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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 산행기

ilman 2012. 12. 1. 07:34

바래봉 산행기/ 정상의 꽃 바다(花海)
**5월 10일(토)/전북학생교육원-세동치-부운치-팔랑치-삼거리-바래봉-철쭉주차공원/뫼솔산학회 따라**

*. 등산가면 언제나 갱신하는 신기록
 등산회 따라 철쭉꽃 보러 간 바래봉의 산행은 전북 학생 수련원(學生修練院)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비무환이 나빴던가. 서둘러 화장실에 들러서 산행 길에 오르니 오늘도 큰일이 났구나. 내가 일행 중 맨 꼴찌가 아닌가.
처음에는 전문 등산회를 따라 가는 것이 내 힘에는 부치는 일이라서 선뜻 따라나서지 못하였다.

그러나 바래봉 철쭉은 보통의 아녀자나 노인도 쉽게 갈 수 있는 평탄한 길이라는 데다가, 전주에 비로 인하여 금년 비슬산 진달래꽃 구경을 망친 것이 서운하던 차여서 만사 제치고 나선 길이다.
 그러나 뫼솔산악회는 한 걸음이라도 더 멀리 걷게 하는 산악회라서, 그 명성답게 운지사 앞에서 시작되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일부러 전북 학생교육원에서부터 이 근처에서는 최고봉이라는 1,207m 세걸산(世傑山)을 들러 바래봉을 향하는 것이라 초입부터 경사가 만만치가 않다. 썩어도 준치라고 바래봉행은 1,000m가 넘는 지리산 줄기가 아닌가.
작년 치발목 산장에서 자고 무재치기 폭포에서 만난 산꾼에게 이런 자랑을 한 적이 있다.
"수고하십니다. 저는 성삼재에서 여기까지 신기록을 세운 사람입니다. 무슨 기록이냐구요? 가장 늦게 종주한 신기록 말씀입니다. 7일이나 걸렸거든요"
 태풍 루사로 벽소령 산장에서 3일이나 묶였기 때문이었다. 한 번 늦는 사람은 영원히 늦는 사람이 된다.

늦게 가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가장 후미에 서서 가이드의 구박을 받으며 쫓기듯 간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걱정 걱정하였더니 그 걱정을 풀어주는 사람이 있다.
앞서 가던 일행 3명은 한 가족 같은데 그 중 장모 같은 이의 얼굴이 샛노란 것이 몸이 불편한 모양이다.

옛날 출근에서 지각을 하였을 때 만나는 동료를 보면 얼마나 반갑던지. 그런 마음 같은 거다.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 준다는 시원한 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모자를 벗어 주머니에 구겨 넣었는데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산길 좌우에선 원시림 같은 거창한 잣나무 그늘이 고마웠다. 몇 년 전 캐나다 록키산맥 여행 중에 보던 그런 근심 없이 위로만 자란 우람스런 잣나무다. 그 나무가 떨구어 놓은 잎은, 솔잎보다는 몇 배로 큰 것이어서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어 쿠션을 밟는 것 같이 푹신하였다. 그런 오름 길이 세걸산까지 1시간 30분이 계속되었다.
반가운 사람들과 어울려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앞 뒤로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산길을 혼자서 오르면서, 처음 온 산의 이곳저곳의 산을 음미하며, 참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진으로 기록하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시심(詩心)을 불태우며 가는 단독 산행이라. 이런 때에 나는 김삿갓보다 더 행복한 나그네가 된다.
그러나 늘 하는 산행이 아니라 소나기 산행을 하는 나에게는 시간에 쫓기는 이런 등산은 항상 버거웠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만나거나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 만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렷다.
미인을 얻기 위해서는 재산이 있어야 하고, 세계의 명승지를 유람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투자를 하여야 하듯이, 이렇게 산속에 숨어 있는 비경을 찾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것이 있다. 땀이다.
뒤따라오는 가족의 소리가 들려올 적마다 걸음에 속도를 주어 꼴지를 면하느라고 기를 쓰다 보니 드디어 세동치(世洞峙)다.

'치(峙)'란 고개란 뜻이렷다. 여기서 15분 거리에 세걸봉(世傑峰)이 있다.
가난하던 사람도 그 역경을 벗어나면 웃음꽃 핀 세월을 살게 된다. 갖고 살던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행복을 하나씩 더 키워 나가면서-.
나 같이 오기와 결심만으로 남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올라온 사람에게는 산 위의 능선에서 산하의 조망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이나 행복이나 기쁨은 그 배(培)가 된다. 내가 누군가. 그 무서운 백혈동(白血棟)에서 살아 걸어 나온, 그래서 지금 두 번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닌가.
 멀리 동쪽 끝 부분에 천왕봉(天王峯)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능선이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 서쪽 끝 반야봉(般若峯)과 노고단(老姑壇)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 온 뒤끝이라 오늘 날씨는 흐리고 맑음이어서 안타깝게도 카메라로 담는 호강까지는 누리지 못하였다.
내 딴에는 제법 속력을 내어 발걸음을 재촉하여 가고 있는데, 수런수런 떠드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보니 아까까지 뒤따라오던 일행이 아닌 것 같다.
뒤돌아 보니 한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뒤에 바싹 줄을 이어있는데, 표정들이 한결같이 소리 없는 클랙슨을 막 눌러대고 있는 것 같다.
길은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추월할 수 없는 싸릿 길 외길인데, 그 1차선밖에 없는 도로에서 낡은 차 한 대가 시속 30km 이하로 이렇게 저속 운행을 하면 우리는 어쩌냐고 소리 없는 아수성의 표정이다.
비켜설 자리를 찾아 전속력을 내는데, 뒤 따라 오는 사람의 잰 발걸음은 그 정도를 넘어선다.
할 수 없이 숲 속으로 들어가 길을 터 주었더니, 막혔던 봇물 터진 것처럼 와르르 감사의 탄성을 지르면서 선두는 벌써 저 건너 고개를 넘어서고 있다.
그들을 향하여 소리 없는 말을 나는 이렇게 하고 있었다.
'당신네들은 먼 거리를 빨리 달려 가는 것이 자랑인 사람들이지만, 천천히 가면 더 멀리 간다는 마음으로 산에 와서 이렇게 유유자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오. 나는 산에 오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니 말이요.'

*. 철쭉꽃의 찬란한 '꽃 봉화(烽火)'
봄소식은 남쪽에서부터 붉은 매화, 노란 산수유로 시작되어 목련, 진달래로 피고 진다.
그러면 철쭉꽃도 차츰 북상하면서 이 우리 나라 온 산을 붉게 불태우다가 여름 꽃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다.
이렇게 봄을 보내는 우리 나라 철쭉꽃의 찬란한 축제는 남도 끝자락인 전남 장흥군과 보성군 경계에 있는 바닷가 제암산(778m)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바위들이 이 산의 정상에 있는 '帝(제)' 자 모양의 바위를 향하여 절하듯이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어서 임금 '帝(제)' 바위 '岩(암)' 제왕산(帝王山) 또는 임금바위라 하는 곳이다.
밑 통이 유난히 굵고 키가 커서 유난히 큰 꽃이 산허리를 활활 붉게 태운다는 곳이다.
이것이 바래봉과 세석의 철쭉으로 올라왔다가,

소백산(小白山) 능선에 가서는 주목과 어울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한국의 산하
다시 정선과 영월에 걸쳐 있는 산 첩첩, 물 첩첩, 구름 첩첩하다는 두위산(斗圍山1562.9m)의 주능 5km에 걸치는 수만 평에서 한바탕 연분홍 꽃물결을 이루다가 봄을 끝내는 것이다.
제암산에서 바래봉, 세석으로 소백산에서 두위산으로 이어지는 이 철쭉꽃의 향연을 꽃봉화(꽃烽火)라 하듯이 나도 꽃 봉화 따라 카메라와 캠코드를 들고 따라가고 싶구나.

*. 바래봉 철쭉이 아름다운 이유

"세석 철쭉도 철쭉에 낍니까"라고 운봉 현지 사람들이 바래봉 철쭉이 한국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 호주에 다녀와서 한.호(韓.濠) 시범 면양 목장을 설치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호주에서 가져온 면양 2,500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 바래봉 일대를 벌목하고 초지(草地)로 조성하였다.
그때 들여온 자연 제초기라고도 할 수 있는 면양은 참꽃이라는 진달래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먹어치웠는데 산철쭉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장미에게 가시가 있듯이 철쭉은 개꽃이라 하여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초지 조

성을 위해 뿌린 비료에다가 면양의 배설물은 그대로 철쭉에게는 기가 막힌 거름이 되어서 이런 천상의 화원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바래봉 철쭉꽃은 자연과 인공의 합작인 것이다. 그래서 바래봉의 철쭉이 다른 곳보다 허리를 훨씬 넘는, 키를 파묻게 하는, 크고 진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슬슬 배가 고파 오더니 허기가 진 듯이 힘이 빠진다.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 말로는 5분만 올라가면 그다음은 계속 내리막 길, 거기서부터 천상의 화원인 꽃길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나이에 내가 기합을 받으러 왔나. 내가 극기 훈련 받으러 왔나.' 하고 아무 데나 주저앉았다. 처음 쉬는 곳이다. 단독 등산이라면 내 능력으로는 수십 번도 더 쉬었어야 할 나의 처지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가 넘었다. 금강산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먹어야 구경을 깊게 하지-.
뒤따라오던 일행을 앞세우고, 서울을 떠나올 때 사 가지고 온 김밥 몇 조각으로 우선 시장을 때우고 다시 오르는데 열심하였다.
일정에 쫓겨서가 아니다. 어서 어서 이 깊은 산 중 1,000m가 넘는 곳에 사람이 조성하고, 하늘이 가꾸고, 양이 거름 주어 키워놓은 철쭉 군락지를 보고 싶어서다.

*.. 구름 아래, 산 정상 위에 핀 꽃 바다(花海)

 쉬었다가 조금 올라가니 거기가 바로 뜬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고개 1,123km 부운치(浮雲峙)로 헬기장이 있고 나를 앞서간 한 가족 3명이 있다.
부운(浮雲)처럼 여기서 이렇게 한 번 만났다가 영원히 헤어질 사람들이다. 만난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사람들이다. 지금의 나의 일부의 모습을 전체로 기억하거나 잊고 살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지리산 뱀사골 바로 서쪽에서 반야봉과 반대인 운봉면 그러니까 남원 쪽에 있는 바래봉을 향해 가고 있다.
  드디어 멀리 구불꾸불 능선길이 되다가 화원이 되면서 바래봉을 향하고 있는 환상적인 꽃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늘 날씨는 여름 등산의 폭염을 막아 주었지만 앞에 전개된 모습은 심심산천을 찾아온 나를 실망케 하였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아니면 인생은 꿈꾸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이 옳아서 그러한가.
떠나오기 전에 사진으로 보던 풍광이 아니다. 멀리서 보아서 그런지 연분홍 흐린 색깔이 불그스레할 뿐 이렇다 할 감흥이 일지 않는 것은 왜일까.

산 중에 왠 문인가. 나무문이 활짝 열려 있다. 아하, 옛날 양들을 몰고 와 이곳에 풀어 방목을 할 때 철조망을 하고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만든 문이었구나. 그래서 그런가. 오는 도중 도중 절의 경내를 막아 논 거 같은 철조망이 보이고,

자세히 보면 쇠말뚝이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갈수록 꽃들은 빛깔이 짙어지더니 철쭉이 무더기로 혹은 뭉텅이로 끼리를 이루고 그 가운데로 멋진 산길이 지나가고 있다.
개중에는 꽃터널도 있었다. 산의 정상을 향한 능선 모두가 훨훨 불타는 꽃 대궐로 커다란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푸른 바탕에 진홍빛 무늬 비단을 깔아 놓은 듯도 한 것이 천국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듯, 갈수록 산정(山頂)의 화원은 그 색깔과 모양과 무리를 더해 간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말은 이를 두고 생긴 말 같다.
아, 살아 있는 기쁨이여. 땀 흘린 보람이여. 아름다음을 찾아낸 행복이여!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경치는 이를 두고 말함인가.
가까이 예쁜 꽃들
멀리 보니  더 아름답다.
꽃들이 더 고울 땐
닥지 닥지 모여 살 때
고운님
사시는 곳도
서로서로 꽃일 꺼야
            -서로가 꽃

여기는 바래봉 철쭉 군락지. 군락(群落)이란 말은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무리다. 나는 이 그 모습은커녕 그 말을 들은 지도 오래였다.
 그 철쭉 군락지는 팔랑치(八郞峙)가 절정이었다.
팔랑치란 삼한 중 마한왕이 달궁에 성을 쌓고 있을 때 8 장수를 시켜 적을 막던 고개라서 생긴 이름이다.
 옛날 양들이 뛰놀던 곳에 관광객을 위하여 나무다리를 만들어 놓았고, 거기 수많은 행락객들이 줄을 이어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꽃빛에 빨갛게 물들어 꼬물꼬물 움직이는 양들 같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아름다움을 찾아 오갈 때가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다. 그래 그런가. 만나는 사람마다 표정이 밝고 선량한 웃음을 뿌리고 있다. 천국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지- 하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음담패설이 들려온다.
"옛날에는 비아그라드라 했지만 지금은 달라. 일라그라드라 한다는 거야. 일어나거라 한다는 뜻이라나-, 하하."
꽃들도 수줍은 듯이 빨갛게 웃고 있었다.

전국은 지금 월경 중이다
녹색의 카펫에
가는 봄 수놓는 이
해인가
바람이던가
기다리는 마음인가
-누구인가

 지리산 바래봉 철쭉꽃 군락지가 절정을 이룬 그 한가운데에 있는 전망대에는 국립공원 지리산 안내판이 있다.

이 능선에서 저 능선으로 멀리 하늘과 맞닿은 파도치듯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그려 놓고 실제 능선을 향하여 화살표를 그려 놓은 것이다.
그 화살표를 따라 시선을 주면 흐린 날이라서 희미하나마 거기에는 우리들 산꾼의 마음을 뛰게 하는 천황봉이 있고, 뱀사골이 있고,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인다. 지리산은 보통 산을 넘어선다. 그 세계는 산이 아니라 산들이 사는 나라, 산국(山國)인 것이다. 이 바래봉 능선은 이렇게 그 전망으로도 이름이 난 곳이다.
백문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나는 여기에 내가 찍은 수백 장의 사진 중에 다만 몇 가지라도 남겨서 다시 올 수 없는 바래산을 기념하고 싶다. 나이도 그렇지만, 다시 또 가볼 곳이 한없이 많아서다.

 바래봉 가는 길을 거니는 것은 낭만적이요 목가적으로 그것은 하나의 그림이요, 시같이 아름다웠다.

초원만으로 된 녹색 옷을 입은 민둥산, 나무 하나 막아서지 않는 정상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바세계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완전히 빈 높은 스님을 보는 것 같다. 하나의 가림이 없이 모두를 드러내는 바리봉의 모습이나, 초지로만 된 정상을 향하여 난 고운 길 따라 곰실곰실 오르고 있는 양들과 같은 등산객들의 모습이, 우리가 그동안 보고 살던 세상 풍경과는 영- 다른 것이 삽상하기 그지없다.
 바래봉의 원 이름은 발악(鉢岳)이다. '발(鉢)'은 '바리때'로, 나무로 대접 같이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 스님들의 밥그릇인데 그 '바리'가 '바래'로 변음 된 것이다.
그런데 팔랑치 쪽에서 보면 바리때 모양보다는 스님이 쓰는 삿갓 같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발산, 바래봉, 삿갓봉이라고 한다. 이 바래봉은 운봉(雲峰)의 10경 중 , 발악 월경(鉢岳月磬)이라고 하는 곳이다. 바래 달빛 아래 경쇠 악기 소리라는 말이다.

1,100m의 바래산 삼거리에 이르렀더니 후미 담당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신선이나 맛볼 수 있다는 약수 바래봉 식수대가 있고 거기서 넉넉 잡고 20분이면 비록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 초지이지만 1,165m라는 정상을 밟고 작년 루사호를 뚫고 종주하던 감회를 다시 맛보련만 서두르는 가이드에게 언감생심(言敢生心)이지 거역할 수가 없다.
50대 초반의 이 사람은 투박한 인상과는 달리 암벽의 안내까지 겸할 수 있는 산꾼인데다가 유모어까지 갖추었다.
내가 본 그의 아름다운 모습은 비닐봉지를 들고 하산하면서 내내 탄식하거나 아무 불평 없이 등산로의 모든 휴지를 줍던 모습이다.
아름다운 사람 중에는 남이 지나간 자리까지 깨끗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구나. 그는 가이드를 넘어 움직이는 내 나라 사랑의 교과서였다.
 퇴직하고 용감하게 퇴직금을 헐어 남 아메리카를 제외한 5 대주 아름다운 먼 나라를 두루 찾아다녔다. 더 늙으면 가까운 이웃 나라를 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캐나다,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 호주 뉴질랜드, 인도차이나 반도 등등 아름다운 곳을 적지 않게 찾아 다녔다.
그냥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글로, 사진으로, 캠코더로 기록하고 그 여행기를 남겼다. 그것은 가볼 사람에게는 꿈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즐거운 추억을 주고 싶어서였다.
귀국할 때마다 한국의 섬과 산과 고장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서, 우리들에게 우리나라 어디에 있는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기록하며 나의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나의 눈에 감격하여 소리쳐 울고 싶도록 우리 산하는 아름다웠다. 남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보다 그들만큼은 우리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가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중에 하나가 오늘 보고 온 우리의 산하 바래봉 철쭉꽃이다.
이름 없는 산이 철쭉 하나로 이렇게 1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다면, 나도 더 열심히 나의 최선을 다하여 우리 산하를 찬양하는 그 아름다움의 하나가 되고 싶다.

▣ 바래봉 - 재미있는 바래봉 철쭉꽃 산행기 잘 보고 읽었습니다.
▣ 이승립 - "이름 없는 산이 철쭉 하나로 이렇게 1년에 단 한번만이라도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다면, 나도 더 열심히 나의 최선을 다하여 우리 산하를 찬양하는 그 아름다움의 하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이미 이루고 계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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