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153

마지막 생일 잔치/ 박재하 장인

마지막 생일잔치 박재하 翁(기미년 음. 3월 16일 생) 오늘은 우리 장인 어른 84세의 생신 날이다. 요번이 마지막 생신 잔치가 될지도 모른다 해서 군인간 큰손자(박해준)와 중국 유학간 손녀를 제외한 가족이 모두 모였다. 현관 신발을 정리하고 있는 둘째 처남 아들에게 물어 보니 전부 27켤레라 한다. 그 동안 아침마다 빠짐없이 뒷산 북한산을 오르시고, 평생 동안 술을 달고 사시면서도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셨는데, 요즈음은 담배도 끊으시고 힘이 예전 같지 않다 하시며 그렇게 좋아하시던 약주도 드시지 못하신다. 두어 달 전인가, 그 동안 건강을 자랑하시며 사시던 장인 어른이 갑자기 몸이 마르고 기침을 자주 하시고, 가래가 끓어 동네 병원을 찾아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 해서 간 S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딸의 편지/ 일만의 하루

아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지 2주가 되는 토요일 오후 외손녀와 함께 두 딸이 엄마 병문안을 왔다. 아울러 엄마의 병 수발을 하며 홀로 식사를 해결하여야 하는 이 아비를 걱정하며, 요번에는 둘째 딸이 아빠의 일주일 간의 찬거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병원은 큰 딸네가 지키고 있는 사이 둘째가 집에 와서 부지런히 콩나물국, 버섯무침, 장조림, 갈치조림 등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준비한 것은 내일부터 드시라고 하는 생각에서인지 우리들 저녁은 외식을 하러 가기로 하였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식사 값은 자기가 해결할 터이니 나더러 우선 내라고 한다. 누가 내던지 우리는 전처럼 저렴하고 맛있는 서민들이 몰리는 음식점을 가기로 하였다. 그곳이 일산에서 갈매기살로 유명한 대화동에 있는 임꺽정 집이었다. 식사 후 우리..

대통령 후보(候補)들

어제(2022. 2. 7)는 일산 미관 광장에서 하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 선거 유세에 다녀왔다. 광장이 너무 넓어서도 그랬지만 대략 1,000여 명쯤이 모였는데 사람들이 적게 모인 것아 보인다. 유세장에 간 것은 자유당 시절인 나의 고3 시절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신익희 후보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 아래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자유당 독재에 항거하며 싸우던 시절이으니 몇 년만인가? 금년도 마찬 가지 분위기였다.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 아래 똘똘 뭉쳐서 문재인 정권으로 부터 정권 교체를 하기 위해 둘로 나뉘어 서로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한창이다. 특이한 것은 민주당의 대선후보 이재명의 특이한 후보와 전 자기당 출신 윤석렬 검찰종장과의 대결 때문이다. 민주당 후보는 전과 4 범이요, 친형을 정신병자..

'오미 크론(O)'의 어원(語源)

'오미 크론'이란 무슨 뜻일까? 한 마디로 말해서 알파베트의 유래라고 하는 그리스 문자의 24자 중 15번째에 해당하는 'O(오미크론)'의 명칭이다. 세계 보건기구 WHA는 코로나의 변종이 나타날 때 발병 지명 등으로 명칭을 정하는 것이 국가나 지역의 명예를 주는 것을 꺼려서 그리스 문자를 순서대로 명칭을 정한 것이다. 그리스 문자(그리스어: Ελληνικό αλφάβητο 엘리니코 알파비토) 또는 희랍 문자(希臘文字)란 그리스어를 쓰는 데 사용되는 자모(子母) 문자인데 현대 서유럽과 동유럽의 거의 대부분 국가 문자에 영향을 끼친 문자다. 그리스 문자는 영어의 알파벹과 같이 자음과 모음이 따로 있는 자모 문자 중 가장 오래된 문자로, 자모 모양이나 수가 영어의 알파베트와 비슷하다. 우리가 그리스 문자인지..

컬링(Curlig) 경기 감상하기

컬링(Curling)을 흔히 빙판(氷板) 위의 체스(Chess)라고 한다. 컬링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팀 스포츠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설마 그럴까?' 하면서 1982년 초판 '동아 세계 대백과사전'에 컬링이 나올라고- 하며 찾아보았더니 있어서 그 일부를 요약해 보았다. 컬링(Curling)은 빙상 경기(氷上競技)의 하나다. 16세기경에 스코트 란드가 발상지인 이 겨울 단체 스포츠는 주로 연못이나 호수의 빙상(氷上)에서 손가락으로 쥐기 위해 돌(磨石)의 구멍을 뚫은 돌을 비 모양의 부롬(broom)으로 굴려 표적에 넣는 단체 스포츠로 캐나다를 거쳐서 북아메리카, 유럽 제국, 뉴질랜드에서 겨울 스포츠로 각광받아 오다가 1998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경기여..

보세란(C. sinense Willd Makino)

5년 전인가, 제자(弟子)의 누님이 경영한다는 소파 가게가 있어 소파를 주문했더니 배달해 오는 길에 동양 난을 선물로 받았으나 난(蘭)을 키운 경험이 없어 미안하게도 죽이고 말았다. 그 후 3~4년 전인가 갑장(甲長) 신형이 내 집에 방문하는 길에 선물로 받은 보세란이, 오늘 네 번째 꽃을 피워 우리 노부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음력 정월에 개화(開花)하는 꽃이라 하여 보세란이라고 하는 동양란(東洋蘭)이다. 난초(蘭草)는 초심자에게는 까다로운 꽃이어서, 햇볕을 자주 쬐어 주거나 물을 너무 주어도 안 되는 꽃이라는데 내 지극 정성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새해 정월(양 1, 2월)에 개화(開花)하므로 보세란(일명 鶴之花)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난초다. 보세란은 비교적 잎이 넓고 하나의..

나의 취미/ 스크랩(scrap)

나는 언제나 새벽 3시 30분쯤 일어나서 조간신문(朝刊新聞)을 보면서 스크랩(scrap) 하는 것으로 아침을 열며 산다. 朝鮮日報(조선일보)와 中央日報(중앙일보)를 보고 있는데, 내가 원하는 스크랩 자료는 조선일보가 더 많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문화(文化) 기사로 그 중 중요한 것은 내 스크랩 자료가 된다. 1961년 대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나의 취미 스크랩은 전에는 신문 기사를 오려서 스크랩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카메라 이미지 영상으로 한다. 그런 이미지가 한 5,000여 개가 넘었는데, 작년 이를 정리하던 과정에서 실수로 1/3 가량은 아깝게 잃고 지금은 3.500여 개에 스크랩을 부지런히 더해 가고 있다. 주로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이를 간단히 편집한 것에다가 찾아 보기 쉽게 그 제..

소수서원(紹修書院) 이야기

소수서원(紹修書院) 이야기/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 55호)을 가고 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書院))인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우리 창녕성씨(昌寧成氏) 종친회 따라 우리나라 선조 사적지 탐방을 가고 있다. 나는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우리 창녕성씨(昌寧成氏) 종중에 한없는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서원(紹修書院))에 대하여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이 기회에 소수서원을 중심으로 서원(書院))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 . *. 서원(書院) 이야기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講論) 하기도 하고, 석학(碩學) 또는 충절(忠絶)로 돌아가신 분을 제사 지내던 사학기관(私學機關)이 서원(書院)이다. 그 최초가 1543(중종 38)년에 풍기군수 주세붕(周..

勝於父(승어부)

우리네 같은 늙다리 부모 된 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뭐니 뭐니 해도 한 마디로 '勝於父(승어부)'란 말일 것 같다. '勝於父(승어부)'란 자식이 부모보다 낫다는 말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승어사(勝於師)'란 말과 함께 쓰이는 말이다. 여기서 '於'(어)는 어조사(語助辭)로 '보다'라는 말로 한역된다. 부모 된 입장에서는 자식(子息)들이 부모 생전(生前)에 나보다 더 아름답게 살면서, 나보다 더 출세하여, 더 좋은 집에서 걱정 없이 자식들과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는 것임 두 말할 나위 없는 모든 부모 된 이들이 바라는 최고의 꿈일 께다. 오늘은 우리 둘째 딸이 12시에 차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우리 내외를 모시로 온다는 전갈이 왔다. 둘째 딸 내외가 서울의 서울인 삼청동(三淸洞, 八判洞)에 1년 ..

독자(讀者)는 있다

독자(讀者)는 있다 내게는 나의 글을 열심히 읽어 주는 독자가 한 분이 있다. 고맙게도 끝까지, 몇 번씩이나 읽어 주는 독자가 한 사람이 있다. 그이가 바로 나다. 그런 나와 비슷한 독자 하나 구하지 못했다 해서 나의 갸륵한 절약으로 만난 목돈이 컴퓨터가 되고, 카메라가 되다가 여행이 되며 방황하였다. -후략 ‘자서’(自序) 나의 처녀 시문집 “하루가 아름다워질 때”의 서문이다. 작가는 글을 왜 쓰는가? 독자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작가가 책을 왜 만드는가? 일언이폐지하고 독자가 읽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수백 만원의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그 소중한 글을 책으로 내는 것이다. 그런 글을 나는 2,000 편 이상 쓴 것 같다. 그동안 나의 저서를 3 권 냈다. 1999년 8월 정년퇴직을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