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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 지리망산 사진 무

ilman 2017. 6. 6. 12:50

사량도 지리망산

벼르던 사량도 지리산을 오르기 위해서 삼천포를 둘러 고성 용암포 여객터미널에 왔다. 여기서부터 지리산이 있다는 사량도까지는 19km 다리 카페리호로 40분 거리다.
왜 섬 이름을 사량도(蛇梁島)라 하였을까?
풍수지리설에 의거 상도(上島)와 하도(下島)로 되어 있는 사량도에는 뱀이 많고 그 모양도 긴 뱀(長蛇) 같아서 그렇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잘못된 것 같다.
아무리 보아도 섬 모양이 뱀 머리라면 몰라도 긴 뱀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상도와 하도 사이의 동강(洞江)이라는 해협의 모양이 뱀 같이 구불구불 하다는 지명 유래담이 더 걸맞은 것 같다.
뱀 사(蛇), 징검다리 량(梁)이니 상도와 하도 사이를 건너가는 뱀 모양의 해협이 있는 섬, 그래서 사량도(蛇梁島)라 했다는 말에 더 수궁이 간다.
  더할 나위 없이 맑은 가을 햇볕을 받으며 가판 뱃머리에 카메라를 겨누고 앉았다.
10월 하순이라지만 바람이 차가왔다. 다가오는 섬이 지나가면 다시 또 다가오는 섬, 섬들-. 한려수도(閑麗水道,) 그 한가운데를 지나 배는 사량도를 향하고 있다.
바다에다가 주욱 죽 흰 선 붉은 선을 그어놓은 것 같은 가두리 양식장를 지나면 그 너머 검푸른 바다 위에 파란 하늘이 흰 구름을 둥둥 띄우며 열려있는데, 배가 헤치고 가는 것은 녹색 바다다.
 30분도 안 되었는데 사량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왼쪽에 정직한 삼각형 뫼 끝이 뾰족하여 고둥처럼 생겼다.
그 고둥산의 능선이 오른쪽으로 향하여 안부를 긋다가 올라가며 커다란 산을 그리고 있다. 그것이 옥녀봉이라면 그 뒤로 울퉁불퉁한 올라가던 바위산이 멈춘 저것이 지리산이겠지-.
 드디어 우리는 사량도에서는 제일 크다는 면소재지 금평리(琴坪里) 진촌(鎭村)에 '그림같은 집'이라는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옛날 임진왜한 때 이순신 장군이 거느린 거북배(龜船) 1척, 병선(兵船) 1척, 하후선(何候船) 2척에 216명의 병졸이 있었다는 곳이다. 그래서 진압할 진(鎭), 마을 촌(村) 진촌(鎭村)이라 하는 곳이다.
당시의 수군진(水軍鎭)이 이리로 와서 지명을 따서 사량만호진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금평리의 '금평(琴坪)' 이란 여기 지형이 옥녀(玉女)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라는 풍수지리설에서 유래했다.
나는 이곳에 지리산을 등반하러 왔는데 이상하게도 지리산 이야기보다 자꾸 옥녀봉(玉녀1蜂) 이야기가 들린다. 
예로부터 이 고장에 전해오는 구슬픈 전설의 주인공으로 옥녀가 있었다.
전설 중에는 슬픈 이야기도 있지만 옥녀봉에는 오륜에 어긋난 아버지와 껄끄럽지 못한, 들으면 귀를 씻어야 할 슬픈 이야기가 전해 온다.

사량도 옥녀 아비
딸의 몸 요구해와
소처럼 울면서
산에 기어 올라오세요
절벽서
몸을 던지기 전
옥녀가 한
유언이라지


외딴 섬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옥녀에게 비정한 아버지의 더러운 요구에서 죽음으로 자기 몸을 지킨 옥녀가 아버지에게 왜 소처럼 울면서 산을 기어오라 했을까.
소에 비겨 아비를 경계하는 말이었나, 아니면 어머니를 그리는 옥녀의 사모곡이었나.
그래서 그런가 이 옥녀봉은 이 지리산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곳이다. 로프로 된 수직 줄사다리를 몇 번씩이나 기듯이 올라가야 하는 산이다.
 산은 내일 오르기로 되어있어서 낚시 바늘과 미끼를 사 가지고 바다에 나갔다. 어떤 고기가, 어느 정도의 큰고기가 잡힐까?  작년에 거문도에 갔을 때 방파제에서 한 낚시꾼이 5분 간격으로 고등어를 낚아 올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흑산도 선착장에서는 연신 잡아 올리던 우럭 새끼 생각이 난다.
달포 전 대마도에 가서 낚시를 할 때 현지 일본인이 놀랠 정도로 고급 횟감을 잡아 올리던 즐거운 추억은 여기서도 되풀이 될 것인가.
그러나 허망하게도 내가 2시간에 걸쳐 잡은 고기는 손바닥 길이만도 못되는 망상어 한 마리뿐이다.
현지 낚시꾼에게 물으니 이곳은 선착장이나 갯바위여서 고기가 낚이지 않는 곳이란다.
돌아오다 선착장에서 배타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의 바구니를 보니 민망스럽게도 그런 고기 5~6마리에 장어가 2마리가 고작이었다.
저녁 식사 중에 막걸리 커다란 한 병을 비는 것을 보더니 아내는 또 시작했구나 해서인가, 초저녁인데 TV나 보겠다고 배정된 팀의 방으로 들어가고 만다. 무료하여 바닷가에 나갔더니 슈퍼 앞에서 중국 청년 세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다.
멸치 잡이로 유명한 곳이 통영이어서 한국 일꾼들이 120만원씩 받는 월급을 자기들은 50만원 받고 일한다는 중국 청년들이다.
그 중 25만원을 고국으로 송금하고 나머지로 생활한다는데 특별히 맥주를 좋아한다는 슈퍼 안주인의 말을 듣고 맥주도 사주고, 담배도 사주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온 지가 7개월밖에 안되어서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선량한 37살, 29살 그리고 총각 한 사람인데 결혼한 이들은 딸 하나씩을 둔 모양이다.
그 나이 또래는 우리들이 쓰는 한자 아닌 백화문(白話文)을 쓰는 사람들인데다가 영어는 한 마디도 모르는 사람이서 우리의 말은 언제나 도중에 막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아내에게 사준다고 준비해온 회값은 맥주로 바뀌며 줄어들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마신 것은 맥주였지만 내일부터 내가 아내에게 들어야 할 것은 호랑이가 무서워하던 곶감보다 더 무서운 잔소리일 것이다.
아침 7시에 우리는 지리산 등반 길에 올랐다. 막 해가 떠오르는 새벽이었다.
산림청이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한국100대 명산 중에 하나라고 선정한 산이 '사량도 지리산'이다.
 그런데 왜 구태여 지리산(地理山)이라 하였을까?
지리산은 우리가 금평리 진촌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돈지(敦池)마을과 내지(內池)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398m의 산이다. 그래서 두 마을의 공통되는 이름 池(지)에, 마을 里(리)를 붙여 池里(지리)라 하던 것이 지리산(地理山)이 되었다고 한다.
지리산 정상에 서면 멀리 뭍에 있는 지리산이 보인다 해서 지리망산(地理望山)이라 하다가 지리산으로 줄었다는 말도 있지만, 오늘 같이 맑은 가을에 내가 보고 온 것은 바다 건너 삼천포와 통영의 희미한 모습뿐이었다.
아주 맑은 날에 망원경으로 보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망원경 있기 전에 있었던 이름이 지리산이 아닌가.
 돈지(敦池) 선착장에 배가 방금 다았는가. 등산객 100여 명이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으로 돈지초등학교 앞을 지나 민넘골 계류를 옆에 끼고 한 줄로 오르는 모습이 한 폭의 선경(仙境) 같다.
서울 중화동에서 어제 밤 11시에 무박으로 왔다는 분들이다.
무박으로 밤새 달려온 저분들과 목숨 걸고 마신 나와는 지금 누가 더 힘이 들까.
해안선 따라 난 산길로 한 20여분 가다보니 우측에 리본이 요란하다. 드디어 지리산 등산이 시작된 것이다. 돈지(敦池)서 지리산 정상까지는 3.45km다.
'해모가지 코스'는 길도 분명하였지만 전망이 너무 너무 아름다웠다. 산길 능선에서 포구와 해안선과 바다와 그 속의 섬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굽어보는 한려수도를
카메라에 담습니다.
하늘보다 푸른 바다
섬 같은 조각배들
하늘도
맑음을 열어
시원한 바람 줍니다.


 어제 저녁 중국 청년들과 밤 늦게 마신 술 탓에 산에 오르는 것이 고역이 되어 오늘도 나는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가장 늦게 가는 신기록 말이다.
반바지 차림으로 올 껄-. 반팔 T 샤스로 올 껄-. 별의별 후회가 앞선다.
긴 팔 셔스를 벗어 주머니에 구겨 넣고도 조끼 한 쪽 팔을 빼고 걸으니 훨씬 시원하였다. 365봉을 지나고 너덜 길에 들어서니 바위길이 시작되는데 바위가 늘 보던 바위가 아니다. 한결 같이 모든 바위는 세로로 결이 있다. 그것을 층층이 포개어 세워놓은 회색 유리 같다.

그것이 부서져 된 길이 계속되는 암능길에다가 눈을 아래로 주기만 하면 펼쳐지는 장엄한 바다의 파노라마가 전개된다. 생각 같아서는 한숨 푹 자고 갔으면 하는데 종종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다. 후미에 쳐진 나를 걱정하는 우리 한뫼등산회의 소리다.
바윗길 능선을 가다보면 위험구간과 우회로 표지가 많았다. 내가 어디를 선택하였겠는가?

주저 없이 우회로를 선택하였다. 몇 달 전 여성봉으로 해서 송추 돌길로 내려오다가 미끌어져서 손을 짚은 것이 손목의 인대가 늘어나서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는 중이다. 산의 정상(頂上)은 언제나 앞서간 사람들의 수런수런 떠드는 소리로 다가온다.
드디어 지리산 정상이다. 지리산 397.8m라 쓰여진 네모 직사각형 오석(烏石)이 있고 그 옆에 엉성하게 쌓인 삼각형 돌탑이 서 있다. 이럴 때 점수를 따 두는 것이 항상 늦는 사람의 체면을 세우는 물실호기(物失好機)의 기회라 사진 한 장 찍어 주었다. 그런데 큰일 났다. 보통이라면 정상에 오른 후부터는 하산 길의 행복을 누려야 하는 건데, 어렵쇼 앞 길에도 연봉(連峰)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이 정상보다 1m나 더 높다는 399m의 불모산(佛母山)이 있고, 295m의 가마봉, 280m의 연자봉, 261m의 옥녀봉 등 연봉이 줄줄이 이어 있다.
이 모든 산들은 오랜 세월을 해풍에 깎인 바위산으로 기암 괴석을 이루어 옛 시구대로 별유천지(別有天地非人)間)이라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천지가 따로 있구나 히였다.
돌아가는 불모산 절벽에 구멍이 펑 뚫린 속에 찬란한 커다란 돌기둥이 시선을 빼어았는다.
저 불모산의 꼭대기에도 달바위 표지가 있지만 거기 올라갈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내 처지라 안타깝기 그지 없다. 지리산에서 600m를 내려오니 네 갈래 갈림길이 나온다.
성자암으로 해서 옥동까지는 1.3km요, 내지(內池)까지는 3.0km 옥녀봉까지는 2.7km 더 가야 한다. 이 뾰죽뾰죽한 돌산 길을 말이다.
지리산에서부터 1.6km 지점에 반가운 이정표가 다시 보이는데 또 우회도로가 있다. 멀리 이 섬에 유일한 해수욕장이라는 '대항해수욕장'이 초생달 같은 선을 곱게 그리고 있다.
옥녀봉을 향하고 있는데 반대편 옥녀봉에서 올라오는 우리 팀이 있다.
너무 험하여서 12시 40분에 떠나기로 예약된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뒤돌아서 '대항'으로 내려가란다.
속으로 잘 됐다 하는 생각이다. 연신 마시던 물도 벌써 동이 나고 오늘의 목적지 지리산 정상을 오른 내가 무슨 미련이 있으랴. 무슨 소원이 더 있겠는가. '대항'도 처음 가보는 곳이 아닌가.
뒤돌아 하산 길은 팍팍한 것이 너덜 길도 아닌 먼지가 나는 푸석 길로 계곡을 옆에 낀 길이었다. 그러나 물 한 방울 없는 계곡인데 상수원이라고 철조망이 가로 막고 있는 길이었다.
다 내려온 등산로 입구에 통영시장과 경찰서장의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사량도 지리산(옥녀봉) 등산로는 매우 위험하오니 노약자, 어린이 부녀자 등 등산객 여러분께서는 안전 사고에 유의합시다."
그래 잘 했다. 나는 항상 노약자가 아니라 노강자(老强者)라 자처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손약자(手弱者)가 아닌가. 함께 한, 마음이 부처님 같이 너그러운 박 사장이 있어 자연회 한 접시 사겠다고 앞서기에 공술보다 맛있는 술이 있으랴 하고 신나게 따라 갔다.
사량도에서 최고로 높다는 불모산 달바위봉이 바라다보이는 '자연산횟집'에서 어부인 그 집 남편이 잡아다 판다는 100%의 자연산 농어 회를 안주하며 우리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였다.
병권(兵權) 아닌 병권(甁權)을 쥔 박사장이 여기까지 아끼고 온 오가피주에다가 그분의 아내가 가져온 술 깨는 술(?)이라는 오디주를 마시면서-.
아, 살아있는 기쁨이여!
(2003년 10월 21∼22일/사량도 지리산/한뫼산악회 4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