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조* (時調)☎

전설 속의 ilman의 시조(時調)들

ilman 2022. 3. 11. 10:51

*.삼천포로 빠지다/ 삼천포에서


진주 장터 가려던

옛날에 장돌뱅이

길 잘못 들어서서 삼천포장 가는 바람에

장사를

망쳐 버렸네,

삼천포로 빠져서

야기의 주인공이 해군이 되기도 하고, 부산에서 기차 타고 잠자고 가다가 갈아타지 못한 술꾼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길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남해안 따라 개설된 아스팔트 도로로 잘 달려가던 버스가, 삼천포로 향하는 열악한 비포장도로로 바뀌었을 때 이야기라는 말도 있다.

*. 해미  읍성(海美邑城)


강요하는 배교(背敎)라도 천주(天主)님을 버릴 수야.

육신은 찢어지고 고문으로 사라져도

신자들

천주님 부르며

이 몸 주고 영생 찾네.


 천
주교 신자들을 가두어 두었다는 움푹 패인 감옥 터에는 돌무더기뿐인데 순교한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듯 오석으로 '순국기념비'가 서있고, 거기에 그 무렵 잔인했던 어두운 역사의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해미읍성: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사적 제116호로 조선 성종 22년에 축성.

읍성은 성곽 둘레가 1.8km 진남문을 비롯한 4대 문과 관아문, 동헌, 객사 터, 망루 등이 있다.


*. 팔세시(八歲詩)/ 화석정(花石亭) 경기도 파주 *화석정

 

八 歲 賦 詩

林亭秋己晩 騷客意無窮(임정추이만 소객의무궁)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원수연천벽 상풍향일홍)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산토고윤월 강함만리풍)

塞鴻何處去 聲斷暮 雲中(새홍하처거 성단묘운중)

                                        -율곡 이이

정자에 가을 되니 열어주는 나그네 마음.

푸른 하늘 강산이 토해 내는 바람과 달

단풍 든

저녁놀 속에

끊어지는 홍안(鴻雁) 소리.

                                          - ilman 역

*화석정: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 申師 任堂 > 유적지 정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


*. 이율곡 선생 탄생 설화/ 경기도 파주 자운 서원

 

서울 사시던 아버지가 청룡 황룡 꿈을 꾸고

사임당 찾아갈 제 대관령 주모 유혹했지만

용꿈을

그대로 안고

아내 찾아 운우지락(雲雨之樂).


서울 가던 이(李) 선비 대관령 주모(酒母) 유혹했지만

그 주모 시기가 다르다고 거절하고 말았다지-

하마면

이율곡 선비

주모(酒母) 아들 될 뻔했네.

름다운 곳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하듯이 위대한 인물에게 전설이 없을 수 있을까.

'율곡의 탄생담'에는 다음 같은 일화(逸話)도 있다.

사임당이 33세 되던 어느 봄날 꿈속에서 동해 바닷가에 갔을 때였다. 바다 속으로부터 한 선녀가 옥동자를 안고 불쑥- 나와 부인의 품에 안겨주는 꿈을 꾸고 아기를 잉태하였다. 그해 12월 26일 새벽이었다. 흑룡(黑龍)이 바다에서 날아와 부인의 침실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강릉 오죽헌에서 아기를 낳았으니 그가 바로 셋째 아들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이다.
그래서 아명(兒名)을 태몽에 용이 보였다 하여 보일 '見(현)', 용 '龍(용)' '현용(見龍)'이라 하였다.


*. 할미바위 전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장보고(張保皐) 명을 받고 '승언' 장군 출정한 후

기다리던 아내 '미도' 눈물로 흘린 세월

그 단심(丹心)

할미, 할아비 바위로

낙조(落照) 되어지고 있다.

지 해수욕장은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화지(花池) 해수욕장'이라고도 한다.
길이 3.2km, 폭 300m의 백 사장을 거느리고 있다. 봄이 오면 긴 해안선 따라 붉은 해당화와 매화꽃이 피는 고장이라서 꽃 '花(화)', 못 '池(지)'라 하였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사이로 넘어가는 꽃빛 노을이 바다와 송림과 어울린 모습에서인 것도 같다. 꽃지바다 노을을 '태안 8경'이라고 한다.


*우(禹)씨 시조 전설/ 단양

소백산 두 남매가 짝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산에서 맷돌 굴려 떨어지지 않으면

부부가

되기로 해서

우씨 조상되었다네

 
 단
양 우 씨 시조는 고려(高麗) 초 중국(中國)에서 건너와 단양에 정착하여 살던 우 현(禹 玄)이란 분이고, 역동 우탁은 우씨 가문을 빛낸 그 후손이니 중시도(中始祖)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그분이 남긴 2수의 시조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 문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실감하게 한다. 그 시조 한 수가 사인암(舍人巖)에 다음 그림과 같이 전한다.

 

*. 사인암(舍人巖)/ 충북 단양


卓爾不群(탁이불군)

確乎不拔(확호불발)

獨立不懼(독립불구)

遯世無憫(둔세무민)

          -역동 우탁


많다고 뛰어나랴. 의연한 저 모습이여

홀로 서도 은거해도 근심 걱정 전혀 없이

사인암

단양에 서서

세월을 낛고 있다

                          - ilman

 위 한시를 꼼꼼히 살펴보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중국의 고사 성어를 그냥 늘어놓은 한시이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중국 고사를 인용하여 시를 읊조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더라도 너무하다. 위 시는 역동 선생의 이름을 훼손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너무 그대로 짜 맞춘 한시(漢詩)다. 거의 모두가 고사성어니 말이다. 그래서 한문을 한다는 사람조차 그 해석에 곤혹스러움을 주고 있다. 사전에 나오는 다음 예를 보자.*卓爾不群(탁이불군): 높이 뛰어나서 일반사람과 다름(논어), *確乎不拔(확호불발):매우 단단하고 굳세어서 흔들리지 않음(논어) 遯世(둔세):세상을 피해 삶(易經)

 

*사인암: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에 있는 단양 팔경의 하나. 인(舍人)이란 고려시대 정 4품에 해당하는 벼슬 이름으로 사인 벼슬을 지낸 역동 우탁(易東 禹倬) 선생을 기려 이조 성종 때 임제광 단양 군수가 이름 한 바위다.


*. 바둑/ 충북 단양 사인암 석국(石局)

 

예 놀던 선비 모셔

우리 둘 다 신선되어

선비는 옛날 걸고

나는 오늘 걸고

사인암

보는 앞에서

바둑 한 판 두고 지고.

 사인암은 옛날 서애 유성용(柳成龍)이 나라님으로부터 하사 받은 호피(虎皮) 한 장을 팔아서 이 일대를 사서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9谷)을 본떠 '운선구곡(雲仙九谷)'이라고 하며 노닐었다는 곳이다.

이 사인암을 읊은 한시가 친필로 사인암 바위에 각자(刻字) 되어 있다. 그 앞 너럭바위에는 장기판과 바둑판(石局)이 아로새겨져 있다.


*. 장기(將棋)/ 충북 단양군 사인암

 

세상이 장기판이라면

어느 말이 내 말일까?

마상(馬象)일까 사졸(士卒)일까?

장(將)은 분명 아닐 테고.

제자리

지키고 있는

차포(車包) 정도나 되었으면.

*. 시묘살이/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백수(白手)로 살면서도 성묘도 안 간 사람

여막(廬幕)을 살펴보니 불효자 보이네요.

효도(孝道)란

미루는 게 아닌 걸

후회하는 불효자가.

신이 묻혀 있는 곳에 죽은 사람의 혼이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 우리의 조상들은 상을 당하면 성분(成墳)한 다음 그 서쪽 묘 아래에 여막(廬幕)을 짓고 상주가 3년 동안 시묘(侍墓) 살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여막(廬幕)은 반 칸 정도의 크기로 그 속에는 짚으로 3면을 가리고 거적을 펴놓고 짚 베개를 만들어 놓는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훼손하지 않은 것이(不敢毁損) 효도의 시작이라 하여 시묘 살이 하는 동안에는, 머리와 수염을 일체 깎지 않고 아침 점심 저녁에 때를 맞추어 부모님 묘에 공양을 올리고 절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무덤을 관리하였다.

선비들은 남은 시간에 글을 읽거나 과거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옷가지와 시묘에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가끔 집에 가기도 하였다


*. 삼성혈 전설/ 제주도

 

삼성혈(三姓穴)의 삼을라(三乙那)가

사냥하며 살아가다가

목함(木函)을 타고 온 벽랑국 공주 만나

혼인한

이후로부터

농 목축(農牧畜)하며 살았데요. 

 

날 이 섬의 삼성혈(三姓穴)에서 솟아나서 사냥하며 살던 제주도의 양, 고, 부 씨 세 시조(始祖)가 있었다.
어느 날 바닷가에 갔더니 나무로 만든 함(函)이 있어 열어보니 오곡과 육축(肉畜)의 종자를 가지고 온 세 여인이 있었다. 기뻐하며 맞아 각각 아내를 삼아 이로부터 농업과 목축업을 하며 살게 되었다.


*. 용두암(龍頭巖) 전설/ 제주도

 

백록담 용 한 마리,

옥구슬 훔쳐 물고

용연(龍淵)에 이르러 하늘로 승천하다가

산신령

노여움으로

활에 맞은 용두암(龍頭岩)


*. 삼방산(山房山) 전설

 

한라산 봉우리 베고 잠드신 옥황상제(玉皇上帝)

사냥꾼 쏜 화살 궁둥이에 맞았구나.

옥황(玉皇)

대로(大怒)하여서

뽑아 던진 봉우리

산 이은상 시조시인도 이 산방석굴을 보고 ‘탐라 기행’에다가 이런 시를 남겼다.


어여쁜 山房德이 굴속에 들어 바위 되고
님 그려 솟는 눈물
바위틈에 샘이 되어

 밤낮에 울고 우나니, 상사천(相思泉)이라 부를 거나


*. 도깨비 도로/ 제주도

 

물 부어도 올라가고

병 굴려도 올라가는

믿거나 말거나 한 불가사의 고갯길

신비한

저 도깨비 길

즐거운 착시 현상

주에서 어승생 오름 쪽 길 1,100 도로를 가다 보면 신비의 도로라는 '도깨비 도로'가 100m쯤 계속된다.

어느 운전사가 이 도로에 차를 세워 두고 소피小避)를 보고 와서 보니 차가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더란다. 그렇게  하여 도깨비 도로가 발견되었다 한다. 제주도에 이런 길이 하나 더 있다는데, 나의 중국 여행길 거기서도 본 경험이 있다.


*. 제주 총석정(叢石亭)/ 제주 중문의 주상절리

 

총석정(叢石亭) 해금강(海金剛)이

제주에도 있었구나

두고 온 산하를 두고두고 그리더니

그 기둥

그 바위 보며

우리 서로 반긴다


*. 매화/ 서귀포
분재원에서

 

한라산선 온종일 흰 눈만 밟았는데

서귀포엔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였네.

겨울에

봄을 만나니

겨울인가 봄인가.

선조 때 노계 박인로가 지은 '선상탄(船上嘆')이란 가사가 있다.

“---어즈버 생각하니 徐市 等이 已甚(이심)하다/人臣(인신)이 되야셔 亡命(망명)도 하는 것가/ 神仙을 못 보거든 수이나 도라오면/ 舟師(주사) 이 시럼은 전혀 업게 삼 길렀다”

임진왜란 때 노계가 선주사란 벼슬을 띠고 선상에 서서 진시황의 신하 서불(徐市)을 원망하는 가사(歌辭)다.

서불(徐市)이란 지시황의 신하로 동남동녀 500명을 거느리고 삼신산 한라산임)에 있다는 불로초를 캐러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 가서 일본의 시조가 되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 서불(徐市)이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일명 영주산)에 불로초를 캐러 왔다가 서(西) 쪽으로 돌아간(歸) 물가(浦)라 하여 서귀포(西歸浦)라 하였다.


*. 백마강(白馬江) 전설/ 충남 부여


나당(羅唐) 연합군 쳐들어 와 백마강 도하작전을

백제 수호(守護) 용 한 마리 안개로 막을 때

소정방(蘇定方)

백마(白馬)의 머리로

용을 낚은 백마강

 부여 고란사(皐蘭寺) 선착장 바로 위에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는 '조룡대(釣龍臺)'가 있어 백마강(白馬江)이라 이름 한 그 유래를 말해 주고 있다.

낙화암 높은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란 정자가 있다. 삼천궁녀의 고귀한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扶風詩社)라는 부안시의 시 모임에서 세운 것이다.


*. 군신 간의 사랑/ 대구 팔공산 표충사

 

나라가 임금인 시절, 나라님께 바친 머리

금빛보다 빛나는 평산 신 씨(平山申氏) 명가 얼굴

팔공산

이름에 묻혀

길이 빛날 충절이여

 표충단 경내에는 이 충신을 기념하는 수령 400년의 왕건 나무, 신숭겸 나무가 있어 이 충절의 상징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높은 충의를 기리고 있다.

 영정을 모신 재실에 들어가니 평산 신씨 후손들이 춘천에 있는 장절공 묘소 앞에서 제향을 지내고 있는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 있는데 묘가 이상하게도 셋이나 된다. 누구누구의 묘일까.

그때 장절공이 전사한 이곳에서 시신을 찾고 보니 신장군의 머리는 견훤이 잘라가 버린 후였다.
이에 태조 왕건은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없어진 머리를 금(金)으로 만들어 고이 모시어 그 한을 달래면서, 행여 이를 탐하는 자 있을까 보아, 어느 것인지 모르게 봉분을 셋으로 하였다 하니, 천년 전의 왕의 애통과 군신 간의 깊은 사랑이 이 노(老) 시인의 심금을 울려 주는구나.


*. 로또 기원/ 대구 팔공산 갓바위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웅 되게 비나이다

서민의 영웅으로 성길동(成吉東)이 되어이다.

가난에

복을 나눠 주는

활빈당(活貧黨)이 되고 싶어.

 대구 험준한 팔공산 관봉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 대사가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신라 선덕여왕 7년에 조성하였다고 전해온다.

 전설에 의하면 의현대사가 이 돌부처를 만드는 동안 밤마다 큰 학이 날아와 그를 지켜 주었다 한다. 이 불상은 왼손에 약호를 든 것으로 미루어 이 약사여래(藥師如來)로 볼 수도 있다.

길게 드리워진 귀. 굳게 담은 입술. 지그시 감은 눈 등 세련된 이목구비와 잘 조화를 이룬 격조 높은 근엄하고 자비로운 얼굴에다, 거대한 체구에 밀착되어 흐르는 유려한 옷 주름선이 선각화 되어 상현좌를 이루어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당시의 불상군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2023. 1. 19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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