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만 산행기 ☎ 197

덕유산(德裕山) (상)

*. 설화 만발한 겨울 산 덕유산(德裕山) 향적봉     나는 2008년 7년 전에  71세 되던 해 강풍경보 속에 목숨을 걸고 단독 덕유산(德裕山)을 종주했다. 그 덕유산에 금년에 처음으로 산행을 하다 보니 그때가 그리워 당시에 쓴 나의 '덕유산 종주기' 그 일부를 여기에 일부 옮긴다.     덕유산 종주는 지리산, 설악산과 함께 남한 능선 3대 종주 코스 중의 하나로 산악인들에게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산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꿈꾸게 되는 것이 종주 산행(縱走山行)이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백두대간 종주(白頭大幹 縱走)가 된다. ,그 종주 중에서도 겨울 산의 종주는 남한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덕유산(德裕山‘ 1,614m)을 으뜸으로 친다.서해 습한 공..

북한산 상장 능선(上將峰, 534m)

북한산 상장 능선(上將峰, 534m) 산행 *. 상장봉 가는 길상장봉은 두 번째 가는 길이지만 처음에는 등산회 따라간 곳이라서 구파발 1번 출구로 나와서 북한산 버스정류소까지 갔지만 혼자 가려니 어딘지 알쏭달쏭하다. 거기 옛날에 있던 상가는 없어지고 그 주변 일대가 한창 아파트 공사 중이다.그래서 등산 기구를 파는 노점상에게 물어 보았다."상장능선 가는 버스는, 몇 번 버스를 타고 가서 어디서 내리지요?""의정부 행 '34번' 버스를 타고 가시다가 '솔고개'(예비군 종로, 중구 교육장)에서 내리세요."그제야 생각난다. 솔고개에서 내려서 산 쪽으로 아스팔트길 따라 동네를 지나 우측으로 오르던 들머리가-.상장봉 능선은 군부대시설 지구로 10여년 이상 휴식 년제에 묶여 있다가 2006년 1월 1일에 풀린 산행..

설악산 주전골 산행

골 산행 *. 설악산이 입산금지라는데배낭을 메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경비 아저씨의 신기한 눈초리가 내 뒤통수를 따라온다. 태풍 에위니아가 막 지나 가자마자 고양 일산에 집중 폭우로 398m나 물을 붇듯이 쏟아져 내려 이재민이 생기고, 전철이 끊기는 둥 고양시가 야단법석인데 산에 가다니-. 설악산이 입산금지라며 만류하는 아내를 뿌리치고서 말이다. 기상 예보에는 ‘비 오다가 오후에 겜’이었다.그래도 나와 같은 사람들을 버스에 가득 태우고 설악을 향하는데 비는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다.*. 한계령 (寒溪嶺)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하여 못살겠네.” 노래하던 인제와 원통을 지나 영동(嶺東)과 영서(嶺西)의 분수령이요, 외설악과 남설악의 분수령인 한계령(寒溪嶺 1,004m)을 넘는다.분수령(分水嶺)이란 비..

대마도(對馬島)(2)/일본 속의 한민족사

*. 왜구들의 약탈과 피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 민족은 자고이래(自古以來) 얼마나 많이 우리를 괴롭혀 오던 민족이던가.강원대학 손상철 교수의 선상대학(船上大學) 강의에서 고려 시대의 저들의 만행을 틀어 보자.     -출동 규모:    2~3척에서 500여 척(1만여 명)  -고려말(1350~1392년): 495회 침입  -침입 대상지역: 도서, 해안지방은 물론, 강을 타고 내륙 깊숙이  -약탈 대상:   식량 조창(漕倉) 습격, 가축, 사람 납치(부녀자, 아이 등 3만 명), 관청 습격  -문화재 약탈: 고려 종 50여 개, 불화 95점, 불상 80여 구 등.  -잔혹상:       서너 살짜리 여자 아이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쌀을 넣고 고사를 지낸 뒤, 그 쌀로 밥을 해 먹..

서산 5경 팔봉산(八峯山 362m) 산행

팔봉산 산행 (2010. 3. 14(일)/ 양길주차장820m→1봉(감투봉)213m→2봉450m→3봉(정상)190m→4봉100m→5봉150m→6봉180m→7봉200m→8봉 200m →서태사, 어승주차장): 우리산내음 부부산방 따) *. 8봉산(八峯山,362m)/ 산행  ' 8봉산(八峯山 서산시 8봉면)'을 가고 있다. 홍천 팔봉산이 아니라 서산 팔봉산이다.홍천 팔봉산의 명성에 가려서 서산 팔봉산은 섭섭하게도 뒷전에 서 있지만 서산 팔봉산도 한국 명산 100 안에 드는 산이다.홍성 팔봉산이 8개 암봉을 자랑한다면, 서산 팔봉산에도 그 이름처럼 8봉이 있다. 그 중 1봉, 2봉, 3봉 정상은 절대로 홍천의 팔봉산보다 못지않은 기암괴석의 암봉이다. 홍천 팔봉산이 홍천강을 굽어보는 빼어난 경관이 자랑이라면, 서산..

태산(泰山)에 오르고 싶다

한국 사람들 중에 태산(泰山)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아마도 양사언의 시조가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메만 높다 하더라. 이 시조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초장: 3, 4, 3(4), 4/ 중장: 3, 4, 3(4), 4/ 종장: 3, 5(5~8), 4, 3"으로 시조의 음수율(音數律, 외형률)의 모범이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 숫자에 맞추어 쓰는 것이 시조였기 때문이다.양사언(楊士彦)은 중종 ~선조 시대를 살다간 분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 삼등현감, 평창군수, 강릉부사, 함흥부윤, 금강산 회양군수 등 당시 관리들이 꺼리는 외직(外職)인 지방관을 역임한 것을 보거나 그의 호..

조계산(曹溪山) 산행기/송광사(1)

조계산 산행 Photo 에세이 *.조계산(曹溪山)의 어원 신라 말 혜린(慧璘) 선사에 의해 길상사(吉祥寺, 송광사의 옛 이름)가 창건될 때 지금의 조계산의 당시 산 이름은 송광산(松廣山)이었다. 그 길상사를 제1차로 중창한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길상사(吉祥寺) 터에 새로 수선사(修禪寺)를 개설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천양(闡揚)하면서 '송광사(松廣寺)'를 '조계산(曹溪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일설에 의하면 大覺國師 義天이라고도 함). 이는 조계종의 중흥도량 산이 되면서 송광산(松廣山)을 조계산(曹溪山)으로 개칭하게 된 것이다. 조계산은 원래 중국에 있는 산으로 앞서 말한 대각암(大覺庵)의 대각국사 의천(義天) 이전에는 조계(曺溪)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조계산의 어원과 관계된 그 증거..

무등산(無等山) 산행

무등산 산행 Photo 에세이  (2008. 1.10~11 증심교-증심사-약사사-새인봉- 줌 어리재-장불대-입석대-규봉암-장불재-입석대-서석대-증심교/고양신도시 산악회 따라) *. 무등산 어원 이야기    왜 무등산이라고 하였을까? 무등산의 무등(無等)이란 말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용어 '무유 등등(無有等等)'에서 나온 말로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 이가 없다는 뜻으로 무등산은 ‘견줄 수 없는 산이 없다[無等]’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가 되는 이성계와 연관된 전설이 전하여 온다.   -조선 창업의 큰 뜻을 품은 이성계가 우리나라의 명산을 두루 순례하며 기도를 드릴 때였다. 모든 산과 달리 무등산만이 유독 소지가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소지(燒紙)란 신령에게 제사를 드리..

백두산 가는 길(0)

백 산행*. 백두산 가는 길 백두산(白頭山) 가는 길로는 서파(西坡), 북파(北坡), 남파(南坡) 3 코스가 있다지만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가 북파(北坡)이고, 등산으로 종주를 하고자 하는 이는 서파(西坡)로 가야 한다. '坡(파)'란 언덕이란 뜻이다.서파와 북파를 가는 분기점이 백두산 바로 아래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있는 이도백하(二道白河)란 큰 중국인 마을이다. 여기서 30km 거리에 우리들의 목적지 백두산 입구인 북파 산문(北坡山門)이라는데, 반갑지 않은 비가 오고 있다. 백두산 등정 길에 가장 꺼리는 비가 오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의 봄은 6월부터 시작된다.그 봄은 여름 없이 가을로 접어들고, 9월부터는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겨울이 9개월이나 계속 된다.일 년 중 비 오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