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雪嶽山) 단풍
설악산(雪嶽山) 단풍
(2005. 10.13~14/오색-대청봉-희운각-양푹-귀면암-비선대-설악동/일산 ‘늘 푸른 산악회
어제는 뉴욕이더니
나이아가라였더니,
오늘은 단풍 찾아
설악산에서 다시 번쩍
나는 행복한 성길동,
내 아내의 유랑의 남편입니다.
찬란한 단풍 밖에서
지는 낙엽 같이
불청객으로
하루하루 사라져 가는 하루지만
너무 고운 설악 단풍은
천불동 계곡의 단단풍은
너무나 가을다워서
내 죽으면
단풍 같은 그리움 되지-
하였답니다.
일산에서 오색약수터를 향하여 떠난 것이 새벽 4시 반, 4 시간을 달려가면서 걱정이 태산입니다.
오색에서부터 대청까지 5km, 대청에서 설악동까지 7km, 총 12km의 10시간을 늘푸른산악회 젊은 산꾼들과 우리가 되어 하루에 따라잡기에는 ilman은 너무 늙어서입니다.
그래서, 빠른 사람들 빠르게 가라고 양보하고 하루 설악에서 자기로 하고 쉬엄쉬엄 대청봉을 향하여 오릅니다.
예약을 해야 숙소를 마련할 수 있는 곳이고 지금은 단풍철로 대목이라 중청, 희운각대피소가 푸대접하거든 양폭대피소에서나 자고 가렵니다. 설악이 단풍으로 불붙었다는 소식에 그냥 따라나선 만용 때문입니다. 젊음의 체력대신에 우리 같은 백수(白鬚)는 넉넉한 많은 시간이 있어서입니다. 천천히 가는 자가 멀리 간다는 중국의 속담 같이, 힘들다고 쉬고, 쉬고 싶다고 쉬고, 남이 쉰다고 쉬면서 쉬엄쉬엄 오릅니다.
산을 오를 때는 능선을 오르다 보면 고생의 끝이 오던데 오색에서 대청 오르는 길에는 능선이 거의 없군요.
“紅塵(홍진)에 묻힌 분네 이 내 生涯(생애) 어떠한고, 옛사람 風流(풍류)를 미칠까 못 미칠까. 天地(천지) 간 남자 몸이 날만 한 이 많건마는 山林(산림)에 묻혀 있어 至樂(지락)을 모를 것가.”
이런 마음을 불우헌 정극인이 ‘상춘곡(賞春曲)’에서 대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설악폭포
오색매표소에서 2.3km에 설악폭포가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 단풍에 묻힌 여인 둘이 단풍 든 설악폭포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폭포는 그 청결한 물소리로 시선에 응답합니다.
설악폭포에서 1.2km를 단풍 터널을 뚫고 멋진 통나무계단을 오르면 제2쉼터가 있습니다. 거기도 단풍이 절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통나무길을 피하여 갑니다. 통나무를 딛고 오르내리는 길은 허들경기를 하듯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제2쉼터 이정표가 말합니다. 1.3km를 더 가야 대청봉이라고.
옛날 젊었을 때 이 길을 함께 하던 내게 늘 산을 꼬셔대던 산꾼에 K선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는 중풍에 치매를 더하여 걷지도 못한답니다.
저는 부모님께 큰 유산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나이에는 돈보다 건강이라는 유산이 더 큰 것이거든요.
나도 늘 아픈 곳이 하나 있습니다. 호주머니입니다. 오늘도 당일치기가 바뀌어서 오는 길에 아내에게 급유 좀 해달라고 신청을 했습니다. 그래야 산행을 마치고 속초 중앙시장 어시장에 가서 쌈직한 회로나마 포식할 수 있거든요.
*. 남한에서 3번째 높은 대청봉
드디어 남한에서 1,950m 한라산, 1,915 지리산 다음 세 번째로 높은 1,708m의 대청봉입니다.
그다음 높은 산은 1,614m 덕유산, 1,577m 계방산, 1,572m 함백산이지요.
ilman은 어느 정도 높이까지 올라가 봤느냐고요?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식당이라는 'Top of Europe'에 올라갔지요. 3,571m의 융프라라우요흐의 스피닉스 전망대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 것이지만 올라간 건 올라간 것이 아닌가요?
걸어서는 금년 7월 1,990m의 백두산 서파(西坡)에서부터 장백폭포까지 천지를 끼고 종주를 했지요. 천지(天池)를 못 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라 했다는 천지(天池)는 물론 보았구요.
중청과 그 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옛날의 구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색에서 오르는 길 끝이 바로 대청봉 정상입니다.
오색에서 올라갈 때 너무 더워서 소매 없는 셔츠를 입고 오다가 긴팔 셔츠를 하나 더 입었는데, 거기다가 가을 등산복을 더 입습니다. 장갑을 빠뜨리고 온 것이 후회막급입니다. 소매를 길게 뽑아 손을 그 속에 넣습니다. 대청봉은 초겨울 날씨이니까요.
대청봉은 태백산맥 중에서 제일 높은 봉으로 예전에는 청봉(靑峰), 봉정(鳳頂)로 부르던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 1번지입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이를 막아주는 나무 한 구루가 없어서 수려한 설악의 7,000봉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지요.
대청봉을 기준으로 동쪽의 속초 쪽이 외설악이고, 서쪽의 인제 쪽이 내설악이고, 남쪽 오색 쪽이 남설악입니다.
오색에서 보통은 4시간만에 오른다는 정상을 6시간에 오르면서 너무 힘이 들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취미를 바꾸어야 될 때가 아닌가.' 월척을 6수나 할 정도로 완전한 낚시 장비를 갖춘 낚시꾼이기에 해보는 생각이지요.
대청에서 1박하고자 하는 것은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희운각으로 내려가거나, 화채능선을 타고 1,320m 화채봉으로 해서, 1,076.9m 칠성봉을 거쳐 권금성으로 갈 수도 있고( 이 코스는 휴식년제 적용구간), 끝청으로 해서 서북주능선을 탈 수도 있고, 봉정암, 백담사나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희운각의 무너미고개에서 시작되는 공룡능선을 탈 수도 있지요.
남들 따라 중청대피소를 향하는데 그곳을 향하는 사람들이나 그 앞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꿈속에서 보는 것 같은 한 폭의 아름다운 시입니다.
옛날에는 대청봉 밑에 있는 군부대 같은 것이 대청(大靑) 대피소였는데 그게 없어지고 중청(中靑) 대피소를 지은 것입니다. 그 중청(中靑)에는 물론 희운각대피소에서도 예약자와 대기자로 유하기가 어렵다 하여 1,676m 중청을 돌아 소청(小靑)을 향합니다. 중청 정상의 저 둥근 것은 군부대시설인 모양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는데, 걷기가 힘들 정도로 다리가 아프니 고진고래(苦盡苦來)로 위안받고 있습니다.
*.'희운각(喜雲閣) 이름 이야기
소청에서 이정표 따라 우측 길로 갑니다. 좌측으로 400m 만 가면 소청대피소, 1.1km를 가면 봉정암(鳳頂庵)으로 해서 11.7m의 거리에 백담사(百潭寺)가 있습니다.
오색이 줄 곳 오름길이던데 소청서부터 희운각까지 1.3km나 되는 길은 그보다 훨씬 더 가파른 45도 정도의 내리막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겨울에 왔을 때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던 것이 그리울 정도로 하나하나 딛고 내려가야만 하는 돌계단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리에 쥐가 나는지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어둡기 전에 희운각에 도저히 도착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산속의 밤은 빨리 오는지 지금은 6시가 방금 지났는데 해드 랜턴을 켜야겠습니다.
해드랜턴을 하고 희운각 위 마지막 긴 철층계에 서니 비로소 반가운 불빛입니다.
희운각 대피소를 제일 처음 지은이는 최태목 씨랍니다. 그분 아들이 산을 좋아해서 어느 겨울에 희운각 위에서 불행하게도 조난을 당하여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대피소가 있으면 살았을 아들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조난을 막기 위해 최 씨가 지은 대피소가 '희운각 (喜雲閣) 대피소'입니다. '희운(喜雲)'은 사랑하는 그 최 씨의 아들 이름이었구요.
*. 단독 야간 산행
희운각 대피소에서 라면 하나로 저녁을 때우고, 쩔룩거리는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어둠을 뚫고 2km 아래에 있는 양폭대피소를 향합니다. 희운각에서 잘 수 있으면 내일 설악에서 단풍을 완상으로는 으뜸이 된다는 무너미고개서부터 시작되는 공룡능선을 탈 수도 있겠지만 잠자리를 구할 수 없어 부득이 한밤중에 양폭을 향합니다. '무너미'에서 '무'는 물, '너미'는 넘다를 뜻하는 말이고, '공룡'이란 말은 공룡의 등처럼 굴곡이 심하고 험난한 능선이라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희운각 매점 사람이 여기 오기까지 보다는 덜 가파른 층계라던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지금 나의 목표는 양폭까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까지 안전하게 가는 것입니다.
그믐은 아니지만 흐린 날씨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캄캄한 깊은 밤입니다. 아무도 없는 깊은 가을 산속에서 천불동계곡의 불어오는 바람에 으스스하고 지는 낙엽이 꼭 짐승이 움직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길 위에 드러난 꾸불꾸불한 나무뿌리에 뱀이 아닌가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희운각에서 배터리를 새것으로 갈아 끼운 헤드랜턴은 나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산 중에 나만한 덩치를 가진 어떤 짐승이 있겠는가. 있다 해도 이 밝은 불빛이 두려워서 짐승들이 먼저 무서워 도망갈 것이다 하는 생각은 두려운 마음을 쫓습니다.
지렁이가 불빛에 놀라 꿈틀거리기도 하고, 곤충이 불빛에 놀라 죽은 척하기도 합니다. 죽은 고기는 상한 것 같아서 큰 짐승들이 먹지 않는다고 죽은 척하는 것이지요.
오름길에서는 그래도 괜찮으나 내리막길에서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가다가 자주자주 층계에 앉아 쉬다 보면 살며시 졸음이 오기 시작합니다. 식곤증과 온종일 걸은 피곤 때문인가 봅니다.
자면 안 된다. 저 체온은 얼어 죽는 이상으로 무섭다지 않던가.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곳이 아닌가.
세로로 쓴 구조표지판이 야광으로 서 있지만 '이동전화 가능 처 설악동'뿐입니다. 사고가 나면 조난자는 이곳에 있고 이를 발견한 다른 사람들이 가서 연락하는 장소를 표시해 놓은 모양이니 지금의 나에게는 안전산행밖에 없습니다. 안전산행은 서행뿐이구요.
이상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어둠을 뚫고 나타난 사람은 젊은 두 학생이었습니다. 먼저 가라고 했더니 가다가 되돌아오기에 또 한 번 놀랬더니, 가방을 자기들이 지고 가겠으니 벗어 달라는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감사 감사하다고 했더니 앞서 달려갑니다. 캄캄한 밤중에 카메라가 든 배낭을 한번 다시 만져봅니다.
그렇게 천당폭포에 이르니 폭포소리가 더 요란하고 돌 병풍이 더욱 깊은 세계입니다. 폭포도 그렇지만 아름다움은 모여 사는지, 길고 꼬불꼬불한 그 층계까지 멋을 더하여서 내일 아침 다시 와 봐야지- 할 정도였습니다. .
캄캄한 밤에 보는 장엄한 폭포는 또 다른 감흥을 갖게 합니다.
이렇게 남들이 희운각에서 2시간에 온다는 양폭대피소를 나는 3시간이 더 걸린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하였습니다. 양폭대피소는 등산객이 많은 토요일에도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어서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 천불동(千佛洞) 계곡의 아침
천불동 계류 소리를 들으며 자다가 일어나 밖에 나서보니 맞은편 만경대, 고깔봉에 단풍이 한창입니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진황진홍(眞黃眞紅)이 이를 두고 한 말 같습니다. 그 단풍 속에서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 자란 내가 계곡에 내려가서 계곡물을 받아 식수하고 세수도 하고 이를 닦습니다.
어제 일산을 떠나올 때 사온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탐승 길에 오릅니다.
'천불동(千佛洞)계곡'은 '설악산 계곡'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비선대에서 양폭 일대까지의 설악산 등반의 가장 대표가 되는 코스입니다. 내설악의 수렴동과 쌍벽을 이루는 한국 계곡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계곡 좌우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칼날 같은 천태만상의 기이한 바위가 천 명의 부처가 도열해 있는 모양 같다하여 생긴 이름입니다.
계곡의 만학천봉(萬壑千峰)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천불(千佛)로 나타난 세계입니다. 천당폭포, 양폭, 음폭, 오련폭포, 문수폭포, 이호폭포, 귀면암, 비선대 등과 거기에 걸린 담소 등이 천불계곡을 이루는 하나하나입니다. 이것들은 설악을 대표하는 경관들입니다.
어제 일산을 떠나올 때 준비해온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어젯밤 지나친 천당폭포를 향한 그 길고 구불구불한 멋진 계단을 오릅니다.
천당폭포는 천불동계곡의 마지막 폭포로 예전에는 너무 험준하여 일반 관광객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던 곳입니다. 이 폭포를 보고 있으면 온갖 속세의 고난을 잊고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하여 천당폭포라 명명하였다는 것입니다.
*, 양폭/ 오련폭포
등산길에서 보이는 것이 양폭(陽瀑)이고 왼쪽 계곡으로 들어가면 음폭(陰瀑)이 있다 합니다. 드러나 있다 해서 양폭(陽瀑)이라 하고, 들어가 숨어 있다 해서 음폭(陰瀑)이라 한 것이랍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남정네 양폭이 음폭과 결혼을 해서 자식 5를 낳은 것이 바로 아래 오련폭포(五連瀑布)라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폭포일대의 암벽이 천불동계곡의 수문장 같다고 하여 '앞문다지'라고도 하던 폭포입니다.
제가 처음 설악산을 오른 것은 1962년 여름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와서 담임 반 학생 한 명과 오련폭포까지 왔었습니다. 설악산이 5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던 1965년 전이라서 오름길에는 밧줄 대신 칡넝쿨이, 층계 대신 외나무 놓인 다리를 건너던 지금부터 38년 전이었습니다.
여행에서 의미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여행의 멋을 더하는 일입니다. 귀면암 가는 길에 봉정암에 다녀오시는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먼저 조명리의 시조 한 수를 읊었더니 스님이 시 한수로 화답합니다.
설악산 가는 길에 개골산 중을 만나
중다려 묻을 말이 풍악이 어떻드니?
요사이 연하여 서리 치니 때 맞은가 하노라
-조명리 시조
'왜 설악'이냐 물었더니
산이 답하기를 '내 설악'이요
설악 '서락' '서'방정토극'락' 이름이라.
사방의 모든 사람이 그 향기기 맡으러
과거 현재 미래도 사람은 바뀌나
설악은 그래도 젊었구나.
-知道 스님(부산 흥국사)
오련폭포를 지나니 냇가에 우뚝 서서 길을 막는 귀신같은 바위 하나가 서 있습니다.
얼굴 치고는 험상궂게 우락부락한 것이 바로 귀면암(鬼面岩)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 귀면암이 천불동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이라고 하였답니다.
설악산에는 작은 다람쥐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 곁을 맴돕니다.
그러다가 사람이 던져주는 비스킷이나 남기고 간 김밥을 앞발을 들고 먹거나 볼 주머니에 볼록하게 넣고 달아납니다. 도토리와 알밤 같은 것을 사람에게 '빼앗기고 먹을 것이 없어서인가 봅니다. 뉴질랜드에 갔더니 도토리는 물론 밤도 사람은 먹지를 않더군요. 짐승들의 먹이를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중에서 도토리나 밤을 줍는 것이 동물의 먹이를 약탈하는 행위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귀면암과 문수암 사이에 녹색의 맑은 이호담(二壺潭)이 있습니다. 배가 불룩한 병 모양의 담이 2개가 있어 이호담(二壺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문수담 (文殊潭) / 비선대 (飛仙臺)
비선대를 600m 앞두고 맑은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문수담(文殊潭)이라고 합니다. 아득한 옛날 문수봉을 형성할 때에 석가여래의 왼편에서 지혜를 맡은 문수보살이 이곳에 와서 맑은 물에 목욕을 한 곳이라 하여 문수담 혹은 문주담이라고 하던 곳입니다.
사람들은 이정표를 볼 때마다 '이직도 x k m 남았어!' 짜증 어린 말을 합니다. 나는 설악산의 품에 안겨 설악을 벗어나는 것이 아까운데 말입니다. 비선대(飛仙臺) 아래로 내려가면 음식점이 모인 곳이 있는데 그 계곡에 와선대(臥仙臺)가 있습니다.
어느 해인가 큰 홍수에 바위가 떠내려 와서 가리는 바람에 그 모양을 일부러 찾기 전에는 누구나 그냥 지나치는 곳입니다.
그 와선대에 마고선(麻姑仙)이란 신선이 누워 설악의 산수를 즐기다가 비선대에 와서 하늘로 올랐다는 곳이 비선대입니다. 비선대란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과 그 밑의 암반을 통틀어 말하는 이름이랍니다.
보세요. 단풍놀이 온 저 아름다운 사람과 비선대의 절경을.
저는 적지 않은 세상을 다녀 보았지만 산과 계곡이 한국처럼 아름다운 곳이 드물다는 것을 느끼고 온 사람입니다. 애국심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는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에는 각각의 다른 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한국의 미는 자연의 미다.' 하는 식의 생각입니다.
*. 제2의 금강 설악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고 너무 지나칠 정도로 기교에 치우쳤구나 하고 후회를 했답니다. 그런 후회 끝에 만든 것이 설악산이랍니다.
금강산의 1만 2천 봉 같이 아기자기하지는 않으나, 설악의 7,000여 봉은 복잡하지 않고 수려하고,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이 1,636m이지만, 설악산 대청봉은 1,708m이니 더 높고, 설악산도 금강산처럼 산과 바다를 아우른 산이라서인가 육당 최남선도 금강산 못지 못한 것이 설악산이라고 했답니다.
설악산도 금강산처럼 산에 오르면 산이, 계곡이나 폭포를 만나면 계곡과 폭포가 아름다워서 발길이 닿는 모든 것이 등산인의 마음을 흔드는 산입니다.
그래서 설악을 '제2의 금강산'이라 하고, '산중 미인'이라고 하는 것이요, 지리산 다음으로 선호하는 우리들의 산꾼의 고향이 되고 있는 산이 설악산이란 말입니다.
우리뿐이 아닙니다. 세계의 명산으로 알려져서 요번 산행 길에 만난 사람암들도, 영국인, 미국인, 일본인 부부, 중국 팀 등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