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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德裕山, 1614m) 종주(중)

ilman 2023. 3. 27. 11:37


*. 덕유산 종주 들머리 백련사

삼공탐방지원센터→백련사→향적봉→남덕유산→영각사 26.7km[11시간 50분]
  덕유산 종주(德裕山縱走) 들머리는 '백련사'에서나 '영각사'. 아니면 백두대간의 '육십령(六十嶺)'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겨울철이라면 안전을 위하여 2박 3일로 종주(縱走)를 해야 하지만 낮이 긴 여름철이라도 준족이 아니라면 1박 2일을 해야 하는 총 26.7km의 거리다.
  세상 만물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는 법이다.
60령 종주(六十嶺縱走) 코스는 5.6km/3:30로 영각사 코스보다 먼 코스지만 완만한 등산길에 '서봉→동봉'까지 아우룰 수 있는 코스다. 그러나 이 코스로는 덕유산의 명물인 환상적인 700여 여 개의 환상적인 철계단을 밟아 볼 수 없이 종주를 위해서 삿갓봉으로 향하여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하여 영각사(英覺寺)의 3.3km 코스는 /능선이 시작되는 남강의 발원지인 '참샘터'까지가 너무나 지루한 너덜겅 길이지만, 남덕유의 멋과 함께 환상적인 철계단을 밟아 볼 수 있는 코스에다가 향적봉에서부터는 백련사 길이든, 곤돌라의 하산 길이든 교통이 편해서 아주 좋다.
이에 비하여 백련사 코스는 고진감래격(苦盡甘來格)이다.
향적봉까지 오르는 2.5m는 오름길로 너무나 힘들고 벅찬 가파른 길이지만 일단 주봉인 향적봉에 오르기만 하면 향적봉대피소를 지척에 두고 있다. 거기서부터 남덕유까지는 서서히 내리막길이라서 좌우의 전망을 즐기며 여유롭게 즐기면서 산행을 할 수 있지만 대신에 영각사에서의 교통편이 아주 불편하다.
위 육십령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두메산골 60령 고개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호랑이는 이상하게도 60명이 무리를 지어 넘어가면 잡아먹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60명이 넘어가는데 호랑이가 달려들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 아닌가. 용감한 사람이 하나 있어 물어 보았더니 호랑이가 대답하더란다.

'그렇다. 나는 60명이 넘는 사람을 헤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너희를 잡아먹게 된 것은 너희 60명 중에는 임신한 부인이 있어서다."

*. 덕유산 들머리 백련사(白蓮寺)

백련사(白蓮寺)는 해발 920m로 내가 알기에는 한국 절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중에 하나라는 '구천동 32경'에 해당하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백련사는 '구천동사(九千洞寺)'의 한 암자였는데 6.25 때에 소실되어 다시 지은 절이다.

  덕유산 일주문 바로 우측에 있는 매월당부도(지방문화제 43호)를 보니 매월당 김시습이 남기고 간 말이 생각난다.
'登山卽思學其高 臨水卽思學其淸 座石卽思學其堅 看松卽思學其貞 帶月卽思學其明 -雜著, 無思第一'(산에 오르거든 그 높이를 배우고, 물가에 임하거든 그 맑음을 배우고, 돌에 앉게 되면 그 견고함을 배우고, 소나무를 보거든 그 곧음을 배워야 하며, 달을 쳐다보거든 그 밝음을 배울 것을 생각하라.)
  이 절에는 한석봉(韓錫琫)이 썼다는 대웅전의 현판, 108 층계를 올라서 있는 사천왕문 앞의 서산대사의 수계사(授戒師)인 '일선대사(一禪大師)의 부도' 등이 유명하지만 그보다 북덕유산 산행 들머리로 더 유명해진 고찰이다.
그 등산길이 사찰 경내를 지나서 우측으로 멋진 나무다리가 숲 속으로 꼬부랑 쳐 들어가고 있다.
  오늘 오후부터 있다는 비 소식 때문인가. 등산길에는 산행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점심 식사도 걸은 체인데, 배낭은 묵중한 무개로 어깨를 짓누르는데 길은 계속 오름길이다. 겨울산 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 때문인가, 아니면 남향한 길이기 때문인지 눈길은 아니었다.
산은 중간쯤 올랐는가 싶은데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것도 계속되니 옷이 촉촉이 졎어오기 시작한다. 급히 우의를 입고 배낭 카바를 덮었다.
 등산복 하의 위에 걸친 방풍복이 이렇게 편한 줄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겠다. 남보다 더 자주 쉬어야 하는 나의 체력에 언제나 앉고 싶으면 어디서나 부담 없이 철퍼덕이니 말이다.

안내 책자에서는 오르는데 1시간 30분이라지만 너무 힘들어서 쉬엄쉬엄 오르느라고 3시간 이상이나 걸려서 드디어 갈림길이다. 이정표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우측으로 100m가 향적봉, 좌측으로 100m가 대피소.
"내일 새벽 일출을 찍으러 왔더니, 눈이 오네요."
"대신 설화를 구경하실 수 있으시지요."
  대피소 직원과 주고받던 말이었다.
평일에다가 눈비가 온다는 기상 예보 때문에 60명 수용 능력이 있다는 이 대피소(전화: 011-423-1452)에는 부산과 대전에서 온 분을 합하여 나까지 6명이었다. 따뜻한 온돌을 아침까지 켜 주었지만 밤새도록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 때문에도 그러하였지만 그보다 코 고는 소리에 잠 못 들어하는 대전에서 온 분의 요란한 불평소리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하릴없이 밖에 나가보면 강한 비바람이 치더니 새벽녘에는 눈이 오고 있었다.

*. 설천봉 상제루(上帝樓)

새벽밥을 해 먹고 나가 보니 눈은 그쳤지만 흐린 날씨에 일출 보기는 포기하였지만 출발할 수가 없었다. 눈 덮인 초행길을 혼자 나설 수 없어서였다.

9시 넘어 향적봉에 오르는데 갑자기 햇빛이 나타난다.
향적봉 주변에는 주목(朱木) 군락지가 있어서인가. 예로부터 은은한 향기가 그득히 '쌓여 있는 봉우리라서 향적봉(香積峰)이라 하였다는 봉이다.
사진사들의 촬영 장소라는 향적봉(香積峰), 1,614m)은 구름 속에 잠겼다.

그러다 간혹 구름사이에 언뜻언뜻 보이는 0.6km 저 아래 '설천봉'의 누각을 중심으로 한 일대의 모습이 천국을 훔쳐보는 듯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겠다고 설화 만발한 눈길을 밟고 차츰차츰 내려가다가 보니 설천봉(1,520m) 정상 마당이다. 가는 도중에 주목과 고사목과 주상나무와 바위에 설화만발한 모습이라니. 내 평생 이런 설화의 나라를 보기도 처음이지만 언제 다시 볼 것 같지도 않았다.
거기 고풍스러운 누각은 겉으로는 삼층인데 안에 들어가 보니 천장이 높은 하나의 층이다. 현판에 '上帝樓'를 보니 여기가 옥황상제가 계신 누각인가 보다. 그 누각을 두른 기둥은 간밤 내린 눈보라에 닥지닥지 둥근 구슬로 아롱지게 얼어붙은 것이 동화 속에서 듣던 영락없는 백옥루(白玉樓)였다.
 여기가 1990년대에 국립공원 한가운데를 200만 평이나 파헤쳐서 무주리조트를 지은 대표적인 자연 파궤의 장소라는 그동안의 생각보다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이룬 인간의 유미주의의 산물 같이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아름다웠다.
곤돌라는 강풍 속이라서인가 사람이 타지 않은 채 빈 곤돌라만 오르내리고 있다.

*. 강풍 주의보 속에 덕유산 종주

향적봉

종주를 위하여 다시 향적봉에 올라보니 하늘은 쾌정하게 맑아 있고 훼방 짓던 구름도 간 데가 없이 사방이 확 트여 있다.
강풍 때문에 시계가 넓어져 있었다. 서쪽은 광활한 벌판이요 북쪽으로는 가깝게는 덕유산 국립공원의 일부로 한국백경 중의 하나라는 적상산(赤裳山,1,034m)이 굽어보이고, 멀리로는 황산산, 계룡산이 보인다 한다.. 남쪽으로는 남덕유산까지 백두대산 줄기가 힘차고 변화무쌍하게 벋어가고 있고 그 뒤에 지리산 반야봉이 보인다. 그중 무엇보다 백미는 동쪽에 가야산 금오산 등의 산들이 펼쳐지는 산파(山波)다. 푸른빛이 감도는 산의 물결과 그 뒤에 거듭 중첩되는 저 산들의 능선들. 저것이 동쪽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의 풍경으로 구천동 33경 중에서도 으뜸을 자랑하고 있다는 곳이다. 그래서 덕유산 향적봉이 '사진작가의 산'이라고 하며 향적대피소의 투숙객의 80%가 사진작가란 말이 있었구나.

향적대피소 근처에 있는 송신탑을 지나서 향적봉에서 1km 거리에 있는 덕유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중봉(1594.3m)은 '오수자굴'로 해서 '백련사'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했다.
삼공탐방지원소→백련사→향적봉: 총 8.5km/3시간// 백련사→오수자굴→중봉→향적봉: 총 5.2km/2:20
  덕유산은 한반도 남쪽의 한복판을 남북으로 치닫는 능선으로 옛날에는 신라 백제의 국경선이요, 지금은 영호남을 나누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도경계선으로 평균 해발 높이가 1,000m를 훨씬 웃도는 능선길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다가 기상 예보대로 강풍주의보까지 겹친 남덕유로 가는 종주길은 몸을 가눌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었다.
그 중봉에서 송계 3거리까지는 1km의 거리지만 오르내리는 것이 연속된 길이었다.
이정표 때문에 '송계 3거리'로만 알려진 백암봉(白岩峰)은 횡경재를 넘어 신풍령(빼재)으로 가는 갈림길인데, 이 신풍령-백암봉-남덕유 동봉-서봉- 육십령까지가 백두대간 줄기였다.

  남덕유산을 향한 능선 길 내내 나는 겨울꽃 설화로 무장한 나무들의 열병식(閱兵式)을 받는 것 같았다. 키 작은 산죽이 머리에 눈꽃을 이고 강풍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은 어렸을 때 보던 어느 높은 사람을 환영하러 나와 나를 향해 흔드는. 하얀 깃발 같았다.
 너무 황홀하고 아름다운 이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디카 한 장 찍고 카메라와 거기서 뺀 배터리(5개)를 빼어 품에 품어 체온으로 덥히면서 600 컷 이산을 찍고 또 찍은 것 같다.
  몸을 가눌 수 없는 강풍과 손을 에는 추위에다가 카메라를 품고 배터리를 빼서 체온에 데우면서 내려오다 보니 스틱을 두고 내려왔다.
집에서 출발할 때 종주길에 무겁다고 아끼던 제일 가벼운 것으로 가져온 고가의 외제 명품 스틱이었다. 잃은 아쉬움보다 등산 내내 없는 불편함이 나를 괴롭힐 터인데 이를 어쩐다? 특히 하산 길과 눈길에는 더욱 필요한 것인데. 이럴 땐 인심이라도 쓰자 하는 마음에서 지나가는 산꾼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보이는 이정표가 있지요? 거기 내 고급 스틱을 두고 왔으니 당신이나 찾아 가지세요."
  덕유산 종주의 멋은 빤이 보이는 목적지 남덕유산을 바라보며 가는 산행이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이 돌아가는 산도 거의 없었고 앞에 보이는 까마득한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 가장 힘들었던 무룡산

 

 

  안성지구의 갈림길인 '동업령' 고개까지 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거기서 4.1km를 더 가야 하는 무룡산(1491.9m)을 가는 것은 이 종주길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다.
배낭에 넣은 수통은 꽁꽁 얼어붙어서 마실 수조차 없었고 따라서 점심은 어제처럼 그냥 지나친 지 오래여서 시장기가 엄습해 오는데 해가 막 낙조를 시작하고 있다. 일출 대신 낙조나 찍고 싶었으나 나뭇가지에 걸린 석양이라 부지런히 용을 써 정상에 오르지만 1,492m의 산이 생각처럼 정상을 내어주겠는가. 정상에 올랐을 때는 해는 벌써 검은 구름 속에 숨은 것도 같고 해가 진 것도 같다.
설화(雪花, 雪華)란 나뭇가지에 붙은 눈발로 우리들의 눈을 황홀하게 하는 것이지만 가만히 보니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하여 칼날 같이 얼어붙은 얼음이었다. 지천으로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바람에 나붓기는 이 설화는 지금은 나의 목마름을 해결하여 주는 식수원이요, 아이스케키였다.
설화가 얼어붙은 가지를 옆으로 들고 뜯어먹다 보니 뜯어먹는 갈비잔치를 산상에서 벌이는 것 같다.


  산속의 밤은 일찍 오는지 헬기장을 겸한 무룡산 정상에 도착하였을 때는 해드랜턴을 머리에 둘러야 했다. 아침에 갈아놓은 '배터리지만 해드렌튼의 여분을 하나 더 하나 가져올'껄 하는 공연한 걱정이 앞선다.
까만 하늘에는 별들이 그중에도 겨울별 카시오피아와 오리온좌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밤길이라서 내 뒤로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보니 힘들다고 눈을 감고 쉬거나, 실족이라도 하는 날에는 나무아미불- 나는 얼어 죽는 길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나기까지 하였다.
  어두움은 두려움도 몰아오는지-, 작년 지리산 피아골 가는 길에 곰을 만났을 때의 그림으로 보던 곰 대피요령까지 떠오른다. 이 길이 지리산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탐방로 11개 구간에 총 146개나 되는 다목적 위치표지판이 500m 간격으로 세워 놓았다. 그뿐 아니라 이동통화 불능 지역에는 중계기를 세워서 전면의 스위치를 누르면 전방 5m 내에서 통화가 스위치 한 번에 3분 정도로가능하도록 배려하여 놓았다.

무룡산에서 삿갓재대피소까지는 2.1km이었지만 빙판길 내림길에다가 스틱은 잃고 만 후인데다가 밤이라서 더 조심하느라고 밤 8시 가까이 돼서야 삿갓재대피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대피소는 삿갓봉 1km 바로 아래에 있는데, 향적대피소보다 더 크고(수용인원 67명 전화:011-423-1452 ?) 시설도 좋았다.
식수가 60m 가야 있다기에 피곤한 몸이 모든 것이 귀찮아져서 사먹기로 했다.
-식수(대) 2,000원, 햇반 3,000원, 담요 1,000원. 대피소요금 7,000원이었다.

 

                                                                                               - 2023 봄 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