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동유럽 여행/ 로만틱 가도, 귀국길에서 (최종회)

ilman 2023. 3. 26. 19:23


*. 로만틱 가도(Romanik Strasse) 
  우리는 독일의 로만틱 가도를 따라 프랑크푸르트를 가고 있다. 이 길은 중세에 알프스 넘어서 퓌센에서 로마로 가는 통상로라 하여 '로만틱 가도(Romanik Strasse)'라 하여 왔다.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도중에 있는 백조의 성(白鳥 城)이나 로텐부르크, 뇌들이 겐,
하이델베르크 같은 귀에 익은 곳은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는 듯하여서다. 거기에는 한결 같이 중세(中世) 그대로의 성()이 있고 그 속에서 옛날 그들의 후손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로만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는 알프스의 북쪽 끝자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백조의 성’으로 알려진 노인스반스타인(Neunschwanstein)이다.

  유난히 간판이 멋진 스반가우(Schwangau)란 동네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올라가거나, 5유로를 내고 마차를 타고 올라가는 곳에 있는 노인스반스타인(Neunschwanstein) 성(城)은 월터 디즈니(Walt Diesney)가 이 성을 모델로 디즈니랜드를 만들었다는 동화 속의 성같이 우리를 동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갖게 한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첫 장면이 성에서 마차를 타고 내려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 성(城)이 바로 이 성(城)이다. 여기에는 현실과 예술에 얽힌 슬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동화왕 루드비히 2세는 열열한 음악광으로 열성적인 바그너(Wagner)의 후원자였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리게’에 등장하는 백조의 성을 모델로 하여 성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국가의 어려운 재정 형편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이 성을 지었다.  그것이 말썽이 되어 정신병자로 몰리게 되고 왕위에서 쫓겨나자마자 뮌헨의 스타른베르거 호수에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국정에 등한시하고 예술에 탐닉하다가 17년 동안이나 심혈을 기울여서 완공하고도 그곳에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당시 바이에른 신민과 정치인들에게 버림을 받은 비운의 왕이 된 것이다.

성(城)에 들어가서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이 어떻게 꾸며졌는가를 보고도 싶었지만 이를 생략하고, 이 성이 가장 잘 보이는 촬영 장소라는 그 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향하였다.

폭포가 있는 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다리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환상적이었다.
알프스의 설산과 그 위의 하얀 뭉게구름. 하늘보다 파란 호수와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서 있는 노인스반스타인(Neunschwanstein) 성은 지금 내가 영화의 한 장면을 바라보는 것이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백조의 성을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아버지 푸드비히가 짓고 루드비히 왕이 자랐다는 호수에 둘러싸인 노란 '호핸드반가우 성( Hohen schwanau)'이 석양 속에서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동구 여행도 마지막으로 떠나는 것이 아쉬워 나는 그 성에 있는 상가에 들려 사진첩에 담긴 이 아름다운 성의 봄, 여름 계절의 모습을 취한 듯이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 귀국길에서


일만은 '황태자' 되고 옛 연인 '케티' 되어
하이델베르크 카페서


랑을
그립니다.
황소집 맥주잔 속에 그 얼굴을 띄우면서.
                                       -하이델베르크에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케디와 황태자가 젊음을 불태우던 바로 그 '황소집' 앞에 서니 가난해서 고학하던 대학 학창 시절, 철철 넘치던 젊은 내 마음을 뛰게 하던 그때의 그 문학소녀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지금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어떤 자식들을 낳고 살고 있을까.
살아는 있는 것일까. 가난해서 아무것도 주지 못했던 그 여인을 어디선가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게 된다면 그곳이 여기보다 더 한 곳이라 하더라도 나의 가난한 주머니나마 마음껏 풀어보고 싶어 진다.
  그런 일로 듣게 되는 아내의 산소 같은 잔소리는 얼마나 신선하고 황홀한 일일까.
어제는 로텐부르크보다는 적은 중세의 고성 뇌드링겐(Noedlingen)의 어둠 속을 거닐다가 그 성 속 나그네 되어 잠들었고, 조금 전에 하이델베르크의 간단한 관광을 마치고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떠나 지금 우리는 그리운 우리들의 나라 인천공항을 향해 가고 있다. 장장 9시간 30분의 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나의 가슴에 가득 찬 아름다움이 머문 자리에다가 감히 꿈꾸어 보지도 못한 동유럽의 11일간의 아름다움을 더하게 된 것이다.

               “세계는

                     나의 학교

                         여행이라는 과정에서

                                 나는 수없이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

                                            유쾌한 초등학생이다.” 
                                                     -김기림(1908~납북)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는 3번의 여행을 한다.
떠나기 전에는 예습여행이요, 가서는 실습 여행이고, 다녀와서는 복습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긴 여행은 복습 여행이다. 앞의 두 여행에서 얻은 자료를 정리하고 보충하면서 적지 않은 투자를 한 우리의 이 소중한 경험을 여행을 함께 한 이들이나, 같은 곳을 욕심내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름다움이 머문 자리’로 심어주고 싶어서다.
그러기 위해서 초등학생처럼 젊은 가이드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현지 가이드가 명승지를 설명할 때는 그의 입가에 나의 머리를 맞춘다. 나의 모자에 디지털 녹음기의 마이크를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버스 속에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유럽의 건물을 대충 설명할 때에는 디지털 캠코더로 그림과 설명을 녹화하였다. 명승지에서는 가급적 빠짐없이 디지털카메라에 담아 한번 여행에 그 사진이 1,500장이 넘었다. 현지에서는 가능하면 아낌없이 관광책자를 사며 다녔다. 그것이 20권이 넘었다.
돌아와서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았다. 이렇게 해서 쓰인 것이 그동안 내가 쓴 “아름다움이 머문 자리”란 큰 제목으로 발간하고 싶은 'ilman의 세계 여행기'다.
‘저는 재주로는 글을 쓰지 못하고 노력으로 씁니다.’ 하는 나의 평소의 약속을 실현하고 싶어서다.

이렇게 여행기를 쓰고 있을 때가 내가 행복한 때다.
몇 해 전이던가. 전세 준 아파트 비용 일부와 14년간의 기자 생활의 퇴직금을 가지고 아이들은 휴학시키고 1년간 세계일주를 떠난 '솔빛별' 가족이 있어 화제가 되었는데, 이는 도대체 여행의 어떤 매력 때문이었을까. 여행이란 무어길레.

 

여행(旅行)이란
엄마 품 처음 떠나 마주친 새 세상이다.
둥지 떠난 어린 새의 새로운 하루하루다.
숙명(宿命)
아닌 인생길에서
선택하는 몸짓이다.

 

                                       - 나의 '동유럽 여행기 끝-