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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太白山)에서

ilman 2017. 6. 20. 20:20

저승과 이승을 오가다 오른 태백산

  태백산은 나에게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산이다.
직장에서 정년할 무렵 갑자기 백혈봉동(白血病棟) 무균병실(無菌病室)에 입원하여 죽음의 높은 고비를 오르내리다가 퇴원하였다.
퇴원 후 친구가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붓고 자유롭게 걷기조차 어렵던 1998년 여름의 '나의 병상일기'가 그 사연을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나는 지금 이승과 저승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인가.
머리를 빡빡 깎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환우(患友)들을 바라보니 각가지 두려운 생각이 엄습하여 온다.
무균병실에서는 며칠마다 죽음을 찾아 퇴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난생 처음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을 때 울면서 염불하고 있는 아내 옆에서의 감회를 정리하여 보는 것으로 공포를 잊고자 노력하였다. 

하나, 둘, 셋~.
응급실에 누워
먼저 간 친구를 하나하나 헤아려 본다.
여기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
아픔과 죽음을 복습 예습하는 곳.
병문안도 올 수 없는
환자와 돈과 싸우는 간병인의 전쟁 터.
어느 날 갑자기 죄인이 되어버린
미안한 수혜자(受惠者)에게
삶을 더 사랑하게 된 아담 이브들에게
눈감으면 까만 축복이 내린다.

퇴원하면 알에서
깨어나리라,
그 알 속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시혜자(施惠者) 쪽에 서는
세상의 간병인(看病人)으로 태어나리라.
                        -1998. 5.6(화)



  그해 겨울 퇴원하여,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겨울 산 태백산을 넘어 보았고, 그래서 내가 살았다는 것을 확인한 산이 바로 태백산太白山)이다.
태백은 설악산 같이 빼어난 산도, 지리산 같이 장엄한 산도 아니었고,  도봉산 같이 아름답지도 아니한 그냥 평범한 대표적인 육산(肉山)일 뿐이었다.
물 같고, 쌀밥 같은 맛이 아닌 멋. 어머니란 이름처럼 미를 초월한 그리움. 무엔지 그리울 때 기대보고 싶은 아버지와 같은 그런 산이었다. 그런 내가 고희(古稀)도 훨씬 넘긴 나이에  다시 왔으니 어찌 감회가 없을까?

태백산(太白山)에
눈꽃 보러 찾아 갔더니

 
가지란 가지가 모두 흰눈을 벗은 맨 얼굴로 맞아서
죄 없는 길의 흰 눈만 원없이 밟다 왔습니다.
무릎보호대 하고 기를 써서 
천제단(天祭壇) 오름 길에 만난 주목 중에는
시멘트로 깁스한 늙은 주목과
고사목(枯死木)도 많아서
100년도 못사는 내가
살아 천년(千年)에 죽어도 천년 산다는 주목에게 물었습니다.
'주목(朱木)도 늙는가.
우리들처럼 그대들도 죽는가.
 이 몸은 살아 생전 태백산 그대 주목을 보고 가네만
그대들은 살아 천년 동안 무엇을 보았다고 말하겠는가.
묻는 이 있거든 전해 주게나.
세상에서 산(山)을 사랑하던 ilman이
우리를 보고 갔다고. 
오늘은
산속세계 속에
태(太)
백(白)                  

산(山)의 행복한 하루더라고.
                             -경인년 1월 '태백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