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 이야기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제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 육사의 '청포도' 시가 말하는 음력 7월이 왔다.
역사장 긴 장마가 1980년 의 45일간이라는데 금년 장마는 49일의 기록을 갱신하더니 장마가 끝나니 폭염(暴炎)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간 체온이 16~7도인데 울산은 40도라 하고 동해 물 온도가 30도라니 찜통더위란 말이 실감 난다.
그러나 이 무더위는 벼와 채소가 자라는데는 기가 막히게 좋은 일일 것이라 위한해 본다.
그러나 '염랑(炎凉)은 때를 스스로 알아 오가는 것이다.
그 계절의 전령사(傳令使)가 싱싱한 과일들이다.
그 중에 까만 알맹이에 하얀 분을 바른 듯한 은은한 윤기가 흐르는 포도송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을이 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언제부터 가을이라 하는가.
천문학적으로는 추분(9월 23일)부터 동지(12월 22일)를 말하고, 기온 변화로 보면 최고 기온이 25도 이하로 내려가는 것이 초가을이다. 24절기상으로는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8월 7일)가 벌써 지나지 않았는가.
포도나무 1년 생 가지에 마디마디 눈이 생기면 다음해에 그 눈마다 가지가 자라면서 열매가 맺히는 것이 포도다.
항상 넝쿨손으로 나무를 감아 올라가서 아무리 좁은 마당이라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이 포도나무다.
과일 중에 수확량이 가장 많은 것이 포도다.
이 포도의 원산지는 아시아 서부의 흑해 연안과 카프카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서역(西域)을 통해 128년 경에 장건(張騫)에 의해서 중국을 통하여 고려 때 들어온 것이라 한다.
포도(葡萄) 라는 이름도 유럽종의 원산지인 중앙아시아 지방의 원어 Budow에서 유래된 것이다.
포도 종류는 세계적으로 100여종이지만 우리가 지금 주로 먹고 있는 포도는 재배용으로 캠벨이다.
미국인 캠벨이 개량한 것을 수입하여다가 1906년 뚝섬 원예모범장에서 재배한 것이 그 효시가 된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가 포도를 지금처럼 먹기 시작한 것이 9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캠벨 포도나무는 건강하고 추위와 병충해에 강한데다가 색깔이 좋고 당도가 높아서, 우리 나라에서 재배하기에 적당하다. 그래서 캠벨포도는 국내 포도 생산의 81.5%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거봉이 그 다음으로 많이 생산된다는 모양이다.
포도는 그림에도 자주 등장한다. 조선 명종 때 문신 어숙권(魚叔權)이 지은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신사임당의 그림을 평하여, "사임당의 포도와 산수는 절묘하여 평하는 이들이 '안견(安堅)의 다음에 간다'라고 " 하였다.
안견은 세종 시대, 시·서·화의 삼절(三絶)로 유명하신 화가이다.
백자에도 청자상감에도 있는 포도 문양을 보고 있노라면 시인 묵객이나 사대부들이 즐겨 먹던 과일임이 분명하다.
포도같이 먹는 방법이 다양한 과일이 있을까?
보통 과일은 깨끗이 씻거나 깎아 먹는데 포도만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포도를 먹을 때 포도 알을 따서 입에 대고 쪽쪽 빨아 속 알맹를 먹고 껍질의 국물을 빨아먹고 씨를 뱉어낸다.
그 씨까지 어적어적 씹어 먹는 이가 있는가 하면, 껍질도 아작아작 씹어 건데기를 뱉어 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포도를 통째로 입에 넣고 푸푸하고 씨를 뱉어내는 사람도 있지만 알맹이는 버리고 껍질만 먹는 특이한 사람을 본 적도 있다.
포도가 포도당의 원료로서 유명한 한 것은 물론 포도가 다이어트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포도는 의약으로서도 아주 효용이 있는 모양이다.
그뿐인가. 포도에는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레스베라를 함량하고 있는 모양이니 이 얼마나 귀한 과일인가.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포도 알은 포도당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배고픔을 달래 주고, 기운이 나게 하며, 추위를 타지 않게 하고, 이뇨 작용이 있어 오줌을 잘 나오게 하며, 포도씨앗은 각종 암 예방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백로(8월 12일) 무렵이 되면 우리네 선조들은 포도잼, 포도식혜, 포도 송편을 만들어 먹고, 포도주를 담가 마시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 같이 제철 과일들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건강을 위한 최상의 신의 선물이다.
우리 모두 계절이 주는 이 천혜의 과일을 열심히 먹으며 라이나 릴케처럼 계벌을 감사하며 살자..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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