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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제2 땅굴 이야기

ilman 2013. 2. 26. 23:29

제2 땅굴 이야기

철원관광지도.jpg

                                                                -사잔출처: 철원군청 홈피

  철원관광은 대개 '철원 테마 관광'과 '철의 삼각지 전적지 관광' 두 가지로 나뉜다. .

철원 테마 관광은

삼부연폭포->순담->승일교->고석정->직탕폭포->도피안사 등이지만

우리들이 오늘 가고 있는 '철의삼각전적지관광'은

‘제2땅굴 -> 철원평화전망대 -> 월정역 -> 철원두루미관 -> 노동당사’ 을 둘러보는 것이다.

철원안보관광 출발을 전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우리 같이 동두천에서 백마역부터 시작하지만, 승용차를 이용하여 하려면 임꺽정의 유적지 고석정(화요일 휴무)을 이용해야 한다.

홈페이지 : www.dmz4u.co.kr 참조

동두천역- 백마고지역(일반 1,000원/경로, 어린이 500원)-백마안보관광버스(일반 8,000원- 어린이, 경로 4,000원)

 

*. 땅굴 이야기 

 

 백마고지역에 내려서 철원군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올라 제2땅굴을 행하는데 철원평야의 논밭에는 수많은 재두미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것을 보니 철원 일대는 철새의 도래지다. 그래서 우리의 오늘 일정에 '두루미 박물관'에 들리게 되나 보다.

  땅굴을 크게 나누면 자연적으로 생성된 굴과 인공 동굴이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에는 석회(石灰)동굴을 위시해서 해식(海蝕)동굴, 화산(火山)동굴, 빙하(氷河)동굴 등이 있다.

 동굴은 구석기 시대에는 집으로, 도를 닦는 도인(道人)에게는 수도장(修道場), 인가에서는 저장고로도 쓰여왔다.

그중 동굴 중에 가장 많다는 석회굴울 종유굴(鍾乳窟)이라고 하듯이 지하수로 큰 굴이 형성되고 그 동굴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만들어 내는 종유석(鐘乳石)이나 바닥의 석순(石筍)과 함께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인연하여 오늘날은 관광지나 유원지 등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동굴이 예부터 군사적으로 이용되어 왔는데 오로지 남침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북괴가 속전 속결을 위해서 인공적으로 판 것이 네 개의 땅굴이 있다.

 

이 땅굴은 북한이 남침을 위해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지하에 굴착한 군사 통로로, 그 출구가 중요 군전략 지역인 고랑포 방면(제1땅굴: 고랑포- 의정부- 서울 5km), 철원 방면(제2호땅굴: 철원- 포천- 서울101km), 문산 방면(제3땅굴: 문산- 서울44k), 양구의 제4땅굴 등으로 서울까지 기습공격하기 위해 파 놓은 것이다. ,제1, 제2 땅굴인 경우 시간당 3만명 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으며 완공되었으면 야포 또는 전차도 투입 시킬 수도 있다.

 

*. 제2의 땅굴

 

 

제2 땅굴 앞에 도착하니 굴 좌측에 위령비가 서 있다.

 
-서울 북방 108km 지점에 위치한 이 땅굴이 1975년 4월 8일 발견 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땅굴 내부에 처음으로 투입된 우리 장병이 북한군이 차단벽에 설치해 놓은 지뢰와 부비트랩에 의해 산화한 6사단 청성부대원 고 김호영 중사, 중사 김재대, 하사 김홍섭, 하사 김명식, 병장 송영복, 병장 김영용, 병장 김볼래 이상 8분(화랑무공훈장 추서)의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고 그 순국정신을 높이 기리기 위해 마련한 추모 위령비다.

 1973년 11월 20일 오전 4시 6사단 청성(靑星)부대가 이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할 때였다.
상병 이기태, 일병 김호섭이 경계 근무 중 지하로부터 폭음 17발을 청취한 것이 보고 되었다.
이를 이상히 여겨 '밤낚시

'란 작전으로 43회 총 571건 폭발음을 청취하게 되었다. 그후 후방 국민의 방위 성금의 도움을 받아 우리 공병대와 현대건설이 시추작업을 하던 중 45개의 시추공 중 7개가 지하 땅굴로 관통됨으로써 북한군이 파고 있는 땅굴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1975년 3. 24~7.19 사이에 갱도 내부에서 노획한 적의 피복류와 갱도 작업에 투입된 원시적인 공사도구가 그 입구 1층에 전시되어 있다. 갱도에 작업 때 쓰이던 레일과 침목 그리고 갱도차를 철수 해 간 흔적도 전시해 두었다.

 이러한 자료를 빠질세라 사진에 담다 보니 일행은 앞서 가고 그 으스스한 땅굴을 나 홀로 탐사하게 되었다.

 

땅굴은 입구에서도 한참이나 내려 가야 했다. 드디어 나타난 땅굴은 높이 2m 폭 2.2m의 아치형 땅굴이지만 공사가 어려운 구간은 그 이하여서 머리를 우측이나 좌측으로 아주 젖히고 조심조심 하였지만 쓰고간 파이버를 자주 꽝꽝 부딪기도 하였다.

 

 땅굴은 남침을 향한 것이어서 나의 탐사 길은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벽의 도중도중 표어가 보인다.

  -'총성은 휴전으로 멎었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키지 않는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자기의 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 

 

 가다 보니 광장이 나타난다. 땅굴 공사하던 인부들이 먹고, 자고, 휴식하던 장소로 거기가 단면도의 '제2광장'이었다.

거기서 얼마 더 간 곳에 제2광장보다 더 큰 광장이 있다.

여기가 적이 굴착 작업하다가  생긴 탁한 공기를 배출 시켜 맑은 공기로 갈아 넣기 위해서 설치한 콤푸레셔 설치된 제1강장이었다. 여기서부터 300m 전방이 북쪽 군사 분계선이요. 우리가 온 입구부터는 500m  거리에 있는 곳이다.

 

저들이 파 놓은 제1광장의 바로 150m 바로 위가 한국의 18OP이니 저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군사분계선상을 1,1000m나 넘어 땅굴로 이미 남침을 한 것이다.

이 땅굴은 총 연장 3.5km에 달하였다. 만약 북한군이 침략을 해 온다면 북한군 무장벽력 16,000여 명이 한 시간 동안 0.8m의 간격을 두고 일시에 침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는 1972년 '7. 4 남북공동성'으로 남북간의 평화와 화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은 우리 모르는 사이에 속전속결의 대남적화 야욕을 강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말은 이들를 두고 만든 말 같다.

그동안 북한의 도발은 항상 오리발로 일관하는 것처럼 이 땅굴에 대하여도 그럴 수도 있어서인지 그런 기우를 위해 우리의 군당국은 움직일 수 없는 증언을 제시해 놓고 있다.
 

 

1.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의 방향이 북에서 남으로 향하고 있다. 2. 갱도의 배수로의 방향이 남에서 북으로 향하고 있다. 3. 북한은 폭발작업으로 그을린 벽면이 있는 반면, 한국은 대형굴착기를 이용하여 벽면의 색깔의 변화가 없다. 곧 북한과 한국의 굴착 공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4. 땅굴 측량기사(74. 9. 5귀순) 김부성의 남침용 땅굴 굴착 작업 증언.

  제2의 땅굴 속에 깊숙히 서니 갑자기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북한동포가 생각난다. 

북한은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더 잘 살던 나라였다. 그러던 나라가 남침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민생을 외면한체 헛된 망상으로 전쟁 준비에 국력을 낭비하며 국제법을 어기고 핵(核)으로 무장하면서 세계와 맞서다가 지금은 세상에서도 최빈국의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한 주민은 식량난으로 그 수요량의 1/3을 그들이 원수라고 증오하는 국가 대한민국에 손 벌리고 있다. 그 지원으로 나머지를 겨우 충당하고 있어서 국민들은 기아문제로 절대적인 생존권을 위협 받고 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 같이 한국의 남자의 키가 174cm/ 여자 160.5cm에 비하여, 북한 탈북자의 경우 평균 키는 남자가 165cm/ 여자가 154cm로 한국인보다 9cm나 작다. 서울의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이는 조선시대의 남자 161.1cm/여자 148.9cm와 유사하다 한다. 북한 20대는 그보다 더 작다니 이는 못 먹어서의 차이라 생각하니 북한 위정자들은 북한 주민을 이렇게 희생해도 된다는 말인가.

북한의 국민소득은 1,074달러(2010년)로 남한보다 국민소득의 19.3배나 뒤지고 있다. 문명의 척도라는 발전량 또한 남한보다 20배나 뒤지는 나라다.

 

그런 가난한 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온 한국에 무기를 앞세워 위협하면서 싸움을 걸어오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자고로 싸움은 힘센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싸움 시작에는 약자도 이길 수 있겠지만 장기 전에서는 결국 약자가 지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독불장군이 남의 동내 와서 공연히 시비를 걸거나 싸움판을 벌였다가는 뭇배를 맏고 패가 망신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현대에는 경제력이 곧 국력이라는 것은 삼척도자라도 다 아는 진리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요즈음 북한의 붕괴를 말하는 관측이 많아서 북한 당국이 스스로 이를 두려워 하여서인가. 스스로 망하는 가장 빠른 길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북한 위정자들은 이제라도 이를 깨닫고 상생의 길을 가게 된다면 세상에서 우리 민족은 자랑스럽고 행복한 겨레가 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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