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나의 행복했던 어느 날

ilman 2023. 11. 24. 12:07
나의 행복했던 어느 날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새아기 친정에서  산후  AS를 받다가 이 할아버지 집을 찾아온 우리 친 손자를 처음 안아본 날이요, 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과분하게 받은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큰 사전).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도 부족감이 없는 상태"(국어대사전)
그 행복은 내적으로만 오는지 알았더니 외적으로도 오는구나.

  오늘 우리 손자 오기 전보다 앞서 만난 행복은 수석(壽石)과의 만남이었다.
  수석을 찾아 산야를 헤매며 탐석하는 경험은 몇 번이 안되지만, 견지낚시에 미쳐 수석이 한창일 때를 놓쳤다고 후회하며 살던 나에게 명석(名石)이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스스로 걸어 오늘 내게로 왔다.
 우리 아파트에서 아내가 사귄 같은 또래의 부인이 우리 집에 있는 수석을 보고, 이것도 수석이냐며 준 좌대에 모신 7점이다.
이 수석들은 우리 집에 있는 어느 것보다도 뛰어난 오석(
烏石)이요, 산수경석(山水景石)으로 수석다운 수석(壽石) 이었다.
그 부인은 병약한 출가한 딸을 집으로 대려와 말이 더딘 손자와 함께 사는 분으로 미국 영주권을 갖고도 남편과 함께 하지 않고 외 손자에 묶여 사는 60대 중반의 부인으로 나의 저서를 열심히 읽어주는 부인이기도 하였다.
수석을 주면서 '그동안 내가 실컷 보았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라 하면서-.' 항상 해맑게 웃으며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기를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젊어서의 나를 수석(壽石)에 비겨 쓴 시가 있다.

갔다 와서도
다시 또 찾아가서도
언제나 바위처럼
산과 함께 살고 싶어
산처럼
바위를 곁에 두고 싶어
산길에 뒹구는
돌멩이 하나
수석이라 주워 왔더니,
오석(烏石)이 아니라 한다.
경석(景石) 아니라 한다.
물형(物形)도
석질(石質)도 없는
나 같은
평범한 돌멩이라 한다.
                        -자화상


'한국의 수석미'(장준근)에 의하면 '수석이란 두 손으로 들 정도 이하의 작은 자연석으로 산수의 경치가 축소되어 있고, 기묘함을 나타내고 회화적인 색채와 무늬가 조화를 이루고, 환상적인 추상미를 발산하는 것으로서 시정(詩情)이 함축되어 있으며 정서적인 감흥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하였다.
  옛날 50대 서울 장위동에서 살 때 우리 집 앞에, 젊었을 때 광산에서 일하였다는 70대 노인이 기형적으로 키가 작아 장가를 가지 못하고 있는 40대의 막내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열려 있는 대문을 통하여 보니 가꾸지 않은 초라한 정원이 보이는데 석순(石筍)으로 화단 둘레를 둘러 놓았다. 

그 석순이 욕심이 나서 큰 수박 두 덩어리를 사들고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더니 쾌히 허락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동굴에서 1cm 자라는데 200년이 걸린다는 이 석순은 높이가 23cm나 되는 것으로 신기하게도 잘래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밑을 가지고 있는 수석이었다.
붙은 시멘트를 조심스레 떼어내고 청산가리를 사다가 이물질을 닦아낼 그때 나는 얼마나 행복하였던지.
그런 행복이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아내 친구가 내게 선사한 것은 수석이 아니라 그 앞에 서면 언제나 계속될 행복이 될 것 같다. 옛 선인들이 애완하던 돌이 현재까지 전해 오면 이를 전래석(傳來石)이라 한다. 전래석은 유래가 있는 돌로 명인의 손길을 거쳐야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손자가 우리 아버지 제사날에 태어나더니, 이 반가운 돌이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맞추어 이 할아버지 집에 처음 찾아왔으니  고이 손때로 간직하다가 내 죽은 후에는 손자에게 전래석(傳來石)으로 전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