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화엄사(華嚴寺)

ilman 2022. 11. 23. 13:51

*. 우리 가족 국내 여행

23일의 가족 여행을 떠난다. 손주는 물론 사위와 며느리를 모두 빼고 오리지널 다섯 식구만으로 국내 여행을 떠난다.
차는 우리 아들이 늙으신 부모님 여행을 도와주기 위해서 구입하였다는 최신 형
7인승 새 차를 타고 구례(求禮), 하동(河東), 산청(山淸) 일원을 둘러보러 가족여행을 떠난다.

구례에서는 '화엄사(華嚴寺)', 하동에서는 '쌍계사(雙溪寺)', 산청에서는 '동의보감촌(東醫寶鑑村)' 일원을 둘러보고 올 계획이다. 이렇게  5 식구만의 여행은 작년 남해 여행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의 산은 절을 품고 산다. 화엄사, 통도사, 송광사, 해인사, 백담사, 법주사 등이 지리산(1915m), 영취산(m),  조계산(884m), 가야산(1,430m), 설악산(1,709m), 속리산(1,057.7m)에 사는 사찰들이다. 그래서 산의 이름이 절 이름이요, 사찰 이름이 산 이름인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등산길에 들어서면 정상 가기가 바빠서 대개는 절을 그냥 지나치기 일상이고, 하산 길에도 귀가를 서두르다 보면 또 지나치게 된다. 그 절들이 이 산의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전설을 고이 간직하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산이 버거우게 되는 나이가 되어보라. 그동안 외면해 오던 산을 그리게 되는-. 그때 산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식사는 휴게소에서 간단히 먹지-, 하고 이른 새벽에 서울을 떠나 오다 보니 며느리가 밤새워 정성껏 싸준 김밥과 커피 때문에  오히려 여행지의 낯선 고장에서 만나게 되는 먹는 즐거움은 물론, 끽다의 멋마저 앗아가 버렸다고 공 없이 즐거운 비명들이다. 아들 녀석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최신식 신형 자동차의 새로운  AI 성능 자랑이 듣기에 싫지 않고 반갑다. 고속도로에서는 자기가 알아서 좌우 앞뒤를 살펴 가며 모든 것을 차가 자동으로 챙기며 운전을 돕고 있다. 그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구례(求禮)'는 삼국 시대 시절 백제 땅에 속할 때 지명을 '(仇次禮縣)'이라 했다는 것을 보면 그 이름의 역사도 유구함을 알겠다.

. *. 화엄사(華嚴寺), 이야기

  오늘날 구례는 1읍에 8개 면을 거느린 인구 2만 6,000여 명이 사는 11㎢ 넓이의 군(郡)이다.

 그런데 화엄사(華嚴寺)의 화엄이란 무슨 뜻일까? '우리말 큰사전'에게 물어보았다.

화엄(華嚴) :화엄경, 화엄종의 준말로, 만행 만덕을 닦아 덕과를 장엄하게 하는 일, 

화엄경(華嚴經): 화엄 만행(萬行)으로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 도를 이룬 뒤 이해가 되던 날 깨달은 대로 부처가 설한 경문으로 불교의 가장 높은 교리가 된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 진흥왕 5년에 인도의 연기 대사(緣起祖師)에 의해 창건된 호남 제1의 사찰이다.
그 후 자장율사와 도선국사에 의해 중건되어 번성하다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 화엄사가 중심이 되어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하여  석주관(石柱關)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주지 설 옹이 전사를 하였다.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加籐淸正)이 화엄사를 불태우는 바람에 화엄사와 부속 암자 81가 전소하였다. 

인조 때 벽암(碧巖) 선사와 문도들이 화엄사와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 때 계파 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짓기 시작하여 인조 14년(1636년) 중건된 절이 오늘의 화엄사(華嚴寺)다.

*. 화엄사 경내 볼거리 코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보제루를 끼고 돈다.> 앞마당 높이 쌓아 올린 대석단을 중심으로 >

아래는 승방과 강원 등의 수행 공간>

위로는 각황전과 대웅전을 비롯한 예불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4 사자 삼층석탑, 공양탑 > 연기 존자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서려 잇는 효대> 원통전 앞의 사자탑(사자 감로 탑)>각황전 앞의 화엄 석등 >동-서 석탑 > 대웅전 뒤편의 숲 속의 대숲 오솔길. 따라 130m에 > 천불전> 모과나무 자연 그대로의 기둥이 독특한 구층암(九層庵)은 화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 화엄사 보물들 이야기
 화엄사는 그 어느 사찰보다 빛나는 문화유산을 많이 간직한 천년 고찰이다.

국보 5점, 보물 7점, 지방문화재 2점 등등의 귀중한 문화재를 비롯해서,  '올벚나무'와 '매화'는 살아 있는 천연기념물(1,040호)로 사진작가를 유혹하고 있다. 

  다음은 보물 505호인 화엄사가 소장하고 있는  각황전을 비롯한 화엄사의 5개의 국보를 위에서 말한 관광 코소별로 하는  소개 이야기다.


*. 각황전(覺皇殿, 국보 67호)
.이야기

불타기 전의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의 옛 이름은 '장육전'이었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은 숙종 28년(1702)년에 계파 선사(桂波禪師)가 중건한 대 불전이다.

원래 전각의 사방 벽에 화엄석경(華嚴石經)이 새겨져 있던 장육전(丈六殿)이 있었으나 정유재란(丁酉再亂 )에 왜장 가등청정에 의해서 불타 없어졌다.  장육전 중창 불사는 영조의 모친 숙빈 최 씨도 동참하여 숙종 25년에 시작하여  3년 뒤에 완공하였다.

각황전(覺皇殿)의 '각황(覺皇)'은 부처님을 깨달은 왕이라는 뜻과,  숙종(肅宗) 임금에게 불교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연관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계파 선사가 장육전을 중창하려고 백일기도를 한 지  99일째에 '물과 밀가루가 들어 있는 두 항아리에 손을 담가 손에 묻지 않는 자가 화주승(化主僧)이다.'라는 꿈을 꾸었다. 이에 따라 공양주 스님으로 계하 선사가 화주승으로 뽑혔다. 아무 재산도 갖지 못한 계파 공양주 스님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경을 읽는 것과 기원뿐이었다. 대웅전에서 기도하던 100일째 회향(廻向)하는 날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나타나 말씀하시는 것이 '이른 새벽 절에서 나가 첫 번째 만나는 자가 시주 자니라.' 하였다. 스님이 새벽 일찍 걸망을 지고 산문을 나섰는데 불행하게도 처음 만난 사람은 산사에서 잔심부름하는 거지 노파였다. 

노파는 스님이 하두 하는 간곡한 부탁에 얼떨결에 허락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노파는 자신은 가난 중에도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 화엄사를 향해 합장 기도하며 '다음 생애는 왕궁에서 태어나 저로 하여금 공양할 수 있게 하소서. 하며  소(沼)에 몸을 던져 헌신 공양(獻身供養)을 하고 말았다.

 6년 뒤 일이었다. 숙종의 딸로 손을 마음대로 펴지 못하는 공주가 태어나 나라의 근심 거리가 되어 살다가, 벽파  스님을 만나자 공주의 손이 펴졌는데, 공주의 손바닥에 '장육전(丈六殿)'이란  세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보고 스님은 시주 노파가 공주로 환생하였음을 알고 왕께 말씀 올리자, 숙종(肅宗)도 이에 감탄하여 장육전 건설의 불사를 지시하여 오늘날의 각황전을 완공할 수 있었다.                                                                   -출처 : '각황전' 앞 소개 글

 

* 각황전 앞 석등( 覺皇殿 앞 石燈)

각황사 앞 석등은 전체 높이 6.4m로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석등(石燈)이다.

 석등을 일명 광명 등(光明燈)이라고도 하는데, 절의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운다. 이 등은 활짝 핀 연꽃 조각의 소박미와 함께 통일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 사 사자 3층 석탑(四師子三層石塔 국보)
 화엄사 소나무 숲에 있는 이 석탑의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네 개의 기둥으로 받쳐 놓은 탑으로, 네 마리 사자는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어머니라 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이곳을 '표대'라고 한다.
지붕을 살짝 들어 올린 섬세한 아름다움은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의 걸작으로 추측된다.  국보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쌍벽을 이루어 견줄만한 걸작의 석탑이라 한다.

*. 화엄사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樘, 국보 301)':

 조선 효종 때 만들었다는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樘, 국보 301)은 석가가 영축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靈山會上)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그려서 당간지주에 걸게 만든 불상을 말하는데 이를 탱화라고도 한다. 

  이 괘불은 각 상들의 균형 잡힌 형태가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로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 장식 등에서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 좌상(木毘盧蔗那三身佛座像, 국보제 336호)

2021년에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의 '법신(法身)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 '보신(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화신(化身) 석가불(釋迦佛) 삼존상'을 말하는데,  이런 삼신불 조각 작품으로는 유일한 문화재다.  
 이 삼신불(三身佛)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하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12년 동안 조성한 것이다.
삼신불은 화려한 연꽃무늬의 연화대좌와 팔각의 목조 대좌에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화엄사 보물(寶物)들
 화엄사의 보물로는  각황전 다음으로 큰 건물인 대웅전(보물 299호)을 비롯하여, 동과 서에 오층 석탑(보물 132, 133호),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300), 화엄석경 (1040호), 화엄사 대웅전 삼신 불탱(1363호) 등등.

 *. 구층암(九層庵)

 화엄사를 가서 많은 사람들의 빼놓고 오는 화엄사 볼거리 중에 하나가 화엄사 '9 층암'이다. 있는 곳이 뚝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몰라서다.
이 사람도 그랬다. 멀다고 생각해서 허리를 핑계하고 그냥 돌아왔다가 숙소가 다행히 절 근처여서 새벽녘에 다시 찾았더니 대웅전 뒤 대나무 오솔길 입구에서 130m 걸어서 10분 거리여서 다녀 오게 되었다.
절에는 암자마다 주지가 있는 모양이어서 차 대접을 푸짐하게 받고 왔다.
승방 건물의 자연 그대로의  고색창연한 모과나무 기둥도 그러했지만,   9층이 아닌 허물어진 3층 정도의 고탑이 있는 암자로 , 찻집을 겸하는 것 같았다.  그 옆에 천불암 앞에 9층 탑의 이름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32호라는데  이 9 층탑이 그러한가, 천불전 앞 석등이 그러한가 묻지 않고 온 내가 답답하다. 


                                                             -2022. 11. 26 

                                                                다음 가족여행 2  산청의 '동의보감 촌(東醫寶鑑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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