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숨은 이야기

'칠갑산' 노래 이야기

ilman 2017. 4. 4. 11:21
  
    
*. 칠갑산과 노래 '칠갑산'
    
칠갑산(七甲山)에 갔더니 들에도 산에도 마을에도 내 마음속에도 '콩밭 매는 아낙네' 로 시작되는 칠갑산 노래로 가득하다.
거기서 나는 그 노래를 통하여 조운파 작곡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와 “옥경” 그리고 “칠갑산”을 작곡하여 무명의 가수였던 하수영과 태진아, 주병선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가 바로 조운파였다.
그는 작곡가며 서정시인으로 우리의 가요를 예술로 승화 시킨 사람이라고 음악계에서 평가 받는 사람들이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이 노래의 노랫말에는 콩밭 매는 한 많은 아낙네와, 이 홀어머니를 두고 울며 시집가는 어린 딸 두 여인이 등장한다.
아낙네는 남편을 여읜 화전민(火田民)의 아내로 너무나 가난해서 밥이나 굶지 말고 살라고, 어린 딸을 부자 집 민며느리로 보내면서 밭떼기를 받은 어미의 서러운 사연이 어린 노래라고도 한다.
이 구슬픈 노래 가락은 한 많던 우리 겨레의 심금을 울리어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민 가요의 하나로 불리게 되었다.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인 조운파 씨는 청양(靑陽)이 가까운 부여(夫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객지에서 살았다.
어느 비오는 날 완행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그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그때 가난 속에 살던 아낙네들의 기억이 노래화 한 것이 칠갑산 노래라 한다.
이렇게 쓰인 가사와 곡을 제자인 가수 윤상일에게 줘 취입토록 했으나 별다른 인기가 없이 거의 잊혀져 가던 10여 년 뒤였다.
주병선이 대학 시절 'MBC대학가요제'에서 '칠갑산(七甲山)'을 불러 금상을 타고 가요계에 데뷔하면서 칠갑산 노래는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게 되었다.
 거기에다 당시에 한창 유행이던 TV의 ‘주부가요 열창’ 에서 장애인 어느 가정부가 자기의 한(恨)을 호소하는 듯이 이 노래를 눈물로 열창하여 방청객은 물론 심사위원까지 울리면서 국민가요의 하나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노래는 중국 조선족들의 정서에도 맞아 교포들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하다가 김정일까지도 북한에서 자유롭게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게 한 ‘남한가요 20곡’ 하나로 선정 되기도 하였다.
 이 칠갑산의 주 등산로가 시작되는 한치고개도 '恨(원통할 '한')'과 '峙(고개 '치')에서 온 말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대치터널 고개를 말하지만 옛 '한치고개'란 칠갑산장과 한치(장승) 일대였다.

*. 구봉산과 칠갑산
  두메산골 청양에는 구봉산(九峰山 485m)과 칠갑산(七甲山 561m)이 있다.
이 두 산 때문에 사람들이 충남에서 가장 오지였던 청양(靑陽)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구봉산에는 전국 제1의 금광이 있었지만 그보다 1967년에 36살의 양창선씨가 낙반사고로 지하 125m 지하에 매몰되었다가 16일만에 구조되는 바람에 전국에 알려지게 된 산이 청양의 구봉산이다.
그렇게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지만 그 구출에 들인 막대한 비용 때문에 금광회사는 망하여 폐광하여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전 국민에게 청양(靑陽)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게 살아난 그 양창선씨는 지금쯤이면 80세일 터인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후 양씨는 갑자기 유명인이 되어 돈도 많이 벌었으나 가난하던 사람이라서 돈이 무서운 줄을 잊고 함부로 쓰고 다니다 가난한 옛날로 다시 돌아가서 외롭게 살다가 오도바이 사고로 비명횡사하여 유명(幽冥)을 달리했다는 소식이다.
그보다 청양을 전 국민에게 알린 것이 "콩밭 매는 아낙네야로 시작되는" 칠갑산이란 노래 다. 이를 보면 실감 나는 것이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