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 4 )/ 오스트리아 '빈(Wien)'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빈(Wien)까지는 245km로, 4시간 거리다.
버스에 탄 채로 여권만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30분만에 국경을 넘어서 우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보며 거칠지 않은 오스트리아 벌판을 달리고 있다.
알프스의 본 고장에서 와서 여 주인공으로 분장한 쥬리 앤드류스의 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청아한 그 고운 노래를 들으면서-.
버스는 그 영화의 환상적인 배경이 되는 그 알프스를, 체코 기사가 운전하며 그 경치를 헤치듯 달려가고 있다.
풀밭에 빙 둘러 앉아 부르는 'The Sound Of Music'의 쥬리 앤드류스가 7 명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Do Re-Mi Song', 독일 압제 하의 오스트리아인의 민족혼을 담은 '에델바이스(Edelweiss)' 음악이 관객과 함께 불리는 그 절정을 이룰 무렵이 우리들의 버스가 빈(Wien)의 시내를 들어선 때였다. 그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의 국화(國花)다.
(사진출처:네이버)
우리 남한보다도 약간 적은 땅에서 810만 국민이 3배나 더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이 오스트리아다.
국토의 2/3가 동 알프스 산지인 호수와 숲과 산의 스키어, 하이커, 등산인의 천국.
540km를 아귀가 동서로 누운 듯한 내륙국으로, 바다 같은 큰 호수 '콘츠탄츠 호'와 '노이지드라 호'가 있는 나라다.
슈벨트, 모찰트, 요한스트라우스, 히틀러의 조국 오스트리아에 나는 두 번째 왔다.
작년엔 스위스 융플라우 가는 길에 알프스 산록의 인스 브루크에 들리면서 빈(Wien)에 들리지 못하는 것이 한이더니 드디어 그렇게 오고 싶어하던 그 빈(Wien)의 땅을 밟게 된 것이다.
국명 '오스트리아'란 말은 '동방의 나라'란 뜻이다.
샤를마뉴 대제가 정한 오스트마르크(Ostmark)에서 나온 말로 이 말은 터키군으로 상징되는 이슬람 물결에 대항하는 기독교 측의 성채 역할을 하는 '동방 변경의 방어주'란 뜻이다.
이 나라의국기(國旗)는 위서부터 붉은색, 흰색, 붉은색으로 가로로 3 등분한 것이다. 이것은' 1191년 제3회 십자군전쟁 때 아론 전투에서 레오폴드 5세의 칼집을 맨 띠에만 흰색이 남고 선혈이 낭자하였던 것을 기념'여서라는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다.
*.링을 따라 둘러본 '빈(Wien)'
오스트리아 인구의 1/4인 160만이 사는 예술의 도시며 음악의 도시 빈(Wien)의 관람은 도나우 강을 향하여 말굽 같은 모양의 링(Ring)이라 부르는 환상도로(環狀道路)에서 시작된다.
링(Ring)이란 반지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19C까지 있었던 4km의 성벽을 헐고 만든 환상도로를 말한다.
우리가 배낭여행을 왔다면 1일 승차권(5유로)을 사서 트램(tram, 시내 전차)을 타고 느긋한 기분으로 30분이면 되는 링 한 바퀴를 돌아 빈의 위치를 파악할 것이다. 그다음, 시곗바늘 방향의 1번 트램이나 그 반대의 2번 트램을 타고서 보고 싶은 곳을 찾아가면서 내려서 걷고 버스도 타보련만, 관광버스가 가는 대로 맡기다 보니 '링'이 무엇인지, 어디가 어딘지를 통 모르겠다. 찾아간 곳이 아니라 따라간 곳이기에 더욱 모르겠다. 그래서 잠시도 쉬지 않고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장수가 1,000 장이 넘지만 거기가 어느 교회나 성당인지는 고사하고 어느 나라에서 찍은 것인지조차 혼동이 된다.
가이드가 아무리 친절히 설명해 준다해도 날마다 바뀌는 나라, 시간마다 변하는 경치를 어찌 다 기억할 수 있을까.
설명은 기억이 나는데 그것이 어떤 것의 설명인지, 건물은 생각나는데 그것이 무엇에 대한 설명인지 모르는 것은 기억력 탓일까, 아니면 무심한 나이 탓으로만 돌려도 되는 것일까.
어찌 우리뿐이겠는가. 돌아와서 글을 쓰려고 이 책 저 책을 찾아봐도 잘못 설명하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홍콩 여행에서 만난 능란한 여 가이드는 '그러려니-.'하고 그냥 넘기라지만, 그러기에는 만만치 않은 투자를 한 우리들이 아닌가. 이번 동유럽 여행에 우리 부부가 쓴 여행 경비로는 평생을 매일 두고 볼 고급 대형 디지털 TV를 턱- 들여놓고도 남는 거금이었으니 말이다.
빈(Wien) 시내의 그 링 중심 한복판에 있는 건물이 우편엽서나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슈테판 대성당이다.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빈의 상징’이요 '빈의 얼굴'이라는 교회다.
본당의 길이가 107m요, 높이가 39m나 된다. 서쪽 교회 정면 입구의 2개의 탑 건너, 세계에서 교회 탑으로는 세 번째 간다는 137m의 남탑에 오르면 빈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지만 유럽에는 공짜라는 것은 공기뿐인가 3유로씩이나 받는다.
합스 부르크가의 역대 황제의 내장을 안치했다는 초기 기독교인의 지하 묘지라는 기타 콤베라는 곳도 3유로 입장료를 받았다.
친절도 베풀고 상품처럼 팁으로 받아내는 매정한 세계가 유럽이란 사회다. 게다가 해외에 와서 외국인으로 떠돌다 보면 1 달러나 1 유로가 1만 원보다 더 아까운데도 말이다.
이 성당은 12C에 화재와, 러시아, 독일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것을 복구한 것으로 채색 타일의 모자이크 지붕이 특이하다.
이집트 여행이 무덤 여행이라면 유럽 여행은 한 마디로 성당에로의 여행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천주교나 기독교의 박물관이고, 특히 성당 내부는 물론 외벽 곳곳에 수백 년을 걸쳐 만들어 놓은 조각이 있고, 그 앞 광장에는 현란한 각 민족과 기독교에 어린 이야기가 있는 탑이 있다.
이 건물과 조각과 탑은 수천 년을 거쳐오는 동안에 이루어지다 보니 세대에 맞는 각가지 양식의 건축 형태가 생겨나서 고등학교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하지만, 까맣게 잊힌 세계라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로마네스크식, 고딕식, 르네상스식, 바로크식 등 건축 양식이 그러하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 와서는 그래도 크다는 한국의 성당을 둘러보면 그 조각이나 스테인리스가 왜 그렇게 초라하게 보이는지-. 옛날에 성당에 들어가기만 하면 느껴지던 엄숙과 경건이 사라져 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미술가의 그림을 보다가 중 고등학생들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아서다.
교회에서 슈테판 광장으로 나오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리 중간에 황금색 바오린을 들고 연주하는 움직이는 황금색 동상이다. 옷과 얼굴까지 황금색으로 치장하고 이 고색창연한 그 일부가 되어 있는 거리의 악사였다.
스페인 바르세로나의 콜럼버스 동상을 보러 가다 만난 것은 흰색이던데 아마도 시립공원에 있다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동상을 흉내 내었나 보다.
돈을 달라고 할 것 같아 몰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이런 하나하나는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이 하루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슈테판 광장 근처에 '페스트 탑' 이 있다. 당시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페스트)이 물러간 것을 감사하기 위해 레오폴드 1세 황제가 지었다는 바로크 양식의 탑이다.
. 그 꼭대기에 노랗게 빛나는 황금빛 조각물이 삼위 일체상이다.
음악의 도시 빈이 자랑하는 곳 중의 하나가 국립 오페라 극장(Staatsoper)이다.
세계 3대 극장의 하나로 1869년에 모차르트의 ″돈 죠반니″ 로 막을 올리고 이를 개축하여 무대가 객석보다도 더 넓은 최신 시설을 자랑하고 있는 극장이다.
극장 근처 어디서나 18c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팜플랫을 들고 팔고 있는데 요금은 만만치가 않은데 게다가 지휘자, 출연자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 오스트리아의 베루사이유(Versailles) '쇤부른(Palce of Schon Buhn) 궁전'
오스트리아 최대의 궁인 '쇤부른(Palce of Buhn)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이다. 궁정 뒤 정원에 들어서니 180m나 되는 짙은 황금색 건물이 날개를 펴듯이 펼쳐져 있다.
쇤부른은 독일어로 아름다운 샘(아름다운:Schon + 샘:brunn)이란 뜻이다. 17C초 황제가 사냥 터인 이곳에서 아름다운 샘을 발견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1696년 레오폴트 1세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만든 새로운 성으로 18C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가 완성하면서 그가 좋아하던 황금색으로 만들었다는 건물이다.
거기 방이 1,441개인데 관광객에게는 39개만 공개한다. 한번 남이 쓴 방을 다시 또 쓰는 것이 관습이 아니라서 이렇게 많은 방을 갖게 된 모양이다.
궁정극장과 마차 박물관이 있는 노란 궁전 앞에 있는 커다란 정원 가운데에는 대리석 조각상들과 조화를 이룬 넵튠 분수가 있고 그 언덕 위에 '글로리에테'는 그리스 건축 양식으로 프러시아와의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한 건물인데 기둥만이 남아있다.
전쟁에 의해서 부서진 것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그 막대한 비용을 충당할 수 없어서 짓다 만 것이란다.
정원 왼쪽에는 성경인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인가. 석조 인물 조각이 넵튠 분수까지 서서 그 운치를 더해 주고 있는데, 그 한 동상을 보니 한쌍의 연인이 얼싸안고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밑에서 몸을 바치고 있는 하인의 모습이 힘들어서 죽을 상이다.
그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본다. 성공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뒷북이나, 박수나 치는 위치에 살던 젊은 시절의 나의 초라한 모습이-.
*. '아후 비데어제엔', 빈이여 안녕!(Auf Wieder sdhen. Wien!)
나는 아내와 막 봄이 피기 시작하고 있는 시립공원 정원의 그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상 앞에서 사진을 찍어 이 동유럽 여행을 기념하고 싶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황금빛을 닮아 정원 화단에는 노란 꽃이 만발하였고 기념 촬영 순서를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었다.
빈 대학은 1365년 루돌프 4세가 창설한 대학으로' 멘델'(유전의 법칙), '프로이트'(정신분석학)의 모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독일어권 대학으로 1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명문대학이다.
관광버스에 탄 채로 가이드의 설명 따라 우리는 시선을 좌우로 돌려 가며 이렇게 빈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저기 일자로 계속되는 곳이 청과물을 주로 파는 비엔나 재래시장입니다.
저 주차장에서는요, 벼룩시장이 열리는대요, 우리나라 유학생이 100달러 주고 산 바이올린이 몇 만불 짜리더랍니다.
거기 보이는 건물은 히틀러가 낙방한 미술학교인데 그때 히틀러가 합격하였더라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지요.
" 땅값이 비싸서 모든 건물들은 서로 다른 건물이라도 벽이 붙어 있었고, 미관상인지 건물의 높이도 거의 같은데 그 앞에 벚꽃과 자목련이 다른 모양 다른 색깔로 활짝 피어 있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 강가에서는 낚시꾼들도 보이고, 전철 근처에는 하나하나 자전거 열쇠가 달린 앞바퀴가 쏙 들어가게 생긴 멋진 자전거 주차장도 보인다.
횡단보도 신호등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Go에는 자전거를 똑바로, Stop 때는 자전거를 비스듬히 표시하는 것이 신기했다.
모든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어서 거기서 인사 사고가 나면 보행자가 책임이란다.
빈을 떠난다. 카메라로 비디오로 가능한 한 기록하였지만 이제는 다시 또 올 수 없다는 마음으로 설레며 달려온 곳을-.
빈이여, 안녕! Auf Wiedersdhen. Wien!(아후 비데어 제엔, 빈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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