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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 이야기

ilman 2014. 7. 2. 16:44

소래포구(蘇萊捕口) 이야기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게 포구(浦口)란 신선한 낱말이다. 그 포구는 바다가, 배가, 갈메기 등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자연애, 이국적, 동경적을 낭만의 3요소라 하지 않던가. 게다가 싱싱한 회(膾)를 탐하여 소래포구를 향하는 우리를 행복케 한다. 술꾼에게 회보다 더 좋은 안주가 있겠는가.

오늘은 KCCA의 영상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식 떠나는 Happy Day 사진 촬영을 소래포구로 떠나는 날이다.

4호선 전철을 충무로에서 바꿔 타고 종점인 오이도 역에서 수인선으로 바꿔타고 3정거장을 더 가니 거기가 바로 소래포구역이었다.


*. 수인선 협궤열차(水仁線狹軌列車) 이야기
 

 

 소래의 매력은 협궤열차 수인선(水仁線)을 빼 놓고 말할 수 없다.

조국이 일본의 수탈을  받던 시절 왜놈들이 미곡과 소금을 수송할 목적으로 1937년에 완공된 수인선은 수원역서부터 인천역까지 52km,  폭 762mm의 단선 협궤열차(單線狹軌列車)로 만들어 운영하다가 1995년에 폐선된 것이 수인선이었다. 그동안 도로 교통의 발달로 화물과 승객의 수요가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중단된 지 17년만인 2012년 6월에 에 최신 시스탬을 갖춘 복선 전철로 다시 태어나 운행하게 된 것이 수인선(水仁線)이다.  


*. 소래(蘇萊)의 어원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서인가 나는 지명 유래가 언제나 궁금하다.소래(蘇萊)에 도착하니 또 그 궁금증이 발동한다. 그러다가 소래 역사관에 들렸더니 거기 명쾌한 답변이 있는데 다음은 그중 몇 가지 설(說)이다.
- 이 지역의 지형(地形)이 소라처럼 생겼디 때문에 소라가 변해서 소래가 된 것이라는 설.-신라 무열왕 때(660년) 당나라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중국 산동반도 래주(萊州)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서 나당 연합군이 되어 백제를 치러 소래산(蘇萊山)에 도착하였는데 소정방의 '소(蘇)'와 내주의 '래(萊)'를 취해 '소래(蘇萊)'라 하게 되었다는 설.- 이 고장 주변 냇가에 소나무가 많아서 내 이름을 '솔내(松川)'이라 하였는데  '솔내'가 '소래'로 변음되었다는 설.- 높은 곳이나 맨꼭대기를 뜻하는  우리말 '수리'란 말이 '소래'로 바뀌었다는 설.'

 

*. 소래 역사관(蘇萊歷史館) 

 

소래에 왜 오는가. 김장철에는 새우젓을 사러, 보통 때는 싸고 싱싱한 회를 먹으러 와서, 시장 횟집에서나 아니면 소래 다리 밑 그늘에 앉아 떠온 회로 소일하다 오는 것 처럼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는 것 또한 중요한 법이다. 그 소래의 볼거리를 압축하여 놓은 곳이 옛어시장 근처에 있는 '소래역사관(蘇萊歷史館)'이다.   

소래역사관은 2층으로 꾸며 져 있는데  

 

2층에는 소래갯벌ZONE과 수인선 ZONE과 1층전시실에는 소래체험전과 소래포구ZONE이 있다.
 

 

 

 

 

 

 

 

수인선 옛대합실

 

 

수인선의 건설과정과 협궤열차 등이 있고 

 

1층은 소래 염전  ZONE으로 각종염업도구의 전시와 함께 국내 제1의 천일염의 생산지었던  소래염전의 각가지 경험을 해 불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소금창고도 있고 소금밀대 밀어보기 체험도  있고 바닷물을 퍼내는 수차(무자위)도 볼 수가 있다.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소래포구의 소래어시장을 인형으로 재현하여 놓은 것이다.

 

소래역사관을 나오니 옛날에 수인선 위를 달리던 협궤얼차가 잊어버린 옛날을 일깨우고 있다.

 

 소래포구 해안가의 '소래꽃게'를 보며 가다가 지금은 인도로만 사용하는 '협궤열차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그 철교 위에서 굽어 보니 우리 KCCA 영상 모임 일행이 바닷가 회집에서 바다를 회하고 있어 급히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젠 들어오는 물에 마지막 남은 모래 섬에서 고기를 낚고 있는 저 갈매기를 보며 바다를 안주하여 호기를 마시는 낭만만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