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

*정월 대보름(2월 5일, 일, 음력 1월 15일)

ilman 2023. 2. 3. 17:28

보름날 약밥 제도 신라 적 풍속이라

묵은 산채 삶아 내니  육미를 바꿀소냐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름 삭는  생률이라

먼저 불러 더위 팔기 달맞이 횃불혀기

흘러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농가월령가 정월령/ 정학유

1년에 열두 번 있는 보름 중에 명절(名節)로 치는 보름은  셋이다.

 정월 대보름(上元),  백중(百中, 음력 7. 15, 中元), 추석(秋夕, 음력 8. 15, 下元) 이 그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 셋 중 대보름을 가장 크게 쇠었다.

민속학자 최상수의 <한국의 세시풍속> 지를 보면 1년 세시풍속 189건 중 40건이 대보름과 관계가 있어 세시풍속 전체의 1/5이 넘는다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양력으로 바꿔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옛 어른들이 왜 이토록 대보름을 크게 생각했을까?

달의 움직임으로 하는 음력을 사용하는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 첫 번째 뜨는 보름달은 1월 1일 설날보다 더 가시적(可視的)이어서 중요한 뜻을 부여한 것 같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이 중시되던 옛날, 태양은 양(陽)으로 남성이요, 달은 음(陰)으로 여성이다.

하늘은 양(陽)이요 땅은 음(陰), 그래서 달과 대지는 음(陰)이어서 지모신(地母神)으로 출산력(出産力)을 가졌다고 믿었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기다리는 봄철 농사를 앞두고 풍년을 달에 빌던 것이 대보름이었다. 달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 대보름날의 민속(民俗)
  대보름 놀이에도 쥐불놀이, 달집 태우기 등 여러 가지 놀이가 있었다.
쥐불놀이 대보름 전날 논두렁 밭두렁의 마른풀에 붙어있는 농사에 해가 되는 잡균을 불태워 죽이는 것이지만, 놀이로는 깡통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게 구멍을 뚫어 불을 넣고 원(圓)을 그리며 돌리던 우리들 어린 시절의 놀이다.
달집 태우기란 음력 정월 보름날 저녁 달맞이를 할 때 달집에 불을 놓고 달을 향해 절하면서 자기 소원이나 금년에 풍년 등을 비는 달맞이 세시풍속 중의 하나다.
  *. 대보름의 절식(節食)

40~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보리고개라는 넘기 어려운 고개가 있었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철을 지나 봄보리 수확하가 전까지 식량이 부족하여서  농경사회를 살던 우리네;는 영양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오곡(五穀, 쌀, 보리, 콩, 조, 기장)에 꼭 끼어야 하는 것이 찹쌀과 콩이다.
찹쌀은 귀하기도 하지만 멥쌀보다 영양가가 높고 소화를 잘 시켜 주며 노화를 막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곡밥을 '보름밥', '농사 밥'이라고도 한다.

 콩도 밭에서 나오는 고기란 말이 있듯이 단백질이 41%나 있다 하지 않던가. 

상원(上元) 날인 대보름 절식으로는 그중에도 '약밥'을 먹었는데 약밥에는 대추, 밤, 잣, 꿀 등이 들어갔다. 이는 서민에게는 부담되는 일이어서 오곡밥으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개 보름 쇠 듯한다.'는 말이 있다.
달[月]이 음(陰)이라면 견공(犬公)은 양(陽)에 해당한다. '양극음(陽剋陰)'이라 해서  개는 대보름 떠오르는 달빛을 해하는 것이라 생각되어서 양의 기운을 줄이기 위해서 대보름에는 개를 일부러 굶겼기에 생긴 말이다.
  대보름이 되면 달맞이를 간다.
횃불을 켜들고 뜨는 달을 남보다 먼저 보기 위해 뒷동산에 올라간다. 달님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서다.
우리 조상들은 대보름날의 달빛은 어둠과, 질병과, 재액(災厄)을 밀어내는 힘이 있다고 믿어서 달님이 떠오르면 횃불을 땅에 꽂아 놓고 합장하며 떠오르는 달에게 그 해의 소원을 빌었다. 우리 민족의 광명 사상(光明思想)을 여기서도 엿볼 수가 있다.
 보름날 아침에는 오곡밥(五穀-)을 먹고, 어른들은 수하 자녀들에게 귀밝이 술이라는 이명주(耳明酒)를 한 잔씩 딸아 주어 마시게 하였다.

이른 아침 식사 전에 귀밝이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1년 동안 좋은 소식만 듣고 살면서 잡귀(雜鬼)를 막는다고 믿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셨다. 어린이에게는 입술에 술을 묻혀 주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귀밝이 술은 차게 하여 마셔야 하기 때문에 청주(淸酒)를 주로 마셨다

 대보름을 앞두면 우리네 어머니는 호두, 잣, 밤, 땅콩, 은행 등 부럼을 사다가 정월 보름날 저녁에 이를 깨뜨리게 하였다. 이를 부럼 깬다'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 조선일보)

 부럼은 부스럼의 준말로 몸에 생기는 종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옛날에는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부스럼이 많았다. 그런 부스럼을 막아주는 영양소가 부럼에는 쌀보다 수십 배로 많아 이를 미리 먹어 일 년 동안 부스럼을 예방하고자 하는 옛 조상의 지혜였다. 딱딱한 견과류를 깨뜨려 고치지방(固齒之方)이라 하여 이를 단단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대개 나이 수대로 깨물었는데 나이가 든 노인들은 앞 숫자를 빼기도 했다.  첫 번째 것은 먹지 않고 마당이나 지붕에 던져 버리고 두 번째 것부터 먹었다. 깨물 때는 어금니로 한 번에 깨물어 깨뜨려 먹어야 한다. 이가 없는 노인들은 무를 깨물어  부럼에 대신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호두, 잣, 밤, 땅콩 같은 부럼의 단단한 껍데기가 연약한 피부와 절묘하게 어울려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답교(踏橋)라 하여 다리밟기 놀이도 있었다..
보름날 밤 그 고장에서 가장 큰 다리나 오래된 다리를 찾아가서, 자기 나이 수대로 왕복하면 다리 병(脚病)이 없어진다는 풍속이다.
서울의 겨우 광통교(廣通橋)에서 시작하여 12 다리를 찾아가 모두 밟으면 그 해 12 달의 액운을 모두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교통기관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이라서 우리들의 다리가 그만큼 소중하였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도 대보름이 되면 어렸을 적  더위 팔기와 제웅 치기 하던 생각이 난다.

더위 팔기란 대보름날 해뜨기 전 이른 아침 친구 집에 찾아가서 '길동아!'  하는 식으로 친구 이름을 부른다.

친구가 멋모르고 대답하면 '내 더위 사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먼 데 더위'하고 외치면 그 친구 길동이에게 그해 자기 더위를 판 것이 된다.
그러니까 대보름날에 누가 부르면 대답 대신 '내 더위 사라.' 하면 부른 이가 오히려 더위를 사 가게 된다.
이렇게 응수하는 것을 '학(謔)'이라 하였다. 물론 동년배끼리의 이야기다.

 제웅 치기란 놀이도 있었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 해의 운수를 맡아보는 제웅직성(--直星)이란 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 해는 9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데 남자는 10세부터, 여성은 11살부터 들기 시작한다. 그런 나이의 해는 '액(厄)이 있는 불길한 해'로 여겼다. 

그래서 제웅을 만들어 제웅의 머리, 가슴, 팔, 다리에 동전을 넣고 이름과 출생년의 간지(干支)를 적어서 정월 14일 초저녁에 길가에 버리면 제웅의 동전을 가져가는 사람이 그 액(厄)을 가져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내 어렸을 때 눈 다래끼가 나면 눈썹을 빼서 길가 돌 틈에 넣어 지나가는 사람이 모르고 차고 가게 하였는데 같은 이치라 생각된다. 생각해 보면 바람직한 미풍양속은 아닌 것 같다.

설 세배나 풍속 등은 대보름까지 이어지는데, 그 차이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설이 개인적 폐쇄적 수직적인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개방적, 집단적, 수평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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