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10)/ 폴란드 소금광산
* 소금 이야기
사람들이 수렵으로 생활할 때에는 소금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굽지 않고 그대로 먹는 생고기에는 인체에 필요한 만큼의 염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사람들은 공기와 물처럼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소금인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이야기에 소금 장수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필요한 것이 소금이기 때문이다.
국제보건 기구 WHO에서는 인간이 하루에 필요한 권장 소금 양을 6g 이내로 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간장, 고추장, 된장이나 젓갈류 등 장(醬)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어서 하루 20g의 염분을 섭취하고 있으니 되도록 과용은 금할 일이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닷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구할 수 있었지만 내륙지방 국가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래서 어떤 인디 오족들은 소금 광산을 '신이 준 선물'이라 말하고 있다.
바닷물에는 그런 염분이 4~6%인데 비해 염광은 100%이다.
유명한 이스라엘의 소금 바다 사해(死海)는 지구 표면층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곳이다.
그 높이가 인근 지중해보다 378m나 더 낮다. 길이 77km, 폭 16km의 사해(死海)에 계속 흘러 들어오는 물은 많은데 흘러나갈 곳은 없다. 게다가 그 주위의 요르단 계곡은 뜨거운 열기의 사막지대라 계속 수분이 증발하여 사해의 염도는 25% 바다의 5배가 넘는다.
암염(岩鹽)이란 돌소금으로 그 염광 지대는 옛날에 바다가 있던 곳이다. 수백만 년 전에 지각 변동으로 바다가 육지가 된 곳이다. 바닷물이 증발여 버리고 땅속에 단단한 지층에 있는 원통 모양의 지질 구조인 암(巖鹽) 돔에서 얻는 것이 소금이다.
소금은 광물보다 가벼워서 암염은 무거운 다른 광물들의 압력으로 솟아올라 지구 표면 근처에서 높이 수 백 m가 넘는 암염 돔이 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저절로 그 소금을 힘들이지 않고 육지에서 채굴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암염이 폴란드요, 오스트리아 잘츠 부르크요(‘잘스’란 독일어로 소금)다.
우리는 그 유명한 폴란드 소금광산(Salt Mine)에 관광객으로서 지금 서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월급쟁이를 보통 샐러리맨(Salaried man)이라고 한다. 영어에는 없는 일본 사람이 만들어 낸 조어(造語)다.
급료란 뜻의 'Salaried'의 라틴어는 'Salarius'(소금, 돈)이란 뜻이었다. 옛날 로마의 군인들에게는 월급으로 Salarium(소금)을 수당으로 주었다. 소금이 돈과 같거나 그보다 더 귀한 물건이었던 때문이었다.
소금의 효용은 많다. 비만, 성인병, 소아마비, 암, 조기 대머리, 조기 백발을 막아주는 것이 소금이다.
그뿐인가. 피로, 권태, 식욕부진의 증상을 막아주지만, 과용하면 신장염이나 고혈압은 물론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술을 과용하면 건강을 해치게 되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소금은 음식 맛을 돋워 주고, 부패를 막아주며, 심지어 눈길에 뿌려 주면 미끄럼까지 해결하여 준다.
자고로 옛사람들은 소금을 청정, 신성의 상징이라고 믿어서 궂은 일이나 그런 곳에 다녀온 사람에게 우리네 어머니는 소금을 뿌려 액을 막으려 했다.
인도 타말 족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아버지의 가치는 돌아가신 뒤에 알고, 소금의 가치는 없어지고 난 뒤에야 안다."
우리의 속담에도 '소금은 12 가지 반찬을 만든다.'라고 소금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소금에는 상승효과도 있다. 설탕에 소금을 더하면 단 맛이 더 나고, 신맛에 소금을 더하면 맛이 부드러워진다.
*폴란드 비엘리츠카(Wieliczka) 소금광산
폴란드 옛 서울 크라쿠프에서 10km쯤 떨어진 비엘리츠카(Wieliczka)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명한 소금광산(Salt Mine)이 있다.
우리는 지금 흰쌀, 흰 설탕, 흰 소금은 3백(三白)이라 하여 건강의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소금이다.
그 흔하디 흔한 소금에는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드는 볕 소금이라는 천일염(天日鹽)도 있지만, 육지에서도 소금이 나는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라오스의 소금 마을에 가서였다.
거기서는 파이프 둘을 깊게 내려 박고 깨끗한 물을 흘려 내려서 녹는 소금물을 다른 파이프로 뽑아 올리고 있었다. 그러면 하얀 소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이것을 라오스 인부가 드럼통을 반으로 자른 곳에 넣고 톱밥으로 열을 가해서 수분을 증발시키고 남는 것이 하얀 소금으로 그것을 모으는 작업이었다. 그 불살을 세게 하느라고 맨발로 온종일 톱밥을 밟으며 어린 자식들과 하루를 바쳐 얻는 수입이 1달러나 2달러 정도였다.
웃통은 벗었고 초라한 반바지는 찢어지고 헤어져서 그때 우리가 보고 온 것은 소금 채취 과정보다 그 가난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고 왔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소금의 용해 채굴 법이라 하는 것이다.
폴란드 비엘리츠가 소금광산은 석탄처럼 수직으로 내려가면서 채굴하는 소금 광산이다.
입구에 있는 건물은 17C에 지은 건물이고 그 앞 정원에는 괭이를 멘 광부 동상 하나가 우뚝 서 있다.
현지 교포 가이드와 함께 하였지만 늙수그레한 폴란드인 안내자와도 함께 하는 것이 원칙인 모양이다.
카메라나 캠코더 촬영에도 돈을 내야 했다. 2.5유로를 더 내어 표를 사서 카메라나 비디오에 붙였다.
이 소금광산은 신석기시대부터 개척되어 오다가 지금부터 70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채굴하기 시작한 곳이지만 현재는 관광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50만 명이 웃돈다니 어찌 소금을 팔아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 입장료가 5,000원 거기에 영어 가이드 비용 1,500원을 더해도 6,500원으로 5유로 미만인데 우리나라 여행회사에다 우리는 7만 원(48 유로)을 지불하고 왔으니 우리는 8배나 바가지를 쓴 것이다. 이런 것이 여기뿐이면 얼마나 좋으랴.
패키지여행이란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것이고 돈이 드는 곳은 일정표에 기록된 것이 아니면 거의 다 겉모습만 보고 다녔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가서 거기 사는 현지 동포에게 사게 되는 선물들은 언제나 우리를 후회하게 하였다.
우리 이웃나라 일본의 관광도 그러할까. 고가를 지불하고 따라다니던 국내 1, 2위의 이름 있는 여행사도 같았다. 언제 우리나라도 믿고 따라다닐 수 있는 합리적인 관광 산업 국가가 되려나?
여기 갱도(坑道)는 250km나(약 60리) 파 들어갔다. 지하 64m가 1층이었고 맨 아래는 327m로 지하 9층이었다. 16 세기에는 매년 10%의 광부가 사고를 당하기도 하였다는 곳이다.
그동안 파낸 소금의 양만도 750만㎥로 화물열차로 따져보면 지구 적도의 1/5의 길이나 되는 양이었다.
우리 같은 관광객에게는 135m까지만 관람하게 공개되었는데 길이 2.5km로 두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상하 좌우 전부가 소금뿐인 갱도 따라 통나무 층계로 통나무 손잡이를 잡고 계속 내려갔다.
소금의 동굴이라 공기가 쾌적한 것이 이곳은 연중 14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한다.
그래서 옛날 왕가에서는 감기가 들면 병을 고치려고 이곳을 찾아오곤 하였다.
한 30분 내려가니까 소금으로 만든 각가지 조형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기 있는 조각들은 당시의 광부들이 소금만을 깎아 만든 조형물로 수백 년을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 긴 세월 때문인가 그 원형이 손상된 것도 있었다.
옛날 수작업이나 동물을 이용하여 암염을 채취하던 기구가 있고,
곡괭이나 삽으로 소금을 캐는 모습, 연못 같은 소금물도 보인다.
가는 곳곳이 홀 같이 육중한 문이 있는데 앞서 가는 사람이 그 문을 잡고 있으면 뒷사람이 그 문을 잡고 지나가야 하고 그냥 놓으면 저절로 쾅- 하고 닫치어 잘못하면 길을 잃을까 걱정이 었다. 함께 한 77세 희수를 맞아 여행 오신 부부와 함께도 그랬지만 연신 사진을 찍어야 하는 내게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 걱정은 사실이 되어 일행을 잃고 미아가 되어 가이드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소금으로 만든 커다란 석상 앞에 섰다. 왼손에 지구의(地球儀)를 들고 서있는 이는 1493년 지동설을 주장하던 폴란드 코페르니크스로 이곳 방문을 기념한 하는 상이다.
저건 또 무얼까? 여왕이 서 있는 앞에 기사 한 사람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 옆에 창과 칼과 소금덩어리를 든 광부가 있고, 킨가 여왕이 기사인 그의 약혼자에게 반지인가를 전하고 있는데 거기 무슨 전설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지하 101m 되는 곳에 교회가 있었다. 광부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성 킨가 교회다.
8 각형 모양의 바닥 타일, 제단의 성모 바리아 상, 찬란한 샹들리에 조명, 제단 왼쪽에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 벽에 조각한 레오나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
모든 것이 소금만으로 만들어진 소금의 나라요 소금의 세계였다.
그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예수를 팔아먹은 가롯 유다를 자세히 보면 그는 소금을 엎고 있다.
당시의 소금을 엎는다는 것은 불길한 일이요, 부정한 일이다.
젊어서는 예수를 팔아먹은 가롯 유다에 대하여 반대로 생각한 일도 있었다. 가롯의 배신이 아니었으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이렇게 열심히 믿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다.
지하 125m 되는 곳에는 관객 1,000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이 있다.
이 곳에는 음식점은 물론 토산품, 출판물,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
소금 광산 내부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135m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평생 내가 내려 가본 중에 가장 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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