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內藏山) 단풍
내장산(內藏山)
단풍(2005. 11.3/내장산 답사기/늘 푸른 산악회 따라)
*. 벼르고 벼르던 내장산 단풍 구경
내장산 (內藏山) 까지는 일요일에다가 단풍이 피크인 철이라서 차가 몹시 밀렸다.
내장산 입구에서는 더해서 등산기점인 추령에 도착하였을 때는 12시가 넘어서였다. 고양시 일산에서 4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장장 6시간이 걸린 것이다. 일행은 추령-유군치로 해서 까치봉으로 하산할 계획이지만, 나는 이틀 전 백양사 상왕봉에서 넘어져 다친 팔이 완쾌되지 않아서 오늘은 내장사 주변 단풍 구경만을 하기로 했다.
내장산은 1975년경 겨울에 등산회 따라 아내와 함께 일주하였던 산이다.
그때는 일주문 오른쪽 코스로 벽련암으로 해서 서래봉(西來峰,622m)-불출봉(佛出峰,610m)-망해봉(望海峰,650m)-연지봉(蓮池峰,670.6m)-까치봉(717m)-신선봉(神仙峰,763.2)-연자봉(燕子峰,675m)-장군봉(將軍峰696.2m)으로 해서 내장사로 내려온 것 같다. 벌써 30여 년 전이라서 지금처럼 편의 시설이 없어 서래봉의 지루한 탤러스(Talus)의 너덜겅을 걷던 기억이 새롭다. 탤러스(Talus)란 산정상의 큰 바위가 기후 지질 조건 등의 자연적 힘에 의해 분리된 조각들을 말한다.
내장산은 위 9 봉우리가 말발굽 같은 모양으로 손에 손잡고 내장사를 가운데 두고 강강술래를 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봉우리 이름에 신기하게도 연자봉, 까치봉 같이 제비와 까치 등 새 이름이 들어 있다. 부처가(불출봉)이 제비(연자봉)와 까치(까치봉) 같이 서방정토(서래봉)에서 바다를 건너서(망해봉), 연못(연지봉)이 있는 신선(신선봉)의 세계에 왔단 말인가.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내장산에 그 단풍 피크시기에 맞추어 온 것은 처음이다.
매년 10.25~11.5일이 최성수기요, 10월 30, 31일이 절정기라는데 오늘은 11월 3일이니 말이다.
드디어 제철 찾아 원을 풀고 있습니다.
단풍에
너무 취해서
등산도 포기한 체.
호남의 금강이라 일컬어지는 산이 내장산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지리산(남원)·월출산(영암)· 천관산(장흥)· 변산(부안)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봄의 금산사, 여름의 변산반도, 겨울 백암산과 더불어 가을의 내장산은 호남 4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으로 하여 1971에 인근 백양사 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81.715㎢에 달하는 국립공원이다. 전북 정읍시와 전남 장성군에 걸쳐 있어서 내장사의 북부구역과 백양사의 남부 구역으로 나누어서 각각 관활하고 있는데 북부 내장사구역이 더 넓다.
내장사(內藏寺)의 옛 이름은 영은사(靈隱寺)다. 백제 무왕 37(636)년에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세워서 그 이름 따라 영은사(靈隱寺)라 하고, 산 이름도 영은산(靈隱山)라 하였다. 어느 때인가부터 영은사를 내장사로 호칭하게 되었다는데 왜 내장사(內藏山)라 하였을까?
안 ‘내(內)’, 감출 ‘장(藏)’의 내장(內臟)이란 말은 안에다 간직했다는 말이니 무엇을 간직했다는 말일까?
내장산 안내소의 안내판과 정읍시 홈페이지에는 그 어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많은 굴곡의 계곡이 양(羊)의 창자와 비슷해서 많은 인파가 몰려와도 계곡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디에 그 많은 인파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마치 양의 내장(內藏) 속에 숨어 들어간 것 같다하여 내장(內藏)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이곳 지명도 내장동이라 하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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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내장산은 신선봉을 주봉으로 9개 봉우리가 말발굽처럼 드리워진 특이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내장산에는 굴거리나무 등 760여종의 자생식물과 하늘다람쥐 등 858 종의 자생동물이 살고 있고 아기단풍 등 13종의 단풍나무들이 이루어내는 만산홍엽의 극치는 대한팔경의 하나로 손꼽는다.”-내장산 안내판
그렇다면 숨겨진 것은 무엇 무엇일까? 단풍이 그렇고 경치가 그렇고, 천연기념물 굴거리나무, 하늘다람쥐, 아기단풍을 말함인가. 내장사보다 4년 먼저 창건된 백양사(白羊寺)의 ‘양(羊)’을 의식하고 구절양장(九折羊腸)이란 말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 같으나 이는 너무나 심한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창자 ‘장(腸)’ 자와 감출 장(藏) 자는 엄연히 다른 한자가 아닌가.
인터넷에서, 서점에서 수없이 그 내장산의 유래를 찾다가 ‘한국명산기’(김장호 저)를 보고 무릎을 쳤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때였다. 왜놈이 금산에 쳐들어오자 손홍록과 안의라는 두 선비가 머슴 수십 명을 이끌고 전주 경기 전(慶基殿)으로 달려가서 그곳을 지키는 참봉인 오희길과 함께 이태조의 영정과 왕조실록 등의 사고 본(史庫本)을 모시고 이 산 금선폭포 가는 길에 있는 용굴암의 용굴에다가 1년간 꼭꼭 숨겨 놓았다. 그래서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사고가 불타 버렸지만 유일하게 전주본만이 전화를 면하여 오늘날까지 전하여 오게 되었다.”
사고(史庫)란 나라의 기록과 중요한 서적 문서를 보관하던 곳으로 서울 춘추관 , 충주, 전주 성주 4대 서고 이외에도 봉화의 태백산, 무주의 적상산, 강화의 마니산, 묘향산 사고(史庫)를 더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적기(事績記)가 우화정(羽化亭) 못미처에 있는 기념비
그러니까 내장산은 이태조의 영정과 조선왕조실록을 용굴에다가 감추어 두었던 산이라서 내장산이라 한 것이다.
내장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봉이 서래봉이요, 대표적인 경관도 서래봉이다. 서래봉은 하얀 하나의 바위가 1km에 걸쳐 기암기봉을 이루고 있는데, 단풍과 어울린 모습은 한 여인이 입은 울긋불긋한 치마를 연상케 한다.
다른 해석으로는 달마대사가 양나라로부터 이곳에 왔다 하여 ‘서래(西來)’라 했다고도 하고 '수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유군치란 무슨 뜻일까 하는 것은 한자로 유군치(留軍치?)를 써보면 뜻이 분명히 나타난다. 머물 ‘유’, 군사 ‘군’, 고개 ‘치’니까 군대가 머물던 고개란 뜻이다. 어떤 군대일까 하는 것은 유군치에서 첫 번째 만나는 장군봉의 전설과 연관하여 보면 임란 때 왜적과 맛서 싸우던 승병이요, 의병을 말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가 있다.
정상에 지휘대가 있어 이를 장군대 또는 용바위라 하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승병대장 희묵대사(希黙大師)가 승병을 이끌고 활약하던 곳이었다 하여서 장군봉이라 한 것 같다.
내장봉 9봉 중에서 가장 낮은 월령봉(426m)은 추령에서 떠오르는 달을 감상하는 것과 연관한 이름이다.
망해봉에 올라보면 드넓은 호남평야는 물론 맑은 날이면 변산반도가 있는 서해가 보인다 해서 망해봉이라 하였을 것이고.
까치봉은 2개의 암릉이 까치 날개 모양 같아서인가. 선인봉에 이어 2번째로 높은 봉으로 그 능선이 백암산(상왕봉)과 연결되고 있는 산이다.
내장산 우화정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200m 지점에 연자봉(燕子峰,675m)이 있다. 제비의 명당이 되는 산이라서 제비 연(燕) 자를 쓴 모양인데 그보다 봉의 모양이 붓끝같이 뾰족하다고 해서 문필봉(文筆峰)으로 더 많이 알려진 봉우리로 불자(佛子)들의 기도 처이기도 하다. 아래서 보면 정상에 있는 2층 누각 전망대가 우화정과 어울려 내장산의 환상적인 멋을 더하여 주고 있다.
내장사 대웅전 앞에서 이 문필봉을 보며 글씨를 잘 쓰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한 승려가 소원대로 문필가가 되었다는 전설 어린 봉이기도 하다. 일주문 오른쪽으로 올라 벽련암으로 가다가 갈림길에서 원적암 가는 길에 딸각 다리라고도 하고 사랑의 다리라고도 하는 돌길이 있다. 신랑 신부가 그곳을 지날 때 딸각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조심해서 걸으면 반듯이 득남한다는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 금선계곡의 비경
내장산을 당일 등산 하는 사람들이 빼놓지 말아야 하는 곳이 금선계곡이다.
금선계곡은 신선약수터에서 내려오거나, 까치봉에서 내장사로 내려오는 코스에 있다. 폭포가 있는 계곡이요, 위에서 말한 이태조의 영정과 조선왕조실록을 임진왜란에서 지켜 내장하였던 용굴, 기름바위, 신선문, 금선폭포 등 내장산 명승이 몰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름바위란 신선들이 신선봉 금선대에서 노닐 때 시봉들던 선녀들이 금선폭포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그때 속인들이 보는 것을 염려해서 커다랗고 가파른 바위에다 기름을 발라 속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해서 생긴 말이다. 지금은 층계가 있지만 이름처럼 미끄러운 곳이니 비가 올 때는 조심할 일이다.
기름바위를 지나면 신선문(神仙門)이 있는데 신선들이 금선폭포에서 목욕을 하고 이 문을 통하여 우화등천(羽化登天)
하였다는 돌문이다.
*. 내장산 단풍 구경
入此門來 莫存知解(입차문래 막존지해)라. 이 문 안에 들어서면 밖에서의 알음알이에 의한 분별심에 의지하지 말라. 108그루의 단풍 숲을 거닐며 중생의 백팔번뇌를 말끔히 씻어 고운 염주 알이 되게 하라.
일주문에 들어섰으니 절 안에 들어 온 것이라, 겸허한 말과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일주문에서부터 시작되는 단풍의 터널을 보며 내장사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일주문에서 내장사에 이르는 400m에 50년, 100년 된 30여 종의 단풍나무가 단풍의 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신선제(神仙堤)라고도 하는
입니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따온 말입니다.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서 하늘에 올라가서 신선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800여 평의 인공호수 안에 세웠는데 옛날 신선들이 여기서 바둑을 두었는데 어느 날 정자에 날개가 돋아나서 우화등천(羽化登天)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금년은 어느 해보다도 단풍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10월 초순 캐나다 단풍을 보았고, 중순에 설악산 단풍, 11월 1일에 백양사, 3일에 내장산, 6일에는 고창 선운사(禪雲寺) 단풍을 보았으니까요. 단풍을 보러 국기에 단풍잎을 그릴 정도의 캐나다 단풍의 진수를 못 보아서인가. 우리나라의 단풍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자연 유산이로구나 하며 다녔습니다.
추억에 살아야 할 나이에 추억을 만들며 다니는 금년 가을 그 동안 저는 퍽이나 행복하였습니다.
특히 선암사 단풍은 비온 뒤 끝이라서 수석(壽石)에 물을 뿌린 것 같이 맑게 씻긴 젖은 단풍의 찬란한 모습은 평생에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모였나 봅니다.
그런데 그 단풍들은 왜 그렇게 서둘러 가버리는 것이지요? 정성껏 찍어 오린 선운산의 단풍 몇 컷이 세월 따라가버렸네요.
북에서 남쪽으로
봉에서 산록(山麓)으로
가지 끝서 안으로
가을을 불태우는
단풍(丹楓)은
왜 서둘러서
달려가는 그리움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