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우리 시조문단(時調文壇)에 경사가 났다.
수안보상록호텔 사장에 김락기 시조시인이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한국 유일의 정형시인 시조시인(時調詩人)이 관광지의 충주(忠州) 수안보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국내외로 시조 보급을 위해서도 크게 치하할 일이기 때문이다.
맞추어 (사) 시조문학진흥회가 김락기 시조시인을 이사장으로 만장일치로 추대하고, 그 이 취임식 덕분에 수안보 온천욕을 할 수 있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사장의 이사장 취임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천 이야기’를 쓴다.
*. 온천 이야기
해외여행이 금지 되었을 1970년대 여유 있는 사람들은 제주도(濟州道)로, 나 같은 서민들은 온천 행을 떠나는 것이 신혼여행이었다.
그 후 국내 온천은 물론 일본의 후가이도와 벳브 온천, 뉴질랜드 북섬의 간헐천(間歇泉), 미국 옐로우스톤, 카나다 벤프리트, 핀란드의 사우나 등을 다녀왔다. 온천(溫泉)이란 무엇인가,
지하수가 지열(地熱)로 평균 기온 이상으로 더워져서 땅위로 용출(湧出)하는 샘을 말한다.
그 물에는 여러 가지 광물질(鑛物質)이 녹아 있어 의학적 효험이 있다. 유황천(硫黃泉), 식염천(食鹽泉), 탄산천(炭酸泉), 철천(鐵泉)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온천은 온양온천이다. 가장 열이 높은 온천이 74도의 부곡 온천이다.
온천을 하자어로는 열천(熱泉), 온정(溫井), 탕천(湯泉), 탕정(湯井), 맞선말로는 냉천(冷泉) 등이 있다.
독일(獨逸)에서는 20⁰C 이상의 광천(鑛泉)을 온천이라 하고 그 이하를 냉천(冷泉)이라 하듯이 온천의 분류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체온(體溫)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상이면 온천(溫泉), 그 이하면 냉천(冷泉)으로 하여 네 가지로 온천을 분류하고 있다.
냉천(冷泉, 25⁰C 이하), 미온천(微溫泉, 25~34⁰C), 온천(溫泉, 34~42⁰C), 고온천(高溫泉, 42⁰C 이상)
우리나라 온천은 한반도 전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남한보다 북한에 더 많이 분포하고 있다.
*. 수안보 온천 전설
- 옛날 어느 한겨울에 수안보(옛 충청북도 중원군 상모면 온천리)를 지나던 피부병(문등병)을 앓던 걸인(乞人)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을 발견하고 그 근처 들에 쌓아 놓은 짚더미 속에서 기거하면서 그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온수로 상처 부위를 씻었더니 신기하게도 피부병(문둥병이)이 완치 되면서부터 수안보가 온천지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수안보 온천에서 한 번 목욕으로 하루, 두 번 목욕으로 이틀씩 생명이 연장된다 하여 명지천(命之泉)이라는 이름으로 구전되어 전하던 온천이다.
-수안보 온천의 정확한 발견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사 56권에 의하면 약 1천년 전 고려 헌종 9년(서기 1018년) 당시에도 있었던 유서 깊은 온천이다. 세종대왕 때는 부마였던 연창위 안맹담과 세조 때의 우의정 권람 등과 숙종(肅宗)을 비롯한 전국에서 모여든 욕객으로 온정 거리가 사철 붐볐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등에 전하여 오는 영천(靈泉)이다.
수안보 상록호텔 앞에는 커다란 수석 소망석(所望石)이 있다. 그 주위에는 십이지(十二支)의 12 띠의 동물의 모양이 조형물로 빙둘러 서 있는데 이는 사람을 12 가지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누구나 자기 띠 앞의 석물 앞에서서 자기의 소망을 빌어 보라는 것이다. 이소망석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들은 식량을 구하러 강가에 나가 그물을 던졌더니 갑자기 회호리바람이 치며 물속에서 가득 물고기와 금은보화를 매단 커다란 바위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욕심 많은 원님이 하인을 시켜서 소원을 빌게 하고, 올라오는 바위를 동아줄로 꽁꽁 묶어 통째로 가져 가려고 하인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바위는 사라지며 하인들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자기 때문에 사람이 죽고 다시는 바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괴로워 하던 총각은 "나 죽으면 그 바위처럼 세상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주는 바위가 되리라."고 벼르며 살다가 죽고 말았다.
ilman을 영웅 되게 도와 주서서.
홍길동 같은 서민의 영웅 되게 도와 주서서
그 길이
그렇게 남을 돕는 길이
롯도 복권 당첨 되는 길이외다.
보(水安堡) 어원
-수안보(水安保)라는 온천명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그 이전에 '물안보', '물안비'라는 지명이 이곳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어져 왔다. 그것은 이곳에 보(洑)가 생기면서 보의 안쪽 '물탕(溫水)거리'라는 순수한 우리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보(洑)란 논에 물을 대려고 흘러 가는 물을 막아 두려고 쌓아 놓은 둑을 말한다.
-五州衍文長箋散稿(1934 헌종)위 글을 보면 지금의 표기 '수안보(水安堡)'와 그 한자가 다르고, 그 설명 속에 '보' 자가 '保, 洑'로 또 달라서 혼동을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필자 나름대로 수안보(水安堡)의 어원을 다음과 같이 밝혀 보기로 한다.
*. 수안보 온천의 개발
수안보 온천이 오늘날과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885년 무렵 노천식 온천(路天式溫泉)으로 1916년에 일본식의 근대 건물로 지은 것이다(위 그림 참조).
여행 가서는 잘 보고, 잘 자고, 잘 먹는 것이 제일이라는데 금번 수안보 여행에서는 그 소원을 모두 풀었다.
수안보 근처의 월악산 상원사(上元寺)가 '보은(報恩)의 꿩' 전설로 유명해 진 것을 보면 옛부터 이 고장에 특히 꿩이 많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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