭이라 한다. 이것이 '땅끝' 비 밑에 있는 화살표의 비밀인 것이다.
땅끝마을에 와서 이 '땅끝'비를 보고 사진만 찍고 간 사람들은 땅끝 아닌 땅끝마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간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 땅끝 마을에는 볼거리가 많다.
땅끝마을의 '땅끝'비를 비롯해서 보길도, 노화 훼리호 선착장과 바다로 쭉 뻗어나간 제방 끝의 등대, 사진작가들이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는 남해 일출의 명소 '맹섬', 그리고 '형제바위' 등도 있지만 주차장 위로 희망공원에 설치한 '희망의 종', '희망의 손'이 볼 만하다.
땅끝마을 해안 가에는 두 개의 볼거리가 있다.
사람 둘이 서 있는 것 같은 '형제 바위'와 '맹섬'이다.
'맹섬'은 땅끝마을 '땅끝'비(매표소 옆) 앞 바다에 있는 2개의 섬으로, 맹섬 사이로 뜨는 일출이 일품이어서 때가 되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떼 지어 몰려드는 일출의 명소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려면 1년에 두 번 기회에 맞추어 와야 일출 광경을 찍을 수 있다.
봄철: 2월 15일~ 22일
가을철: 10월 23일~ 30일
주차장 위에는' 희망의 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볼만한 것 중에는 '희망의 손'과 '희망의 종'이다.
'희망의 손'은 두 손을마주 보게 조각하여 놓은 것으로 스테인리스와 청동주물로 만들어 놓았다. 땅끝을 찾은 사람들이 여기서 자기가 소원하는 것을 기원하면 희망하는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만들어 놓은 김용준 조각가의 작품이다.
'희망의 종'은 미래의 희망인 사람과 나무를 형상화하여 사랑과 소망을 기원한 종으로, 이를 치는 사람의 희망이 다가온다는 의미를 상징화한 종이다.
나는 그보다 '땅끝 탑'이 보고 싶어 '땅끝' 비의 화살표 따라 산 쪽을 향하는데 그 들머리에 안내가 풍성하다.
그 옆에 멋진 층계가 시작된다. 바다가 보이는 산 자락길이지만 오늘은 종일 배가 뜨지 못할 정도의 가득한 해무(海霧)여서 가시(可視) 거리가 전방 10m로 말 그대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세계다. 그래 그런가 인적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오늘이 4월 12일로 '세월호' 사건 3주년 되는 날이라서 이팔청춘에 죽은 젊은 학생들의 원혼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다를 향한 길은 붉은 동백나무로 방풍림을 한 '땅끝 천 년 숲 옛길'이었다.
이 길은 그대로 땅끝전망대를 오르기 위해서 타고 오르는 모노레일로 향한 길이기도 하였다.
맑은 날 같으면 모노레일을 타고 다도해 남해를 굽어보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의 이야기를 들으련만 안개는 안타깝게도 다도해를 가로막고 있었다.
드디어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Korea의 희망봉 땅끝 전망대가 나를 반가이 맞는다.
*. 땅끝마을 전망대
이 땅끝전망대는 사자봉의 정상에 세운 9층 건물로 강강술래 하는 여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전망대로 형상화하여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염원하면서 국토를 지키는 등대와 눈을 상징하게 한 것이다.
여기가 바로 해남(海南)이 자랑하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맞을 수 있는 명소로, 맑은 날이면 세계 제3위로 많다는 Korea의 섬 중에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은 물론 제주도 한라산까지도 볼 수 있다는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천리 길을 달려온 이 나그네의 시야를 심술궂은 운무가 10m 이내만 허하고 있는 시계가 한 번 더 오라는 재촉함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전망대에서 땅끝과 보길도에 얽힌 많은 자료를 구할 수가 있었다.
여기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귀한 사진과 자료 수백 편을 사진에 담아왔기 때문이다. 내일 가기로 한 보길도 자료도 이곳에는 수없이 많았다.
*. 봉수대(烽燧臺) 이야기
땅끝마을은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마을이라서 왜구가 자주 출몰하던 지역이어서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그래서 한국의 최남단에 있는 갈두산(葛頭山, 156.2m) 정상인 사자봉에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 봉수대는 그 원형을 알 수 없이 훼손된 것을 자연석으로 하부는 4.5m를 바윗돌로 상부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곳은 잔돌로 봉수대를 복원한 것이다.
봉수(烽燧)는 '봉'(烽: 홰불), '수'(燧: 연기)로써 국가의 급한 소식을 전하던 고대 통신 제도다. 고려 중엽 무렵부터 생긴 제도로 봉수는 전시(戰時)에 주로 사용되었다.
낮에는 연기수(燧)로, 밤에는 횃불(烽)로 하였다. 안개나 비바람으로 어려울 때에는 화포(火砲)나 각성(角聲), 기(旗)로써 대신하거나 그도 아닐 때에는 봉수군(烽燧軍)이 직접 말을 타고 달려가서 알리게 하였다.
전시에는 1개 횃불, 적이 나타나면 2개의 홰, 경계에 접근하면 3개의 홰, 경계를 범하면 4개의 홰, 접전하면 5개의 회를 올리게 하였다.
*. 땅끝탑 이야기
초행길이라서 모노레일 왕복권을 끊은 게 잘못이어었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은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와서였다. 땅끝탑을 가려면 모노레일 편도 표를 사서 '땅끝마을 전망대'를 구경하고서 그 멋진 나무다리를 통하여 아래로 내려만 가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당하고 보니 '멀리 가려면 같이 떠나라.'라는 선인들의 말을 이제야 실감하겠다. 하여 내려온 전망대 매표소에서 다시 땅끝마을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바다가 보이는 새로운 산 자락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길도 동백나무 방풍림 길이었고, 그 도중에 발 안마 길, 쉬어 가라는 멋진 6 각정도 있었지만 나의 발길을 자주 머물게 하는 곳이 있다. 한국 8도 중 까맣게 잊고 살던 생소한 북한의 도(道)가 그랬다. 황해북도, 황해남도, 평안북도가 나뉜 자강도, 함경남도가 나뉜 양강도, 평양특별시, 개성직할시, 남포직할시가 그것이다.
해남군이 남북한 한반도의 전도(全道)를 이렇게 설명하여 놓은 것은 땅끝마을이 한반도의 끝이요, 북으로 향한 출발점이요 시작점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 그런지 땅끝마을을 하늘에서 굽어보면 한반도 같이 보인다.
다음은 두고 온 산하 중 우리에겐 생소한 것이 '자강도'와 '양강도'이니 그 설명을 들어보자.
자강도(慈江道): 자강도의 동쪽은 양강도와 함경남도, 남쪽은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에 접해 있다.
이름을 '자강도(慈江道)'라 한 것은 이 지역의 중심지인 자성군(慈城郡)의 '자'와 강계군(江界郡)의 '강' 자를 따서 이름한 것으로 3시 15군으로 도(道) 소재지는 강계시(江界市)다. 자강도에는 울창한 산림이 있어 임업이 발달하여 북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화천수력발전소가 최근 개업했으며 공작기계공장, 강계 연필공장, 강계 포도술 공장, 공책 만드는 강계 지지 공장 등이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진북루, 망이정, 원명사, 세검정(북호정) 랑림호 등이 있다.
양강도(兩江道): 백두산이 속하여 있는 도(道)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에 접해 있다. 도 이름을 '양강도(兩江道)'라 한 것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두(兩)' '강(江)'이 흐르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의 다린성, 바이산시, 창바이 조선족 자치현과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접해 있다. 행정구역은 1시, 11군으로 도(道) 소재지는 혜산시이다. 산림자원, 지하자원, 수력자원이 풍부하여 임업과 광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작물로는 밀, 보리, 옥수수, 쌀, 콩, 감자 등이고 특산물로는 '아마의 호프'가 있다. 양강도의 김형권군은 천연기념물 '풍산개'로 유명한 곳이다. 주요 유적지로는 갑산 읍성, 삼수 읍성의 4개 문루 가운데 하나인 조일문, 망화루, 괘궁정, 중흥사가 있다.
Korea의 끝이 마라도(馬羅島)라고들 하는데 나는 태풍 등 심한 풍랑이 있어야 나타나는 '이어도(離於島)'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도 우리 땅이니까 우리나라 과학기지를 만들어 놓았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한국의 경제력으로는 이곳에 인공섬을 얼마든지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곳이 이어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Korea 육지의 끝은 어디인가. '땅끝'이다. 한자어로는 '토말'(土末)이라 한다. 그 땅끝은 구체적으로 어디인가.
내가 막 도착한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기슭'땅끝탑'이다.
땅끝의 유래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우리나라 땅끝을 해남현으로 잡고, 북으로는 한경북도 은성부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남 땅끝에서 서울 끼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2,000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 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육당 최남선의 '조선 상식 문답'
오래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내려온 우리 민족이 이곳에서 발길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었으니 역사 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땅끝탑에도 전망대가 있다. 배 선두 모양의 전망대는 유럽의 미국 이민자를 싣고 미국으로 가던 선박이 빙상과 충돌하여 1.000여 명이 익사한 배 타이타닉(Taitanic) 모양으로 멋지게 만들어 놓아 바다를 향하여 나아가는 기상이 있다.
그 옆에 환상적인 나무 층계가 해안가
를 향하여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맑은 날에 왔더라면 얼마나 그 풍광이 아름다울까.
이제 땅끝마을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다 보니 초행길 같이 이상한 것이 조금 전에 왔던 길이 아니다.
'왔던 길은 약간 오름길이라 내려가는 길일 텐데 왜 이렇게 가파른 오름 층계가 계속되지?' 하며 오르다 보니 어럽쇼 아까 내가 모노레일을 타고 올랐던 땅끝 전망대가 아닌가. 불이 꺼진 전망대는 물어볼 사람 하나 없이 문이 꽁꽁 잠겨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거기 이정표를 자세히 보니 주차장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이 정 코스 같아서 가다 보니 얼마 안 가서 산 중턱에 있는 주차장이 나타나는데 아스팔트 내리막길에 '땅끝마을 길'이란 이정표가 있다.
또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로구나 하였다. 그 길은 계속 내리막 아스팔트 길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어서 덜컥 겁이 난다. 저녁을 넘어 밤은 깊어가고 있는데-.
지팡이를 무기 삼아 부여잡고 고생고생 내려오다 보니 십자가가 내 온 싸인을 켜고 마을 끝에 서 있는 교회가 보인다. '땅끝마을 수성교회'였다. 나는 교회가 세상에 왜 있어야 하는지를 길 잃은 나그네가 된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그러더니 해양경찰서가 보인다. 거기서 처음 만난 마을 주민들에게 물으니 그 경찰서 앞에 있는 푸른 모델이 깨끗하고 저렴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길을 잘못 들어서 처음 온 땅끝마을을 거의 빠짐없이 한 바퀴 원 없이 비잉 돌아본 것이다. '땅끝 명승지'에는 내가 본 것 이외에도 '땅끝 오토캠핑장', '송호해수욕장', '땅끝 황토 나라 테마촌', '땅끝 해양박물관'과 '땅끝 조각공원' 등도 있다.
멋진 하루를 그냥 보내 수가 있을까. 슈퍼에서 산 맥주에 준비해 온 안주로 낭만을 마시다 보니 아까 하던 슈퍼 주인의 말이 생각난다.
"내일 비가 온다던데 해무(海霧)가 걷힐까요?"
"해무요? 안개와 달리 해무는 비가 오면 걷히는 것이니 걱정 마세요. 내일은 노화도(蘆花島)에 가는 배편이 있을 거예요."
-2017.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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