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하우재 이야기

ilman 2014. 4. 12. 15:16

*. 옛사람들의 화장실문화 

서울에서 1호선 타고 가다가 성군관대 전철역에서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너 동성고 가는 버스를 타고 간다.

하우재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이다.
가다가 동성고 앞에서 내리니 '해우재 500m/10분' 거리라는 이정표가 길 안내를 하고 있다.
벚꽃, 목련과 개나리가 화짝 핀 꽃길 따라 가다 보니 변기 모양의 흰 건물에 만국기가 무성하다.  해우재였다.

 이곳은 수원시장이었던  신재덕 씨가 세계인에게 화장실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세계 화장실 협회'를 창립하고 이를 기념하고자 30여 년간 살던 자신의 집을 2009년 변기 모양으로 새롭게 짓고 그의 사후에 수원시에 기증하였다는 해우재는 화장실문화 전시관이요 화장실 문화공원이었다.

해우재 건물은 2층으로, 1층은 상설전시홀이요, 2층은 기획전시홀로

해우재를 건설한 심재덕 생애와 활동으로 꾸면 놓은 것이다.

나는  그 뒤뜰의 야외 전시물을 먼저 보기로 하였다.

 

 

 

 

 


*. 옛 사람을의 화장실 문화

정문에서 둥근 원형의 똥퉁문을 지난다. 거기 해우제의 로고 토일러가 이를 설명하고 있다.

 -똥은그 노라 빛깔 때문에 재물을 상징하기도 한대요.부자가 되고 싶은 사름은 똥꿈을 꿔 보세요. 이 똥통문을 지나면 재물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답니다!

오랜 동안 지녀온 모화사상(慕華思想)인 사대사상(事大思想) 때문에 우리나라 한자어는 존대 또는 평어이고, 순우리말은 천한 말(卑語)이 되어 버렸다. 인분(人糞)과 똥이 그러한 말이다. 그래서이 글에서는 '똥'이란 말을 자주 쓰게 된다. 

다음(10)에 보이는 것이 남성용, 여성용 휴대 변기다.

남성용 휴대용 변기 호자(虎子)다. 

여성용 번기는 앞부분이 높고 뒷부분이 낮아 걸터앉기 편안하고, 밭에 거름으로 붓기에도 편리하게 디자인 되었다.

'좌변기 쉼터'도 변기(화변기) 모양으로 만들었고 그 속에 노랗게 말린 똥이 뱀이 서린 모양을 하고 있다.,

  거기를 지나니 똥지개를 멘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옛날 어렸을 때 도시의 산동내나 농촌에서 늘 보던 풍경이다. 

 

 

 

 

한 여인이 노둣돌을 디디고 앉아 변을 보고 있다.
노둣돌이란 발을 딛도록 놓아둔 돌을 말한다. 불국사에 신라 시대에 귀족 부인이 사용하던 수세식 화장실 돌로 보이는 노둣돌  모형이 일산 호수공원 화장실문화전시관에 있다.

 

 

 

 

 

 

전북 익산의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이 화장실은 7세기인 백제 무왕 무렵에 만들어진우리나라 최초의 공중화장실로 고고학적으로 유명한 유적이다.

 

 

 

 

이 발굴과 함께 나무 젓가락 모양의 나무조각이 나왔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변을 밑씻던 도구라고 한다. 둥근 돌도 같은 용도였다.

 

 

 

 

 

아이들이 오줌을 싸서 이불에 지도를 그리면 부모들은 오줌싸개 아이들에게 키를 씨워 이웃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오게 하였다.               

 창피를 주어 오줌싸는 것을 주의하도록 한 것이다.  오줌싸게 아이가 있거든 자기 전에  한 수푼의 소금을 먹여 보라.
소금이 물을 빨아 들여 신통하게도 오줌 싸는 것을 일시라도 막을 수가 있으니-.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오줌싸개 지도/ 윤동주

  위 그림 왼쪽의 수세식 변기를 보니 생각 난다. 나의 회갑 기념으로 지중해 그리스의  아트로폴리스 부근 고린  산이 굽어 보고 있는 곳의 그리스 유적지에 갔을 때 본 모형이 위 그림 좌측에 있는 고대 수세식 변소의 모습이었다.

 그 밑에 흐르는 물을 통하여 대소변의 오물을 흘러 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랬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에 귀족들은 개방된 곳에서 함께 용변을 보며 담소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변기가 중세 유럽의 변기다. 고양시 일산(高陽市一山) 호수공원 전시관에는 여기처럼 돌이 아닌 목제로 만든 의자도 있다.

 

좌변식이라서 의자 중앙에 구멍이 뚫여 있고 그 아래 소대변 받이 항아리가 있었다.

윗그림 오른쪽에 있는 것이 현대식 변기다.

 

 

 

 

 

 

 

 

 

 

궁중에서 나랏님이 쓰시던 변기 매화틀과 매화 그릇이다. 나랏님의 대변을 매화꽃에 비유하였으며 어의는  대소변의 빛깔, 냄새, 그리고 맛으로 임금님의 건강을 체크하였다. 이 매화틀의 이름은 매우틀(梅雨-)이라고도 하였다. '매(梅)'는 대변을 '우(雨)'는 소변을 말하는 것이다.

 

 

밑씻개  모습이다.

 

 

 

 

 

 

 

 

 

 

 

 

 

 

 

옛날 우리들의 조상들은 귀한 종이 대신에 볏짚이으로 뒤처리를 하였지만 볏짚이 귀한 산골 같은 곳에서는 변소 앞에 새끼줄을 매달아 놓고 다리를 벌여 '쓰윽' 닦으며 지나 가는 것으로 뒤처리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뒤처리를 강아지를 통하여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

제게 필요할 때만 찾는다는 속뜻으로 "뒷간에 앉아서 개 부르듯 한다."라는 속담이 생겨난듯 하다.

 

똥장군은 변소의 배설물을 담아 똥지개로 나르기 위한 용기이다. 중앙이 불룩한 생김새로 인하여 똥장궁이로 불리었다.

지붕이 없는 변소는 머슴들이 사용하는 변소다.

 

 

 

요강은 내가 중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품이었다.

재화장실은 불결하고 멀어서 빙안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게 요강이었기 때문이다.

놋그릇, 사기그릇, 말루미늄 등의 요강이 있었다. 용도에 따라서 신부용, 영기 요강, 어린이용 등이 있었다. 가마탄 새색시의 오줌소리를 줄이기 위해서 요강 안에 목화 씨를 깔았다고도 한다. 옛날에는 의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낳아서 죽는 아기가 많았다. 그래서 '영기 요강'이란 것이 있어 죽은 아기가 저승에서도 현세와 같은 삶을 누리라는 부모의 기원의 의미을 담아 무덤에 함께 매장하던 요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